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서기 2329년, 인류는 기억을 '아이코라이트'라는 형태로 변환해 육체와 분리하는 기술을 발달시키게 되었고, 이를 통해 언제든 새로운 육체로 기억을 옮기며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생'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기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육체는 사연스레 상품이 되었고, 모든 사람은 21세가 되는 해까지만 자신의 신체에 대한 '구독료'를 면제받았죠. 상류층은 매년 신체 구독료를 내면서 문제 없이 살아가지만,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다른 종류의 '영생'을 살게 됩니다. 신체를 빼앗기고, 기억은 기억 은행 한 구석에 보관된 채 말이죠.

'노바디 원츠 투 다이'라는 제목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듯, 이 작품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미래 인류의 이야기를 그리는 네러티브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위아래로 끝없이 건물이 늘어선 24세기 뉴욕의 풍경, 자욱한 매연과 담배 연기, 독한 합성 위스키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계관 속. 플레이어는 모종의 사건 이후 병가를 낸 형사 '제임스 카라'가 되어 비공식적인, 그러나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됩니다.

게임명: 노바디 원츠 투 다이
장르명: 어드벤처, 인터렉티브 스토리
출시일: 2024.7.18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크리티컬 히트 게임즈
서비스: 플레이온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S5


비주얼로 압도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
언리얼5 엔진으로 만들어낸, 2329년 뉴욕의 풍경

▲ 매캐한 도시, 네온, 그리고 담배 연기

'노바디 원츠 투 다이'의 무대가 되는 2329년의 뉴욕은 개발사 크리티컬 게임즈의 역량과 언리얼엔진5의 기술이 만나며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됩니다. 위로도, 아래로도 끊임 없이 건물이 즐비한 공간엔 태양 빛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80년 대 자동차 모습을 한 날아다니는 이동수단은 도시를 줄지어 누빕니다. 온통 회색빛으로만 가득한 듯 한 도시에 일말의 색채를 더하는 것은, 거대 기업들의 광고를 돕는 네온 불 빛 뿐이죠.

이처럼 느와르 풍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것은 배경 뿐이 아닙니다. 허구헌 날 술과 담배를 해 대는 베테랑 형사인 주인공, 그리고 팜므파탈의 정석처럼 생긴 그의 애인. 이야기의 대부분이 주인공의 남성미 넘치는 독백으로 채웠다는 점까지. '노바디 원츠 투 다이'의 강렬한 색채는 게임을 시작한 뒤 5분도 안 되서 이 게임이 어떤 스타일인지,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스타일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할 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대로 이 게임이 배경으로 하는 2329년의 뉴욕은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손에 쥔 시대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밝고 희망에 차 있어야 마땅할 것 같은 도시는 자욱한 매연과 쓰레기, 상위 1%를 제외하고는 다음 신체 구독료 납부일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곳이 됐습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주연한 2011년 개봉작, '인 타임' 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방법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인류는 '영생'을 얻었고, 그 방법은 어떻게든 타인의 삶(시간, 또는 신체)을 희생시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생각해보면 전반적인 색채도 비슷한 것 같지만, 이 게임 쪽이 좀 더 80년대 스럽고, 담배 냄새가 더 많이 는 편이죠.

▲ 암부 표현이나 광원 등은 인상적이며, 세계관을 묘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낯선 세계관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묘사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도 좋지만, 짧은 시간에 몰입하는 데는 비주얼만한 게 없죠. 폴란드의 신생 개발사 크리티컬 히트 게임즈 또한 자신들의 세계관을 납득시킬 방법으로 고 퀄리티 비주얼을 활용했습니다.

'노바디 원츠 투 다이'의 높은 그래픽 수준은 주인공 제임스 카라 형사가 뉴욕 도심을 내려다볼 때나, 사건 현장에서 각종 도구를 활용하며 추리를 할 때 모두에서 빛을 발합니다. 암부 표현이나 광원 효과, 반사 등도 인상적인 편이며, 게임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픽 퀄리티 뿐 아니라, 디자인 측면에서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보여주는 24세기 뉴욕의 모습은 그간 디스토피아를 그린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채를 추구하는 느낌입니다. 게임은 영생을 얻을 정도로 발전한 기술 속에서도 생활상 대부분은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특유의 세계관을 플레이타임 내내 곳곳에서 연출합니다.

▲ 햇살 가득한 스크린을 끄고 나면, 뉴욕 특유의 비상 계단과 네온이 나타나죠


내 이름은 제임스 카라, 형사죠
매력적인 수사 도구, 그렇지 못한 수사 과정

▲ 게임플레이의 핵심이 되는 '재구성기'

기본적으로 '노바디 원츠 투 다이'는 스토리를 따라 진행하는 내러티브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제임스 카라 형사의 매력적인 중저음 내레이션을 들으며, 그의 '비공식' 임무를 함께 해결해나가게 됩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줄거리를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모종의 열차 사고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해 기억을 잃었으며, 다시 회복될 때까지 일선에 복귀할 수 없는 일종의 '병가'를 낸 상태였죠. 그러나 집에만 있고 싶지 않았던 그는 서장을 졸라 한 사건을 맡게 되는데, 예상대로 그 사건에는 굉장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이야기 전개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임스 카라의 여정, 첫 번째 공간에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수사를 진행하는 여러 방법을 차례를 알려줍니다.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주인공의 왼속에 부착된 '재구성기'로, 게임플레이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죠.

