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해외 지역에서 먼저 선보인 디아블로 이모탈이 지난 20일 우리나라에서 알파 테스트를 시작하며 국내 유저들이 새로운 성역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따라 성장해나가며 일부는 게임 내 월드 콘텐츠를 즐겼고 먼저 달려간 유저들이 최고 레벨에 도달하며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다.

개발진이 플레이어에게 준 후반부 콘텐츠는 '투쟁의 주기'다. 최근작인 디아블로3는 반복 파밍과 균열 플레이가 게임 후반을 책임졌다면, 디아블로 이모탈은 태고 균열, 지옥 성물함 등 다양한 PVE 콘텐츠와 함께 대규모 RvR을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콘텐츠 투쟁의 주기를 시리즈 처음으로 더했다.

이에 게임 개발진을 통해 투쟁의 주기와 관련된 PvP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디아블로 이모탈의 총괄 게임 디자이너 스캇 쉬코프(Scott Shicoff)와 선임 시스템 디자이너 크리스 지어허트(Kris Zierhut)는 투쟁의 주기가 진영에 참여해 이루어지는 서로 간의 경쟁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더 다양한 플레이 경험을 주는 콘텐츠임을 분명히 했다.


성역을 지키려는 불멸단과 그들이 과연 그 자리를 지킬 자격이 되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그들을 끌어내리고 스스로 불멸단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그림자단. 게임의 후반부는 마치 이 둘의 대립에 집중되어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개발진은 단순히 이 대립을 PvP라는 형태로 한정하지는 않았다.

스캇 쉬코프 디자이너는 두 진영의 대립을 그린 투쟁의 주기를 거대한 시스템이 얽혀있는, 말 그대로 주기(Cycle)라고 설명했다. 이전 시리즈의 시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투쟁의 주기는 각 진영의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한정된 수만이 그 영예를 누릴 수 있는 불멸단은 그들의 업적을 명예의 벽에 남겨 주기가 끝난 후에도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으며, 그림자단은 피의 길 같은 PvE 콘텐츠와 PvE와 PvP 요소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금고 약탈 등을 즐길 수 있다.

금고 약탈이 진행되면 그림자단은 불멸단의 금고를 지키는 파수꾼을 상대해야 하며 불멸단이 침입을 확인한 이후에는 금고를 지키러 온 불멸단 플레이어도 상대해야 한다. 스캇 디자이너는 이처럼 금고를 약탈하는 쪽인 그림자단의 경험과 안전하게 금고의 보물을 지킨 불멸단의 쾌감 등 서로 다른 즐거움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 디아블로 이모탈 총괄 게임 디자이너 스캇 쉬코프

그중에서도 불멸단의 PvE 콘텐츠인 '카이온의 시련'은 서로 다른,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는 개발진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묻어난 콘텐츠 중 하나다.

카이온의 시련은 총 48명이 참여하는 거대 레이드다. 하지만 이 모든 플레이어가 하나의 몬스터를 잡는 형태는 아니다. 12명씩 총 4개의 공격대가 동시에 시련에 도전하는데 크리스 디자이너는 '한 화면에 이들을 모두 담는다면 기술 이펙트가 겹쳐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고 아군의 직업 스킬을 효과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답하며 공격대를 나눈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4개로 그룹을 나눠 진행하고 먼저 처치한 그룹보다 늦은 그룹의 난이도가 높아지기에 동시에 진행되는 레이드 수준을 넘어 적절한 유저 배치를 조율해야 하는 등 일반적인 레이드보다 신경 쓸 거리가 많다. 크리스 디자이너는 이런 시스템이 콘텐츠의 난이도를 높이는 것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유저들에게 더욱 도전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요소라고 소개했다.


이름만 다른 두 진영의 대립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자체가 다르다 보니 단순히 진영을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영을 어떻게 플레이하고 완료했는지에 따라 플레이 경험이 달라진다.

플레이어는 투쟁의 주기에서 그림자단에 자발적으로 입단해 현재 집권하고 있는 불멸단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높게 산 불멸단의 초대를 받아 새로운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 크리스 디자이너는 플레이어가 어느 진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투쟁의 주기에서 어느 시점에 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칫 밸런스를 잡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두 진영의 비대칭도 이런 시스템과 얽혀있다. 크리스 디자이너는 수가 한정된 불멸단과 그보다 많은 그림자단의 수는 의도한 바라고 이야기했다. 수많은 그림자단이 협력해서 불멸단을 끌어내릴 수도 있지만, 결국 한정된 암흑 파벌만 새로운 불멸단에 오를 수 있기에 그림자단 내부의 경쟁이 생기기 때문이다.

똑같은 수의 진영이 똑같은 콘텐츠를 즐기는 여타 게임에서의 RvR과는 궤를 달리하는 격이다.

▲ 디아블로 이모탈 선임 시스템 디자이너 크리스 지어허트

디아블로 이모탈이 진영 선택보다는 그 안에서 플레이어의 경험을 강조하는 만큼 보상도 많은 플레이에 따라 얻는 구조다. 스캇 디자이너는 현재 디아블로 이모탈이 비공개 알파 단계인 만큼 여전히 보상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단계지만, 주기 중간이나 주기 끝에 이루어지는 보상을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그는 투쟁의 주기 핵심은 주기 중에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며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한 억지스러운 게임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를 위해 스캇 디자이너는 "주기 중에 많은 플레이를 해야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다는 개념입니다."라며 유저들의 플레이를 강조했다.

