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야마우치'가 게임에 담아낸 '자동차'의 궤적
예전에는 시뮬레이션 형태의 레이싱 게임 중, '단연코 높은 완성도의 작품은 무엇이냐?'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위상이 높았던 작품이었는데, 요즘에는 후속작품들이 굉장히 많이 치고 들어와서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우선 엑스박스 진영만 해도 '포르자 모터스포츠'가 있고요. 멀티플랫폼 작품으로만 따져도 '프로젝트 카스'나 '아세토 코르사' 등, 완성도도 준수하고 극한의 시뮬레이션을 추구한 게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포르자 시리즈는 아케이드 레이싱의 정점에 달한 '호라이즌 프랜차이즈'마저 가지고 있는 상태죠.
그런 후발주자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꽤 긴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가 출시되긴 했지만, 부족한 볼륨이나 애매한 조작감 등 잡음이 존재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팬들이 염원하던 넘버링 시리즈가 아니었습니다. 그런고로 중간에 잠깐 출시되었던 스포트를 제외하면 2013년에 출시된 6편에서 무려 '9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고 등장한 '그란 투리스모 7'. 한 때, 플레이스테이션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졌던 레이싱 게임. 25주년을 맞이한 이 상징적인 시리즈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까요? 저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좀 더 그란 투리스모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잠시 흥미로운 내용을 검색해봤습니다.
게임명: 그란 투리스모 7 (Gran Turismo 7) | 개발사 : 폴리포니 디지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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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링크: '그란 투리스모 7' 오픈크리틱 페이지
※ 본 스크린샷, webp 이미지는 각각 다른 형태로 촬영되었습니다.
○ INVEN 워터마크가 크게 박힌 이미지는 인벤 사이트에 맞게 최적화된 이미지입니다.
● INVEN 워터마크가 매우 작게 박힌 이미지는 PS5로 직접 캡처한 '4K / HDR' 이미지입니다.
(일부는 HDR 옵션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레이싱 게임의 팬이긴 하지만, 시뮬 레이싱의 팬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케이드 레이싱을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즐겼던 게임들도 '니드 포 스피드'나 '포르자 호라이즌'에 가까웠고, 아세토 코르사를 해봤는데, 시뮬레이션 특유의 물리학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았죠. 그런 제가 과연 이런 역사적인 게임을,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넘버링 최신작을 리뷰해도 되는지...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닐지 싶어 고민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본 게임의 개발사, 폴리포니 디지털을 세운 개발자 '야마우치 카즈노리'는 차를 좋아하는 진성 '차 덕후'로 유명합니다. 실제 모터스포츠 경력도 있고 최근엔 '그란 투리스모 소피'라고 칭하는 레이싱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의 차 사랑을 빗대듯,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언제나 '카 라이프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를 표방합니다. 심지어 7편의 인트로 영상을 보고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차량의 발전, 역사를 보여주었는데 이런 것에 비해 저는 너무 안일하게 이 시리즈에 가까워지려고 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그란 투리스모 6'의 동봉 책자로 증정했다던 'Beyond the Apex'란 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란 투리스모 7'에도 메뉴에 이 Beyond the Apex란 부분이 있습니다. 혹시 몰라 검색해서 읽어보니... 내용에 심히 당혹해했습니다. 보통 동봉 책자면 이미지가 잔뜩 들어가 있다던가, 설정 비화, 인터뷰 등이잖아요? 이건... 차의 기본 원리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전부 이해했냐 고요? 절대 아닙니다. 공부해도 끝이 없던데요? 하지만, 이런 내용이 동봉 책자에 담겨진 의미만큼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우선 뉴턴의 저서에서 시작된 'F=ma'란 공식이 표현되죠. 굉장히 유명한 이 공식은 운동방정식으로서 '힘 = 질량 × 가속도'를 일컫죠. 이 공식을 시작으로 책의 내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흘러가면서 진동의 메커니즘과 공진을 막기 위한 댐퍼의 장착, 감쇠력, 위상력, 보우드 선로 등으로 향해갑니다. 그러면서 타이어가 만드는 힘으로 가고, '정상원선회'라는 오버스티어 / 뉴트럴스피어 / 언더스피어 등을 배워가기 시작하죠.
