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운드8 스튜디오 박성준 PD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라운드8 스튜디오 박성준 PD는 1997년부터 하이콘과 이소프트넷, EA 싱가폴, 네오위즈 등에서 게임을 개발해왔다. 현재는 '블레스' IP를 기반으로 한 콘솔 MMORPG '블레스 언리쉬드'를 개발 중에 있다.

라운드8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블레스 언리쉬드'는 여러모로 도전적인 게임이다. 국내에선 여전히 미개척지로 통하는 콘솔 플랫폼인데다가 MMORPG다. 콘솔 게임과 MMORPG를 즐기는 유저 성향이 다른 걸 고려하면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실제로 '블레스 언리쉬드'는 콘솔 MMORPG로서 많은 고민이 들어갔다. 콘솔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액션과 연출을 살리는 동시에 MMORPG 특유의 성장 요소 등의 콘텐츠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존 MMORPG와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금일(17일) 진행된 IGC 2일 차 강연에서 박성준 PD는 '블레스 언리쉬드 :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재설계했나'를 주제로 '블레스 언리쉬드'를 만들면서 있었던 고민과 도전, 해결법 등을 소개했다.



■ 강연주제: 블레스 언리쉬드 -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재설계했나

⊙ 블레스 언리쉬드는 어떤 게임인가?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라운드8 스튜디오의 박성준 PD는 ‘블레스 언리쉬드’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했다. ‘블레스 언리쉬드’는 ‘블레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콘솔 MMORPG다.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콘솔 MMORPG라는 부분이다. 라운드8 스튜디오는 이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콘솔 MMORPG가 적지만 처음에 콘솔 MMORPG에 도전했을 때는 더 적었다. 그렇지만 기존의 MMORPG를 분석할 순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콘솔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안으로 콘솔 RPG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최우선 타겟층은 기존의 콘솔 MMORPG를 즐기던 유저였으나, 일반적인 콘솔 RPG를 즐기던 유저 역시 세컨더리 타겟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콘솔 RPG 유저들은 어떤 게임을 즐기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그 방향성을 분석했다.


⊙ 콘솔 RPG의 현재

라운드8 스튜디오는 콘솔 MMORPG를 만들기 위해 시장 분석을 위한 게임으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을 선택했다. 이쯤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많은 게임 중 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기존의 콘솔 RPG와는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콘솔 RPG는 콘텐츠가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 메뉴가 빈약했다. 그러나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달랐다. 다양한 메뉴가 풍성했을 뿐 아니라, 컨트롤러로 조작하는 방식임에도 커서가 있었다. 어딘가 MMORPG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템을 보면 더 친숙하다. 툴팁이 있어서 공격력이나 부가효과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템 등급에 따라 색깔이 나뉘기까지 한다. 여기에 인벤토리가 있으며, 수많은 자원이 있고 이를 활용해 아이템을 강화하는 것까지 MMORPG를 즐기던 한국 유저들에겐 더없이 친숙한 요소들로 무장하기 시작한 거였다. 이러한 점들을 설명하며 박성준 PD는 “과거와 달리 콘솔 RPG가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들을 추가하며 시스템을 보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MMORPG와 콘솔 RPG가 명확히 자신들만의 특색으로 나뉘었었다. MMORPG라고 하면 멀티플레이가 가능하고 하우징, 아이템 성장, 스킬 성장 등의 시스템으로 무장했으며, 콘솔 RPG는 물리 인터렉션, 깊이 있는 스토리, 연출 등 각각이 따라올 수 없는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멀티플레이 위주인지 싱글플레이 위주인지만 다를 뿐 거의 대부분의 요소가 겹친 상태다. 앞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의 예처럼 콘솔 RPG인데 아이템 성장, 스킬 성장 시스템이 들어가는가 하면, MMORPG가 콘솔 RPG의 장점인 액션과 스토리, 연출을 따라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 과거와 달리 MMORPG와 콘솔의 경계는 점점 옅어지고 있다

이처럼 콘솔이 MMORPG의 특징을 흡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MMORPG는 어떨까? 아직도 많은 MMORPG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네오위즈가 개발한 ‘블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관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통적인 MMORPG의 모습이었다. 반면, 콘솔 RPG는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박성준 PD는 “MMORPG와 콘솔 RPG의 콘텐츠 차별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해도 되겠지’ 하고 안심해도 될까?” 하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유일한 장르적 차이인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도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느낀 것이다.

