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서브'가 아닌 메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서브컬쳐 게임'이 부상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라는 전망을 깨고, MMORPG 전성기 못지 않은 스케일을 보여주는 작품도 생겼으니 말이다. 특히 자본과 인력을 동원해 고퀄리티 오픈월드에 정기적으로 방대한 콘텐츠를 공급하는 몇몇 작품들은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이전까지 그늘에 있던 '서브컬쳐'는 점차 양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그런 방대한 스케일의 게임이 겨냥하지 못하는 좁은 틈을 노린 작품들도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집중하지 않고 가볍게 방치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플레이, 좀 더 적극적이고 세분화된 취향까지 노리는 캐릭터나 전개 등이 그러한 유형의 주요 무기였다. 그리고 지난 16일 출시한 '로스트 소드'도 그 중 하나였다. 최초 공개 당시에는 다소 갈팡질팡했지만, 쟁쟁한 대형작들이 그 체급 때문에 미처 들이밀지 못하는 영역을 과감히 선택하면서 서브컬쳐 유저들에게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시한 이후에는 경박함과 치밀함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임명: 로스트 소드
장르명: 수집형 RPG
출시일: 2025.1. 16
리뷰판: 정식 출시 빌드
개발사: 코드캣
서비스: 위메이드 커넥트
플랫폼: 모바일
플레이: 모바일



라이트하게 벗어던진 플레이
익숙한 그 맛에 '딸깍'을 더하다


'로스트 소드'의 장점이자 단점은, 게임플레이 방법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만일 서브컬쳐 수집형 RPG를 처음 하는 유저라면 이 말이 당황스럽겠다. 그렇지만 '로스트 소드'는 방치형과 유사하게 극한의 라이트함을 추구한 게임이다. 전/중/후열로 나뉘어진 진형에 각 캐릭터를 알맞게 배치하고, 그 뒤에는 각 캐릭터의 스킬을 오토로 쓸 것이냐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쓸 것인가 정하면 된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애니메이션 연출과 그에 못지 않게 퀄리티가 있는 2D 스프라이트 캐릭터들의 액션이 소위 '딸깍'으로 진행되는 게 아쉬울 수도 있겠다. 처음에 그 화려한 연출과 함께 쭉쭉 밀고 가는 장면들을 보며 눈요기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구도가 계속 이어지는 화면을 보는 게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방치형 게임들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절전모드로 알아서 쭉쭉 클리어하는 기능을 마련했다. 일일이 다 볼 필요 없이 장벽에 막혔을 때만 유저가 손을 써서 뚫게 하는 식으로 번거로움을 한층 더 줄인 것이다. '로스트 소드'는 이런 기능뿐만 아니라 스테이지를 미는 동안에 육성 및 관리, 상점 등 콘텐츠를 병렬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통상 방치형 게임을 할 때 초반에 관심을 아예 끄자니 문턱에 막히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고, 그렇다고 지켜보고 있어봤자 스킬만 몇 번 끄적거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방치해두지만, 무언가 하고 싶어서 괜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는 한다. 그 빈 시간에 유저가 캐릭터들이 벌어온 장비나 재화를 강화하거나 육성에 사용하게끔 해서 그 허전함을 채워준 것이 로스트 소드의 방책이었다.

▲ 플레이하면서 스무스하게 육성이나 미션 달성도 끊기지 않게끔 구성하고

▲ 자동 옵션도 세분화해서 편의성을 더 끌어올렸다

육성 구조나 보상 수급도 순환이 최대한 끊어지지 않도록 설계한 점도 눈에 띄었다. 스테이지를 밀 때마다 장비와 재료를 파밍하고, 등급이 낮은 장비는 갈아서 공통 스탯을 올려주는 큐브와 성유물의 레벨업에 사용하게끔 했다. 보상을 받는 미션도 일정 시점까지는 계속 육성 콘텐츠와 연계, 유저가 스테이지를 미는 사이에도 틈틈이 터치해서 다양한 보상을 즉시 수급하고 활용해서 육성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그런 동작을 할 때마다 스테이지를 나가거나 해서 흐름이 끊기지만, '로스트 소드'는 그런 일 없이 스무스하게 계속 플레이가 물밑에서 이어졌다.

그렇게 쭉쭉 나가다가 한 번씩 문턱에 걸릴 때, 이를 타개할 나름의 방법들을 구비해둔 것도 눈에 띄었다. 레벨을 공유하는 시스템은 없지만 다른 캐릭터의 레벨을 승계하는 시스템으로 그때그때 캐릭터 조합을 바꿔서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했다. 혹은 로비에서 요리를 사거나, 마을로 나가서 닭을 잡아온 뒤 요리해서 버프를 두르고 가는 것도 방법이었다.