이건 전부 '자동차를 위한 공학' 부분입니다. 여기서 계속해서 넘어가면 공기역학과 수치유체역학과 관련된 내용도 나오죠. '베르누이의 정리'나 '달랑베르의 파라독스' 같은 용어가 나오는데, 차량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은 아니란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그 뒤 챕터에서는 드디어 자동차의 기본적인 요소. 즉, 차가 어떻게 설계되었고 구성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차체의 밸런스나 구동 방식, 그리고 구조와 원리를 보여주죠. 위에서는 차량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에 가깝고 아래는 차량의 만듦새와 어떤 기계로 작동하는가에 가까운 듯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자동차 용어, '마력'이나 '토크', '배기량' 등의 설명도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지막은 차체의 '튜닝과 세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엔진이나 클러치, 보디 등 차체의 구조를 보여주면서 이를 어떻게 튜닝하는가를 보여줍니다. 튜닝의 마지막은 코스 레퍼런스였는데, 이 정도면 이 책은 게임을 위해서 제작된 게 아니라 '모터스포츠'를 위해 제작된 책인 듯하며, 전체적으로 레이싱 그 자체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적힌 책자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한 권 달달 읽으면 핵심적인 지식이 들어온다고 해야 할까요. 이것만 봐도 그란 투리스모 제작진의 차에 대한 사랑이 들어옵니다. 그런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게임이니까, 저도 그에 대해 예우를 하듯 이번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그란 투리스모 7의 인트로를 한 장씩 찍어 차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첨부해 일부만 나열해봤습니다. 세계에서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과 기술, 그리고 이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준 차의 역사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는데, 모르면 그냥 넘어갈 부분이지만 직접 조사하면서 알게 되니 정말 차를 좋아한다면 싫어할 수가 없는 인트로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술적인 책자에서도, 쉽게 넘어갈 듯해 보이는 인트로에서도 공통으로 느꼈던 것은 차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이란 점입니다.
원래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사실적인 표현과 그래픽으로 유명했는데, 저는 요즘에 사실적인 그래픽을 가진 게임들이 많으니 그래픽적인 요소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래픽'이라는 부분을 잘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깐요. 오히려 게임을 유연하게 조종할 수 있는 '프레임레이트 모드'를 훨씬 선호하는 쪽이었죠. 그래서 그란7도 웬만하면 프레임레이트 모드로 하려고 했었고, 초반에는 프레임레이트 모드로 했었습니다.
근데 웬걸, 껍질을 까보니까 '레이 트레이싱 모드'가 굉장히 진국인 겁니다. 우선 레이 트레이싱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레이 트레이싱은 장면의 주변에서 반사되는 빛의 경로를 픽셀 단위로 추적해서 게임 내의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입니다. 실제 물리학에서 받아들여지는 빛의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이 덕분에 쓸데없는 구현을 줄이고 눈에만 들어올 수 있는 빛의 경로를 만들어냈다고도 하죠. 아직 기술은 온전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연산을 좀 더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들 합니다. 현재의 레이 트레이싱은 그래픽 카드의 발전으로 인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기술이라 볼 수 있겠네요.
우선 레이 트레이싱 모드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란 투리스모 7에서 쓰이고 있는 그래픽 모드의 차이점을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두 모드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프레임레이트 모드: 게임 전체에 걸쳐 가능한 한 높은 프레임레이트를 유지. 부하가 큰 레이 트레이싱, 일부 효과는 사용하지 않거나 생략되지만, 3D 연출이나 포토 모드에서는 레이 트레이싱을 사용한다.
