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레 전작인 `페르소나3`의 리메이크, 리마스터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 커졌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페르소나3는 출시된 지 10년이 더 지났음에도 여전히 PS2, PSP라는 단종된 구세대 기종으로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9일, `페르소나3`가 현세대 버전으로 리마스터되어 출시됐습니다.
역대 페르소나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걸출한 스토리와 OST로 채워진 페르소나3는 사업 실패로 위기에 놓였던 아틀러스를 지금의 궤도까지 끌어올린 작품이자, 4편과 5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기틀을 세운 기념비적인 타이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페르소나 시리즈 팬을 자처하는 게이머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아직 한 번도 안 해봤다면` 말입니다.
게임명: 페르소나3 포터블 (Persona 3 Portable) | 개발사: 아틀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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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대 기종으로 돌아온 '페르소나3 포터블'
페르소나3 포터블(이하 P3P)는 인공섬 타츠미 포트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쉐도와 맞서 싸우는 특별과외활동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입니다. 이미 페르소나4와 페르소나5를 접해봤다면, `자칭 특별수사대`와 `마음의 괴도단`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텐데요. 이렇듯 배경과 멤버들만 달라졌을 뿐, 3편 이후로 이어진 페르소나 시리즈의 기본적인 구조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비슷비슷한 형태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러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교환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세계의 안위를 위협하는 거대한 사건과 마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점점 더 강해지게 되는, 아주 익숙한 그 전개죠. 이젠 너무 우려먹어서 지겹다고 느끼는 이들도 분명히 있겠으나, 페르소나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좋은' 중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분위기는 이어지는 두 작품과 사뭇 다릅니다. 내세우고 있는 메인 테마는 죽음이며, 후속작의 안경이나 가면과 달리 `권총`이 키 아이템으로 등장합니다. 페르소나를 소환할 때도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다소 오싹한 방식이 채용됐습니다.
메인 테마나 키 아이템에서 드러나듯 P3P는 스토리 전반에 다소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으며, 이는 이어지는 후속작들보다 더 두드러지는 P3P만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P3P를 플레이해본 적이 없는 유저라면, 유독 진지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는 P3P 특유의 스토리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것이 이미 13년 전에 나온 고전 게임의 스토리라고 해도 말이죠.
게임 시작 시 남성과 여성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P3P의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이는 후속작인 페르소나4, 페르소나5에도 추가되지 않은 독보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단순히 게임 플레이 중에 보여지는 캐릭터 모델링과 초상화가 바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 전개부터 등장하는 커뮤니티 캐릭터, 대사, 연애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까지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생깁니다. 성별 선택에 따라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하듯 두 가지 시점으로 전체 스토리를 즐길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면 전체 볼륨도 상당히 큰 편입니다.
만약 자신이 최신 페르소나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과 전체적인 비주얼에 매력을 느꼈다면, P3P 역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시리즈의 상징처럼 굳어져버린 시리즈 특유의 화풍을 만든 일러스트레이터 소에지마 시게노리가 처음으로 메인 캐릭터 디자인과 아트 디렉터로 활약하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페르소나3이기 때문입니다.
여주인공 루트를 통해 진행하면 4편의 주인공 멤버 중 하나인 아마기 유키코의 어린 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시리즈 팬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요소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페르소나 시리즈를 애정하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알짜배기 같은 작품인 셈이죠. 그간 많은 신규 팬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던 `현세대 기종 버전을 지원하지 않아서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핑계는 이젠 정말로 과거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만약 자신이 미로 같은 던전에서 심볼 인카운터 방식으로 적과 마주한 뒤, 턴제 전투를 통해 직접 편성한 파티의 레벨을 올리는 전투 방식을 좋아한다면, P3P는 `페르소나` 시리즈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플레이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어줄 것입니다.
P3P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스토리에 있으나, 시리즈를 거듭해도 크게 변하지 않은 특유의 전투 스타일은 이때도 여전했거든요. 약점을 맞춰 쓰러트린 적들에게 총공격으로 큰 대미지를 주는 통쾌한 맛 역시 변함없고요. 닌텐도 스위치를 포함한 모든 콘솔 플랫폼, PC를 통해 출시됐으므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하기도 수월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점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탄탄한 타이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명작'의 리마스터가 자그마치 13년 만에 정식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주한 팬들의 반응은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현세대 기종으로 '그저 돌아오기만 한' 페르소나3 포터블
페르소나3 포터블 리마스터는 거치용 콘솔 게임으로 공개된 원작을 휴대용 기기에 맞게 수정한, '이식판의 리마스터'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리마스터 버전의 P3P는 고해상도의 비주얼과 최적화를 통한 매끄러운 조작이 가능해진 것은 물론, 특정 세이브 포인트를 찾아가지 않아도 언제든 진행 상황을 저장할 수 있도록 '중단 저장' 기능이 추가됐고,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신에게 맞는 플레이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배틀 난이도 선택' 기능이 더해졌습니다. 처음 게임을 접한 신규 유저들이 PSP 시절의 낡은 비주얼이나 UI에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꼭 필요한 편의 기능을 더해준 셈이죠.
