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렙타 스튜디오 캐서리나 두에 보흘레르(Catharina Due Bøhler) 대표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1930년대에 나치는 아리아인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아리아인 여성들, 특히 많은 노르웨이 여성들이 끌려가 강제로 아이를 낳아야 했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아리아인의 특징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했다고 판단된 아이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버려지기도 했으며,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나치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차별받는 삶을 살았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이러한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지하다 못해 어둡고, 실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조심스러운 주제. 이 이야기를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제대로 담아냈고,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선 게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BAFTA를 수상하기도 했다.

게임스컴에 앞서 진행된 개발자 컨퍼런스 데브컴 2019에서는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을 개발한 사렙타 스튜디오(Sarepta Studio)가 레벤스보른과 같이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이유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캐서리나 두에 보흘레르(Catharina Due Bøhler) 대표는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의 개발과정과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노르웨이의 인디 게임 개발사인 사렙타 스튜디오는 첫 작품 '쉐도우 퍼펫티어'에서부터 감성적이고 어려운 주제를 다뤄왔다. 계기는 단순했다. 아이와 그림자의 코옵 게임으로 개발된 '쉐도우 퍼펫티어'는 혼자 있는 아이를 주제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외로움을 다루게 됐고, 이를 시작으로 사렙타 스튜디오는 특이한 모토를 가지게 됐다.

사람들을 눈물짓게 하자.

캐서리나 대표는 진지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팀의 비공식적인 모토가 되었고, 팀의 강점이 되는 동시에 큰 도전과제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슬픈 주제는 정말 많고, 영감을 주는 실제 이야기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동시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기도 하다. 캐서리나 대표는 '마이 차일드 레반스보른' 또한 매우 조심스러웠던 작품이었고 출시를 앞둔 한 달 전까지도 게임이 잘 받아들여질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캐서리나 대표는 게임이 가진 힘을 강조했다. 게임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전달할 수 있다. 최근 조명받는 임팩트 게임들은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게임이 전달할 수 있는 강렬한 메시지의 힘 다룬다. 캐서리나 대표는 하지만 동시에 많이 시도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마이 차이드 레벤스보른', 플레이어는 무력한 부모가 된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같은 게임이다. 누구나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고 있었고, 핍박했으며,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이었음에도 정부는 보호해주지 않았다. 특히 노르웨이에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많았던 만큼 노르웨이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역사였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린 역사기도 했다.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된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레벤스보른 차일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전달하고자 접근성이 좋은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됐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현실의 문제와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리고 더 어두운 이야기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 회사와 협업을 통해 진행된 사전 조사를 토대로,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4명의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캐서리나 대표는 게임에 담을만한 실제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고 설명했다. 레벤스보른 차일드로서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실제 증언에는 슬픈 일뿐만 아니라 즐거운 일들도 많았다.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잘했다'라고 한마디를 던진 것이 너무나도 기뻤고, 일상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힘이었다며 즐거웠던 기억으로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먼저 도망갈 수 있도록 일찍 하교를 허락해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캐서리나 대표는 모든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너무 많은 사례를 담고자 하면, 오히려 감정을 퇴색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어떻게 개발됐을까. 역사 깊숙이 자리한 증오와 슬픔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캐서리나 대표는 정말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다고 전했다.

첫 기획단계에서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유저가 직접 레벤스보른 차일드가 되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구상됐다. 하지만 문제는 플레이어는 너무 힘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직접 세계를 조정하는 만큼,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희망이 없는 감정을 전달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타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면?


이와같은 문제는 게임을 육성 게임으로 바꾸자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레벤스보른 아이를 입양한 부모로서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의무감이 생기고, 아이를 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은 채 육성에 집중하게 된다.

개발과정에서 가장 게임의 기본이 되었던 것은 다마고치형 게임이었다. 보살펴줘야 하는 일정 스탯들이 있는 게임으로 구상됐으며, 모바일 플랫폼의 터치스크린 기능을 활용해 아이를 쓰다듬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를 쓰다듬는 행동은 따로 재화를 소모하지 않는데, 시간을 들여 아이를 돌본다면 무료로도 스탯을 올릴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다마고치형 게임의 기본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서는 아이의 감정을 담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들은 스탯의 상태에 따라서 행동과 말투가 변화하며, 부모로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아이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도록 구상됐다.


아이의 상태는 이러한 간접적인 요소들로 부모인 플레이어에게 전달된다. 플레이어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 어떤 일들을 겪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사실 당연한 설정이다.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부모도 일을 하러 가니까. 캐서리나 대표는 직접 유저들이 아이가 어떤 일을 겪는지 볼 수 있도록 했다면,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점에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간접적으로만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직접 보여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 부모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무력하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플레이어는 아이의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아이의 그림을 통해서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유추하게 된다. 캐서리나 대표는 레벤스보른 아이로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저 아이로서의 느끼는 감정 또한 함께 담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더욱 어둡고 어려운 이야기를 담아낸 과정

플레이어는 간접적으로 주어지는 정보들을 통해 스스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된다. 아이가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찢어져 있는 옷의 상태를 보고 아이의 아픔을 유추해 좀 더 신경을 쓰기도 하면서, 플레이어에 따라 아이는 오픈된 아이가 되기도 하고, 마음을 닫은 아이가 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설명되어있지 않은 비어있는 공간을, 유저들은 스스로 채워나가게 된다.

각자 학교와 직장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아이와 플레이어는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 플레이어는 여러 가지 선택에 마주하게 된다. 사생아가 무슨 뜻이냐는 아이의 질문에 나치와 관련된 아이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고, 대답하지 않은 채 넘길 수도 있다.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플레이어만의 노트에 쓰여진다.


캐서리나 대표는 개발과정에서 정말로 무거운 주제들은 다루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모든 측면을 담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성폭행과 같이 특히나 무거운 주제들은 다루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캐서리나 대표는 "정말 그냥, 불가능했다"며 당시의 감정을 설명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아이들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무도 겉으로 봐서는 아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고, 심지어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정신적 고통은 어느 날 갑자기 표면 위로 드러난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 움직일 수 없게 된다든지.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서는 갑자기 게임 기능이 불가능해지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이를 쓰다듬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거부하고, 이야기하기를 거부하고, 나중에는 식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들은 실제 피해자와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구상됐다. 캐서리나 대표는 게임을 보고 피해자분들이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평가해줬으며, 그들의 이러한 평가가 없었다면 선뜻 출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출시 이후 유저들의 피드백도 정말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었던 힘든 감정들을 떠올리며,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누군가는 입양된다는 감정이 어떤지를 떠올렸으며, 누군가는 괴롭힘을 받았을 때의 감정을 떠올리기도 했다.

무거운 주제,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렙타 스튜디오는 무거운 주제를 계속해서 다뤄나갈 예정이다. 차기작인 타레사(Thalassa) 프로젝트는 1인칭 심리 드라마로, 침몰한 배를 다시 찾은 주인공과 동료의 이야기를 다룬다. 19세기 심해 다이버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으며, 침몰한 배의 진실을 찾아가게 되는 여정을 담고 있다.


트라우마, 특히 PTSD를 주제로, 전문가와 실제 다이버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감정을 제대로 담은 게임으로 개발되고 있다. 캐서리나 대표는 동시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직접 써내려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게임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거운 주제들은 개발자에게도 영향을 준다. 특히 실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캐서리나 대표는 레벤스보른 자료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기 위해 일을 잠시 멈춰야 했던 경험을 언급했다. 캐서리나 대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현지시각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독일 쾰른에서 데브컴과 게임스컴 2019 행사가 진행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들이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게임스컴 2019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