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 업계의 화두는 단연 '최적화'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게임 사양이 높을 것 같아 보인다든가 하는 얘기가 나오긴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기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의 시네마틱이나 게임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면 스토리가 어떨지 어떤 요소가 숨겨져 있을지 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양이 높을 것 같다든가 영상 속 퀄리티대로 나올 수는 있을지, 그리고 버그는 없을지 최적화에 대한 얘기들이 더 많이 보이는 실정이다.

물론 대작이라고 할만한 게임들의 경우 대부분 출시 당시 최정상급 그래픽 퀄리티를 보여주는 만큼, 그만한 사양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건 유저들 역시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체감 대비 사양이 월등히 더 높아진 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유저들 사이에서는 엔비디아의 DLSS나 AMD의 FSR, 인텔의 Xess 같은 업스케일링 기술(이하 편의상 DLSS로 표현)이 최적화를 망치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는 저사양 PC에서도 높은 프레임을 얻거나 고사양 PC에서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쓸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극찬을 받았던 DLSS는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시작은 이러지 않았다
2018년 엔비디아가 DLSS를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이전에는 주로 영상에 쓰이던 업스케일링 기술을 게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다. 물론 초기 버전인 DLSS 1.0 때만 해도 호평보다는 혹평이 더 많았다. 작은 화면을 생성한 후 알고리즘을 통해 목표 해상도로 업스케일링 함으로써 원본(네이티브)과 비슷한 그래픽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더 높은 프레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엔비디아가 공언한 것과 달리 원본에 채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이때까지만 해도 DLSS는 그야말로 축복과도 같은 기술로 여겨졌다

그랬던 DLSS지만, 2.0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원본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프레임은 크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단숨에 차세대 기술의 핵심으로 손꼽히게 됐다. 그즈음 등장한 레이 트레이싱 역시 DLSS에 유저들이 관심을 보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레이 트레이싱을 적용하는 순간 프레임이 반토막이 나버리니 사실상 DLSS 없이는 어지간한 하이엔드 PC라고 해도 제대로 게임을 즐기기 어려웠으니 당연히 DLSS를 쓸 수밖에 없었다.

DLSS 3.5 버전이기는 하지만 엔비디아가 공개한 사이버펑크 2077: 팬텀 리버티 벤치마크를 보면 원본 해상도에 레이 트레이싱을 킬 경우 20 프레임 이하여서 제대로 게임을 할 수 없었던 게 DLSS를 적용하자 90 프레임 이상으로 높은 수치를 보여준 게 대표적이다.

▲ 어떤 측면에서는 사이버펑크 2077의 사양이 지나치게 높아서 DLSS가 더욱 주목받은 면도 있다

▲ 프레임이 무려 4배나 늘어났으니 사실상 안 쓰는 게 이상할 정도

물론 실제 게임에서는 크고 작은 잡음이 나오긴 했다. 일반적인 영상의 업스케일링과 달리 게임은 실시간으로 동작하는 만큼, 연산해야 할 것들이 훨씬 방대해 화면 전환시 잔상이나 프레임 급락, 혹은 텍스처가 뭉개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아예 게임을 아예 할 수 없는 것과 비교하면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여기에 3.0 버전부터는 AI로 프레임 사이에 AI로 연산한 프레임을 끼워넣는 프레임 생성(Frame Generation)이 추가됨으로써 더욱 부드러운 화면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최적화라는 게 DLSS로 시작해서 DLSS로 끝나게 된 거나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DLSS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렇게만 놓고 보면 PC 사양에 상관없이 DLSS와 레이 트레이싱을 적용하는 게 무조건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픽 퀄리티는 원본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프레임은 몇 배나 오르니 안 쓰는 게 이상할 정도다. 단순히 저사양 PC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120Hz를 지원하는 모니터도 적지 않을뿐더러 FHD를 넘어서 QHD나 UHD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도 적지 않다. 그런 고사양 유저들에게 있어서도 DLSS는 고해상도 풀옵션에 120Hz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DLSS를 적용하지 않으면 30프레임도 채 나오지 않는 게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가 되는 건 최근 게임들이 그 결과 애초부터 DLSS에 의존하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DLSS를 킴으로써 더 좋은 성능(프레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 납득이 가는 부분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게임의 옵션에 불과한 DLSS를 적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프레임 생성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부드러운 화면을 구현하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는데 근본적으로는 프레임을 생성하는 기술 구조상 필연적으로 레이턴시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프레임 생성을 적용하려면 VRAM이 넉넉한 고사양 그래픽 카드를 써야 한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인풋랙의 증가, 그리고 저사양도 아닌 보급형 그래픽 카드임에도 VRAM이 부족해서 프레임이 급락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걸 보노라면 DLSS를 보완하는 기술임에도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건 여러모로 복잡하게 볼 수밖에 없다.