○ 레이 트레이싱 모드: 레이스의 리플레이와 3D 연출에서 레이 트레이싱을 사용. 조작 중의 반응이 중요한 경우에는 레이 트레이싱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를 확인해보면 제가 왜 이 두 모드의 차이점을 설명했는지 이해가 한 번에 가실 수 있을 겁니다. 굳이 한 쪽 모드를 골랐다고 해서 프레임이 무조건 떨어진다던가, 레이 트레이싱이 절대 사용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요소가 없거든요. 즉, 어느 쪽을 골라도 레이 트레이싱을 볼 수 있고, 높은 프레임레이트가 유지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모드를 분리한 이유라면 "어느 쪽에 집중하고 싶냐"는 개발진의 질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프레임레이트 모드를 고르면 상시 60프레임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레이 트레이싱 모드는 일부분에서 프레임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프레임레이트 모드는 그런 경우가 없습니다. 프레임 드랍에 민감하고 급격한 프레임 하락을 싫어하는 분이라면 프레임레이트 모드를 우선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부하가 큰 레이 트레이싱을 볼 수 없고, 포토 모드를 이용해서만 레이 트레이싱을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레이 트레이싱 모드는 높은 레이 트레이싱이 적용된 모드입니다. 레이스의 리플레이 부분이나 3D 연출에서도 레이 트레이싱이 사용되죠. 다만, 프레임이 급격하게 저하되기도 합니다. 가끔 메뉴에서 커서를 움직일 때마다 '30프레임' 구간으로 프레임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데도 제가 레이 트레이싱 모드를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제일 중요한 '레이스'를 달릴 때는 프레임 드랍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마, 레이스 플레이는 위에서 언급한 조작 중의 반응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 해당되어 레이 트레이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플레이 스크린샷을 통해 비교를 해보려고 했는데 의미가 없더라고요.
레이 트레이싱 특유의 빛의 반사를 통해 굉장히 사실적인 광원 표현을 맛볼 수가 있었는데, 이런 반사효과 때문에 실제 차량, 실제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냥 운전하면서 그래픽 좋다... 하면서 지나가려고 하던 순간, '스티어링 천장 부분이 그대로 반사되어 비치는 장면'이 보이길래 그만 캡처해버린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게임의 기술력이 이만큼 발전했다는 감상도 들면서 그 순간만큼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동차 등, 고속으로 달리는 물건의 뒤에 있으면 공기의 흐름 중, '와류'라는 흐름이 형성되어 압력이 낮아져 좀 더 압박감이 줄어드는 '슬립스트림' 현상이나 타이어 그립 등, 실제로 자동차를 몰아보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과 반응까지 구현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3D 오디오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16채널의 '3차 앰비소닉' 등을 지원하고 듀얼센스를 훌륭하게 지원하기도 하는데요. 듀얼센스에 관해서는 이후에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레이싱 게임에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레이싱 게임에서 인간관계를 다루고 영화 '분노의 질주'처럼 내러티브 요소를 다루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깐요. 아니, 예전엔 꽤 많았죠. '니드 포 스피드' 시리즈에서 이런 걸 꽤 다뤘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같이 좋은 평은 듣지 못했죠. 그래서 그런가, 최근에 나온 게임들은 레이싱 경험에 집중했고, 이것이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근데 그란 투리스모 7은 오히려 '스토리'를 게임 내에 담아왔습니다. 근데 그 스토리가 뭐 폭주족들의 삶을 다루거나 그런 게 아니라 '차의 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메뉴 북을 받아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동차의 역사와 그 차에 담긴 비하인드를 배우는... 튜토리얼과 역사를 담은 그란 투리스모만의 자동차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즉, 어떠한 내러티브가 있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잡담, 대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미쉘린 가이드'를 닮은 미션 가이드를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초보자들은 차량을 얻을 수 있고, 그란 투리스모의 세계를, 차의 이야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레이싱만을 즐기고 싶어 하는 숙련자들도 해당 퀘스트는 필수로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게임 내 잠겨져 있는 각종 옵션이 개방되고, 온전한 그란 투리스모의 세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페 북에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용으로 한가득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미국의 스포츠카 중 하나인 '포드 머스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본편에 수록되어 있는데요. 역사적인 모델 중 하나인 1세대 머스탱을 시작으로 머스탱 브랜드의 탄생을 알려주고 미션을 통해 획득한 자동차 3종의 개요를 설명하며, 마무리로 머스탱 브랜드의 간략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머스탱은 미국이 자랑하는 브랜드 시리즈"라고 설명하며 이야기를 끝냅니다.
여기서 차량의 역사를 좀 더 알고 싶어지는 사람들은 '중고차', '브랜드 센트럴', '레전드 카'에 가셔서 차량을 구경하며 설명을 들어볼 수도 있고, '개러지'에 가서 수집된 차량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또한, 옵션에서 설정할 수 있는 '데몬스트레이션(데모, 시연)'에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브랜드의 역사와 차량에 대한 역사를 볼 수도 있습니다. 각 세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자기소개와 차량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 중 하나입니다.