P3P 리마스터의 개선점은 딱 이것으로 끝입니다. 출시된 지 13년이 지나 드디어 찾아온 리마스터엔 말 그대로 딱 한 문단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 가지 변화가 전부였고, 팬들의 불만은 여기서 터져 나오게 됐습니다. P3P보다 먼저 PC를 통해 리마스터가 된 '페르소나4 골든'도 완전히 똑같았는데 왜 이제와서 P3P 리마스터에만 시끄럽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여기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PS VITA로 출시된 `페르소나4 골든`이 거치용으로 공개됐던 원작보다 모든 면에서 상향된 `완전판`이었던 것과 달리, P3P는 하드웨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원작의 여러 요소를 깎아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타이틀이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P3P가 가장 마지막에 출시된 페르소나3가 맞으나, 원작에 담긴 애니메이션이나 3D 캐릭터 이동 연출을 포함한 여러 시스템, 그리고 확장판 FES에 추가되었던 후일담 에피소드 역시 수록되지 못했죠.
여주인공 추가나 유저 편의성 개선 등 오직 P3P에서만 볼 수 있는 변경 점도 물론 존재하지만, 13년의 세월을 건너 리마스터를 결정했다면, 거치용 콘솔로 출시됐던 페르소나3와 FES의 신 요소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완전판` 성격의 리메이크를 해주는 게 맞지 않았느냐는 것이 현재 제기되고 있는 팬들의 주장입니다.
PS2 버전의 페르소나3, 그리고 FES를 플레이해보지 못한 유저의 시선으로 이번 리마스터를 봤을 때 가장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것으로 보입니다. 10여 년 만에 다시 플레이할 수 있게 된 페르소나3의 리마스터가 원작의 알짜배기 콘텐츠라 불렸던 핵심 요소들을 전부 간소화한 P3P 버전의 이식에 그쳤으니 말이죠.
게임 플레이의 몰입을 돕는 스토리 애니메이션, 3D 캐릭터를 움직여서 진행하는 스토리 연출 등, 바로 이전에 리마스터된 '페르소나4 골든'에선 당연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주요 요소들이 모두 간소화됐으니, 여기에서 오는 상실감도 큰 편입니다. 차라리 이번 리마스터 없이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완전판`을 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반응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리마스터 출시로 인해 페르소나3의 모든 콘텐츠를 하나로 집약한 '진짜 완전판' 출시가 또 한차례 연기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 또한 분명한 기약 없는 바람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단순히 PSP로 P3P를 재미있게 즐겼던 입장에서 바라봐도 아쉬움은 그대로 입니다. 그야 당시엔 언제 어디서든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었고, 이 덕분에 똑같은 구역을 계속 반복하며 레벨을 올리는 행위 자체도 재미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시리즈를 모두 즐기고 난 뒤 다시 돌아본 P3P는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도 RPG로서 너무 낡은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다른 던전 기믹을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총 260층이 넘는 타르타로스를 계속해서 등반하는 과정은 다른 현세대의 RPG에 익숙해진 게이머들에게 있어 그저 고문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틀러스가 리마스터판의 몇 가지 안 되는 변경 사항 중에 `배틀 난이도 설정`을 넣어준 것은 바로 이때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난이도 설정에 따른 업적이나 스토리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으니, 페르소나3의 스토리가 궁금해서 P3P 리마스터를 선택한 유저라면 처음부터 쉬운 난이도, 혹은 `전투 획득 경험치 많음` 등의 커스텀 옵션을 활용해보길 바랍니다.
페르소나 시리즈는 개인적으로도 참 의미가 있는 타이틀입니다. 페르소나3 포터블을 플레이하기 위해 PSP를 구매했고, 페르소나4 골든 때는 PS VITA를, 이후 페르소나5를 플레이하려고 PS4를 구매하기에 이르렀거든요. 이후 PC까지 플랫폼을 확장한 더 로열을 보고 앞으로 나올 후속작을 위해 무리해서 콘솔을 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매번 새로운 기쁨을 주는 시리즈였다는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게 된 낡은 PSP 대신, PS4로 추억 속에 있던 게임인 P3P를 다시 플레이해보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기엔 영 불편하고 딱딱한 부분도 많았지만, 역시 금방 놓지 못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3P 리마스터는 이미 10년도 더 된 고전 게임의 이식판인 만큼 추천할 수 있는 유저층이 명확한 편입니다. 페르소나5, 페르소나4 골든을 통해 페르소나 시리즈의 매력을 느낀 유저라면, 추후 공개될 예정인 시리즈 최신작을 맞이하기 전에 페르소나 특유의 테이스트가 발현되기 시작한 3편을 먼저 경험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미 P3P를 플레이해봤거나, 고전 게임 특유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전투 스타일을 견디지 못하는 유저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타이틀입니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추억보정으로도 전부 채울 수 없는 깊은 간극을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P3P 리마스터의 엔딩을 보기까지 당분간은 매일 타르타로스에 오를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나와 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페르소나3 리메이크의 출시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