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넌센스적으로 배치된 애셋 사이를 컨트롤과 센스로 주파하는 게임. 한때는 항아리 게임이나 강제종료 명령어가 떠오르는 게임 정도가 바로 떠올랐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어느 한 게임을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과장된 연출과 함께 일그러지는 스트리머들의 리액션은 조회수뿐만 아니라 게임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었고, 이를 노린 작품들도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것이죠.

얼핏 보기에 '라스트 픽업'도 그런 게임 중 하나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코믹한 요소 하나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진중했습니다. 애셋의 한계로 따로 노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배달 임무를 수행한다는 코어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었죠. 세이브포인트로 떨어질 때 우스꽝스러운 리액션을 유도하는 연출을 보여줄 법도 했지만, 그런 일련의 흔적 없이 오직 점프와 차량 운전, 발차기, 총기 액션이라는 네 개 코어만 어찌저찌 활용해서 배달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을 건조하게 그려낸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 진지함은 시각장애 1급 중증 장애인인 개발자 나름의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었습니다. 눈이 불편해도 자신이 플레이한 게임에서 받은 영감과 독학하면서 배운 기술을 응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을 만들겠다는 김영균 개발자.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딛고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열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김영균 개발자


Q.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언제부터 게임을 개발하셨나요?

= 안녕하세요. 저는 언리얼 엔진으로 게임을 개발한 지 5년이 넘은 인디 개발자입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백업을 하지 않아 소중한 프로젝트를 통째로 잃은 적도 있고, 실험을 거듭하다가 결국 사라진 프로젝트만 해도 세 개나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저를 더 나은 개발자로 성장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개발 중인 '라스트 픽업'은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2년이 된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학원에서 배우지 않고, 책과 영상 자료를 통해 독학으로 언리얼 엔진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독학을 하다 보니 이벤트 구현, 로직 설계, 애니메이션, 최적화 같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막막했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AI 챗봇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모르는 로직이나 최적화 방법에 대해 질문하며 공부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AI와 소통하며 해결해 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씩 배워가면서 게임을 완성해왔습니다. AI를 활용한 학습 덕분에 혼자서도 꾸준히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학원에 가서 배우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시각장애 1급 중증 장애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고, 현재는 별빛 정도는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물체도 흐릿하게 보입니다. 먼 곳과 가까운 곳의 구분이 어려워 파리와 모기를 식별하는 것도 힘든 수준입니다. 이런 이유로 학원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배우는 것보다, 혼자서 끝까지 도전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라스트 픽업'은 제가 가진 예산과 기술로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과정에서 점점 독특한 스타일의 배달 게임으로 발전했습니다.



Q. 눈이 어느 정도로 불편한가요? 그럼에도 게임을 완성할 수 있던 원동력을 꼽자면?

= 보통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이 모두 초점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대신, 멀리 있는 것이라도 형태나 색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시각적 특성이 있었기에 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할 때도 적과 아군의 형태와 색을 보고 구별하며 게임을 합니다. 미니맵과 채팅창은 보지 않지만, 주로 하이머딩거 같은 챔피언을 플레이하며 전략적인 플레이를 즐깁니다.

개발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2023년 11월, 제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전에는 막막했던 개발 과정들이 마치 하늘이 돕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저를 지금까지 달려오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저는 청소년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력 문제로 인해 개발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회에 나가 직장 생활을 했지만, 뭔가 허전함을 느꼈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개발에 대한 열망이 계속 피어났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지 말자. 일단 도전해보고, 정말 안 되면 그때 포기하자."그렇게 개발을 시작했고, 결국 오늘의 게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라스트 픽업'이 배달 게임이 된 계기는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당시 배달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배달 게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며 개발을 진행했고, 지금의 '라스트 픽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Q. 여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개발자의 꿈을 키웠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플레이한 게임 중 가장 좋아하는 게임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을 꼽자면 어떤 것이 있나요?

= 스카이림, 포르자 시리즈, GTA 시리즈 이 셋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지난 12월에 ‘라스트 픽업’을 출시했는데, 어떤 게임인가요? 또 언제부터 개발한 건가요?

= '라스트 픽업'은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배달 액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비전(Vision)"이라는 기업으로부터 임무를 받아, 다양한 환경 속에서 물건을 배달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게임의 핵심 플레이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량을 이용한 배달: 물건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반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행 중 물건을 떨어뜨리면 체크포인트(세이브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연료 관리: 배달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연료를 충전하면서 효율적으로 운행해야 합니다.

탐험과 액션 요소: 단순한 운전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직접 이동하며 점프와 전투를 수행하는 등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단순한 배달 게임이 아니라, 긴장감과 도전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배달 액션 게임입니다. 개발은 21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Q. 여러 장르를 섞은 컨셉이 꽤 독특한데,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요?

