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었습니다. 소피 연금술사님. 잠에서 깨어나세요.


‘중2병’……이라고 하죠? 제가 청소년이었던 시절에는 한창,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왕도적인 이야기를 싫어하면서 반전 요소에만 매달리던 시절이었는데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야기에는 수많은 결말이 존재하고, 해피 엔딩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과거엔 인정하지 않았던 '일상물'이라는 장르도 지금은 즐겁게 감상하고 있죠.

그리고 ‘아틀리에 시리즈’는 ‘일상물’의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군 중 하나입니다. 코에이 테크모의 산하 개발사, 거스트에서 제작했으며, 1997년에 발매한 ‘마리의 아틀리에’ 이후로 2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아틀리에 시리즈의 특징은 ‘연금술 시스템’과 ‘한가로운 세계관’으로 세계의 위험이 닥쳐와도 잠깐의 순간일 뿐. 일상을 놓치지 않는 특유의 느긋함이 특징입니다.

또 하나의 아틀리에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딱 세 작품만 만든다는 것이었죠. 알란드 시리즈를 포함해 황혼 시리즈, 신비 시리즈, 그리고 비밀(라이자) 시리즈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근데 최근 들어서 ‘루루아의 아틀리에’ 등으로 트릴로지의 후속작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타자는 알란드 시리즈, 그리고 두 번째 타자는 신비 시리즈입니다.

‘소피의 아틀리에 2 ~신비한 꿈의 연금술사~’는 신비 시리즈의 첫 작품, ‘소피의 아틀리에 ~신비한 책의 연금술사~’의 정통 후속작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후, 발매된 피리스, 리디&수르와 다르게 소피가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했죠. 그렇기에 시계열 상으로는 피리스 전의 이야기가 되지만, 소피가 겪은 모험은 더욱더 그리운 향수처럼 느껴지며,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냅니다.

게임명: 소피의 아틀리에 2 ~신비한 꿈의 연금술사~
장르명: RPG
출시일: 2022. 2. 24.
개발사: 거스트
서비스: 디지털터치
플랫폼: PS4, NS, PC(Steam)

● 관련 링크: '소피의 아틀리에 2 ~신비한 꿈의 연금술사~' 오픈크리틱 페이지



플라흐타를 잃어버린 소피의 모험은?


전작에서 크게 성장한 연금술사, '소피 노이엔뮐러'와 '플라흐타'가 고향 키르헨 벨을 떠나 공인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꿈의 거목'을 발견하게 되었고 거기서 꿈의 신인 '엘비라'의 눈에 띄어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소피는 플라흐타와 떨어지게 되었고, 자신 또한 플라흐타가 빨려 들어간 꿈의 이세계 '에르더 비거'로 오게 됩니다.

여기서 소피는 에르더 비거를 나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 자신과 떨어지게 된 '플라흐타'를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곳에서 살고 있던 다른 시간대의 주민, '알렛'과 '올리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곳, 에르더 비거에도 플라흐타라는 연금술사가 있다고 합니다. 궁금해진 소피가 찾아가보니, 이게 웬걸. 자신과 여행하던 플라흐타와 쏙 빼닮은 플라흐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자신이 알던 플라흐타의 과거 모습인지는 모르지만, 소피는 이세계에 있는 플라흐타와 협력하여 자신의 동료인 플라흐타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중심이 소피에서 주변인물에게로 초점이 변하는 시기가 있고, 이야기도 시리어스한 분위기를 띄운다기보단,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르데 비거라는 세계 자체가 본래 사람들의 꿈을 관철해주기 위해 태어난 장소기도 하고, 꿈의 신인 엘비라에게 이야기를 하면 금방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긴장감이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소피가 이세계에서 못 벗어나는 것은 아니니깐요.

그렇기에 이세계에 떨어진 소피의 비장한 모험을 바랐던 사람이라면 이후,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성을 원치 않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틀리에 특유의 캐릭터에 비치는 심상과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면 좋아하실 수도 있고요. 애초에 세계관도 무겁고 우울하지 않은 데다 캐릭터들 또한 심성이 바르니까 비장함은 오래가지 않을 법합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평범한 동화 같은 스토리가 담긴 스튜에 시리어스 가루 한 스푼을 넣어 맛을 살짝만 냈다고 보시면 됩니다.

