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불길. 잠시 시간이 지나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건물들.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 마냥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것들은 아닐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들이 박살나는 것이기에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짙게 다가오는 '패배'라는 그림자는 반갑게 맞이할만한 것이 아니니까.

'영웅'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내가 바로 영웅'이라는 심리로부터 얻는 대리만족감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이유로 충분하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팽팽한 대치 상황, 혹은 지극히 불리하게 기울어버린 전황에서 니케의 미소가 다시 나를 향하게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불릴만한 일일테니 말이다.

여기, 당신을 '역전의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게임이 있다. 지난 8월 7일 한글판으로 정식 출시된 '디비니티: 드래곤 커맨더'는 라리안 스튜디오가 개발한 RPG 기반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디비니티 시리즈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복합 장르의 게임이며, 신중한 전략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곳곳에 담겨있다.

전략 시뮬레이션 요소를 한가득 품은 디비니티의 신작, 지금부터 기자가 게임 속 주인공의 자문 역할이 되어 보다 자세히 풀어내고자 한다.




지금부터 당신은 드래곤이 됩니다... 레드썬!


주인공의 거점 '레이븐 호'. 드래곤 체면에 이 정도는 있어줘야...


■ 황제의 후예는 반쪽짜리 드래곤? 그리 낯설지 않은 설정

어서오게, 사령관. 리벨론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여정에 온 것을 환영하네.

첫 질문치고는 좀 뜬금없지만, 혹시 소싯적에 판타지 소설 좀 읽어봤나? 판타지 스토리들을 섭렵하다보면 '내가 바로 판타지요'라고 말해주는 요소들이 몇 있기 마련이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엘프나 드워프 같이 인간 외의 종족들을 빼놓을 수 없다네. 흔하게 봐오던 배경에 놀라울 정도로 딱 들어맞는 취향과 성격까지, 그리 낯설지는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아, 한 가지 특징이라면 '기술'을 대표하는 종족이 임프라는 점이지. 판타지 세계관이 익숙하다면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기계나 기술에 조예가 깊은 종족을 물으면 떠오르는 종족들은 대개 한정적이지 않나? 어쩌면 임프족과 과학기술이라는 조합이 영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으니 참고해두게.

자, 사실상 이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부분이면서 무엇보다 가장 뻔하게 느껴질 요소가 남았네. 바로 자네의 혈통, 즉 출신 배경이지. 자네는 살해당한 황제와 드래곤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짜리 드래곤이라네. 동시에 우리를 대표할 사령관이기도 하고.

흠, 이쯤 되면 감이 좀 잡히지 않나? 판타지를 꽤 접해봤다고 했으니 이제 대략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줄줄 읊어낼 수 있을 거라 믿네.

사령관한테 잡종이라니, 거 말버릇하고는...


이 녀석이 임프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편견 때문일 거라고 믿고 싶다


썩 와닿지 않는 논리로 약을 파는 녀석도 있으니 주의하길



■ "핵심은 이거란다" 전술지도 전투

통일전쟁을 이끌어갈 총사령관 타이틀을 달았으면 무엇에 가장 신경을 쏟아야겠나? 그래, 바로 싸움이지.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사령관은 적군의 수도 한가운데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에 더없이 적합한 재목이거든. 뭐, 이 게임 제목에서도 '사령관(Commander)'이라고 강조해뒀으니 각오는 충분히 하고 왔으리라 믿네.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지지세력들의 운명이 자네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있는만큼 그 비중이 크다는 것을 잊지 말게나. 전황을 바라볼 때는 크게 두 가지 시스템을 염두에 둬야 한다네. 하나는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술지도 위에서의 플레이, 다른 하나는 개별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플레이지.

둘 다 물론 중요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전술지도 위에서의 싸움일세. 여기에서의 두뇌대결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이지.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국가들을 얼마나 많이,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는가에 따라 매 턴 획득하는 자원(골드와 연구 포인트 수)의 양에 차이가 생긴다네.

얼마나 많은 총알을 가지고 있는가가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쯤은 뇌에 이성이라는 녀석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알 수 있는 법이지. 물론, 아무리 총알이 넉넉하더라도 허공에 마구 난사해버리면 승리는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될 테지만 말이야. 점령한 영토가 넓어질수록 수입도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유지해야할 병력의 수도 많아지니 결정 하나하나에도 신중을 기하는 것을 잊지 말게나.

사령관이라면 큰 그림을 보는 안목은 필수


가까이에서 보면 꽤 아기자기하다



■ "홍길동이 될 순 없어..." 한 턴당 한 번의 기회, 어디에 쓸 것인가

알아두게, 사령관. 전술지도에서의 싸움은 대개 약식으로 이루어진다네. 아군 유닛을 드래그해서 적이 차지한 영토나 영해에 옮겨놓고 턴을 종료하면 전투가 발생하게 되지. 물론 적 유닛이 우리 영토로 넘어온 채로 턴을 끝내도 마찬가지라네.

전쟁의 구름이 다가오면 드디어 사령관으로서 자네의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이 오네. 전투개관을 통해 해당 지역에서의 양측 전력을 한 눈에 볼 수 있지. 막대 그래프로 예측 전력을 보여주네만, 전장을 맡을 지휘관과 사용할 전술 카드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다네.

무엇보다 승리를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반인반용(半人半龍)인 사령관, 즉 자네가 직접 이끄는 것이네만... 애석하게도 자네는 용이지 홍길동이 아니라네. 전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은 한 턴에 한 번 뿐이지. 즉, 복수의 적이 쳐들어오거나 하나의 적이 여러 곳을 각개격파하려고 한다면 그 중 하나만을 자네가 지휘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네.

