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기자로서 많은 선수들을 만나고 다닌 탓에 기자는 한 가지 능력이 생겼다. 바로 "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대부분 이런 선수들은 "어쩌면 그렇게 잘하냐" 라는 질문에 무심해 보일 정도로 시크하게 대답하지만, 그 내면에는 '그렇게 될 때까지 연습하는 게 정상이다.' 라는 무시무시한 관념이 깔려있다.

그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일견 "안 되겠다." "어렵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당연하게' 수행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최초로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예전 MiG 숙소를 방문했을 때 인터뷰를 하면서 리듬 게임을 1000콤보로 끝내는 홍민기 선수를 만났을 때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할 SK텔레콤 T1 2팀의 미드 라이너, "Faker" 이상혁 선수가 그렇다. 최근 해외 선수들에게도 종종 언급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상혁 선수는 대회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챔피언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며 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데뷔하자마자 4강 진출이라는 화려한 출발, 다양한 챔피언 폭을 자랑하는 신예 선수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Faker' 이상혁 선수. 기자는 그런 이상혁 선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잡게 되었다.

화려한 출발과 패기 넘치는 인터뷰로 유명해진 신예 미드 라이너, 하지만 숙소에서 만난 이상혁 선수는 그동안 방송에서 비쳤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더도 덜도 말고 내가 맡은 일을 한 것' 뿐이라는 차분한 태도로 첫 인사를 건네왔다.



▲ 안녕하세요. 'Faker' 이상혁입니다.




"일반 게임이 안돼서 랭크를 돌렸어요."


예전부터 챔피언스에 참가해 넓은 챔피언 풀을 보여줬던 선수들은 대부분 북미 서버를 경험했던 1세대 올드 유저 출신이다. 하지만 정말 못하는 챔피언이 없어 보이는 이상혁 선수는 "한국 서버 오픈 이틀 후부터 게임을 접했다." 라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첫 시작을 들려주었다.


"첫 시작은 한국 서버 오픈이 발표되고 이틀 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한 1년 반 정도 된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워크래프트와 카오스를 즐겨하고 있었는데 리그오브레전드가 한국 서버에 오픈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일반 게임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500승 정도를 기록하니 게임이 잘 안 잡히더라구요. 나중에 알아보니 일반 ELO가 너무 높아져서 게임이 안 잡히는 거였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랭크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죠."



게임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타고 난 것일까.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기는 소환사들이라면 "노말 게임이 안잡혀서 랭크 게임을 했다." 라는 사실로 프로가 되기 전 이상혁 선수의 승률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노말 게임에서 유명한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지금 1위를 하고 있는 임바(imba)님이나 1팀의 순호형 (SKT T1 Suno) LG IM의 전호진 선수 (LG-IM Lilac), 조세형 선수 (MVP Mata)도 그렇고요. 사실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유명 플레이어들을 만난다는 것에 아무런 감흥도 없었죠(웃음).

랭크 게임은 노말 게임을 하다가 가끔 하게 되었는데 한 달에 한 100점씩 올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2200점까지 랭크 점수를 올렸습니다."



▲ 일반 게임을 못(?)하게 되어 랭크 게임을 하게 되었다는 이상혁 선수



기자는 여기서 의문점이 들었다. 랭크 게임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 이상혁 선수는 시즌2 막바지에 다른 네임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콩전파' 라고 불리며 1,2위 경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탓이다. 랭크 게임을 집중해서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상혁 선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점수가 점점 올라가면서 인벤 랭크 통계 페이지를 자주 보게 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제가 그때 랭크 게임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오해를 하고 계시는데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학업 문제도 있었고...

그래도 시즌2가 끝나기 직전에는 점수가 올라가니 약간 욕심이 생겨서 평소보다는 게임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시즌2 끝나기 두 시간전에 있었던 경기에서 이겼으면 1등이였을텐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아쉽네요(웃음).

그때 그렇게 게임을 해서인지 지금도 랭크 게임 한판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비매너 플레이어를 만나도 그냥 재미있게 게임을 합니다. 트롤 플레이어가 있어도 승리하는 때도 많으니까요.

