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은 게이밍 기어라는 영역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으나 아직 애매한 위치에 있는 제품군이 있는데 바로 스피커다. 게이밍 기어 열풍이 불기 시작하며 국내외 여러 브랜드들이 게이밍 스피커를 선보인 바 있으나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만 게이밍이고 막상 사용해보면 RGB LED가 탑재됐다는 것 말고는 일반 스피커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주관적인 의견이겠지만, 스피커에 '게이밍'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전에 스피커로서의 기본적인 성능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짝하고 사라졌던 대부분의 게이밍 스피커들이 발소리'만' 잘 들리고 잠깐 음악이라도 듣거나 하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소리를 들려줬었다. 게이밍 스피커가 아닌 발소리 증폭기라는 이름으로 판매했으면 잘 팔렸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최근 나에게 희한한 제품이 하나 도착했다. 바로 LG 울트라기어 게이밍 스피커 GP9(이하 GP9). 잠깐, 모니터가 아니고 스피커? LG 울트라기어면 모니터 성능이 기가 막힌다고 소문난 브랜드인데 갑자기 뜬금없이 스피커라니? 앞서 설명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게이밍 스피커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아 벌써부터 입맛이 다셔진다.
■ 제품 개봉 - 첫 인상은 글쎄...?
제품을 실제로 살펴보니 첫인상은 '글쎄...?'다. 다양한 종류의 스피커 및 음향기기를 사용해 본 결과 크기가 제품의 성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반면 GP9은 작아도 너무 작다. (약 376 x 83.4 x 107.6mm) 우리가 PC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가형 사운드바와 비슷한 정도의 크기다. TV에 연결하는 대형 사운드바도 그저 그런 음질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과연 이 제품이 풍부한 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지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직장 동료는 제품을 보자마자 탐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나와는 추구하는 하드웨어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뛰어난 음질보다는 작은 크기에서 오는 공간 활용성을 더 선호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지금 부모님 댁의 넓은 방에 얹혀 살기 때문에 크고 성능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곧 조그마한 원룸으로 이사할 예정인데 이 제품을 조금만 더 늦게 접했다면 첫인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 게이밍 스피커, 게임 성능은 어떨까?
우선 FPS게임에서의 성능은 합격이다. 확실히 집에서 사용하는 음악 감상용 스피커보다 더욱 선명한 소리를 들려준다. 게이밍 스피커라는 이름에 걸맞게 발소리 및 문 여는 소리 등 오브젝트를 사용하는 소리는 물론이고 멀리서 나는 총성, 폭발음도 선명하게 들린다.
또 HRTF(Head Related Transfer Functions)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구현한 게임 사운드 덕분에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공간감이 상당히 뛰어나 소리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자형 사운드바 특성상 표현하기 어려운 위치인 후방의 소리까지 무난하게 표현해 준다. 3D 입체 사운드라는 설명에 걸맞은 입체적인 현장감을 경험할 수 있어 FPS나 RTS 장르 게임에 특화된 게이밍 스피커라고 할 수 있겠다.
멀리서 나는 총성의 경우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한 소리를 들려줬다. 전투 상황을 만들기 위해 사격음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무지성 전진하는 플레이를 계속했으나 그 어떤 플레이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히 100m 내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는데 말이다. 만약 GP9 스피커를 처음 사용하는 단계라면 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이 필요할 듯싶다. '100m 안쪽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하면 과장 없이 4~500m 밖에 있더라.
다이얼 중앙에 위치한 마이크 모양 버튼이 볼륨 당연히 음소거 버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마이크 음소거 버튼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더라. 스피커에 마이크가 달려있는 경우는 처음이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GP9에는 마이크가 내장되어 있어 ‘클리어 보이스 채팅’ 이 가능한데, 여기에는 LG만의 에코캔슬링 기술이 적용되어 주변 소음, 게임 사운드를 목소리와 분리해 준다. 스피커와 마이크를 동시에 사용해도 울림없는 선명한 음성 대화가 가능하고, 헤드셋을 장시간 사용하게 되면 발생하는 압박감과 통증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클리어 보이스 채팅은 USB-C 케이블 연결 시에만 지원된다.
■ 테스트를 빙자한....
게이밍 스피커인 만큼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겨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MORPG 로스트아크를 즐겨봤다. 신규 캐릭터인 소서리스로
■ 그래도 스피커의 본질적인 기능이 더 중요하다
위에 서술한 내용처럼 나는 '스피커는 커야 좋다'라는 고지식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음질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게이밍 성능은 괜찮다고 잔뜩 쉴드를 쳐놓고 이쯤에서 불만을 쏟아 낼 계획이었으나 어라? 생각보다 음질이 너무 좋다. 이건 예상 밖이라 살짝 당황스럽다.
반신반의하여 제품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니 음질이 좋을 수밖에 없더라. 게이밍 기어가 아닌 고가의 스피커나 앰프에 들어가는 하이파이 쿼드덱 ES9038PRO가 탑재됐다. 덕분에 뛰어난 음질은 물론이고 FLAC, WAV 파일 같은 고음질 음원을 원음에 가까운 사운드로 재생하는 것도 가능하다.
※ 블루투스 연결 시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재생 음원의 품질에 따라 출력되는 음원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음
위에 첨부한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영상이라 음질이 저하됐다는 점을 참고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소리를 들려준다.
■ 매력적인 각종 부가 기능
처음 제품 외관을 살펴볼때 AUX 출력 단자가 2개나 있어 살짝 의아했는데, 이 헤드셋 그림이 그려진 버튼에 비밀이 숨어있었다. 헤드셋 버튼을 눌러주면 자동으로 AUX 단자에 연결된 헤드셋으로 출력 장치가 변경되기 때문에 일일히 재생 디바이스를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DTS Headphone:X ®를 지원하여 헤드셋으로도 입체 음향을 감상할 수 있다. DTS기술의 경우 고가의 다채널 헤드폰, 헤드셋 없이도 활용이 가능하다. 보급형 스테레오 헤드셋에서도 높은 수준의 가상 7.1채널 3D 게이밍 사운드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혜자로운 기술이니 참고하자.
※ 3.5mm AUX 단자 적용 헤드셋과 이어폰만 호환되며, 이어폰의 경우 단자 사양에 따라 호환 내용이 다를 수 있음
'LG 울트라기어 게이밍스피커 GP9'를 사용해보니 스피커는 무조건 커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됐다. 물론 스피커는 크면 클수록 성능이 좋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다만 휴대용 스피커와 비슷한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건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담한 크기 덕분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던 기존 PC용 스피커보다 공간 활용에도 용이할뿐더러 좌우 분리형 모델의 단점인 지저분한 케이블 문제에서도 완벽하게 해방됐다. RGB 감성이 가득하고 깔끔한 게이밍 룸을 꾸미고자 하는 유저들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제품이 아닐까 싶다.
LG 울트라기어는 모니터를 시작으로 노트북, 그리고 게이밍 스피커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울트라'라는 네이밍에 걸맞게 타협 없는 성능의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니 곧 LG 울트라기어 제품들로 구성한 하이엔드 게이밍 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