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이후 최근까지도 외전격 작품들은 이어져 왔지만, 정작 1편의 주인공인 '맥스 콜필드'의 이야기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어떤 결말로든 고향을 떠나게 된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그 이후 그의 행보가 궁금한 팬의 입장에선 못내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약 10여 년이 흐른 지금, 외전격 작품인 '트루 컬러즈'와 '비포 더 스톰', 원작의 리마스터를 맡은 개발사 덱 나인이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왔다. 대다수 팬들이 그토록 바라 온, 맥스 콜필드의 이야기로.
*장르 특성 상, 리뷰에 스포일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명: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블 익스포저
장르명: 어드벤처
출시일: 2024. 10. 30.
리뷰판: 선행 리뷰 빌드개발사: 덱 나인 게임즈
서비스: 스퀘어 에닉스
플랫폼: PC, PlayStation 5, Xbox Series X|S
플레이: PS5
어른이 되어 돌아온 '맥스'의 이야기
시리즈 첫 공식 한국어로 즐기는 미스터리 스릴러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맥스는 지난 10여 년(원작 출시일로부터) 사이, 프로 사진 작가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 왔다. 미국 각지를 여행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현재는 명문 칼레돈 대학교의 상주 사진작가로 고용되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전작에서의 다짐대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잘 살아왔건만, 세상은 다시 한 번, 그에게 시련을 던져줄 모양이다.
블랙웰 고등학교의 너드에서 명문대 상주 사진작가로, 주인공 맥스의 위치와 시선이 달라짐에 따라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좀 더 어른스러워졌다. 친한 친구들은 대학원생이고, 학부생들은 그저 철부지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다. 고등학교에선 잘 나가는 동아리나 성격 안 좋은 애들이 위협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교직원에 가까운 존재(?)가 된 맥스는 더 이상 그런 위협에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
맥스의 목소리는 원작과 같은 성우인 해나 텔(Hannah Telle)이 맡았지만, 초반에는 같은 성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 또한 과거의 맥스와는 다른 성격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맥스에게 생긴 일은 훌훌 털어버리기엔 가혹한 것이었고, 이번 작품에서도 종종 과거를 잊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번 작품이 원작과 전혀 다른 시간대, 공간,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함에도 원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이처럼 원작을 모를 경우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 원작을 플레이하거나 스토리를 숙지한 뒤 '더블 익스포저'를 진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또, 스토리 측면에서는 시리즈 최초의 한국어화가 적용되었다는 점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시리즈 자체가 높은 수준의 영어 이해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토리가 핵심인 장르 특성 상 현지화는 전반적인 몰입도와 경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문자 메시지나 다이어리 등, 텍스트 콘텐츠 또한 의외로 많은 편이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영어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대단히 쾌적한 경험이었다.
평행 시간선을 오가는 '새로운 능력'
치고는 조금 아쉬운 게임플레이 메커니즘
칼레돈 대학교의 상주 사진작가, 맥스 콜필드의 이야기는 그의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듯 비극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롭게 사귀게 된 절친, '사피'의 죽음이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에 절망한 맥스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능력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리려고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에 그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대신 맥스는 새로운 능력을 손에 넣는다. '사피'의 죽음 이후 두 개의 시간선으로 나눠진 세계를 오고 갈 수 있는 능력.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은 예전처럼 자신의 선택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선을 오고가며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맥스에게 새롭게 생긴 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시간선에 남아 다른 시간선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특정 장소에서 아예 다른 시간선으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전반적인 게임플레이는 맥스가 지닌 이 두 개의 능력을 기반으로 푸는 퍼즐의 연속으로 구성됐다. 예컨대, 학부생들이 모여 수근거리는 대화를 엿듣고 싶다면? 다른 시간선으로 넘어가 이전 시간선의 상황을 살피는 능력을 사용하면 된다. 현재 시간선에 쓸만한 사다리가 없다면? 다른 시간선에 가서 가져올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시간선을 오고 가며 사건을 해결한다는 발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를 게임플레이에 녹여낸 방식은 조금 과하게 직관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시간선에서 닫힌 문을 통과하기 위해 저 시간선으로 건너가는 식의, 일차원적인 해결 방식이 주를 이룬다. 물론, 각자 다른 시간선을 살아가는 인물들과 저마다 다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전개는 흥미롭다. 그러나 퍼즐 측면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인 사례가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시리즈가 그래 왔듯, 앞으로 펼쳐질 일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선택지도 여전히 존재한다. 게임은 여러 상황에서 플레이어에게 두 가지(대부분의 경우) 선택 중 하나를 고르도록 강요하며, 이제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원작이 그랬듯 일부 중요한 시점을 제외하고 몇몇 선택지들은 결말에 큰 영향을 미치는 편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꽤나 많은 부분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이 있으며, 결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도 소소한 결과를 제공해 나름의 재미를 주는 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지를 찾기 위해서는 정말로 눈에 불을 켜야만 한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페이지에서는 각 선택지를 고른 플레이어의 비중을 보여주는데, 스토리와 연관되지 않은 사이드 선택지들은 고르지 않은 비중이 거의 70% 다다를 정도였다. 가련한 학부생의 점수를 고쳐주거나, 화분이 죽지 않게 물을 주는 것 외에도, 대학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변화하는 재미도 찾아볼 수 있다.
