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이 생각나는 액션 게임
보통 게임 무기 하면 대부분 검과 창, 활 등의 장병기를 떠올립니다. 현실에서도 이런 장병기는 무기로 분류돼 적을 죽이는 데 사용된다고 알고 있죠. 하지만, 꼭 장병기만 적을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 젓가락을 암기처럼 던진다거나 볼펜으로 찌르고 심지어 숟가락으로 툭툭 때리기도 하죠.
이처럼 무엇이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게임의 핵심 재미로 내세운 게임이 있습니다. 밭에 자란 튼실한 당근과 양배추만 있다면 서넛쯤은 거뜬히 쓰러트릴 수 있죠. 무기의 기준을 손에 잡히냐, 잡히지 않느냐로 구분하는 게임, 블러드루트입니다.
게임명 : 블러드루트(Bloodroots) | 개발사 : Paper Cu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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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블러드루트' 오픈크리틱 페이지
오늘은 어떤 '물건'으로 싸워볼까
블러드루트는 서부극을 배경으로 약탈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미스터 울프를 통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우리의 주인공이자 플레이어 캐릭터인 미스터 울프는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가까스로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게 되죠.
일반적인 복수극이라 스토리의 비중이 크진 않습니다. 주인공은 복수에 연관된 적들을 찾아가면서 한 명씩 쓰러트리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비밀들을 차차 알게 되는 정도죠. 그렇다고 스토리가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니고 진행 중에 쓰러트린 적들이 유령이 돼서 등장한다거나 가끔 재미있는 정보를 말해주는 딱 그 정도 선에서 끝납니다.
스토리보단 전투에 더 힘을 준 게임인 만큼 바로 전투에 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러드루트의 전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존윅이 늑대탈 쓰고 서부시대에 가서 온갖 물건으로 사람 때려잡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 내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존재하는데요. 밭에는 양배추와 당근이 심어져 있고 짐수레부터 오크통, 건초더미들도 쌓여있습니다. 물론, 레이피어와 도끼, 창, 총과 같은 무기 범주에 들어가는 물건들도 존재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건을 들고 휘둘러서 적을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등장하는 물체 비중으로 따지자면 거의 90% 정도라고 봐도 되죠. 나머지 10%는 적들과 지역을 나누는 벽, 커다란 바위 정도입니다. 큰 건물도 때려 부숴서 튄 파편만 있다면 무기로 휘두를 수 있으니 적을 죽이는 방법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물건의 근처로 가면 잡을 수 있는 일종의 표시가 뜨는데 이걸로 무기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손에 잡히면 일단 모든 것이 무기가 된다고 봐야죠. 단, 무기마다 휘두를 수 있는 내구도가 다르므로 효율의 문제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가령, 당근은 한번 휘두르면 파괴가 되고 도끼와 칼 같은 장병기는 3번 휘두를 수 있죠.
따라서 전투의 자유도는 엄청나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휘둘러서 적을 쓰러트릴지는 오로지 플레이어의 몫이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시간제한이나 무기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원한다면 당근만 가지고 모든 적을 쓰러트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혹은 맨주먹만 사용해서 쓰러트리는 컨셉 플레이를 해도 됩니다. 결국 게임의 최종 목적은 모든 적을 쓰러트리는 것으로 압축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무분별하게 적들을 쓰러트리기만 한다면 게임이 쉽게 질릴 수 있겠죠. 개발자들은 모든 무기를 사용하되 몇 가지의 룰을 걸어 게임의 정체성을 완성했습니다.
적도 한방, 나도 한방
모든 물건이 무기가 되고 적을 쓰러트릴 수단이 된다는 발상 자체는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이런 방식의 게임이 없던 것도 아닌 데다 결국 무기의 종류와 상관없이 휘둘러서 적을 쓰러트리는 행동은 똑같으니까요. 무기의 종류가 많은 만큼 더 다양한 액션을 느껴볼 순 있겠지만 게임을 장시간 즐기다 보면 금방 익숙해질 요소입니다.