▲ 본래 알던 플라흐타와 떨어진 소피

▲ 하지만 빨려 들어간 세계에서 만난 플라흐타는 똑같지만 다른 존재였습니다

▲ 초반부터 벙쪘던 "잘 있어!"

▲ 귀여워서 한 컷 찍은 알렛



아틀리에의 꽃, 연금술. 1편의 맛 그대로


아틀리에 시리즈에선 RPG의 생명과 다름없는 전투보다 훨씬 중요하고 특별한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바로 연금술 시스템이죠. 연금술 시스템으로 폭탄을 제조하거나,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할 수 있고 재료가 받쳐주는 한, 자신이 원하는 옵션과 품질 등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금술 시스템은 소피 1편을 플레이해 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할 풍경일 테고, 아니라면 다시 배우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기본적으론 5×5로 되어있는 패널에서 원소 블록을 퍼즐처럼 조합해 각종 보너스를 얻어가는 형태입니다. 나중에 가서는 리버스 패널이나 촉매 등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럼 기본의 5×5 패널보다 블록의 조합이 복잡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재료 내에 들어 있는 옵션과 품질, 그리고 원소 블록 등을 고려해 자신이 원하는 강력한 폭탄, 무기 등을 제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플라흐타'의 연금술을 쓸 수도 있는데요. 저희가 아는 플라흐타는 아니고, 아직 지식을 쌓는 중인 에르데 비거의 플라흐타의 연금술입니다. 서로 연금 레벨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성장시켜야 하며, 공통된 분야가 아니면 각자 만들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소피는 낫을 만들 수 있고, 플라흐타는 낚싯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해야 하려나요?

어쨌든, 아틀리에 시리즈의 재미는 연금술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메인 스토리를 진행할 때에도 연금술은 중요하게 작용하죠. 기본적으로 전투 또한 연금술을 위한 것이며, 바깥에서 채집 및 전투를 통해 소재를 획득하고, 아틀리에로 돌아와 얻어낸 재료와 아이디어를 통해 원하는 도구를 연금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입니다. 그 때문에 항상 아틀리에 시리즈를 접하기 전에 자신이 연금술 시스템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연금술에는 이런 쾌감이 있습니다

▲ 떡밥 만드는 플라흐타

▲ 이번에도 특수한 조건으로 레시피를 떠올리고, 조건에 맞는 재료를 수집해 개방하는 방식입니다

▲ 뭐, 폭탄 시뮬레이션 게임답게 폭탄 좀 던져봤습니다만, 시원치 않군요



경험은 그대로 둔 채, 발전을 꾀하다


이전 체험판을 플레이했을 당시엔 많은 것을 짧게 즐길 수 있었지만, 기존의 1편과 꽤 흡사하단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게 그래픽의 묘사나 지형의 형태뿐만 아니라, 시스템이나 전투마저 전작의 경험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러스트레이터도 NOCO와 유겐, 둘의 그림이 혼합되어 있죠. 만약에 피리스, 리디&수르나 라이자 시리즈가 없이 소피의 아틀리에 2만 출시되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하지만 경험이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2편이니까 그래픽에 대한 세밀한 묘사나 시스템에 대한 발전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모델링과 텍스처의 발전은 말할 필요가 없고, 비에 옷이 젖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맵의 구조나 형태 등이 1편과 흡사한 부분이 있어 라이자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투에서도 괄목할만한 버전 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 체험기에서 언급했었던 새로운 기능인 '트윈 액션'과 '듀얼 트리거'가 생겼고, UI 또한 전작에 비해 깔끔하게 개편되었고 심리스화된 전투로 로딩이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턴제 시스템의 베이스가 1편이기 때문에, 과거의 그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너 주고 나 받는 순수한 턴제 액션을 경험할 수 있죠.