▲ 마을 한복판에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도 아니고 궁극기라니 ㄷㄷ

▲ 하지만 흙흙 계란후라이는 맛있으니 못 참지

로스트 소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유저들에게 굉장히 친숙한 양식이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설명을 시시콜콜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막혔을 때쯤에야 전투 콘텐츠의 보스 레이드, 미궁, 오베론의 탑 등이 유저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콘텐츠를 수행해서 각종 보상을 교환소에 교환하거나, 마을에 가서 시설을 강화하고 공통 스탯을 올리는 등 또다른 육성의 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것까지 플레이하고 나서 또 스테이지를 돌고, 어느 정도 막혔을 때는 MMORPG의 무한 자동사냥을 연상케하는 '스톤헨지'로 추가로 장비를 파밍해서 공통 스탯을 올린 뒤 다시 도전하는 육성의 선순환 구조가 '로스트 소드'의 치밀한 설계였다. 유저가 딸깍 건드릴 때마다 결과값이 변하는 모습을 그때그때 바로 보여주면서 뻔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구성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 콘텐츠 자체는 늘 보던 양식이지만

▲ 곳곳에 스탯을 올릴 파트들과 연계, 육성의 순환이 계속 이어지게끔 설계했다


경박함 속에 숨은 치밀함
빈틈을 찌른 라이트한 이세계물 감성


이런 말을 하지만 '로스트 소드'를 얼핏 보면 그런 치밀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코믹하고 라이트한 이세계물 감성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처음 이야기에 진입했을 때는 다소 진지하게 아서왕 전설을 모티프로 한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그 뒤에 품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르가나와 에단의 티키타카가 바로 시작되지 않던가. 뒤이어 등장하는 엘리자베스나 베디비어도 마찬가지다. 세상물정 몰라서 슬라임 경주에 자산을 날려버린 이야기나, 앱솔루트 아머가 알고 보니 그렇고 그런 물건이었다 등등. 보면 볼수록 진지함과는 몇 광년이나 떨어진 이야기만 줄창 나와서 헛웃음이 나올지 모르겠다.

여기에 패배했을 때 부위파괴가 되어 널브러지는 등 경박한 연출은 내성이 없는 유저에겐 다소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미 무감각해진 입장에서는 대중교통 안에서도 태연히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렇게 하기 민망하다는 생각도 들 테니 말이다. 혹은 그런 게임들이 대부분 게임성보다는 그런 외형에 치중하는 편이다 보니, 게임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됐다고 평가하는 유저들도 있겠다.

▲ 어...음...뭔가 깊이 생각하면 골이 아플 거 같은 느낌

▲ 패배해야만 볼 수 있는 특전(?)을 보러 PVP에 가는 맛이 있다

'로스트 소드'는 그런 것에 아랑곳 없이, 수요가 있지만 체면이나 진정성 등을 이유로 쉽게 선택하지 못한 부분을 망설임 없이 찔렀다. 심지어 출시 전에는 그걸로 월드컵을 할 정도로, 아예 다 내던지면서 차별화 포인트로 확실하게 내세우고 각인한 전략도 눈에 띈다. 그러면서 어줍잖게 해서는 자신만의 맛을 내기 힘든 소재들을 상당히 맛깔나게 다듬었다.

아서왕과 카멜롯 전설은 이미 서브컬쳐에서 자주 인용되는 소재라 친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프게 접근하면 역효과가 나기 쉽다. 다른 작품과 비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세계물을 더하고 그 옛날의 클래식한 로맨스 코미디 작품들이 떠오를 정도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이야기에 중파까지 덧입혀서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성우들의 실감나는 더빙도 초반에 그 맥락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킥이었다. 하찮음과 짠내가 잔뜩 묻어나는 대사들을 듣다 보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딱히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정여왕이지만 환생해서 외모도 힘도 정신연령도 죄다 어려진 모르가나, 아서왕 포지션이라 잠재력은 있어도 허당인 엘리자베스, 그에 못지 않게 서투른 베디비어 등등. 어떤 대의를 위해 모험을 떠나지만 다소 모자란 탓에 이리저리 좌충우돌 갈팡질팡하는 왕도적인 코믹 모험물의 구성을 확실히 엿볼 수 있었다.

