낡았어도, 오타쿠는 오타쿠다.
이 명언을 솔직히… 여기에 쓰고 싶진 않지만, 이만큼 잘 들어맞는 문장도 없는 것 같습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괴물의 ‘옷’…을 벗기는 싸움을 하니까요. 특히 오타쿠에게 있어선 마치 깊은 구렁에 빠져나오기 어려운 ‘심연’과도 같은 게임입니다. 일본의 개발사, ‘어콰이어’에서 제작한 액션 게임, ‘아키바스 트립’입니다.
아키바스 트립은 언어유희가 들어간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 명칭은 ‘AKIBA’S TRIP’이지만, 띄어쓰기를 좀만 고치면 ‘AKIBA STRIP’으로 변하게 되죠. 그래서 그런지, 이 게임을 접한 유저들은 ‘아키바 스트립’이나 띄어쓰기가 없는 ‘아키바스트립’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근데 사실인걸요. 이 게임은 일본의 실제 지명, ‘아키바하라’에서 적과 옷 벗기면서 싸우는 게임이거든요.
그중, 2014년에 출시한 ‘아키바스 트립 2’는 한국에도 현지화되어 정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어판 게임이 많이 없었기도 했고, PS Vita를 소지하고 있던 유저분들에게 의외의 재미가 있다며 어느 정도 호평을 받기도 했던 타이틀입니다. 철저한 B급 감성으로 무장한 아키바스 트립 2는 당시 저도 재밌게 한 추억이 있습니다.
근데 어콰이어는 좀 다르게 생각했나 봅니다. 옷을 벗기는 B급 액션 게임에서 평범한(?) JRPG 감성을 담은 ‘아키바스 비트’를 출시했거든요. 당연하지만 그때 그 감성을 느끼고 싶었던 유저는 물론, 일반 게이머들에게조차 외면받아 철저하게 망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반성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키바스 트립 3’이 곧 나온다는 뜻일까요? 지금 의외의 타이틀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바로 ‘아키바스 트립: Hellbound & Debriefed (이하, 아키바스 트립)’입니다. 이 게임은 PSP로 나온 ‘아키바스 트립 +’를 이식한 작품입니다. 넵, 일종의 ‘리마스터’라고 해도 되지만, 해상도나 프레임을 높인 것밖에 되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처음 발매된 게임이기 때문에 나름의 의의는 있는 편입니다. 과연 후속작보다 재밌을지, 오늘 신나게 카게야시의 옷을 벗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명: 아키바스 트립: Hellbound & Debriefed | 개발사 : 어콰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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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아키바스 트립: Hellbound & Debriefed' 오픈크리틱 페이지
그래픽…… 면죄부를 주긴 힘들겠군요
이 게임은 2011년에 발매된 PSP 타이틀입니다. 이 설명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군요. 덕분에 PS4 성능이 과분할 정도의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후처리를 했는지, 모델링은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데요. 당연하겠지만 후속작으로 출시되었던 ‘아키바스 트립 2’보다 퀄리티가 떨어져 보입니다.
그나마 자동차나 버스가 자주 지나다니고 나름대로 아키하바라를 충실히 재현한 거리가 인상 깊습니다. 처음 즐기는 오타쿠 플레이어라면 이 건물은 어떤 가게가 들어선 건물이고, 어떤 가게의 패러디인지 유추하는 재미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후속작, ‘아키바스 트립 2’보다 떨어지는 퀄리티라 2편을 즐긴 유저라면 조금 당혹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흡혈귀, 카게야시와 비밀조직 'NIRO'의 중심에 선 주인공
오타쿠들이 모여드는 열정적인 거리, '아키하바라'에서는 어떤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바로 흡혈귀가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죠. 아키하바라를 지키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도시의 안전을 지키는 민간 자경단, '아키하바라 자경단'에 소속되어 있는 주인공은 어느 날, 친구의 "컴퓨터의 D드라이브를 지워......!!"라는 의문의 통화를 받게 되고, 곧바로 친구가 있는 장소로 향하게 됩니다.