뜨거운 감자 '다양성' - 강요는 안 합니다
전작부터 쌓아 온, DEI에 대한 덱나인의 노하우?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요소는 컷신의 비주얼, 그리고 등장인물의 표정 연출이었다. 한층 더 세밀해진 그래픽은 잚 만든 3D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며, 섬세해진 표정 연출은 대사와 분위기에 힘을 싣는 역할을 한다. 모든 선택지와 대화마다 그려지는 컷신에선 인물들의 눈꺼풀 떨림까지도 적절하게 묘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표정 연출은 대사가 없는 부분에서도 인물의 심정을 묘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최근 글로벌 게임업계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와 관련한 여러 문제가 대두된 지 오래다. 얼마 전 있었던 '콘코드' 사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론 머스크는 지난 5월에 SNS에서 밝힌 이후 최근에도 다시 한 번 "강제적인 다양성이 게임 산업을 죽이고 있다"는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이 작품도 다양성에 대한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만나는 장면이 맥스가 미모의 바텐더 '아만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구간이고, 게임 전체를 통틀어 등장인물 중 '이성애자 백인 남성'은 손에 꼽는 수준이다.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만들어져 온 것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나 더 DEI 친화적으로 개발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게임 속 다양성과 관련해 갑론을박이 오가는 것 중 하나는 다양성의 '강제적인' 표현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다수 플레이어는 게임이 다양성을 '강요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대다수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강요하려는 모습'은 주로 맥락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표출하는 게임에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블 익스포저'에서는 적어도 강제적이거나, 교조적이라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다.
물론, 명문대 교직원 맥스의 주변인 대다수가 성소수자거나, 또는 백인 남성 친구가 거의 없는 점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성 정체성이나 인종이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편이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환기하는 장치로서 스토리에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플레이하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등장인물이 트랜드젠더 교수인 '그웬'일 정도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진 캐릭터다.
스토리 상 '그웬'이 처하는 상황은 현실 사회의 트렌스젠더에 대한 시선과도 불가분한 관계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너는 그웬을 좋아하고, 지지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못 배워먹은 녀석이야'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웬은 복잡한 인물이고, 그의 행동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 이상의 어떤 동기가 있다. 결국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판단하는 것은 플레이어고, 이 게임은 그 판단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이처럼 게임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다양성 또한 그 범위 내에서 이야기에 색채를 입히는 정도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 맥스에게도 해당한다. 맥스는 원작에서도 이미 또 다른 주인공 클로이와 진하게 키스를 하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 미모의 바텐더와 키스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놀랍지는 않겠지만, 또 누군가는 이 또한 '강제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두 번의 키스신(각각 여자 또는 남자), 그리고 두 번의 선택지를 준다. 키스를 할 것인지, 아니면 말 것인지.
하지만, 결국에는 이 모든 게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는 시점이 온다. 대학교에서 뽀뽀 좀 할 수 있지. 챕터를 더해가며 밝혀지는 스토리는 시시각각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흐르며, 중반 이후 파편처럼 퍼져 있던 단서들이 윤곽을 잡기 시작하면... 사실 친구 성 정체성이 어떤지는 신경도 쓰이지 않게 된다. 잘은 모르지만, 강제적이지 않은 다양성 표현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그만큼 게임의 스토리는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보여주고, 몰입감도 넘친다. 그러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전개에 대한 호불호도 상당히 나뉠 것으로 보인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세계관 확장을 위한 설계
그 결말은 과연 어디로... 걱정과 기대의 '이중 노출'
요점만 다시 말하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블 익스포저'는 오랜만에 만나는 캐릭터 '맥스'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신작이다. 그리고 전작들이 그래왔듯 챕터를 넘어갈 때마다 도무지 예상이 안 가는 방향의 전개를 보여주며 컨트롤러를 놓지 못하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다만, 새롭게 선보인 평행 시간선 기믹은 그 콘셉트는 흥미로웠지만, 게임플레이 요소로 풀어낸 부분은 아쉬움이 컸다.
스포일러 문제로 결말을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 게임의 결말에서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세계관을 더욱 탄탄하게 하려는 개발진의 의지가 느껴졌다. 우리는 이미 여러 스핀오프 작품들을 통해 맥스 외 다른 능력자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면, 추후에는 여러 능력자들이 모여 저마다 가진 능력을 활용해 난관을 헤쳐나가는 신작도 기대해봄직 하다.
하지만, 그런 개발진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번 작품의 스토리 전개는 호불호가 많이 나뉠 것으로 보인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여러 등장인물들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는 과정은 꽤나 흥미로운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후반으로 향하며 급격히 힘을 잃고 모든 것을 뭉뚱그리는 식의 전개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가져왔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이번 작품의 결말을 서로 다른 두 가지 감정을 한 번에 느끼게 한다.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것이 내가 실제로 바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계관 속에서 맥스의 초능력은 대부분 자신, 또 타인의 아픔을 보다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갑자기 곳곳에 숨은 능력자들이 모인다면, 이전과 같이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도 담아낼 수 있을까? 그야말로 걱정과 기대의 이중 노출이다.
- 등장인물의 디테일한 표정 연출, 비주얼
- 매번 다음이 궁금해지는 몰입감 있는 전개
- 시리즈 최초 한국어화
- 대체로 단조로운 초능력 활용 메커니즘
- (결말은 거의 그대로인) "선택의 중요성"
- 끝에 와서 힘이 떨어지는 결말
리뷰 플랫폼: PS5 (리뷰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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