재구성기는 현장 주변의 증거를 충분히 모으고 나면, 현장에 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점으로 시간을 돌려볼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장비입니다. 이를 통해 파손된 증거품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을 수도 있고, 희생자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 싸늘한 시체로 눕게 되었는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은 X선 투시경이나 UV 라이트 같은 수사 도구를 제공하며, 이들은 재구성기를 작동하기 위한 증거를 찾는 데 사용됩니다.

▲ 그 외에도 UV 광선, 엑스레이 등 수사 도구가 등장하죠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가 게임이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모든 수사가 완료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직접 추리력을 쓸 기회가 없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증거를 찾고, 현장을 재구성해 더 많은 증거를 찾는 일련의 과정은 다 정해진 순서가 있고, 플레이어는 지시에 따하 필요한 도구를 꺼내고,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죠.

초반 플레이는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그리 길지 않은 전체 플레이타임에 존재하는 수사 과정 전부가 이런 식으로 설계된 것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도구는 인상적이지만, 이것을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둔 셈입니다. 소규모 개발사의 데뷔작인 데다, 이야기의 흐름을 중시한 게임인 만큼 게임플레이에 어느 정도 제약을 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적어도 증거품을 찾는 순서나 과정은 플레이어마나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땠을까 하네요.

▲ 확보한 증거를 짜맞추는 과정을 통해, 세계관과 이야기의 흐름을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현장 조사 이후 집에서 하게 되는 증거 정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이어는 2329년의 수사 방법이라고는 믿을 수 없도록 바닥에 흩뿌려진 증거들 사이에서, 어떤 연관 관계를 찾아 선으로 잇는 방식으로 증거를 정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범인도, 세계관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어에게 스토리를 정리하며 곱씹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또 앞으로 주인공이 나아가려는 방향에 대해 그럴싸한 이유를 덧붙이는 수단으로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다만, 이 또한 수사 방법과 마찬가지로 선을 잇는 순서와 정답이 존재하며, 플레이어는 게임이 정답 표시를 할 때까지 여러 증거를 이것저것 끼워보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정리하자면, '게임플레이' 측면에 한정하여 '노바디 원츠 투 다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닥 인상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았습니다. 강렬한 비주얼로 보여주는 세계관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엔딩에 이를때까지 반복되는 추리 과정을 참기 어려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이것을 추리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보단 게임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청기백기 게임'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한 가지 더, 이처럼 선형적이고, 플레이어의 호기심이 개입할 여지가 적은 수사 과정은 반복 플레이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이 게임의 전반적인 게임플레이 파트는 '사이버펑크 2077' 스토리 도중, 강제로 BD를 시청하며 증거를 수집하는 구간을 닮았습니다. 처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반복하게 되면 가장 먼저 스킵하고 싶은 구간이죠. 실제로, CDPR은 패치 이후에 스킵 기능을 추가했고요.

대화 지문 속에서 여러 엔딩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던지는 게임 치고는, 핵심 게임플레이가 이토록 반복 플레이에 취약하게 설계됐다는 점도 아쉬움을 더합니다. 선택지를 바꾸면 결말이 달라질 테지만, 수사 방법이나 과정은 딱히 바뀔 거리가 없으니.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이미 경험한 구간을 또 다시 해야만 하는 고역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 2329년에도 수사 보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군요(?)


짧지만, 궁금하게 하는 이야기
비주얼과 콘셉트가 돋보이는,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찾고 있다면



게임플레이 요소의 한계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노바디 원츠 투 다이'는 비교적 짧은 플레이 타임으로 즐길 수 있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하나의 단편 소설로서 충분한 가치를 갖는 작품입니다. 주어지는 선택지에 비해 바뀌는 결말에 큰 차이가 생기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플레이어의 개입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네오 느와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비주얼 전반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사실, 게임 플레이 자체 또한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경험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로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는 '게임'으로 바라본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행보를 따라가는 인터렉티브 콘텐츠라는 시선으로 본다면?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노바디 원츠 투 다이'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주인공이 잃어버린 기억, 단순한 자살 사건에서 번져 나가는 거대한 음모, 영생을 얻은 인간, 도덕적 타락, 죽음의 의미 등. 밝혀낼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단조롭기는 해도, 게임의 수사 시스템은 이러한 내용들을 곳곳에서 조금씩, 플레이어에게 건네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이러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만 했던 부분들도 조금 보이긴 합니다. 사실상 게임 플레이 내내 직접 만날 수 있는 NPC는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의 시간이 주인공의 일인극과 독백, 몇몇 등장인물의 목소리로만 채워져 있는 점들이 그렇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흡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그만큼 명확한 네오 느와르 콘셉트와 영생과 죽음이라는 이야기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놀라운 비주얼과 의미 있는 스토리, 그리고 독특한 게임플레이를 한 데 모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개발사 크리티컬 히트 게임즈의 기업 철학은 이 작품에서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작품이 크리티컬 히트 게임즈의 데뷔작인 만큼, 앞으로 이들이 보여줄 상상력이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