어느 정도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자네 휘하의 유능한 장군들을, 그리고 제국의 용맹한 병사들을 좀 더 믿어보게나. 물론 그러려면 보다 강력하고 수도 많은 부대를 만들기 위해 연구와 고민을 거듭해야겠지만, 어차피 이 게임 시작할 때부터 그 정도는 각오했던 것이 아닌가?

예측 전황을 미리 보고 지휘관을 선택. "기회는 한 번 뿐"


투입한 병력 규모가 적으면 상관없지만, 많을 땐 단 한 번의 실수로 수많은 유닛이 날아간다



■ 날아올라라 드래곤 사령관! 전장의 영웅으로 거듭날 때

책상머리에 앉아 지휘봉만 휘두르는 리더는 결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를 얻을 수 없는 법이지. 그래그래, 바로 전투 지휘를 이야기하는 거야. 진정한 우두머리가 되려면 때로는 전장을 지배하는 영웅의 면모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네.

앞서 설명했듯이, 한 턴에 한 번 총사령관인 자네가 직접 지휘하는 전투는 실시간 전략전투로 진행되네. 일반적인 RTS에서처럼 자원과 건물, 유닛 개념이 존재하지. 다른 게임들과 다른 점이라면, 자원이 '신병'이라는 개념으로 일원화되어있고, 따로 획득할 필요 없이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충원된다는 것이네.

신병은 건물을 지을 때, 유닛을 생산할 때 각각 정해진 수만큼 소모되고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늘어난다네. 다만, 그 전투에서 동원할 수 있는 신병의 총 숫자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주의하게나. 화면 상단을 잘 보면 괄호 안 숫자가 줄어들면서 신병들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걸세. 이 괄호 안에 있는 숫자가 현재 자네가 징집할 수 있는 신병의 남은 숫자라네.

맵 상에 있는 신병 거점을 추가로 확보하면 신병의 최대치를 늘릴 수 있고, 굳이 필요치 않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거점을 확보해야하네. 적이 확보한 거점이 자네보다 많아지면 위기를 느낀 신병들이 탈주할 수도 있으니까. 중립상태거나 적이 차지한 거점은 아군 유닛이 접근한 채로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그 뒤에 건물을 지을 수 있네.

유닛 간 상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 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 내가 사령관을 너무 무시했나보군. 미안하네. 그럼 정말 중요한 걸 알려주도록 하지. 전투가 시작된 뒤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자네가 직접 전장에 나설 수 있네. R키를 누르면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지.

아, 드래곤으로 변신할 때는 일정 수의 신병이 필요하고, 아군 유닛이 인접해 있는 곳에서만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 기억해두게나. 적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더라도 잠깐만 쉬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걱정말고 제국 사령관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게. 설명으로 보면 좀 복잡하네만, 한두 번쯤 해보면 금방 감이 잡힐게야.

횽 왔다, 이제부터 몽땅 쓸어담아주마


이얏호~ 날려버렷~!



■ 모두가 웃을 수는 없는 걸까? 또 하나의 변수, '정치'

음, 이 단어만 들으면 인상을 구기거나 골치아파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사령관이자 레이븐 호의 군주이니만큼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네. 이 배에는 다섯 명의 대표자들이 자신들 종족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승선해있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많아. 자네가 결정한 단 하나의 정책에도 어떤 종족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어떤 종족은 대놓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그들 사이에서 적절한 포지션을 잡는 것도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일세. 각 국가마다 우세를 점하고 있는 종족들이 있는데,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황제니 국왕이니 하는 칭호가 다 무슨 소용이겠나?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한들 빈 쭉정이일 수밖에 없을 테지.

성군이 되고자 한다면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들 모두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건 이상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현명하네. 현실을 직시해야지. 카리스마를 최우선으로 하는 강한 군주가 되고 싶다면 딱히 말리지는 않겠네. 어찌됐건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자네를 따르는 공동운명체니까.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나? 물론 난 제국의 수도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에서 웃게 되기를 희망한다네.

정책 결정에 개인적 감정을 담...아도 된다. 게임에서는.


정책 향방에 따라 전술적으로 활용 가치가 있는 카드들을 얻기도.


한 턴이 끝나면 유저의 행동이 미친 영향들이 신속하게 기사화된다
제목은 그다지 맘에 안들 때가 많다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술지도 위에서의 플레이와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전장에서의 플레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시스템을 하나의 게임 안에 묶어놓은 것만 봐도 꽤 호기심이 간다. 여기에 스토리와 두 갈래의 기술 연구, 각 종족들의 지지율과 같은 요소들이 양념처럼 더해져 몰입도도 꽤 높은 편이다.

아쉬운 점은 전반적인 시스템을 안내해주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이가 빠진 모습도 보인다.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부분은 없기 때문에 금방 적응할 수 있긴 하지만, 튜토리얼 파트를 좀 더 세밀하게 채워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머리를 맴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승패는 병가지상사라지만, 씁쓸한 패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밑도 끝도 없는 상상에 빠질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실제로 내가 지휘관이었다면, 이 처절한 상황을 맞이할 때의 기분이 어떨지'와 같은 상상이랄까. 물론, 게임 화면으로 볼 때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참담하리라.

RTS를 사랑하지만 선천적으로 빠릿하지 못한 성격을 가진 유저, 공들여 지어놓은 기지가 불타는 모습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유저라면 '디비니티: 드래곤 커맨더', 해볼만 하다고 추천하고픈 타이틀이다.


고갱님, 이제 승리하실 시간입니다



■ '디비니티: 드래곤 커맨더' 플레이 영상

※ 본 영상에서는 낮은 난이도, 간단한 맵을 선택했으며, 실제로 다양한 난이도와 맵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