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다크호스의 등장. 2023년 9월 19일 출시한 라운드8 스튜디오(팀 NOUGH) '피의 거짓'은 국내 게임 업계에 여러모로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먼저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다크 판타지 배경의 소울라이크를 우리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근사하게 말이죠. 아울러 인기의 시작이 국내가 아니라 해외 게임쇼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졌다는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입맛 까다롭기 소문난 이 장르의 매니아층을 단 한번에 만족시켰다는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입니다.
인벤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앞으로 대한민국 게임업계를 선도할 개발사를 만나 [뉴에이지] 특집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 세번째 대상은 라운드8 스튜디오의 박성준 본부장입니다.
P의 거짓을 선보이기까지
라운드8 스튜디오의 목표는 개발력을 쌓는 것
김수진 = 국내 게임업계에 한 족적을 남겼다. P의 거짓을 통해 남들이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어떤 가능성을 보고 도전을 시작했나.
박성준 =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정한 게 2019년이다. 그 당시 국내 게임 시장은 모바일 게임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그때도 이미 해외 시장 공략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국내 시장만 보고 개발을 계속하기엔 경쟁도 너무 치열하고, 전략적으로 힘든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글로벌에서 모바일은 캐주얼한 플랫폼이었기에, 게이머들을 타겟하려면 PC 콘솔 플랫폼을 노리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일단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김수진 =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나.
박성준 = 물론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당연히 좋고, 지금도 다수의 게이머가 플레이한다. 하지만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게임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다. 게임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었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게임이 없어서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출시되는 게임이 너무 많고, 여가에 즐길만한 타 콘텐츠도 많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지, 사람들이 즐길 콘텐츠가 부족한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라이브 게임은 요구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 편이다. 매일 접속해야 한다거나, 숙제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부분이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게이머들이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
그 대척점에 있는 짧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싱글 플레이 게임이라고 봤다. 경쟁이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고, 천천히 해도 되고, 끝이 있어 부담도 없다. 그런 관점에서 라이브 서비스가 없는 게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수진 = 그동안 경험한 것들도 그러한 선택에 녹아들어 있을까.
박성준 = 여담이지만, 처음 만들었던 게임이 코룸3다. 집중해서 정해진 기간 안에 게임을 출시하고,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그런 개발 경험이 정말 좋았다.
라이브 게임은 끝이 없어 개발자들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특정 프로젝트를 수년에 걸쳐 길게 하다 보니, 당연히 다른 작업이 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개발자들이 다른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아예 회사를 옮기게 되는데, 이런 흐름이 한국 게임계에서 이어졌던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국내 게임계에 좋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계속해서 흩어지다 보니, 개발사의 개발력이 쌓이지 않는다. 내부에서 아무리 문서화를 하고, 지식을 쌓는다고 해도, 경험한 사람이 없으면 잊혀지고, 안 쓰게 되고,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개발사들의 노하우가 생각만큼 빠르게 쌓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라운드8 스튜디오의 목표는 구성원들이 스튜디오 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도, 다양한 매력의 싱글 패키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그런 스튜디오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야 스튜디오의 경험이 쌓인다.
국내 경쟁은 이제 의미가 없다. 갈 길이 멀지만, 글로벌 경쟁을 위해 개발력을 쌓아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수진 = 아무래도 라이브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수익적으로 비는 시간이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박성준 = P의 거짓은 아직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그리고 DLC를 만들고 있지만, 출시 이후에는 라이브 팀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비용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싱글 패키지 게임이라는 게 출시 때 한 번 수익이 나고 끝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계속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장르기도 하다.
물론 전제조건은 잘 만드는 것이다. 유저들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퀄리티가 있어야 꾸준히 수익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본다. 저희 목표는 이런 게임들을 꾸준히 만들고, 이를 통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을 때 해당 타이틀들이 꾸준히 매출을 쌓아주면서 신작 준비에 든든한 자원이 될 거라 본다.