한편, 주기 끝에 주어지는 보상에 관해 묻자 개발진은 상세한 내용은 고려 중이지만, "PvP와 같은 특정 콘텐츠에 특정 장비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점에 대해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답했다. 주기 끝에 장비를 보상으로 포함한다고 해도 선택한 파벌이 아니라 전반적인 참여에 따라 공평하게 주워지길 원한다며 보상을 위한 진영 선택이나 콘텐츠 플레이가 아니라 경험과 노력에 따른 보상을 약속한 셈이다.


투쟁의 주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기존 시즌과 달리 기간이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멸단이 왕좌에 내려오면 현재 투쟁의 주기는 끝나게 된다. 즉, 불멸단은 꾸준히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영향력을 높여야 하고 그림자단은 내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불멸단과의 추방 의례를 통해 새로운 불멸단이 되고자 한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기여할수록 더 오래, 혹은 더 빠르게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방식이다.

추방 의례나 PvP에서 빠져나간 플레이어를 대신해 AI 플레이나 능력치 보정 등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크리스 디자이너는 'AI에게 플레이어를 대신하도록 할 수는 있지만, 유저의 투자가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이런 시스템을 현 단계에서는 도입하지 않을 것을 알렸다.

그는 플레이어가 PvP에 참가하지 않거나 진영 콘텐츠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것에 관해 "한 진영에서 더 많은 노력을 했다면 그쪽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라며 덧붙였다.

특정 암흑 파벌이 추방 의례에 덜 참여했다면 다른 파벌에 기회가 갈 것이고 불멸단의 플레이어들이 상대적으로 투쟁의 주기 내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했다면 그림자단에 왕좌를 넘겨줘야 한다. 이 모두 참여와 그에 따른 결과 및 보상이라는 의미로 플레이어들 스스로가 자정 작용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단, 투쟁의 주기 내 플레이어의 참여에 따른 경험을 위해 '경쟁에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인위적인 보정'이 없을 뿐 각 직업 간의 밸런스 작업은 꾸준히 이루어진다.

국내 서비스에 앞서 진행된 해외 알파 테스트 빌드에서 지나지게 뛰어난 효율을 보인 성전사 직업의 밸런스에 대해 이야기하자 개발진은 모든 직업이 재미있고 선택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일부는 하향되고 일부는 상향될 수도 있으며 작고 섬세한 수정을 하는 동시에 큰 기능 위주의 수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패치 주기 역시 상황이나 심각성에 따라 달라지고 스킬이나 장비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즉각적으로 수정할 수 있지만, 핵심인 패치의 방향성은 PvP에서 어떠한 직업으로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게끔 만드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투쟁의 주기는 그간 디아블로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PvP나 진영전을 담고 있어 게임의 핵심 콘텐츠로 불려 왔지만, 수차례 인터뷰와 발표에서 언급됐듯 선택적인 콘텐츠 중 하나다. 이는 그간 싱글 플레이, 혹은 파티 플레이 위주의 PvE 콘텐츠를 즐겨온 플레이어들이 기존의 감각으로 즐기던 콘텐츠와 유사한 것들을 꾸준히 즐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앞서 게임의 PvE 콘텐츠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줄리안 러브 디자이너가 밝혔던 지옥 성물함이 꾸준히 강력한 보스를 선보이는 등 투쟁의 주기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즐길 콘텐츠가 여럿 추가됐다.

■ 관련 기사: [인터뷰] "디아블로 이모탈은 '거대한 게임'"

이에 대해 스캇 디자이너는 불멸단이나 그림자단에 드는 것은 강제적인 것은 아니며 좀 더 경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콘텐츠 확장 개념으로 외형 아이템 등을 제외하면 특정 진영에 더 많은 보상이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투쟁의 주기는 유저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첫 주기에는 진영에 참여하고 다음 주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유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죠. 모험가로 플레이하고 싶다면 여전히 모험가로 남아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콘텐츠가 있습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에는 다양한 PvE 콘텐츠와 월드 탐험, 고대-도전 균열 등 수많은 즐길 거리가 있다. 하지만 투쟁의 주기만을 위한 콘텐츠가 있는 만큼 두 진영에 들지 않은 모험가는 더 적은 콘텐츠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스캇 디자이너는 실제로 게임을 즐긴 팬들이 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알파 테스트가 블리자드가 아닌, 게이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인 만큼 이런 콘텐츠 양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다는 의미였다.

이 외에도 개발진은 알파 테스트를 체험하는 한국 게이머들의 많은 피드백을 부탁했다. 한 번의 출시로 끝나는 게임이 아닌 만큼 플레이어가 받는 보상이나 고유 콘텐츠 등 다양한 부분이 팬들의 꾸준한 관심과 피드백으로 보완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특히 개발진은 한국 게이머들에 대한 기대도 감추지 않았다. 스캇 디자이너는 "한국 게이머들은 게임에 많은 노력을 들이고 열정적이며 스마트합니다."라며 투쟁의 주기와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시스템을 어떻게 잘 활용해나갈지 기대한다고 이야기했다.

크리스 디자이너 역시 비슷하게 생각한다며 '내부적으로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한국 플레이어들이 발견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하길 바란다고 덧붙이며 두 개발자가 함께 플레이에 대한 자유로운 피드백을 다시 한 번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