이런 미션 가이드와 역사를 파헤치는 스토리 덕분에 '자동차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필하기 좋은 게임이라 생각이 드는데, 특히 이 점이야말로 그란 투리스모를 다른 레이싱 게임과 비교할 수 없게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이 메뉴 북의 퀘스트를 전부 클리어하는 것이 그란 투리스모 7에 필요한 첫 번째 엔딩입니다. 이 뒤에는 자유로운 레이스를 즐기면서 본격적인 레이싱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되죠.
소제목은 반쯤 장난처럼 적긴 했지만, 실제로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이하, 우마무스메)를 생각 안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게임을 하면서 몇 부분은 참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마무스메도 현실의 '경마'를 모티브로 만든 게임이잖아요? 그란 투리스모도 현실의 '차'를 모티브로 제작되었고 둘 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고증을 지켰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설명하기 전에, 우선 그란 투리스모 7의 '튜닝' 시스템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튜닝 시스템은 자동차를 개조해 더욱 강력한 자신만의 차량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죠. 튜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제 스펙은 다양하게 있어서 총배기량부터 차량의 중량, 출력, 토크부터 시작해 타이어 종류, 서스펜션, 트랜스미션, 니트로, 브레이크, 스티어링 등의 부품이 있고 이를 세세하게 세팅할 수 있습니다. 근데... 초보자가 보기엔 사실 뭘 올려줘야 할지, 이 부품을 어떻게 달아줘야 할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걸 본작에선 'PP'로 전부 승화시켰습니다. PP는 퍼포먼스 포인트라 불리는데요. 원하는 부품을 가져가면 현재 선택한 자동차에서 'PP의 값'이 바뀝니다. 이 PP 자체가 자동차가 낼 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 PP의 스펙이 원래 높은 자동차는 주행할 때의 마력과 토크가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대신 주의해야 할 점은 무조건 PP를 의존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레이싱 타이어'가 있습니다. 이 레이싱 타이어는 겉만 보면 엄청 매끈해 보이죠. 실제로 사면 PP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그럼 이제 "이걸 장착했으니 내 차는 강력해졌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실제 이걸 장착하면 차량의 운전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일반 타이어가 승차감, 핸들링 등의 밸런스를 추구하는 반면, 레이싱 타이어는 핸들링과 브레이킹 등의 접지력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한국타이어'의 네이버 포스트를 보시면 더욱 자세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비가 오는 장소에서 레이싱 타이어를 사용하면 그냥 차량이 계속 오버스티어로 헛돕니다.
어쨌든 이 PP의 값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유는 '월드 서킷'에서 열리는 레이스들을 자세히 보면 '권장 PP'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이 PP를 충족하지 않아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면 레이스가 어려워지거나 3등 안에 못 들 가능성이 커집니다. 어쨌든 상대 차들은 권장 PP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마무스메가 떠오르게 되었는데, 해당 게임도 모에형 게임이란 점과 뽑기에 치중된 과금 시스템 등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고증이나 대회의 스펙 요소 등, 비슷한 면모가 많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우마무스메에서 모에화한 말들을 뽑아서 수집하는 것처럼, 그란 투리스모에서도 멋진 자동차를 구매해 수집하니까요. 생각해보니 마력이란 단어의 마도 '말 마(馬)'지 않습니까! 말에서 자동차로 진화한 것이나 레이스와 경마로 발전한 것 등, 생각해보니 여간 재미있는 포인트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금을 쓰지 않는단 부분에서 차이점이 크긴 하지만... 그란 투리스모 7에서도 랜덤 박스가 있긴 합니다. 미션 북을 깨거나 하는 등으로 티켓을 주는데요. 이 티켓을 개러지의 기프트 란에서 뜯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과 차를 모은다는 컬렉팅 요소도 부여해 자동차를 모으는 재미를 더욱 부각했습니다. 최근 들어서 수집형 게임도 많이 나오는 데 자동차를 좋아하면 더욱 새끈하고 멋있는 자동차를 얻고 싶어 하는 만큼, 이러한 욕구를 부각한 점은 좋은 것 같습니다.