닷지나 비매너 행위도 해본 적 없어요. 그나마 기억나는 일은 예전에 실수로 타릭으로 마나 보석을 많이 산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컴퓨터 렉때문에 실수한 것이지 일부러 이상하게 게임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거든요."



▲ 잠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게임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이상혁 선수. 기자는 문득 시즌2 순위 1위를 위협하던 랭커였던 그에게 대부분의 소환사들의 관심사인 '심해 탈출 비법'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자기가 잘하면 됩니다(웃음). 관점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도 미드 라인을 주로 하다 보면 미드 라인보다 바텀이나 탑 라인이 더 캐리력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모든 라인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웃음).

그래서 비법을 찾기보다는 그냥 열심히 게임을 하시면 언젠가는 됩니다. 랭크 게임에서는 운이 거의 없고 자신의 실력뿐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한 마음으로 게임을 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 여러분도 열심히 하면 될 수 있습니다.



넓은 챔피언 폭의 비결? -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도 무조건 많이


SK텔레콤 T1에 입단하기 전의 닉네임인 '고전파'는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챔피언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지금도 난이도 최상급에 속하는 챔피언인 신드라가 출시되었을 때, 당시 프로 선수들이 입을 모아 이상혁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새로운 챔피언들은 어떤 챔피언이든 출시되면 무조건 연구를 하는데 거기에 신드라는 미드 챔피언이라 더 관심이 갔었죠. 처음 노말 게임에서 신드라 연구를 하는데 사람들이 트롤(?)이라고 비난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좀 잘 한 것 같았는데(웃음).

저는 처음 챔피언들이 나올 때 적응이 좀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IP만 허락하면 무조건 사서 많이 해보죠. 좋으면 좋으니까 더하고 안 좋으면 안 좋으니까 더하는 거죠.

사실 처음 시작할때는 라이즈 외에는 선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너무 라이즈만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거죠. 그때부터 여러 챔피언을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요즘도 여러 챔피언들을 해보고 있어요."




넓은 챔피언 폭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대부분 경기에서는 이른바 "대세" 챔피언이 있다. 따라서 그 시기에 맞는 챔피언이 아닌 다른 챔피언을 연습한다는 것은 사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다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상혁 선수는 평소에 충분히 연구를 해 두었다면 다소 적은 연습량에도 제대로 챔피언을 쓸 수 있다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전했다.


"사실 저희 코치님께서도 '좋은 챔피언' 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세요. 저도 코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런 챔피언들을 연습하고 있고요. 하지만 시청자분들은 제가 새 챔피언을 쓰는걸 좋아하시기도 하죠. 미드 니달리나 르블랑 같은 챔피언이 그렇습니다.

니달리 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준비했었어요. 하지만 르블랑은 코치님과 팀원들이 좋아하지도 않았고 경기에서 얼마나 효율적일지에 대한 의심도 많이 하셨죠. 하지만 상대편에 카서스도 있고 탱커 챔피언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팀원들의 동의를 얻어 르블랑을 선택했습니다.

연습은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랭크 게임에서 하던 것도 있었고 상대방의 조합을 볼때 분명 통한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르블랑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MVP 블루와의 경기에서 르블랑으로 MVP를 받은 이상혁 선수



챔피언스 리그에서 정말 다양한 성향의 챔피언을 선택한 이상혁 선수는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챔피언 폭은 자동으로 넓어지는 것 같다." 라는 평범한 이야기로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선 챔피언 폭이 넓으면 픽밴 싸움에서 유리함을 챙길 수 있어요. 저격밴도 잘 피할 수 있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저는 소위 말하는 '즐겜 유저'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양한 챔피언들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최신 챔피언들을 하다 보면 예전에 하다가 최근 잘 선택하지 않았던 챔피언들에게도 재미를 느끼게 되죠.