친구를 찾은 그의 앞에 서있는 것은 어느 남성 흡혈귀. 주인공은 그에게 대항하지만 괴력을 갖고 있는 흡혈귀에게 결국 힘을 못 쓰고 쓰러지고 맙니다. 곧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 그런 그에게 의문의 소녀가 나타나 자신의 피를 나눠주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피로 인해 일시적으로 '흡혈귀, 카게야시'화가 된 그는 갑자기 나타난 정부의 비밀 조직, 'NIRO'에 의해 '요원'으로 발탁되고 카게야시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아키하바라를 떠돌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지만, 사실 인간의 편이라고 하는 조직 'NIRO'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카게야시도 인간들을 해치는 괴물들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차 주인공은 일방적인 편이 아닌, 자신의 위치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아키바스 트립은 이런 분기적인 시나리오를 통해 플레이어의 선택을 유도하고,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각종 서브 퀘스트나 거리에 떠도는 오타쿠들과의 대화, 트위터를 모방한 '포쓰리'에서 나눠지는 오타쿠들의 인터넷 대화를 들으면서 아키바스 트립 세계관의 오타쿠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오타쿠를 모르는 사람이 오타쿠처럼 모방한 텍스트가 아니라 정말 오타쿠가 쓴 듯한 몰입도 높은 텍스트를 통해 실제 오타쿠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위 게임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아사우라'란 작가로 라이트 노벨, '도시락 전쟁'을 집필하면서 큰 호평을 받았던 작가입니다. 물론 AAA급 게임처럼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게임은 아니지만, 오타쿠들에게 충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는 분명, 이 게임만의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훌륭한 재현, 아키하바라
이 작품은 아키하바라가 주 무대고 작품도 '오타쿠'라는 인물들을 굉장히 많이 비춰주고 있습니다. 오타쿠. 지금은 좀 더 변화되어서 십덕후 (5가 아니라 10이라는 의미로)라든지, 좀 더 대상을 부르는 별칭이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저도 어떻게 보면 오타쿠로 아직도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고 굿즈를 사들이며, 게임을 즐기고 있으니깐요. 그래서 옛날에는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현실도 많이 신경 쓰는 편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여러 인간 군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근데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 오타쿠들도 볼 수 있죠. 보면 여장남자와 같이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치장한 오타쿠'도 있고, 굿즈의 오프라인 발매가 취소되었다고 오타쿠들의 춤, '오타게'를 추면서 시위하고 있는 오타쿠들도 있었죠. 그리고 주인공의 오타쿠 친구인 '노부'는 진성 오타쿠. 3차원은 관심 없다며 2차원만 바라보는 오타쿠입니다.
이런 식으로 오타쿠들의 모습과 손금쟁이나 모금 단체, 양아치와 같은 현실에서 볼법한 피하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시민들과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까지 그려내면서 아키하바라라는 거리를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래픽의 해상도가 너무 낮아 몰입이 조금씩 깨진다는 점과 '오픈 월드'처럼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는 정말 매력적입니다. 현재는 세가의 손에서 벗어난 '세가 오락실'을 패러디한 부분이나, '토라노아나', '소프맙', '애니메이트', '코토부키야' 등. 아키하바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게를 흉내 낸 거리는 자신이 아키하바라를 단 한 번이라도 드나들었다면 쉽게 이해하고 감상에 젖을 부분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여행이 어려워진 만큼, 대리만족으로 여행 간다는 느낌으로 플레이하면 더욱 좋겠네요.
아무리 전작이라고 하지만......
PS4로 이식되어 발매했지만, 720p 해상도로 많은 비판을 받은 아키바스 트립 2와 달리 아키바스 트립은 리마스터로서 기본적인 면은 지켜주었습니다. PS4에서는 1080p로 출력되며 60fps를 지원, 스위치에서는 TV 모드로는 1080p/30fps, 휴대 모드에서는 720p/30fps를 보여줍니다. 캐릭터 모델링 또한 어느 정도 해상도를 손봐 투박하지만 못 봐줄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다만, PSP로 나온 초대작의 리마스터라고 한들, '아키바스 트립 2'보다 못한 편의성은 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우선 저장을 맵에서 나와야 할 수 있었고, 이를 설명해 주는 부분은 한참 뒤에서 이뤄집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거나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는 이상, 저장하는 곳이 어딘지 헤매기 일쑤죠.
그뿐만 아닙니다. 개선판에서 한차례 개선되었다던 '카메라 워크'는 아직도 불편합니다. 우선 아키바 자경단 아지트에서 나오면 자경단 아지트로 들어가는 부분에 카메라를 비춰줍니다. 앞으로 움직이면 되는 줄 알고 스틱을 앞으로 기울이면 그대로 다시 아지트로 들어갑니다. 즉, 아지트에서 나오면 바로 움직이지 말고, 카메라를 거리로 돌려놓고 움직여야 하는 수고가 드는 큰 불편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전투 도중에 맵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는 부분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입니다. 유리할 때에 컨트롤 미스로 맵으로 빠져나가면 지금까지 진행했던 부분들이 전부 초기화가 되어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고, 반대로 경찰에게 싸움을 들켜서 체포당할 위기에 처해있다면 맵으로 빠져나와서 상황 자체를 초기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키바스 트립 2에서도 똑같이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사가 의도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전투 부분은 이 작품부터 한다면 불편함을 느끼되, 익숙해지면 할만한 액션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반면, 아키바스 트립 2를 즐기고 오신 분들이라면 큰 불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강해지고 점점 옷 벗기는 기술이 많아지면 점차 펼칠 수 있는 액션의 범위가 늘어납니다. 하지만 공격의 딜레이가 커 적의 공격에 반격하지 못하거나, 방어할 수 없을 때가 있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키바스 트립 2와 비교해봤습니다
아키바스 트립의 후속작, 아키바스 트립 2를 뺄 수 없겠죠? PS3와 PS Vita로 한국에 먼저 출시된 이 작품은 당시 할 게임이 비교적 많지 않았던 비타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타쿠들에게 친숙한 작품들이 가득한 아키하바라에서 시민들의 인파 속으로 숨어들은 '마해자'를 퇴치하기 위해 '스트립 기술'을 배워 남들의 옷을 벗기고... 그 벗긴 옷을 입거나 하는 등으로 강화하는 게임이죠.
