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은 탄산인데 칼로리를 줄인,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슛뎀업
평소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곤 하지만,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면 매번 질리지 않고 찾는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슈팅' 장르의 게임입니다. 자잘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무언가 파괴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이 차오를 때, 슈팅 액션 장르의 게임만큼 속 시원한 처방전이 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애용하는 작품은 '메탈슬러그' 시리즈입니다. 출시된 지 20년도 더 된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앞길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두 처치하고, 거침없이 나아갈 때의 상쾌한 재미는 요즘 나오는 게임들과 비교해봐도 절대 꿀리지 않습니다. 아직도 '원코인 클리어' 같은 거창한 플레이는 하지 못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물릴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새로운 맛을 찾게 되는 법입니다. 메탈슬러그를 대체할 재미있는 슈팅 액션 게임을 찾던 중, 마침 스팀을 통해 공개된 신작 게임을 발견했습니다. 타이틀은 '소다 크라이시스(Soda Crisis)'로, 마침 데모 버전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죠.
게임은 메탈슬러그와 같은 런앤건 액션 장르로, 멋들어진 전술 헬멧을 쓴 주인공 캐릭터가 '애니머싱~거'를 탄약 수 제한 없이 마구 뿌려대는 상쾌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한국어 지원 표시도 없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한국어도 제대로 지원되고 있었고요.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정식 버전을 구매하여 플레이해보았습니다.
게임명: 소다 크라이시스 (Soda Crisis) | 개발사: Team So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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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Soda Crisis'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냉동고에서 막 꺼낸 콜라처럼 상쾌한 슈팅 액션
소다 크라이시스는 타이틀처럼, 탄산음료같은 상쾌한 매력이 게임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게임입니다. 게임을 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깔끔하면서 화려한 비주얼이 그 첫 번째 매력이죠. 무엇하나 허투루 만든 것 같지 않은 정교한 배경과 그 속에 배치된 여러 오브젝트들, 그리고 이러한 오브젝트가 파괴될 때의 박력있는 연출을 보고 있으면, "이 맛을 보려고 슈팅 게임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속이 뻥 뚫리는 시원시원한 총기 사운드와 폭발음 등 음향 효과도 한몫 거들고 있고요.
오브젝트가 다양하고 정교하게 꾸며져 있지만, 그럼에도 게임이 무겁거나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고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점 역시 칭찬해주고 싶은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사용하는 버튼은 방향키를 제외하고 단 네 개 뿐인데, 벽면을 따라 달리거나 절벽을 오르고, 슬라이딩으로 공격을 피하거나 로프를 걸어 먼 거리를 도약하는 등 획일화되지 않은 스타일리쉬한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분명 별다른 조작을 하고 있지 않은데도, 마치 액션 게임의 고수가 된 듯한 빠른 슈팅 액션을 만끽할 수 있었죠.
또 하나의 강점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매번 다른 느낌의 재미를 주기 위한 여러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스테이지의 구조가 복잡하게 꾸며지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적의 공격을 피하고, 쏘는 것만 반복한다면 금방 지겨워질 수 있는데요. 소다 크라이시스에서는 여러 가지 '탈것'을 활용한 미니게임 요소를 스테이지 중간 중간마다 삽입하여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게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탈것'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지게차를 시작으로 빠른 이동을 위한 승합차, 마치 '소닉'처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공 모양의 탈것, '플래피 버드'의 오마주로 보이는 새 형태의 비행기, 알타입 속 업그레이드 파츠 형태의 전투기 등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요. 각 탈것의 성능을 만끽해볼 수 있는 특별한 형태의 퍼즐과 스테이지 기믹이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에, 매번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은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몇 번 더 타고 싶어도 전체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두 번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달까요. 이왕 공들여 만들었으니 별도로 즐길 수 있는 미니게임 형태로 각 탈것 관련 콘텐츠를 추가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 전체가 평이한 난이도의 작은 스테이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고 엔딩을 보는 그 순간까지 부담 없이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강점입니다.
보통 슈팅 액션 게임에서는 콘텐츠 볼륨과 플레이 타임 확보를 위해 급격하게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간이 등장하고, 그 구간을 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소다 크라이시스에는 별도의 목숨 개념이 없으므로, 죽더라도 별다른 페널티 없이 그 구간을 계속 반복해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느껴졌던 구간이라고 하더라도 몇 번의 재도전을 반복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요. 재시작도 1~2초만에 이어지므로 반복 플레이에서 오는 피로감이 적습니다. 결국, 불필요한 피로감을 느낄 새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면서 엔딩까지 게임을 이어갈 수 있는 셈입니다.