김수진 = 그렇다면 반대로, 개발 과정에서 느낀 한계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박성준 = 제일 뼈저리게 느꼈던 건, 우리가 글로벌에서는 굉장히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제작 및 런칭 과정에서 더 확실히 느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제안하기도 힘들었고, 기회를 얻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선보인 타이틀이 다행스럽게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백그라운드가 생겼다. P의 거짓을 통해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넘어야 하는 산이었다. 누구나 처음은 있고, 처음은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김수진 = 확실히 처음이라는 게 정말 어렵지 않나 싶다. 이제 그 지점은 지나갔는데, 최근 가장 신경 쓰는 업무는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
박성준 = 너무 많다(웃음). 제일 중요한 건 스튜디오 성장이라고 본다. 언급했듯 글로벌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대인데, 아직 경험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글로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적 가치나 통하는 코드 등 지식적 측면 뿐 아니라, 스튜디오의 경쟁력과 개발 인력 등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다.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 그리고 내부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그 과정의 일부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모인 이들이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김수진 = P의 거짓이 흥행에 성공했기에 좋은 인재를 끌어오는 게 훨씬 수월해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
박성준 = 물론 그렇긴 하다. P의 거짓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부분이 어필이 많이 된 것 같다. 진승호, 이상균 디렉터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스튜디오를 믿고, 같이 해보기 위해 합류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라운드8 스튜디오의 나아갈 길
앞으로도 계속 유저들이 좋아할 게임을 만들 것
김수진 = 처음 라운드8 스튜디오를 만들 때, 스튜디오의 본부장으로서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썼는지 궁금하다.
박성준 = 결국은 게임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보니, 좋은 인재를 끌어오고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프로젝트 개발이 일회성이 되면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대표님과도 처음부터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개발력을 살려서, 흐름을 만들자고 했다.
게임 출시라는 건 당연하게도 리스크가 크기에 잘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개발력과 노하우가 살아있다면 다음에는 성공할 확률이 올라간다. 결국 흐름을 만들지 않는다면 계속 실패하고, 팀을 없애고, 이런 방식을 반복하게 된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실패하더라도 나아가는 개발 프로젝트’, 이를 목표로 하는 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됐다.
그리고 그러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만들어나가기 위해 인재가 필요했다. 그들을 모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김수진 = 인재를 모으려면 좋은 비전이 필요하지만, 결과가 없을 경우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다. 스튜디오 설립 초반 어떤 방식으로 모두를 설득했나.
박성준 = 라운드8 스튜디오를 처음 만들고 블레스 언리쉬드를 개발했다. 그때 좋은 인재들을 데려오기 위해 우리는 콘솔 게임을 만들 것이라고 어필했다. 국내에서 콘솔 게임 개발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있었고,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많이 모였다.
블레스 언리쉬드 개발이 끝나기 전에 P의 거짓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미리 준비했다. 다음 프로젝트, 비전이 있어야 인재들이 이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김수진 = 개발자의 입장에서 콘솔 게임이라는 키워드가 큰 것 같다. 그런데 처음 시도한 프로젝트가 왜 소울라이크였나. 정말 다양한 장르가 있지 않나.
박성준 = 여러 가지 고려가 있었다. 2019년에 방향성을 정했는데, 당시 ‘유 다이’ 밈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울라이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생기더라.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보였다. 장르로서의 확장성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울라이크 장르는 실질적으로 거의 프롬 소프트웨어가 독점하고 있었다.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은 없는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프롬 소프트웨어가 게임을 너무 잘 만들지만, 아무리 프롬 소프트웨어라도 게임을 1년에 하나씩 내는 건 어렵지 않나. 그럼 소울라이크 장르의 팬들은 다음 게임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틈을 메울 수 있다면, 해볼 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소울라이크 팬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높기에, 게임의 완성도는 당연히 높아야 했다. 그리고 소울라이크 게임이 많이 나오지 못했던 건, 만들기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발하기 어려운 장르기에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어렵지만 잘해서 성과를 내면, 확실한 입지를 다지고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수진 = 그렇다면 다음 프로젝트들도 소울라이크를 목표로 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장르도 바라보고 있는 건가.
박성준 = 저희가 지금 P의 거짓 DLC와 후속작도 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목표는 유저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물론 소울라이크의 경험을 쌓았고, 잘 만드는 분들이 있기에 액션성 있는 프로젝트를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유저들이 좋아할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장르 관계없이 개발할 것이다.
김수진 = 라운드8 스튜디오는 글로벌 유저들에게 소울라이크를 잘 만드는 개발사라는 인식을 새겼다. 그런데 다른 장르의 게임이 나왔을 경우, 이번에 쌓은 소울라이크 팬덤을 조금은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콘셉트와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계기가 있을까.
박성준 = 소울라이크 전문 스튜디오가 되어서 계속 해당 장르를 개발하려면 최지원 디렉터만큼 잘 만들 수 있는 전문 디렉터가 여럿 있어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울라이크가 아닌 다른 장르를 정말 잘할 수 있는 디렉터가 있다면, 그 능력이 매우 좋고 아이디어 역시 그렇다면 다른 장르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접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스튜디오의 정체성이 확실하게 한 장르로 들어간 건 아니지 않나. 저희의 경우 개발팀 브랜드가 따로 있다. P의 거짓은 라운드8 스튜디오에 있는 팀 너프에서 개발했다. 처음에도 팀 너프의 로고가 나온다.