▲ 좋다 한들 결국은 후처리인 만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FSR 3.0, 프레임 생성 ON)

하이엔드 PC라면 그래픽 옵션을 낮추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걸리는 부분이 있다. 최근 출시된 게임들을 보면 애초부터 그래픽 퀄리티 대비 권장 사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 1년 사이 출시된 게임들 가운데 그래픽 등으로 정평이 난 게임들을 보면 이와 관련된 혹평이 적지 않은 걸 볼 수 있다.

DLSS가 저사양 유저, 혹은 일부 하이엔드 유저들 사이에서 축복이라고 하는 동시에 수많은 유저들로부터 저주라면서 원성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 몇년 사이 게임사들이 마치 DLSS만 믿고 최적화를 간과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게임의 권장사양 등에서 기본적으로 DLSS를 적용한 걸 염두에 뒀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DLSS로 극적인 성능 향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임 역시 점차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벤치마크에서는 78프레임이 나왔으나 실제로는 평균 48프레임을 기록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위 풀옵션의 기준이 원본 해상도에서 최소 60프레임을 구현하는 거였다면 이제는 DLSS를 적용한 상태에서 60프레임을 목표로 하게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DLSS 등의 업스케일링을 적용한 게 기준이 됐다는 점에서, 그리고 적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대로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게임사들이 점점 더 최적화에 안일해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DLSS는 무안단물이 아니다

지금의 추세로 보면 게임사의 DLSS 의존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도 이를 의식한 듯 DLSS의 단점을 개선하는 새로운 기능들을 넣고 있지만, 모두가 그 기능을 쓸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이전부터 그랬지만, 새로운 기능은 하이엔드 그래픽카드 등에서 우선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DLSS가 정말 필요한 보급형 그래픽 카드 유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 출시된 '몬스터 헌터 와일즈(이하 몬헌 와일즈)'가 대표적이다. '몬헌 와일즈'는 출시 3일 만에 800만 장을 돌파하는 등 역대급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몬헌 월드가 2,810만 장(아이스본 합본 에디션 포함), 아이스본이 1,490만 장, 몬헌 라이즈가 1,670만 장, 선브레이크가 940만 장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아직 판매량은 전작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속도만큼은 압도적으로 빠르다. 이대로라면 종래의 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역대급 흥행에도 불구하고 혹평 역시 만만치 않다. 대부분이 최적화에 대한 얘기다

그런 '몬헌 와일즈'에게 유일하게 걸리는 부분이 바로 최적화다. 게임 중 크래시가 발생해서 튕기거나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너무 고사양을 요구한다는 불만이 지금도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식 출시에 앞서 공개한 벤치마크 프로그램과 실제 게임 플레이 간의 격차 역시 문제다. 분명 벤치마크 프로그램에서는 쾌적한 플레이를 보장한다고 했건만, 실제 게임 플레이 시 잦은 스터터링 문제가 발생해서 이럴 거면 왜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공개한 거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비단 '몬헌 와일즈'만의 얘기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이버펑크 2077을 비롯해 소위 AAA급 대작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을 보면 상당수가 최적화로 인해 출시 초 혹평을 받은 게 적지 않다. 대작을 바라보는 유저들의 시선이 바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는 바로 예구를 했을 유저들도 요즘은 일단 최적화가 어떤지 보고 사겠다고 하는 지경이다.

앞으로 출시될 대작들이 점점 더 고사양을 요구하리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사들이 최적화를 경시하는 풍조까지 유저들이 다 이해한다는 건 아니다. 어떨 때는 DLSS를 씀으로써 생기는 문제도 있는 만큼, 근본적인 부분에서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는 최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 몬헌 와일즈의 최적화 문제는 여러모로 업계에 경종을 울릴 만하다

누군가는 게임의 규모가 커지는 한편, 개발 기간이 촉박해지기에 어쩔 수 없이 최적화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자연스럽게 최적화를 DLSS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해는 가지만,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인 유저들이 이를 공감하길 바란다는 건 욕심이다. 적어도 게임이 재미없다면 모를까 최적화가 별로니 DLSS를 쓰라고 하는 건 방만에 가깝다.

DLSS는 분명 좋은 기술이다. 도저히 게임을 할 수 없는 사양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주거나 원본 해상도로도 게임을 즐기기 충분한 성능이라면 더 좋은 퀄리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게임사들도 명심해야 할 게 있다. DLSS는 무안단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점점 더 그래픽 카드의 가격이 비싸지고 있는 상황에서 DLSS에 필요성 역시 더욱 커질 것은 분명한 상황. 이제 게임사들도 다시 한번 최적화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