반복 플레이로 패턴에 익숙해지고, 이윽고 클리어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지근하고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한 스토리와 아쉬운 마감
크게 흠잡을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쉬운 점 첫 번째는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하게 느껴지는 메인 스토리입니다. 사실 스토리를 모르고 진행해도 게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슈팅 액션의 재미가 격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게임에 몰입하기 어렵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하면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그리고 엔딩을 보는 그 순간에도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소다 크라이시스는 이러한 부분에서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새로운 미션이 또 열렸으니까, '이왕 했으니까 엔딩까지 봐야지'라는 감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죠.
설상가상으로 소다 크라이시스는 현재 정식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게임 내 몇몇 UI에 한국어가 표시되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이는 데모 버전 당시에 반영했던 테스트 문구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안 되는 게임 내 지문이나 대사, 아이템 특성 등을 읽을 때도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므로, 여러모로 게임을 선택할 때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제한적인 아이템 조합 시스템과 파츠 획득 구간에서 오는 답답함에 있습니다. 게임은 앞서 소개한대로 작은 스테이지의 모음 형태로 이루어져있고, 한 두번의 전투 후에는 '파츠 획득' 페이즈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전투 페이즈 - 파츠 획득 - 전투 페이즈'와 같은 구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식이죠. 로그라이크 장르의 게임에서 방 하나를 클리어하면 랜덤 보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엔 플레이어가 보상을 '선택'한다는 개념이 없지만 말이죠.
획득할 수 있는 파츠에는 체력 최대치 증가나 아이템 착용 제한을 늘려주는 에너지 등 유용한 것이 많이 있으나, 이 구간이 전투와 전투 사이에 계속해서 등장하다 보니 빠르게 진행되는 전투의 템포가 끊기고,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상자에 다가가면 카메라가 상자를 강조해서 보여주고, 흔들리고, 열리고, 시점이 뒤로 빠지고, 파츠 소개가 등장하는데, 이 일련의 과정에서 스킵이나 빨리 감기가 지원되지 않습니다. 파츠 획득 과정을 조금 단순화하거나, 연출 스킵 기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토리 컷씬에서는 스킵 기능을 지원하고 있으면서, 왜 이런 곳에는 넣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이외에도 첫 번째 보스를 클리어하고 난 뒤에 거점으로 돌아오면, '이건 그냥 체험판이니, 마음에 들면 한 번 더 플레이해봐라'라는 대사가 나오는 등, 데모 빌드를 수정 없이 그대로 넣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존재합니다. 날림으로 적용된 한국어 표기의 잔재 역시 이러한 것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얼리억세스가 아닌 정식 출시 게임임에도,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아 날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부분들은 아쉬운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대사만 그렇게 출력될 뿐이지 정식 버전 콘텐츠들을 전부 문제 없이 플레이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1회차 스토리를 모두 즐기고 나면, 오직 근접 무기인 검으로만 플레이하는 모드, 날아오는 투사체를 막아내는 '우산'만 사용할 수 있는 모드, 그리고 다른 이들과 클리어 타임을 겨룰 수 있는 '타임 어택' 모드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한국어가 완전히 지원되지 않아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복잡하게 고민할 것 없이 슈팅게임 본연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게임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플레이해보시길 바랍니다.
소다 크라이시스는 현재 스팀에서 11,5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인디 게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결코 비싸지 않은 가격이죠. 하지만 플레이 타임은 최소 3시간 이상을 보장합니다. 똑같은 스테이지를 몇 번이고 반복하게 하거나 악랄한 난이도로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류의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격에 걸맞는 볼륨의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게임을 선택하기 전에 소다 크라이시스가 어려운 액션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탄막 속에서 세밀한 컨트롤로 총알 사이사이를 피해 다녀야 하는 탄막 슈팅 게임이나, 한정된 목숨과 체력으로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로그라이크 액션 게임과는 다른 재미를 담고 있습니다. 극한의 매운맛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밍밍하게 느껴지는, '제로 칼로리 탄산 음료' 같은 게임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시작부터 코인 99개 넣어둔 채로 플레이하는 메탈슬러그'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