'뮤직 랠리'.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로운 레이싱을 즐기고 싶어 하는 유저들을 위해 만들어진 모드입니다. 실제로 뮤직 랠리를 플레이하면 '음악'밖에 들리지 않거든요. 현실감은 조금 떨어지지만, 현수막을 통과하면 제한 시간이 늘어나는 부분이나, 음악이 끝날 때 레이스가 종료되는 것을 생각하자면 과거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면서 골인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도트형 고전 레이싱 게임들이 떠오르네요.
근데 처음 뮤직 랠리를 즐기고 난 뒤에 든 소감은 '그냥 미니 게임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란 투리스모 7의 큰 볼륨의 콘텐츠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볼륨 자체가 작더라고요. 지금까지 한 뮤직 랠리의 곡 수는 총 여섯 곡으로, 실제 수록된 300여 곡 이상의 음악들을 고려하면 굉장히 적은 볼륨이었습니다. 그냥 음악을 즐기면서 레이싱을 하다 보면 어느덧 여섯 곡을 전부 다 끝마치고 난 뒤가 될 겁니다.
볼륨이 적고, 쾌감을 줄 수 있는 달성 요소가 적다는 부분만 해소된다면 뮤직 랠리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자체는 고전 레이싱 게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나,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을 표방하는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인 만큼, 아케이드성이 짙은 뮤직 랠리의 출시 자체가 독특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나중에는 '오디오서프' 같은 게임처럼 내장한 음악으로 뮤직 랠리를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진행한 야마우치 씨의 인터뷰 중, "그란 투리스모를 처음 세상에 공개한 25년 전과는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자동차를 처음 탔을 때, 세상이 크게 넓어지는 감동 같은 것이 있었다. 어렸을 땐 누구나 미니카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말이다."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가 미니카를 가지고 놀았다는 부분입니다. 미니카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그란 투리스모도 차량을 모으고, 수집하며,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는데 그의 과거의 경험이 그란 투리스모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극한의 리얼 레이싱은 초보자에게 상당한 진입장벽을 처음부터 제시하는 '아세토 코르사 컴페티치오네' 같은 시뮬 레이싱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아세토 코르사는 레이싱 대회를 기반으로 인기 스포츠카를 몰 수 있는 게임이죠. 근데 진짜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차의 세팅을 고려해야 할 정도인데요. 대신, 자유도 높은 커스터마이즈와 극한의 시뮬 레이싱을 체험 가능한 게임입니다.
그란 투리스모 7이 이런 경험과 비교했을 때, 진정한 시뮬레이션 레이싱이냐고 한다면 제 대답은 NO입니다. 세팅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조작의 편의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시뮬과 아케이드의 중간 지점에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레이싱 게임계의 올라운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증거기도 합니다. 극한의 아케이드를 추구한 니드 포 스피드보다는 진중한 면을, 반대로 극한의 시뮬을 추구한 아세토 코르사보다는 가벼운 면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초보자에게 친화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매력이 생겼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시뮬 레이서에게 있어서 이런 그란 투리스모의 방향성이 달갑지 않을 수 있으나, 시뮬 레이서를 위한 옵션과 각종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고, 원한다면 시스템을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로 맞춰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가면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져 가고 배운 것들을 요긴히 활용하지 못하면 자신의 차량을 컨트롤하기 힘들어지니깐요. 심지어 커스텀 레이스에선 '페널티 설정' 등을 할 수 있어서 평소에 차량이나 벽 등에 부딪히면서 진행했다면 이런 룰에 맞춘 레이스에선 버거워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입맛에 맞춘다면 분명 시뮬레이션에 걸맞은 레이싱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언제나의 '온라인 모드'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 가능하며, '스포트 모드'를 통해 겨루는 것도 가능합니다. 특히 스포트 모드는 그란 투리스모 7의 핵심 기능에 해당하며 온라인상의 공식 레이스, 타임 트라이얼을 즐길 수 있는 모드입니다. 스포츠맨십, 드라이버 레이팅이 꾸준히 기록되고 이는 '랭크 시스템'과 흡사해 데일리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시면 레이팅 랭크를 올리실 수 있습니다. 선수권 대회와 리그제까지 도입되어 있어 자유로운 경쟁을 펼치는 온라인 로비 시스템과는 구별되는 부분이 있는 셈이죠.