라운드8 스튜디오에는 여러 개의 팀이 있는데, 다 성격이 다르다. 팀 자체를 브랜딩할 계획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저들 역시 추후 그렇게 팀별 특징과 정체성을 인식하지 않을까 싶다.
김수진 = 유저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다 보면, 피드백이 참 중요할 것 같다. P의 거짓도 소울라이크 장르를 즐기는 유저 대상 FGT를 했었지 않나. 이런 유저 피드백을 어느 선까지 적용하는지 궁금하다.
박성준 = P의 거짓의 경우, 유저 피드백을 디테일하게 받았고, 굉장히 진지하게 검토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저 피드백을 모두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우리의 방향성이 있지 않나. 거기에 맞지 않는 피드백은 걸러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희는 내부에서도 FGT와 비슷한 테스트 과정을 매달 거친다. 몇백명이 실제 플레이어처럼 피드백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굉장히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기에 피드백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그걸 디렉터가 다 확인하고 일감으로 만든다.
김수진 = 그렇게 얻은 피드백들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건 결국 디렉터인가.
박성준 = 사실 디렉터의 영역이라고 본다. 보통의 회사는 사업팀에서 함께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래도 게임에 대해 디렉터만큼 통찰력 있게 전체를 보는 건 어렵다. 결국 디렉터가 본인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소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김수진 = 싱글 패키지 게임의 경우 매우 높은 완성도가 정말 중요하지 않나. 이를 위해 했던 특별한 노력이나, 관련 에피소드가 있을까.
박성준 = 요즘은 유저들의 눈높이가 정말 높다. 그런데 그 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게 개발진의 역할이고,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의 거짓 본편을 작업할 때,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게임 개발이 거의 끝나고 골드 직전쯤, 내부에서 벽에 뭔가 새로운 걸 만들자는 피드백이 있었다. P의 거짓의 경우 초반에는 적들이 대부분 인형이다. 그러다 중간 어느 시점에 분위기가 바뀌면서 카커스가 등장한다.
그런데 카커스가 등장하기 전에, 벽에 죽어서 붙어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라. 그냥 지나가는 통로의 벽인데, 거기 붙어있는 카커스들은 죽어 있고 싸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를 통해 유저들에게 호기심을 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사실 그 피드백의 의도는 알겠지만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결국 진행했고, 출시 후 정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출시 후에 스트리머들이 플레이하는 걸 굉장히 많이 본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피드백이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떤 스트리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그 지점에서 딱 멈추더라. 멈추고 유심히 보더니 나중에 관련된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정말 그 경험이 너무 놀라워서 아직도 이 비하인드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수진 = 결국 유저들은 그 모든 디테일과 노력을 어떻게든 알아주는 것 같다.
박성준 = 맞다. 정말 확실하게 느꼈다. 정말 별거 아닌 것 같고,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가 신경 써서 만든다면 유저들은 반드시 알아준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유저들이 ‘이 게임은 정말 신경 써서 열심히 잘 만들었구나’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
잘 만들어진 게임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많은 것들이 쌓여야 유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걸 그 카커스 비하인드를 통해 느꼈다. 그 뒤에는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디렉터가 하자고 하면 ‘그게 맞지’라는 생각을 한다(웃음).
게임 내 디테일이라는 게 유저들한테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이 잘 만든 게임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 게임 진짜 신경 써서 만들었다’라는 이야기다. 게임의 완성도와 그에 들어간 개발진의 노력에 대해 결국 유저들이 가장 민감하고 섬세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 사실들이 쌓여 게임의 평가가 이루어진다.
김수진 = 얼마 전 발표한 피의 거짓 PS5 PRO 인핸스드 대응도 그렇고 최적화나 기술 대응에 대한 집념이 느껴진다.
박성준 = 앞으로 만들 게임들이 모두 공통적일 건데, 유저한테 인정받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나. 저도 게이머고, 구성원도 게이머다. 게이머 입장에서 그래픽이 아주 예쁜데 30프레임이 겨우 나오는 게임과, 적당히 예쁜데 60프레임이 나오는 게임을 비교하면 후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보니, 최근 게임들이 관련해서 비판을 많이 받는다.
저희는 액션 게임이라 최적화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초기부터 최적화 TF팀을 통해 문제가 되는 걸 해결하면서 진행했다. 본편 자체가 최적화가 굉장히 좋다 보니 플랫폼 확장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물론 절대 쉬웠던 건 아니다.