단순히 텍스트로 끝나지 않고 성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그 느낌은 배가 됐고, 자연히 뭐가 벌어지든 가볍고 코믹하게 그렇지만 갖출 건 다 갖춘 퀄리티에 무던히 넘어가면서 쭉 그 이야기를 힘 닿는 데까지 지켜보게 했다. 중간중간 소위 뻔한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예상이 들어맞았으니까 빨리 이 모자란 일행들이 얼렁뚱땅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 코믹 이세계물하면 정석 그 자체인 해프닝이지만

▲ 그렇게 얼렁뚱땅하는 애들이 나서야 할 때는 제대로 활약하는 게 또 알면서도 계속 먹는 맛이다


의외의 킥이 된 로스트 소드
높지 않은 고점, 연타로 빌드업해야


이미 파이널 CBT 때부터 이런 방향성을 확실히 잡았던 '로스트 소드'는 정식 출시 후에도 이벤트를 통해 한층 더 치밀한 설계를 이어갔다. 이벤트 방식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보상 자체를 꽤 높게 잡아서 유저들의 구미에 당기게끔 한 것이다. 특히 타 게임에서는 확률이 좀 낮게 나왔을 무상성의 '신성' 속성 캐릭터도 뽑기 확률을 다른 5성 캐릭터와 동일하게 편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출시 이벤트로 하나는 확정으로 업고 가게 하는 식으로 임팩트를 더했다. BM 상품도 소과금으로 확실히 5성 캐릭터를 들고 가는 상품도 배치, 과금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낮추고 초반에 각종 미션을 스무스하게 클리어해서 꽤나 많은 재화를 들고 시작하게끔 한 설계도 돋보였다.

눈길이 끌릴 수밖에 없는 중파 시스템이나 술술 넘어가는 코믹한 스토리, 눈요기가 되는 연출, 막힘 없는 육성까지 더해진 '로스트 소드'는 최근 자주 언급되는 '서브 게임'으로는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가벼운 마음으로 캐릭터를 보며 숙제하고, 스토리를 훑어보면서 피식 웃고 넘어가는 소위 분재의 구성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로스트 소드'에도 불안한 점은 있었다.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코어만 다듬은 탓에, 다른 부분에서 디테일은 좀 떨어졌다. 어떤 상황이든 거의 똑같은 음이 반복되는 스테이지 BGM, 잘 들리다가 중반부터 뚝뚝 끊기는 더빙, 캐릭터 움직임과 따로 노는 판정, 불안정한 서버 등등. 그냥 쭉쭉 스무스하게 훑고 넘어갈 때는 별 신경이 안 쓰이다가, 막히는 순간부터는 신경이 거슬릴 요소들이 조금씩 보였다. 더군다나 기존 방치형처럼 레벨 공유 시스템 같은 걸 처음부터 고려한 구성이 아니라서 매번 경험치를 초기화했다가 이식하는 것이 불편한 건 물론, 가면 갈수록 육성에 드는 재화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부담이 점점 커져갔다.

▲ 임시 점검을 여러 차례 하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 전엔 종종 이렇게 접속이 끊기기 일쑤였다

여기에 주역 캐릭터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직 애정 캐릭터를 만들어 갈 요소들이 부족했다. 호감도 스토리나 대화로 애정 캐릭터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고 좀 더 파격적인 중파도 있지만, '교감'을 위한 빌드업으로 보기엔 미진했다. 가볍게 덜어낸 게임이라 할 게 크게 없어 보이는 게임들이 캐릭터와 스토리를 확인하기 위해 접속한다는 점을 보면, 이 부분은 나중에 꽤 크게 작용할 확률이 높아보였다. 서브컬쳐 게임에서 소위 '고점'를 결정하는 요소가 캐릭터와 스토리의 카타르시스인데, '로스트 소드'는 스무스하게 입문해서 흐름을 타는 것에 집중해서 그 고점까지 나아갈 빌드업이 미진했기 때문이다.


▲ 스스로가 너무도 포지션을 잘 알고 있는 게임이고

▲ 그 장르의 포인트도 잘 짚어내는 흐름에

▲ 정석적인 시스템도 마련했지만 좀 더 확실한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물론 코믹 이세계물 자체가 주역 인물의 소소한 티키타카와 해프닝을 중심으로 가볍게 다뤄내는 장르인 만큼, '로스트 소드'는 어찌 보면 장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긴 하다. 다만 애니메이션이 아닌 신규 캐릭터를 수집하면서 쭉쭉 이야기가 나아가는 수집형 RPG인 만큼, 캐릭터를 뽑고 육성하면서 그 이야기를 쭉 보게 만들 만한 후속타들이 필요하다. 특히 '로스트 소드'는 맛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소재를 써먹은 만큼, 소위 '고점'이 높지 않아서 추진력이 한 번 꺾이면 안정적인 궤도까지 가기 버거울 수도 있다. 흐름을 타면 쭉 붙잡게 만들 만한 구성은 보여줬으니, 그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 빌드업을 풀어나가는 것이 '로스트 소드'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