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명: 플러드랜드(Floodland) | 개발사: Vile Mona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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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핵전쟁, 좀비 바이러스, 외계 문명의 침공, 심지어 버섯에 의한 감염까지. 무수히 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미래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크게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상력이 돋보이는데, 폴란드의 게임 개발사 '바일 모나크'는 조금 다릅니다. 흔히 '기후 변화'라고 하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온 그것에서 시작한 멸망을 보여줍니다.
게임의 제목 그대로, '플러드랜드'는 기후 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며, 우리가 살아오던 삶의 터전 대부분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합니다. 게임 내에서 '그 사건'이라 칭하는 현상이 발생한 이후,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생존을 위해 '부족' 단위로 삶을 이어간다는 설정입니다.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그 사건' 이후 살아남은 하나의 부족을 이끌게 되며, 삶을 지속 가능한 수준의 터전을 다져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첫 임무는 아직 가동되는(또는 가동할 여지가 있는) 발전소를 찾아 탐험해 나가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매일매일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포스트아포칼립스를 대루고 있는 여느 게임과 같이, 이 게임 또한 당장의 생존을 위해 주변의 자원을 탐색하고, 모아둔 자원을 알맞게 관리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물가에 떠밀려 온 쓰레기는 기본적인 건설 자재로 사용되며, 부족원들이 허기와 목마름에 지치지 않도록 식량 자원도 신경써야 합니다. 거기다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라진 문명의 잔재를 찾아 연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타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 게임과 비교되는 것이라면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하나의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점이겠습니다. '플러드랜드'에서는 앞으로 생존을 위한 대부분의 결정을 플레이어에게 일임합니다. 캠프 바깥 사람들과는 왕래하지 않고, 우리끼리 잘 살자는 주의를 가진 부족이 될 수도 있고, 더 많은 이들과 합류해 영토를 키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선택에 따른 결과 또한 모두 플레이어가 감당해야 합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는 여타 시뮬레이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기술도 발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주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수집하며, 나무에서 베리류를 채집해 허기를 채우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어느 정도 쓰레기가 모이게 되면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천막을 짓고, 다음으로는 보다 안정적인 식량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낚시터를 만들거나, 쓰레기 선별소를 지어 가며 캠프를 확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는 한정적이고, 물가에 떠밀려 온 쓰레기도 언젠가는 그 수가 고갈되기 마련입니다. 게임은 계속 초반부터 '발전소 찾기'라는 부족의 주요 목표를 강조하며, 점점 탐사 지역을 넓혀 가며 유목민 생활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 때 플레이어의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게임의 핵심 요소이기도 한 홍수로 멸망한 지구의 모습입니다. 게임은 플레이할때마다 맵이 달라지지만, 구석구석 물이 들어차지 않은 곳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환경적 요소를 극복하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이 상당히 강조되는 편입니다.
꽤나 흥미로운 주제의식과 게임플레이를 가지고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습니다. 초반부터 약 50일 정도 생존에 성공하게 되면 주변에 존재하는 쓸만한 자원들은 모두 확보한 시점이 되는데, 이 이후부터 게임을 진행하는 시점에서 흥미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보통 이 이유는 불합리하게 생성된 맵 때문일 경우가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시작한 지역에 깊은 물로 둘러쌓여 있을 경우, 이 이상 탐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부족민을 옮길 수단인 항구와 배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작 지역 내에 과거 유산과 자원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기술 포인트도 없고, 항구를 개발할 때까지 하위 테크 트리를 제작할 자원도 모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원이 모이기를 무턱대고 기다리다 보면 식량과 식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결국은 섬 밖을 탈출하지 못한 채 모두가 아사하는 엔딩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실적인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플레이어가 감내해야 할 좌절감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자원의 고갈이 시도때도 없이 플레이어와 부족을 보채는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매우 더딥니다. 이런 상황들은 계속해서 플레이어가 무언가에 쫒기고 있다는 감정을 갖게 하며, 결국 서둘러봐야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판단이 설 때, 플레이어에게 남는 선택은 게임을 새로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제외하면, '플러드랜드'는 생존을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외에도 부족 구성원 사이의 규율을 제정하는 트리 또한 꽤나 세밀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택에 따라 다른 성격을 지닌 부족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모두가 함께 불만이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게임이 보여주고 하는 것이 기후 변화로 인해 멸망한 지구가 아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인간사가 모두 그렇듯 간단한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규율이나 법 제정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위의 사례처럼 기술 발전에 필요한 점수를 획득하는 과정이 제한된 '플러드랜드'의 구조는 기초적인 단계의 채집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며, 자연스럽게 부족민의 화합과 상생을 이야기할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 사이에 발생하는 치명적인 사건들 또한 게임의 후반을 보기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데, 자원 고갈만큼이나 무서운 질병이 바로 그 예입니다. 오염된 생선을 통해서든, 방금 막 규합한 타 부족민에게 옮겨와서든 한 번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자원과 인력이 소모되고는 합니다. 물론, 이런 급박한 상황들은 또 다른 선택할 거리로 이어지며, 사회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람들을 통솔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사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게임 플레이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 '플러드랜드'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좋아하는, 그리고 생존 시뮬레이션에 입문하고자 하는 게이머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유의 그래픽으로 구성된 UI가 비교적 한 눈에 보기 편안하고, 큰 어려움 없이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튜토리얼 또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맵 구조에 따라 특정 단계에서 정처없이 주변 자원만 고갈시킬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생각하기도 전 단계에서 지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꽤 세밀하게 짜여진 테크 구성과 세력 간 차이, 생존하는 도중 발생하는 여러 선택지 등은 취향에 맞는 이들에게는 일정 수준의 플레이타임을 보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홍수로 멸망한 지구를에서 생존을 위해 모이게 되는 인간의 이야기를 독특한 그래픽으로 풀어 낸 '플러드랜드'. 아직은 약간 어설픈 한국어 번역도 눈에 밟히기는 하지만, 생존자 AI가 일으키는 각종 버그와 문제들이 어느 정도 고쳐지고 난다면 꽤 높은 수준의 몰입도를 갖춘 타임킬링용 시뮬레이션으로서는 제 역할을 다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