맥은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메탈FX가 나오고 나서 그 자체로 돌려보니 너무 잘 구동되더라. 애플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였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 것 같다. 게임이 잘 구동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네오위즈와 라운드8 스튜디오의 다음
10년 후 공고한 3개의 IP를 선보이고 싶다
김수진 = 컨퍼런스 콜에서 국가별 매출 비중을 공개했다. 국내가 7%라고 봤는데, 국내 게임계의 뜨거운 반응에 비하면 매출 자체는 좀 낮은 것 같다.
박성준 = 글로벌 기준 국내 유저 비중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구매해주셨다. 아무래도 콘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의 절대적 인원 자체가 적다 보니 비중 자체는 적지만, 그 관심도와 열정은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국내 팬들의 지지와 도움이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 오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을 제작하면서 국가별로 타깃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재미있는 게임은 어디서든 통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규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관련된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김수진 = 아무래도 패키지 게임의 경우, 성과의 척도가 판매량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지 궁금하다.
박성준 = P의 거짓을 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부에서 새로운 컨셉에 대해 시도를 많이 한다. 제가 디렉터들에게 제시하는 건 하나다. 첫 작품에서 갑자기 100만 장, 200만 장 판매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나. 그래서 첫 작품에서 요구하는 건 딱 한 가지다.
바로 ‘평가’에 대한 것이다. 스팀 평가일 수도 있고, 메타크리틱이 될 수도 있지만, 퀄리티에 대한 평가를 어느 정도 넘기는 것, 이게 기준이다. 몇 장을 판매하라는 게 아니다.
처음 만든 게임의 경우, 새로운 IP인데다 생소하고 인지도도 부족하기에 잘 안 팔릴 수 있다. 그런데 유저 평가가 좋다면 무조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다음 작품에서는 경험이 쌓이니 실수도 줄어들고 더 잘할 수 있다.
게임 산업이라는 게 리스크가 굉장히 크고 성공 확률이 낮은 싸움이다. 그 성공 확률을 올리려면 게임을 열심히 만들고, 유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하우를 쌓아가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 P의 거짓 플레이어가 게임 패스를 포함해 800만 명이 훨씬 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게임 패스에 들어간 걸 후회하지 않냐, 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스팀 유저 평가가 92~3%를 왔다갔다한다. 그럼 그냥 산술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800만 명의 유저 중 92%가 만족을 했으니 P의 거짓2를 발매했을 때 그 800만 명에서 95% 정도는 타이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가 저희 게임을 사지 않겠나. 결국 게임 패스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유저들에게 만족감을 줬으니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김수진 = 실제로 게임 패스와 관련해서 해외 개발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게임 패스에 들어가서 큰 관심을 얻으면, 그 뒤에 나오는 후속작이나 DLC 등을 더 많은 유저들이 구매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팬층이라는 자산을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성준 = 맞다. 요즘 서브컬처 게임들도 결국은 팬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팬을 실망시키지 않고, 원하는 걸 만들어나가면서 꾸준히 팬을 쌓아가고 키워간다. 패키지 게임도 똑같다. 유저들, 저희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P의 거짓을 잘 만들었더라도, P의 거짓2가 별로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게임을 잘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 쉬운 일은 절대 아니지만,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김수진 = 네오위즈는 P의 거짓도 그렇지만 스팀에서도 좋은 결과를 많이 낸 회사다. 혹시 관련해서 뭔가 팁이 있을까.
박성준 = 저희가 한국 게임사 중 스팀과 관계를 잘 쌓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배급사 할인을 한 회사기도 하다.
스팀하고 일하면서 느끼는 건, 어떤 규칙이나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을 때가 되게 많다. 뭔가 규정이나 규칙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뀌는 것 같다.
다만 팩트들은 있다. 예를 들어 찜이라든지, 런칭 후에는 유저 평가가 중요하다. 평가가 낮으면 앞에 올려줬다가도 내려버린다. 예약 판매를 할 경우에는 예약 판매 추이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김수진 = 최근에 스팀 넥스트 페스트가 있었는데, 정말 많은 게임이 출품됐다. 그 사이에서 눈에 띄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P의 거짓은 2023년에 인기 출시 예정, 가장 많이 찜한 출시 예정 부문에서 1위를 달성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나.