아이템 선택도 비슷해요. 아이템 트리는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니까요. 그래서 모든 아이템의 성능을 외워놓는 것이 좋아요. 그때그때 필요한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상대 조합이나 모든 상황을 따져보았을 때 비주류 아이템이나 챔피언이 나오는 정도는 굉장히 적어요. 하지만 무작정 그건 '챔피언이나 아이템이 처음부터 좋지 않았어' 라고 생각하며 연구를 안하는 것보다는 '쓸 수 있는 상황이 적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챔피언을 쓸 수 있도록 챔피언들을 선택한다는 이상혁 선수. 그렇다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챔피언은 무엇일까?

기자는 이상혁 선수가 정말 다양한 챔피언을 선택한 만큼 다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라이즈'를 꼽았다.


"처음 시작할 때 노말 게임까지 합치면 라이즈를 거의 400판 가까이 한 것 같아요. 랭크 게임에서도 총 게임 수는 적었지만 50%가 넘는 경기에서 라이즈를 선택했고 랭크 점수가 2000점이 될 때까지 라이즈만 했었죠. 그때 승률이 거의 90% 정도로 기억합니다. 배치고사 때부터 듀오 없이 27승 3패를 했었으니까요. 그렇게 라이즈를 많이 하다 보니 더 애착이 갔던 것 같아요.



"늘 최고인 선수가 목표" - 랭커 "고전파"에서 SK텔레콤 T1 "Faker"로



수많은 챔피언으로 랭크 게임과 노말 게임을 오가는 게이머였던 이상혁 선수. 그렇다면 '즐겜 유저'였던 그는 어떻게 해서 프로 게이머가 된 것일까?


"랭크 점수가 좀 높아졌을 때부터 프로 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 다른 곳에서의 제의도 많았죠. 어떤 결정을 내릴지 확신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코치님에게 제의가 들어오면서 "인생을 살면서 남들은 경험해보지 못할 것들이니 한 번 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사실 그 전에 아마추어팀도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코치님은 먼저 팀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말해주겠다며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그래도 그 팀에 소속되어있던 친구들이 프로 게이머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 가끔 그 당시 팀도 굉장히 쎈 팀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물론 지금 저희 팀이 더 좋지만(웃음).



프로게이머가 된 계기를 설명하며 지금의 SK텔레콤 T1 2팀에 대한 만족을 나타낸 이상혁 선수. 그래서인지 '지금 팀원들을 한 명씩 평가해본다면?' 이라는 기자의 질문에도 냉철한(?) 대답으로 팀원들의 장단점을 짚어주었다.


"언영이 (Impact, 정언영 선수)는 정말 꾸준하게 잘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별명이 나무죠(웃음). 물론, 너무 나무 같아서 엄청나게 흥하는 경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망하는 경기도 별로 없는것 같아요. 저로서는 그런 플레이가 훨씬 좋죠.

정글러는 (Bengi, 배성웅 선수) 미드 라인에 거의 오질 않는데 그래서 제가 부르면 게임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망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런데 최근에는 여러모로 밸런스가 잡힌 정글러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원거리 딜러는 (Piglet, 채광진 선수) 예전엔 정말 안 풀리는 경우에는 계속 안 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고요. 정현이 형은 (PoohMandoo) 처음엔 "정말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웃음) 점점 경기력이 좋아지는 게 느껴질 정도예요. 오히려 원거리 딜러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요.



▲ 계속해서 성장 중인 SK텔레콤 T1 2팀



담담하게 팀원들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이상혁 선수는 "팀원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자신도 당연히 열심히 해야된다." 라는 말로 자신을 다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죽도록 노력하는 것' 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상혁 선수는 앞으로 늘 최고인 선수가 되고싶다는 바람과 함께 즐거웠던 인터뷰를 마치게 되었다.


"저는 다른 어떤 말보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냥 잘하는 선수', '언제나 최고인 선수' 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팬분들이 경기를 지켜볼 때 항상 제가 출전하는 경기를 기대하게 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런 목표들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팬분들이 보내주시는 성원에 부족하지 않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많이 노력해서 꼭 좋은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 "최고의 선수가 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