그래픽 측면에서도 확실히 비교가 됩니다. 해상도는 최근 리마스터화된 아키바스 트립이 좀 더 높아 보입니다만, 캐릭터의 모델링이나 배경 그래픽, 효과 등을 보면 아키바스 트립 2가 좀 더 좋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후속작이 좀 더 높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지만, 기왕 리마스터를 한 것이니, 1편에도 비슷한 효과를 넣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투 면에서도 2편이 좀 더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모션의 연계가 부드럽고, 서포터가 생겨 더 이상 혼자 전투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다만, 'PS Vita'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만, 프레임 드랍이 종종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액션 게임에서 프레임 드랍은 상당히 큰 타격이죠. 반면, 아키바스 트립은 전투 면에서 2편보다는 부드러움은 떨어져도 프레임 드랍이 없어 프레임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1편이 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는 1편의 완성도가 좀 더 높습니다. 인간들의 속에 섞여 살 수 없는 흡혈귀, '카게야시'와 그런 카게야시의 위협 속에서 사는 인간을 대변하는 비밀 조직, 'NIRO'의 갈등을 스토리 라인에 잘 녹여내렸고, 주인공은 그들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반면, 2편은 '미연시'와 같이 히로인들의 호감도에 따른 멀티 엔딩을 보여준 대신, 메인 스토리의 줄기가 빈약하기에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1편을 좀 더 선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둘을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액션을 중시하거나 미연시와 같은 멀티 엔딩을 좀 더 선호한다면 '아키바스 트립 2'를, 안정적인 해상도와 프레임을 중시하거나 메인 스토리의 줄기가 탄탄한 시나리오를 좀 더 선호하신다면 '아키바스 트립'을 선택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둘의 시대상 흐름에 따른 완성도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감안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키바스 트립은 2011년에 나온 낡은 게임입니다. 이를 좀 더 둥글게 표현할 수 있지만, 컨트롤이 불편한 부분이나 편의성이 부족한 면은 아키바스 트립 2를 플레이해본 사람들에게 있어선 오래된 게임을 넘어 마이너스적인 요소죠. 그만큼 게임을 하면서 불합리하거나 불편한 점도 많을 것이고, 자신의 임무를 확인해보기 용인한 'TODO'는 가끔 표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B급 감성'이 충만한 이 게임을 단순히 불편하다며 피해 가기엔 아까운 게임이란 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충실하게 재현된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이유로 시비를 터는 사람들이나 실제로 존재할 법한 '모금단체'나 '손금쟁이'도 볼 수 있죠. 메이드에 곰 인형 입은 사람, 여장남자에 뭐... 되지도 않는 사람들이 엄청 많지만, "아키하바라니깐 그럴 수 있지." 하며 납득하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측면에서도 꽤 괜찮습니다. 마구잡이로 어긋나는 대화를 하면 짧은 운명을 맞이하거나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기에 옳은 방향으로 가려면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춰야 할지 생각해 보는 부분도 재밌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분기점이 엄청 많지는 않다는 것인데요. 그래도 '카게야시'와 '조직'의 분쟁에서 정확하게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주인공의 선택을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아 참, 그리고 오프닝을 무려 애니송 가수 그룹, 'ClariS'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후속작은 '하루나 루나'가 맡았죠. 이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ClariS와 하루나 루나 둘 다 애니송을 부른 가수로선 정점에 있기도 하고, 워냑 훌륭한 곡을 많이 맡았다 보니... 아! 소드 아트 온라인! 내여귀 아시는구나! (퍽)
크크큭, 죄송합니다. 저희 집 겐스케군이 날뛰는 바람에 제가 좀... 진정시켰습니다. 'ㅅ' (먼산)
(출처: 유튜브 'minomino360'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