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서구권 개발자가 만든 게임 속에 한국적인 요소가 담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 오버워치의 D.VA 송하나,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살인마 학지운까지, 이제는 하나쯤 없으면 섭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전체를 '한국색'으로 물들인 게임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매번 단편적인 요소로서 케이팝 아이돌이나 한복의 이미지가 더해질 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팬서비스의 일환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데요. 그래서인지, 디볼버 디지털이 배급하는 신작 '트랙 투 요미(Trek to Yomi)'라는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트랙 투 요미'는 일본 게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본 특유의 감성이 풍성하게 담긴 게임이었거든요.

지난 2020년에 출시되었던 고스트 오브 쓰시마부터 트랙 투 요미까지, 일본의 역사를 주제로 만들어지는 게임이 계속 늘어날수록 언젠가 한국의 문화가 기반이 되는 서구권 개발자의 게임도 등장할 수 있기를 꿈꾸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일본 배경의 게임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겠죠. 2022년 봄에 정식 한국어화와 함께 출시될 예정인 신작, '트랙 투 요미'는 어떤 게임인지 미리 살펴보았습니다.


  • 게임명 : 트랙 투 요미(Trek to Yomi)
  • 개발사 : Leonard Menchiari, Flying Wild Hog
  • 장르 : 액션 어드벤처
  • 플랫폼 : PC, PS, XBOX
  • 출시일 : 2022년 봄

  • ※ 본 프리뷰는 초반 2 스테이지까지 플레이가 가능한 프리뷰 빌드를 기준으로 체험, 작성되었습니다. 향후 정식 버전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 1950년대의 낡은 흑백 영화 감성을 게임에 담다


    트랙 투 요미(Trek to Yomi)는 시위 시뮬레이션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주목을 받았던 인디 게임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의 개발자 레오나르드 멘키아리(Leonard Menchiari)의 신작입니다.

    개발자 레오나르드 멘키아리가 실제로 경험했던 이탈리아 NoTAV 운동 속 시위를 '라이엇'이라는 게임을 통해 생생하게 담아냈던 것처럼, '트랙 투 요미'는 일본의 고전 사무라이 영화를 게임으로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게임입니다. 개발자 역시 영화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흑백 영화 같은 화면 구성이 이 게임의 특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1950년대에 공개된 흑백 영화죠.

    그는 트랙 투 요미의 시네마틱 경험이 촬영 각도, 길이, 심지어 라인의 전달 방식에 이르기까지 고전 일본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단순히 화면을 흑백으로 표시한 것 외에도 고전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감상을 더해주는 연출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주인공의 모습을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것 같은 카메라 앵글, 오래된 영화 특유의 화면 비 유지용 레터박스 연출, 그리고 보스전을 앞두고 낡은 필름이 영사기를 통해 표시되는 것 같은 의도된 노이즈 기법 등이 대표적이죠.

    개발자는 모든 장면이 게임 화면이 아닌, 마법처럼 움직이는 영화관 무대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고 말합니다. 플레이 내내 흰색과 검정색 외에 다른 색은 찾아볼 수 없는 다소 삭막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은 독특한 비주얼이 이 게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화면의 위 아래를 나누는 레터박스로 마치 고전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흑백 뿐인 화면이지만, 마치 여러 색이 담긴 것 같은 아름다운 화면 연출이 이어집니다

    ▲ 정예 전투가 시작되기 전의 노이즈 역시 고전 영화의 감성을 더해주는 요소다



    ■ 과거의 일본, 그리고 일본 특유의 문화인 '신토(神道)'


    개발자 레오나르도 멘키아리는 트랙 투 요미의 테마와 내러티브를 위해 과거 일본과 '신토'라는 두 가지 필수 요소를 활용했습니다. 신토는 일본의 토착 종교로, 신이 돌이나 나무, 꽃처럼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는 오래된 신앙입니다. 그야말로 '일본' 그 자체가 담긴 소재인 셈이죠.

    트랙 투 요미의 스토리는 일본 특유의 신토 신앙과 믿음의 영역을 더 깊게 파고들어 작품의 주인공인 '히로키'와 선조들, 그리고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그들이 살았던 과거 일본의 여러 시대엔 부당한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 '요미(黄泉)', 즉 황천에 이르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고, 이러한 믿음과 이야기는 주인공 히로키의 여정과 그가 맞이하게 되는 여러 선택에 딜레마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개발자는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작품 곳곳에 '진정성'이 담긴 요소들을 배치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종교적 신념에서 칼을 벽에 걸거나, 기모노를 묶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고대 일본의 문화를 염두에 두고 작은 배경 요소들까지 섬세하게 제작했다는 것이죠.

    초반 스테이지만 플레이해볼 수 있었던 프리뷰 버전에도 주인공 히로키가 검술을 연마한 도장부터 신사, 묘지, 시장, 식당 등 과거 에도시대 일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들이 다수 포함됐습니다. 개발자는 도쿄의 에도 박물관을 방문하여 전시품을 보며 영감을 얻었고,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일본 현지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등, '진정성' 더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고 밝혔습니다.

    게임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역시 일본의 특정 지역에서 가져온 고대 자료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녹음에 사용된 악기 중에는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전통 악기들도 활용됐습니다.


    ▲ 실제 역사 자료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 일본의 전통 악기를 활용한 BGM이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 선형적인, 동시에 다채로운 '요미로 향하는 길'


    게임의 배경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봤으니, 이제 실제 게임 플레이의 특징도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것처럼 '트랙 투 요미'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 선형적인 게임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나아가야만 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잘 정돈된 둘레길을 걷는 기분으로 말이죠.