▲ 어빌리티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능력치를 올리는 것이지만, 메인 스토리 진행에도 필요합니다

▲ 날씨가 바뀌는 건 신선해서 좋은데... 복잡한 맵 구조만 어떻게 해줬으면

던전에서도 '날씨조작 시스템'이란 새로운 시스템이 생겼습니다. 특정 아이템을 비석에 사용해 날씨를 변경하는 것인데, 이렇게 변경하면 지형까지 새롭게 바뀌어 길이 생깁니다. 일종의 퍼즐로서 다양한 경험을 늘려주었지만, 맵의 복잡함이 늘어 길이 험난해지기도 했습니다. 대신, 미니맵을 보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그걸 보고 찾아가면 길을 잃진 않을 겁니다.

그 외에 '대채집'이라는 마치 슬롯머신을 떠오르게 만드는 미니 게임 형태의 시스템도 존재합니다. 필드에 드물게 존재하는 귀중한 채집물을 캐면 되는데, 캐는 도구에 따라 방식도 조금 달라집니다. 슬롯머신을 잘 맞추면 소재에 보너스를 부여할 수 있고 품질 상승이나 재화(콜), 연금성분 이외의 보너스를 전부 획득 가능한 ALL을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 노동이 될 수 있는 채집에 재미를 부여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렇지만 맵의 복잡함도 그렇고, 1편을 하면서 느꼈던 특유의 불편함도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월드맵을 통해 볼 수 있는 잠긴 소재들인데요. 소재의 실루엣이 아닌, ?나 자물쇠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어 어떤 소재인지 감을 잡기가 힘듭니다. 모험을 떠나 몬스터를 해치우고 다양한 소재를 수집해 연금의 재미를 배우는 것이 아틀리에 시리즈 본연의 재미인 것은 알고 있지만, 적어도 실루엣이라도 표기해 어떤 소재를 얻을 수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기 쉽게 해두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미니맵 또한, 소재를 표기하고 있지 않아 맵을 다시 한번 훑어봐야 하는 불편함도 있네요.

▲ 낚시 대채집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 만약 퀘스트가 아니라면,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찾기 더욱 힘들어집니다




소피의 아틀리에 2는 발전을 꾀하면서도 제자리걸음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다만, 그 걸음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마왕이라고 할 법한 악역, 악당이 없는 아틀리에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깐요. 『잔잔한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 그것이 아틀리에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피의 아틀리에 2는 그런 소피의 모험담을 잘 그려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각 인물마다 이야기도 좋습니다. 캐릭터 간의 소소한 이야기가 작품 특유의 여운을 안겨 주기도 하죠. 메인 스토리는 중간에 노선이 변경되긴 합니다만, 이 또한 아틀리에 시리즈기에 가능한 구조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피가 2편에선 상당히 애매한 포지션에 서 있는데요. 이는 1편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걸 고려한 밸런스 패치일지도 모릅니다.

원래 발전된 면모가 드물고, 옛 감성이 남아 있다면 시리즈의 발전에 독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소피의 아틀리에 2’입니다.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 라이자 시리즈와 달리 기존 신비 시리즈의 연장선이죠. 제가 보기엔 본작은 과거의 느낌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적인 멈춤에 가깝다고 봅니다. 예전 소피의 아틀리에의 감성을 살려내기 위한 수단이죠. 그렇지만, 옛것의 불편함까지 함께 가져올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도 날씨를 변경해 지형을 바꾸거나, 미니맵 확장 기능 등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최신작인 라이자에서 가져온 부분도 많습니다. 즉, 구작과 신작을 적절하게 조합 시켜 탄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소피의 아틀리에 2는 스토리로서, 그리고 작품 그 자체로 ‘꿈’이라는 무대를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이 느낌. 소피와 이전에 한 번, 같이 모험을 즐겼었다면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소피 할머니의 과거 모습인 듯한 라미젤

▲ 포토 모드로 한 번 찍어본 치정 싸움(?)

▲ 플라흐타를 찾는 소피의 이번 모험, 어떤 식으로 재회하게 될까요?

▲ 아무래도 당분간 소피의 여정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