박성준 = 사실 가장 큰 착각이, 스팀에 게임을 출시하면 사람들이 그냥 와서 해줄 거라는 생각이다. 못해도 10만 장은 팔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한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몇백 장 팔기도 힘들다. 노출이 되어야만 게임이 어떤지 평가도 받을 수 있다. 노출을 얼마나 시킬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저희 쪽으로 연락 오는 경우가 많다. 배급사 노출 때문이다. P의 거짓을 눌러서 들어가면, 같은 배급사의 게임이 밑에 쭉 나온다. 그렇게 노출이 많아지고, 덕분에 다른 네오위즈 게임의 판매량도 같이 늘어난다. 특히 배급사 할인 때는 그 효과가 더욱 크다. 디제이맥스나 산나비 등 잘 된 작품들이 많다 보니, 네오위즈 게임끼리 서로 상부상조한다고 볼 수 있다.
김수진 =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라는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있다. 처음엔 몰랐거나 안보였지만 지금 위치에서 새롭게 느껴졌던 풍경이나 느낌이 있을까.
박성준 = 아직 이 위치라고 할만한 건 아닌 것 같다(웃음). 저는 오히려 더 겸손해진 것 같다. 게임 하나에 집중해서 만들 때는 시야가 좁아진다. 저희 게임만 보니까, 저희 게임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게임을 위해 콘셉트을 만들 때도 시야가 좁아진 상태에서는 정말 괜찮아 보이고, 잘 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스튜디오 규모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시야가 굉장히 넓어진 것 같다. 여러 디렉터들과 함께하면서 다양한 콘셉트를 보고, 퍼블리싱을 통해 해외 개발자들과도 만나고, 준비하는 게임에 대해 듣기도 한다. 이렇게 많이 접하다 보니, 시야도 넓어졌다.
고민도 더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 생각했던 것들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부족함도 많이 보인다. 뭐랄까, 시야가 넓어진 만큼 오히려 조심성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산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바다를 만난 것 같다.
이번에 저희가 진승호, 이상균 디렉터와 함께 하게 됐다. 이미 콘셉트을 만들었고 프로토타이핑 작업 중이다. 두 디렉터가 워낙 내러티브에 일가견이 있다 보니, 구상한 콘셉트과 내러티브를 보는데 너무 좋더라. 이게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인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웃음).
덕분에 이렇게 뛰어난 개발자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와서 프로젝트에 굉장히 큰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이미 스튜디오에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또 다른 개발자를 계속 찾아보고, 어필해서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수진 = 출시 당시 키워드는 도전이었다면, 다음 목표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박성준 = 여전히 도전이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고 본다. 아직 도전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김수진 = P의 거짓으로 첫 시작을 할 때, 분명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점이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도전을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
박성준 = 당연히 경험이 부족한 건 맞지만, 방향성과 전략을 그렇게 잡았기에 실제로 개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저희가 블레스 언리쉬드를 할 때부터 콘솔 게임을 만들고 싶거나 직간접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모은 셈인데, 은근히 꽤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콘솔 게임 개발에 대한 의지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제로베이스에서 다 직접한다는 마인드로 시작했다. 물어볼 곳조차 없었기에, 저희가 시도하면서 배운 것들도 많다. 개발자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김수진 = 제로베이스에서 P의 거짓처럼 성공적인 게임을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박성준 = 정말 꾸준히 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뻔한 답 같긴 한데,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되더라. 저희가 해보니까 그게 맞다. 지름길이 없다.
김수진 = 이제 P의 거짓을 보여줬기 때문에, 유저들은 그 이상을 기대한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박성준 = 최지원 디렉터가 그것 때문에 정말 엄청 힘들어하고 있다. 고민도 많다. 사실 처음에 생각할 땐 후속작은 조금 수월할 줄 알았다. 이미 세계관도 만들어져 있고, 기존 틀이 있으니 조금만 더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 훨씬 더 어렵다. 기대치도 높고, 유저들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수용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얼마나 바뀌는 걸 좋아할지, 정말 근본적인 질문인데 답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지 않나. 각자가 더 하고 싶었던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니까 더 어렵더라.
김수진 = 과연 전작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로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인가, 이게 정말 가장 큰 고민일 것 같다.
박성준 = 정말 너무 어렵다. 하지만 분명 유저들을 설득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있었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설득시킬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김수진 = 10년 후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어떤 다짐이나 약속을 하고 싶나.
박성준 = 스튜디오의 10년 비전이 있다. 당연하고 단순한건데, 팬들에게 사랑받아서 꾸준히 후속작을 내는 시리즈를 3개 만드는 것이 목표다. P의 거짓이 후속작도 잘 된다면 아마 그런 IP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10년이 지났을 때 그런 IP가 3개 되어 있다면 스튜디오로서는 너무나 큰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 세 가지의 IP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도 되어줄 거라고 본다. 그게 제 목표기도 하다. 10년 뒤, 그런 멋진 3개의 IP를 가지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