따라서 블러드루프는 무기의 다양화와 게임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적도 한방, 나도 한방이라는 룰을 내놨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어떤 무기를 쓰든 적은 한방에 쓰러지지만, 반대로 플레이어도 적이 휘두른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집니다. 게임에 별도의 목숨이 있는 것은 아니니 죽어도 무한으로 다시 살아나지만, 한 번 죽으면 스테이지를 처음부터 깨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겨나죠.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죽이러 달려드는 상대를 보고 가만히 있진 않습니다. 똑같이 무기를 휘둘러 응수하거나 주변에 병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죠. 게임을 조금 진행하다 보면 원거리 적도 등장하고 특정 무기를 방어할 수 있는 방어구를 착용한 적들도 등장하니 무쌍 게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전투를 펼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모든 무기는 횟수에 제한이 있어요. 한번 휘둘러서 적을 쓰러트릴 때마다 내구도가 한 개씩 깎이죠. 당근이나 울타리 말뚝, 양동이 등 크기가 작거나 무른 물건들은 보통 일회성으로 끝나고 검과 창, 대검, 노와 같이 무기거나 튼튼한 물건들은 두세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기마다 적을 죽일 수 있는 제한이 있고 캐릭터도 한 대만 맞으면 죽는다면 게임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플레이어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효율적인 방식으로 적들을 죽이기 위한 궁리를 하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기만 휘두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마치 퍼즐 문제를 풀듯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해야 하죠.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 아무 부담 없이 일단 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주변에 어떤 무기가 있는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죽고 죽이면서 적들의 위치와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쓰러트릴 수 있는 무기의 위치를 모두 파악했다면 쌓인 빅데이터를 통해 존윅처럼 아주 멋지게 적들을 학살할 시간입니다. 내가 생각한 루트와 무기로 적들을 순식간에 쓰러트릴 때마다 계속된 죽음으로 쌓였던 불만은 사라지고 "나 좀 쩌는듯?"과 같은 성취감만 남게 되죠.
게임의 난이도가 높다는 점도 성취감을 올려주는 일등공신 중 하나입니다. 적들의 공격 판정이 후한 편이라 살짝 내민 주먹에 스쳐도 죽는 경우가 빈번하거든요. 특히, 일대일의 상황이라면 맨주먹으로도 상대할 수 있지만, 다수의 싸움에선 어림도 없습니다. 챕터를 진행할수록 등장하는 적도 많아지고 각종 함정이 판을 치니 확실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퍼즐을 풀듯 모든 상황에는 그에 맞는 해답이 있다 보니 시간을 들인다면 어떻게든 깨는 것은 가능합니다. 단지, 존윅처럼 멋지게 싸우기 위해선 숙달이 되어야겠지만요.
치밀한 계획이야말로 고득점의 비결
물론 챕터를 클리어하는데 제한이 없다 보니 천천히 해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제한과 죽음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 좋은 무기를 찾아서 안전하게 전투만 벌여도 큰 무리 없이 클리어하는 것이 가능하죠.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적들을 효율적으로 쓰러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취감 달성에 달려있습니다.
게임의 난이도가 충분히 높은 상태에서 각종 제약을 걸어버린다면 진입장벽이 높아질 테니 플레이에 자유도를 부여해 누구나 깰 수는 있도록 만든 것이죠. 대신 효율적으로 전투를 펼칠 때의 보상을 확실하게 부여함으로써 성취감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끔 설계했습니다.
챕터를 모두 클리어하면 점수 스코어와 함께 나의 플레이가 세세하게 기록돼서 나옵니다. 스테이지 내에서 최대로 얻을 수 있는 콤보와 다양성, 움직임 점수가 표시되며, 몇 번 죽었는지와 즐겨 찾은 무기도 나타나죠. 점수를 모두 합친 최종 점수가 서버에 기록되고 이를 다른 유저들과 비교해서 순위를 매길 수 있습니다.
과거 오락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점수로 순위를 경쟁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이미 깬 챕터라도 다시 한번 더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니 순위 단축을 위해 여러 번의 반복 숙달을 경험할 수 있죠.
또한, 한번 클리어한 챕터에 한해서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모자 아이템을 착용할 수도 있습니다. 모자 아이템은 챕터를 클리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으며, 모자마다 맨주먹 공격 시 앞으로 돌진한다거나 주먹으로 적을 타격했을 때 분쇄해버리는 등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서 게임 내에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과 순위 경쟁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고득점에 따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게임을 할 땐 무쌍 게임처럼 느껴졌습니다. 등장하는 적들은 별거 없었고 주변에 있는 무기들은 차고 넘쳤거든요. 군데군데 떨어진 도끼만 준다면 수많은 적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생각을 비우고 무쌍 게임처럼 적들을 쓸어버리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챕터가 올라갈수록 등장하는 적들은 많아지고 곳곳에서 플레이어를 죽이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의 막무가내 패기는 어디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치밀한 암살 계획을 세우게 되더군요. 이때부터 게임의 진짜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입구에 떨어진 도끼로 경비병 두 명을 쓰러트리고 옆에 있는 사다리로 울타리를 넘으세요. 여기서 왼쪽에 떨어진 창을 들고 앞으로 돌진 세 번 탁탁탁"
챕터가 갈수록 게임은 더없이 어려워지고 패턴 또한 복잡해져 갔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맵을 살펴보면 반드시 적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방식이 있습니다. 컨트롤이 부족하더라도 맵의 각종 장치를 활용한다면 깨지 못하는 맵은 거의 없죠.
액션과 연출이 뛰어나서 단순한 액션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퍼즐과 같은 치밀한 패턴이 숨겨져 있던 게임입니다. 치밀한 계획이야말로 승리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