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 스스로 회사에 종속되었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김규만 기자 (Frann@inven.co.kr)
18일(금) 진행된 제5회 게임문화포럼에서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패널 토의가 진행됐다.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의 이정엽 교수가 진행을 맡았으며,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상규 박사, 라이엇 게임즈 진예원 PD, 류태경 게임물 전문지도사가 참여했다.
이날 패널 토의에서는 국내 게임 생산자가 처한 노동환경 및 가치관을 살펴보고, 게임물 모니터링 및 이용자 측면에서 바람직한 게임문화 형성 방안에 대한 고민해보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먼저, 패널로 참여한 콘텐츠산업연구센터의 이상규 박사가 국내 게임 생산자의 노동환경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상규 박사는 게임 생산자에 대해 여러가지 직군이 함께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전공과 전문 지식을 필요한 분야라고 설명하며 기존 게임 생산자가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예전부터 게임 생산자라고 한다면 기성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수평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예술적인 창의성과 기업가적인 모험정신 모두를 핵심 가치로 여기는 이들을 먼저 떠올렸다. 또한, 일과 놀이의 결합, 일을 통한 자아실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과 자부심 등은 게임 생산자가 가지는 이상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 근래에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위와 같은 형태의 수식어가 붙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이상규 박사는 "2019년 기준 국내 게임산업의 매출은 14조 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2007년 당시 5조 원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10년 남짓한 기간에 3배 정도 성장을 이룬 것이다"며, "이에 반해 최근에는 국내 게임 생산자들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분석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소위 크런치모드라고 불리는 집중적 초과근무, 야근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OO의 등대'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업계 현실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 종사자로서 패널로 참여한 라이엇 게임즈의 진예원 PD는 이와 같은 이상규 박사의 발표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발언을 이어갔다.
처음으로 게임 업계에 입사해 MMORPG를 만들던 첫 3년과, 라이엇게임즈에서 e스포츠 방송 글로벌 PD역할을 하게 된 올해가 가장 직업적으로 행복했다고 전한 그는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원래 취미처럼 좋아했던 일들이었고, 동일한 열정을 공유하는 끈끈한 문화가 있으며, 경영 차원의 감시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진예원 PD는 "게임업계에 처음 입사했던 2010년에는 정말 '꿈의 직장'이었고, 당시 국내 게임업계는 상업적 성공을 토대로 여유를 부리며 꿈과 포부를 크게 가질 때였다. 그러나, 2015년을 전후로 하면서 생존과 다음 먹거리를 찾기 위해 절실해지는, 모두가 힘든 시기가 갑자기 닥쳐왔다"고 전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모바일 디바이스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PC 온라인에 주로 기반을 두었던 국내 게임 업계는 서둘러 모바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업 내부에 있는 기준들이 한순간에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는 것이 진예원 PD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플랫폼의 변화 과정에서 선두 시장의 지위를 잃어버린 국내 게임업계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짧은 시간에 공장처럼 많은 작품을 출시해 장사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10명이 MMORPG를 만들고 있었다면 그 중 8명은 모바일게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플랫폼의 변화는 단순히 게임을 모바일에서 즐기는 것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조직구조가 바뀌었고, 일하는 방식이 변했다.
진예원 PD는 당시를 회상하며 "3-4년동안 긴 호흡으로 세계를 만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6개월 만에 RPG라고 부르지만 RPG는 아닌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생산자들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니 헤맬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진예원 PD는 국내 게임업계가 모바일게임 위주로 넘어가면서 창의적인 기획보다는 전형적인 콘텐츠의 빠른 생산과 과금 기획이 주업무가 되면서 게임 생산자들이 빠르게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프로젝트가 6개월 단위로 빠르게 이뤄지는 만큼 과거에 느낄 수 있던 끈끈한 동료애 또한 느끼는 것이 불가능했다. 잦은 이별이 계속되는 조직 개편을 겪다 보면 앞으로는 친해질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능동/자율적으로 일을 한다'는 인식은 요즘 게임 생산자들의 모습은 아니다. 예술적인 창의성과 기업가적인 모험정신과 같이 상반되는 핵심가치를 표출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환경도 아니다. 이상규 박사는 게임 개발자들이 노동자로 변화하고 있다는 가장 큰 단서로 작년 9월 최초로 생겨난 게임업계 최초의 노동조합을 사례로 들었다.
이상규 박사는 게임회사 노조의 탄생을 "게임생산자들의 정체성 변화를 보여주능 상징적인 일"이라고 전하며, "사실상 프리샌서에 가까운 사람들의 유연한 노동이 과거 게임개발자들의 특징이었다. 자주 이직을 하며 커리어를 쌓고, 몸값을 올려 기회가 되면 창업을 해 성공을 도모하는 것이 게임생산자의 일반적인 모델이었는데, 이제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한층 더 강화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노조의 결성은 생산자들이 불안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는 증거다. 창업의 가능성은 적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노동자로서의 권익은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게임 생산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해결 방안을 어떻게 찾는게 좋을까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상규 박사는 "물리적인 처우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고 답했다. 게임업계는 다양한 직군이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의 규모와 같은 개별적인 특징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편중화되고 획일화된 구조를 탈피하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행을 기업이 자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진예원 PD는 "기술의 발전은 빨라지면 빨라졌지 느려지지는 않을 것이고, 국내 게임 업계가 10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확률도 없다. 오히려 PC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넘어왔을 때 산업이 겪어야 했던 위기가 앞으로 계속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며, "게임 생산자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기업과 노동자의 대립보다는 게임 생산이라는 노동의 특성과 생산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보다 이해하고 확장해 나가는 쪽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지금 게임 업계에 들어온 후배들이 회사에 종속된 노동자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안정한 기업 자체에 기대기보다는, 산업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상과 열정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곳을 스스로 찾기를 바란다. 혁신적인 게임이 언제나 대기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나. 국내 게임 산업의 부흥기를 다시 이끌어주시기 바란다" 고 말하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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