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린 살인마, 갇혀버린 피해자들,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 하나


컨트롤 오버는 조마조마하고 긴장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극한의 스릴러가 아니다. 도화선에 이미 불이 붙어 곧 터져버릴 상황이 아니라, 분명 어딘가 깔려있는 지뢰를 피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듯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과연 살인마는 누구일까.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게임명: 컨트롤 오버(Control Over)
장르: 비주얼 노벨
출시일 : 2020. 12. 3.
개발 : Ashcraft
배급 : Ashcraft
플랫폼: PC(Stove, Steam)



흥미로운 연출, 강렬한 그래픽


온갖 물음들로 가득한 스토리를 풀어내는 건 목탄화 같은 그래픽과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텍스트다.

게임 전체가 오로지 일러스트와 텍스트로만 진행된다. 컨트롤 오버는 텍스트 분량이 매우 많은 비주얼 노벨류 게임이다. 선택지를 고르면 또다시 선택지가 나오며 읽어야 하는 텍스트의 볼륨이 정말 큰 편이니 각오하고 플레이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비쥬얼노벨처럼 단순히 정지된 배경에서 캐릭터 상반신 일러스트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소소한 어드벤처 요소와 단서를 찾거나, 캐릭터를 이동하는 등 기본적인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조작도 지원한다. 다만 방탈출이나 퍼즐 게임들처럼 찾은 단서를 직접 사용한다거나 하는 2차적 조작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텍스트를 통해 아이템의 사용을 표현한다.

하지만 단순히 텍스트만 읽어나가야 하는 일반적인 비주얼 노벨과 확실히 다르기에 훨씬 흥미롭게 플레이할 수 있다. 특히 텍스트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이런 어드벤처 요소는 확실히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다.


컨트롤 오버는 플레이하는 유저가 직접 게임 진행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편이다. 멀티 엔딩도 지원하고 있고, 일단 무엇보다 선택지마다 어조나 드러나는 성향이 매우 달라서 그야말로 '고르는 재미'가 있기 때문.

그렇다고 복잡하진 않다. 선택지 별 성향은 색상으로 바로 확인 가능하며, 항상 같은 번호가 같은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손쉽게 멀티 엔딩을 볼 수 있다. 물론 선택지를 달리할 때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바로 보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듯 뻔한 선택지가 없는 것 역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모든 선택지가 분노하거나, 시니컬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하는 식으로 억지스러운 '긍정'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선택하는 데 성향으로 인한 제약이 없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 가능하달까.

이 '선택지'들은 개발자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요소로도 활용된다. 게임 초반, 단순히 선택만 되거나 별 의미 없이 지나가던 사물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중후반이 되어 어느 정도 스토리가 진행되면 사물들을 클릭할 시 마찬가지로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겨난다.

마치 숨겨진 이벤트 스토리처럼 작용하기에 소소한 즐거움을 준달까. 확실히 이런 식으로 게임 진행을 풀어나가는 연출적 측면이 뛰어난 편이다.


그래픽은 확실히 선이 굵고 강렬하다. 마치 목탄으로 그려놓은 듯한데, 분명히 채색이 되어있음에도 목탄화의 느낌이 물씬 난다. 이는 게임의 분위기를 좀 더 다크하고 미스터리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대화 장면에서 등장하는 일러스트들은 암부와 명부의 대비를 강하게 넣어 좀 더 게임의 분위기를 어둡고 진지하게 만들어 준다. 음울하게 깔리는 사운드와 중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흑백 혹은 붉은 '색'의 사용 역시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전체적으로 저채도에 대비가 강한 편인데, 덕분에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어야 함에도 크게 부담은 없는 편이다. 텍스트는 모두 흰색이지만 배경과 마찬가지로 중요 부분에서는 붉은색으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흑백이나 무채색의 느낌은 아니다.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으며 마감 역시 뛰어나다. 배경도 단순한 듯하지만 '잠겨진 저택'의 느낌을 물씬 주는 등 하나하나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빛과 어둠, 즉 명암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해 게임 전체가 묵직한 분위기를 낸다.



재미있는 소재, 아쉬운 텍스트

컨트롤 오버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활용해 스릴러와 추리, 미스테리 등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하지만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텍스트의 흐름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이렇게 텍스트가 많은 경우 초반에 유저를 휘어잡는 게 중요한데, 너무 미스테리함을 강조한 나머지 초반부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떡밥'임에 분명한 단어들이 문장 자체에 잘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게임 전체를 통틀어 '통제'와 '욕망'이라는 단어가 마치 키워드처럼 작용하는데, 문제는 이 단어들을 너무 여러 상황에서 함축적으로 사용한다. 전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때에도 이를 사용하다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초반부의 경우 어느 정도 문장을 읽으면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했지 않나 싶다.

보통 이런 류의 게임은 범인이나 상황에 대해 유저가 추리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둬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유저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쫀쫀한 긴장감을 적절하게 가져가는 것 역시 필요하다. 아무리 엔딩을 맛깔나게 만들었어도 초중반이 지루하다면 하이라이트까지 게임을 플레이하기란 쉽지 않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너무 따로 노는 단어들이나 길게 늘어지는 문장으로 인해 '글' 자체가 깔끔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 이는 아무래도 대화형 텍스트보다 일기장이나 편지처럼 '외부'에서 제공되는 힌트형 텍스트에서 드러난다.

이런 힌트형 텍스트들은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게임 자체에 확실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통제'와 '욕망'을 비롯해 함축적인 단어들을 너무 많이 사용하다 보니 몰입감을 깨버리는 요소로 작용해 버렸다. 반면 장황한 지문을 제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한 캐릭터 간의 대화는 훨씬 집중해서 볼 수 있다.


다만 몰입도의 문제일 뿐 분명 소재와 그를 풀어내는 스토리 뼈대 자체는 흥미롭다. 특히 연출적인 측면이 심플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편이다.

살인에 관한 이야기와 플레이어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색'을 활용했기에 손쉽게 구분할 수 있다. 선택지를 고를 때마다 반영되는 '플레이어'의 성향 변화 역시 노랑 빨강 파랑의 시각적 효과로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플레이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개발사의 배려가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기에 단순 클릭이 아니라, 몇 초간 꾸욱 누르고 있어야 원하는 선택지를 확정적으로 고를 수 있다거나, 중요한 키워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붉은색으로 표시된다거나 하는 식이다.




일단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컨트롤 오버는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릴만한 게임이다.

텍스트가 정말 많은 편인데, 이게 캐릭터간 대화 텍스트가 많은 것이 아니라 게임 내에서 일기장이나 편지 등을 통해 쏟아진다. 아무래도 기억을 잃어버린 플레이어 캐릭터가 숨겨진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 주 내용이기 때문인 듯하다.

여튼 이런 방식의 텍스트는 독백이나 대화에 비해 뚝 떨어져 있는 느낌을 많이 주기에 소설책을 읽는 듯 몰입해서 비주얼 노벨을 즐기는 경우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대신 방탈출이나 추리, 미스터리 등을 좋아한다면 소재 측면에서도 그렇고 괜찮게 느껴질 수 있다.

힌트를 찾아야 하는 방탈출 요소가 들어가 있고, 챕터만 해도 10개가 넘어갈 정도이기에 게임의 볼륨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게임은 확실히 비주얼 노벨이다. 다른 요소는 이런 주 장르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기 위한 곁들임 요리 같은 것이기에 다른 요소를 기대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장점

+ 다양한 조작요소
+ 강렬하고 섬세한 그래픽
+ 흥미로운 소재와 연출
+ 몰아치는 후반부
단점

- 장황한 텍스트
- 지루한 초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