    하지만 단순히 길을 따라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죠. 이들을 위해 개발자는 '수집품'과 '전투 스킬' 등, 그냥 지나치면 섭섭한 추가 요소들을 황천 가는 길 곳곳에 고르게 배치했습니다. 시작점인 1부터 10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간다고 가정했을 때, 통로 대부분마다 1-1, 3-1 같은 샛길이 있는 셈이랄까요. 그냥 지나쳐도 스토리 진행에 별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유심히 둘러보면 더 깊고, 다양하게 게임을 즐길 방법을 마련해둔 것입니다.

    화면 전체가 흑백으로 되어있으므로 이러한 샛길들은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쉽습니다. 개발자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곳도 많고요. 그렇기에 샛길들을 찾았을 때 예상치 못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배가됩니다. 추가로 여기선 수집품이나 스킬, 소모품도 획득할 수 있으니, 맵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 대놓고 양갈래길로 나뉘어진 '관광명소' 같은 샛길은 물론,

    ▲ 눈을 크게 뜨고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비밀 장소들까지 다양합니다



    ■ 스토리 중심? 전투 중심?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플레이 난이도


    액션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트랙 투 요미'의 정식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난이도' 시스템에 있습니다. 게임은 가장 낮은 '가부키'부터 '무사도', '로닌', '검성'까지 네 개의 난이도 모드를 제공하는데요. 각 모드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프리뷰 빌드에서는 검성이 미해금 상태로 남아있던 것으로 보아, 사실상 1회차 플레이를 완료한 후에 해금 되는 2회차 모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먼저, 트랙 투 요미의 일본 고전 영화 감성의 비주얼과 스토리를 만끽하려면 '가부키' 혹은 '무사도' 난이도를 선택하여 게임을 플레이하면 됩니다. 해당 모드에서는 주인공 히로키의 칼질 한 두 번이면 모든 적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패링 시스템과 약, 강 베기 시스템 등 전투 방법은 모든 난이도에서 동일하지만, 사실 여기선 패링을 신경 쓰면서 플레이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정예 전투/ 보스전을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액션 게임이 익숙치 않은 유저라도 모든 스토리를 만끽할 수 있게끔 배려한 것이죠. 요즘 출시되는 인디 액션 게임들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배려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 영화 속 먼치킨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무사도' 난이도

    트랙 투 요미의 스토리보다 액션에 중점을 두고 싶은 유저는 처음부터 '로닌' 난이도를 선택하면 좋습니다. 여기서는 스승님이 생전에 전수해준 패링이나 강 베기 같은 다양한 전투 조작을 실제로 활용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닌 난이도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적들은 약 베기만 사용할 경우 네 번 타격해야 죽습니다. 네 번의 타격을 하는 동안 상대 역시 허수아비처럼 서있지 않기 때문에, 최소 두 번 이상 합을 겨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링' 조작이 필수로 요구되는 것이죠. 트랙 투 요미의 패링은 상대의 칼이 내려오는 모션에 딱 맞춰 버튼을 누르면 늦습니다. 상대가 검을 들어올리는 타이밍에, 즉 일반적인 액션 게임 속 패링 타이밍보다 한 템포 빠르게 가드 버튼을 눌러야 패링이 발동됩니다. 초반엔 이 타이밍이 익숙지 않아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익숙해진 후에는 정말 긴장감 넘치는 일본도 액션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 잡졸을 상대할 때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의 체력이 많아보이지만, 찌르기를 당하면 5칸이 훅 깎이죠

    이외에도 패링만큼이나 자주 사용되는 조작이 있습니다. 바로 '기절 공격'입니다. 사전에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면 기절 공격에도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프리뷰 빌드에서는 '약 베기, 약 베기, 강 베기'를 순서대로 눌렀을 때 기절 공격이 발동됐습니다.

    기절 공격 콤보의 마지막 '강 베기'를 맞은 적은 그로기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F 키를 누르면 끝내기 공격이 발동되어 추가로 합을 겨룰 일 없이 빠르게 적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기절 콤보가 이어지지 않는 등, 조작 부분에서도 세심한 면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타이밍으로 공격해오는 적의 타이밍을 읽어 패링을 섞고, 이후 신속하게 적을 제압하기 위한 기절 콤보를 침착하게 넣고, 사방에서 다가오는 적을 동시에 상대하는 검술 액션, 이것이 '트랙 투 요미'에서 맛볼 수 있는 전투의 묘미인 셈입니다.

    ▲ 차분하게 적의 공격을 보고 패링 후, 하나 둘 셋, 마무리!




    ■ 진짜 저세상까지 가나? '트랙 투 요미: 요미를 향한 여정' 2022년 봄 전면 개방


    일본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정통 시대극처럼 흘러갈것 같았던 '트랙 투 요미'의 스토리에는 향후 좀비나 유령, 장신의 괴물 등 초현실적인 적들까지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황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단순히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정말 지옥에서나 등장할법한 다양한 괴물들이 주인공 히로키의 여정을 가로막을 예정이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잡은 사무라이 히로키가 과연 어떤 연유로 지옥에까지 다다르게 되는지, 정식 출시 이후에 밝혀질 스토리가 더욱 기다려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투가 너무 어려워서 스토리를 보지 못할 걱정도 없으니, 하루 빨리 정식 출시일이 확정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앞서 소개한 포인트들 외에도 카토 마사유키, 오오츠카 아키오 등 일본 유명 성우를 기용하여 일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점, 별도의 폰트를 활용하여 한국어 타이틀을 따로 제작하는 등 현지화에도 각별히 공을 들인 점 등, 정식 출시를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늦어도 이번 봄바람이 다 가시기 전에 찾아올 신작 '트랙 투 요미'가 커진 기대에 부응하는 인디 명작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