저도 이걸 즐길 기회가 생겼었는데, 마침 일본인 한 분과 경쟁해서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1:1로 동점을 이뤘지만, 제 입장에선 정말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특히, 벽에 부딪히면 생기는 페널티가 적용되어 있어서 핸들을 잘못 꺾을 때마다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는 더 굉장한 레이서분들이 많다는 뜻이니깐요.
그리고 듀얼센스의 최신 기능, '햅틱 피드백'과 '적응형 트리거'를 굉장히 잘 적용한 레이싱 게임 중 하나입니다. 액셀, 브레이크의 반발력과 진동 등을 고스란히 적응형 트리거에 적용해 마치 실제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듯한 착각을 주기도 합니다. 햅틱 피드백의 경우에는 포장도로부터 시작해, 비포장도로나 여러 충격 등, 미세한 진동의 피드백이 계속해서 전달됩니다. 이런 듀얼센스의 촉각을 지배하는 기능들은 매우 크게 다가오는 메리트로 초보자나 숙련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능입니다. 물론, 레이싱 휠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 레이싱 휠의 '포스 피드백'을 체험하시는 쪽이 좀 더 훌륭한 레이싱 체험이 가능하실 겁니다.
그란 투리스모 7은 제가 상상했던 '극한의 시뮬 레이싱을 추구하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운전대를 잡아보니 살짝 아케이드성도 가미된 듯한 느낌을 받았죠. 하지만, 그란 투리스모엔 극한을 강조하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가 줄곧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자동차' 그 자체였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 저는 그들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 그리고 헌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작은 초보자들을 위한 배려를 많이 준비해두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GT 카페의 메뉴 북은 어떻게 보면 '미쉐린 가이드'의 오마주인데요. 실제 디자인도 그와 흡사합니다. 사실상 미쉐린 가이드도 맛집을 찾아다니기 힘든 초보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책자인데요. GT 카페의 메뉴 북 또한 그란 투리스모의 시스템을 쉽게 가르쳐주면서 차량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모를 많이 찾아볼 수가 있었네요.
이쯤 되면 왜 게임 내에 그런 인트로를 추가했는지, 잠시 게임을 멈추면 나오는 데몬스트레이션 영상에서도 역사를 설명하려 하는지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위대한 순간과 발명을 마주하면서 자동차가 겪어온 역사가 어땠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기 위한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해보면서 관심이 생기니 이것저것 찾아보고 얼마 전에 미쉘린이 타이어 회사인 줄도 몰랐던 제가 이젠 오버스티어를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란 투리스모 7은 입문이 어려워지고 있는 최근 시뮬레이션 레이싱 장르의 벽을 낮춰 초보자와 숙련자의 벽을 허물어줄 수 있는 게임입니다.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부여하는 포토 모드 시스템과 레이 트레이싱 모드로 즐길 수 있는 극한의 그래픽으로 그저 차 맞추기도 어려운 초보자에게 흥미를 유도하고, 시뮬 레이서들에게는 커스텀 레이스를 통해 각종 페널티 등을 조절하고 차량의 세심한 세팅과 커스터마이즈, 튜닝을 통해 자신만의 극한을 끌어낸 차량을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시뮬레이션 레이싱에 관심이 있는데, 아케이드 레이싱밖에 즐겨보지 못한 초보자는 이제 그란 투리스모 7을 집어 플레이하시면 됩니다. 반면, 숙련자들에게 있어선 여러 선택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그란 투리스모 7을 플레이해볼 만합니다. 단순히 멋있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재미뿐만 아니라, 차의 역사를 알아가고 차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트랜스포머에 나왔던 '쉐보레 카마로 브랜드'라던가, 007 골드 핑거에 나왔던 '애스턴 마틴 DB5 골드핑거'의 이야기가 있겠군요.
전반적으로 훌륭한 그래픽과 옵션, 입맛대로 커스텀 가능한 차량, 듀얼센스의 기능 활용 등, 호평할 수 있는 구간은 매우 많지만, 본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제작진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차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차에 대한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그대로 게임에 녹여낸 느낌입니다. 아직 기반이 부족한 뮤직 랠리나 향후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될 자율주행 Ai, '소피'를 생각하면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아직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까지 남겨둔 셈입니다.
'자동차를 사랑하면 할 수밖에 없는 게임'. 그게 이번 그란 투리스모 7의 테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