= '라스트 픽업'의 독특한 컨셉은 여러 장르를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배달이라는 단순한 목표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안에 액션, 탐험, 서바이벌요소들을 추가해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방식의 플레이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영감을 받은 게임으로는 'GTA'와 같은 액션 게임에서의 자유로운 진행 방식, '포르자'와 같은 차량 운전의 사실감 있는 조작을 포함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배달이라는 테마는 2020년 코로나 시기 동안 배달 문화의 급성장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상황에서 배달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긴장감과 도전을 게임에 녹여내고 싶었죠.

'라스트 픽업'은 오픈월드 게임은 아니지만, 여러 장소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환경과 미션이 있어 플레이어가 탐험과 도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차량 운전과 전투, 연료 관리와 같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단순한 배달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Q. 플레이하면서 오브젝트를 들거나 하는 동작이 굉장히 제한된 느낌이 들었는데, 어떤 의도로 이렇게 설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 게임에서 캐릭터가 물건을 들지 못하고 발로 차서 이동하는 방식은 사실 기술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설계였습니다. 물건을 들고 이동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에셋과 자료는 준비되어 있었지만, 이를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데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물건을 발로 차는 방식이 게임의 분위기와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발로 차서 이동시키는 시스템은 물건이 어디로 튈지 몰라 예측불가능한 포인트를 만들어내며, 이는 아포칼립스 배경의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세계관과 잘 어울린다고 봤습니다. 또한, 이 방식은 배달이라는 단순한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에게 긴장감과 도전감을 더해 게임에 독특한 매력을 더해주었습니다.

결국, 물건을 들고 이동하는 것보다 발로 차서 물건이 튀는 시스템이 '라스트 픽업'만의 특징을 잘 살려주었고, 게임의 전반적인 느낌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관성이나 여러 가지로 물리엔진의 ‘맛’을 볼 수 있는 그런 조작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조작감은 어떻게 구현한 건가요?

= '라스트 픽업'의 조작감은 언리얼 엔진 5의 뛰어난 물리 엔진을 활용하여 구현되었습니다. 차량의 움직임이나 물건을 발로 차서 이동시키는 동작은 물리적 효과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효과는 지속적인 테스트와 최적화 작업을 거쳐 최적의 물리 반응을 찾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관성과 물리적 상호작용을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 물건을 집어올리지 못해도 킥으로 어찌저찌 해결

▲ 트렁크에서 짐이 떨어지면 세이브포인트부터 다시, 안전 운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Q. 한편으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AltF4나 겟 투 워크처럼 소위 도전정신을 요구하는 그런 게임들이 연상되는 구성인데, 개그성 연출은 빼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풀어낸 것도 독특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 '라스트 픽업' 은 아포칼립스라는 진지한 테마와 배달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의 분위기도 이에 맞춰 진지하게 풀어가고자했습니다. 도전류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그성 연출을 배제한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현실감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배달이라는 일상적인 작업이 아포칼립스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주어진 임무의 무게와 서바이벌의 요소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도전적인 요소는 게임의 핵심 재미로 남겨두고, 그 자체의 긴장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선택했습니다.



Q. 아울러 그런 게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쭉 하는 유형이 많은데, 처음부터 챕터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특이했습니다. 이렇게 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 '라스트 픽업'은 에피소드별로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방식도 재미있지만, 챕터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한 재미 요소를 제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게임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다루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특정 챕터를 선택해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맞는 난이도나 챕터를 자유롭게 고르고, 게임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게임의 재미 요소를 더할 뿐만 아니라, 개별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유연성을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실제로 해보면서 좀 말이 안 될 것 같은 구간들도 있는데, 어찌저찌 비비면서 결국 클리어하게 되는 구성이 꽤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디자인할 수 있던 원동력을 꼽자면?

= 이런 디자인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다른 게임을 하면서 경험한 고통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쉬운 게임이지만 약간의 어려움을 주어 플레이어가 도전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게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백 번의 테스트와 조정을 거쳐 원하는 균형과 난이도를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설계된 구간들은 도전적이지만 결국 플레이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요소입니다.




Q. 이런 유형의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더 높은 난이도를 바랄 것 같은데, 따로 준비 중인 게 있나요?

= 현재로서는 난이도 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만, 에피소드 개발이 완료된 후에는 게임 내에서 노트북이나 컴퓨터 오브젝트를 통해 난이도를 선택하고, 해당 구간을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난이도를 선택하고 더 높은 도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Q. 라스트 픽업을 출시하고 한 차례 패치까지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에피소드 2의 완성을 목표로 4월 중순까지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후에는 6개월 단위로 새로운 에피소드를 출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와 함께 게임의 확장성을 제공하고,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 장애를 떠나, 게임 개발을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 문이 닫히는 애니메이션 하나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 3개월 동안 헤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몇 분이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노하우가 쌓였죠.

그때도 AI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여러분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라스트 픽업’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