실제로 많은 콘솔 게임들이 온라인 기능을 접목하고 있다. ‘GTA5’가 온라인으로 만들어져 돈을 쏠쏠하게 벌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이미 예전이고 최근에는 ‘폴아웃76’, ‘레드 데드 리뎀션 온라인’ 등 콘솔 개발사가 온라인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알리고 있다. 물론, 흔히 알던 MMORPG는 아니지만, 과거와 달리 MMORPG의 아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MMORPG는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할까? 박성준 PD는 “적어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콘솔 RPG가 더 사람들을 잡아끄는 면이 있다”며, “그렇다면 우리가 개발하는 MMORPG도 콘솔의 장점을 채용해야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본격적인 콘솔 MMORPG의 개발 시작을 알렸다.

물론 콘솔 RPG의 장점을 채용한다지만 쉬운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MMORPG이기에 서버에서 판정해야 해 물리적용, 타격판정, 속도감 등의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레이턴시(지연시간)를 해결하는 게 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 외 콘텐츠들은 아니다. 콘솔에서 볼 수 있었던 연출과 스토리 등은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블레스 언리쉬드’는 탱딜힐 개념이 없는 콘솔 MMORPG다. 액션에 치중한 만큼, 프리스트의 경우 힐러지만 딜러로도 활약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이처럼 MMORPG임에도 충분히 좀 더 몰입감 있고 액션성 있는 플레이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이런 게임을 만들지 않았을까?


⊙ 오래된 미신들

충분히 새로운 MMORPG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지금까지는 비슷한 형태로만 만들어온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국내 MMORPG 개발자들이 일종의 미신, 선입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MMORPG를 하는 유저 대부분이 아저씨고 그렇기에 마우스 조작만으로도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성장과 경쟁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기저에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성준 PD는 “게이머에 대한 몰이해, 나아가서는 무시와도 같다”며, 이런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기에 지금까지 비슷한 게임이 나온 거라고 고백했다.

▲ 개발자들은 하드코어 게이머를 상상하고 게임을 만들지만...

도대체 개발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게이머는 어떤 모습일까? 그 왜곡된 모습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15시간쯤 게임을 하고 0.1% 확률이라도 계속 도전하며, 남보다 앞서라고 무엇이든 하는 게이머. 그리고 지루하면 새 캐릭터를 키우는 하드코어 게이머다.

이 왜곡이 위험한 이유는 개발자들이 이런 왜곡된 게이머를 대상으로 게임을 만든다는 점이다. 개발자들 스스로도 ‘난 안 하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그들의 상상 속 게이머들이라면 당연히 한다는 생각으로 0.1% 확률로 나오는 아이템을 넣고 10시간이 넘게 게임을 해야 뭔가를 얻을 수 있도록 기획한다.

▲ 현실의 게이머 대부분은 상상처럼 하드코어하게 즐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게이머는 어떨까? 현실의 게이머는 다양한 개성과 가치관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직장인이라면 퇴근한 후에 하루에 1~3시간 즐기는 정도다. 주말에는 좀 더 길게 하겠지만 짧은 시간을 즐기는 만큼, 몰입감 있고 재미있는 게임을 원한다. 그리고 하드코어 게이머와는 달리 재미가 없으면 언제든 다른 게임으로 옮겨 탄다.

이런 현실의 게이머에게 하루 15시간 넘게 플레이해야 강화석 하나 얻을 수 있는 기존의 MMORPG가 과연 흥미로울까? 그리고 뉴스 활자보다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익숙한 세대에게 비행기 조종석처럼 화면을 꽉 메운 UI가 가득한 화면을 보여주면서 하나씩 학습하라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접근법일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의 경우 온갖 에드온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만약, 처음부터 이 화면을 보여준다면 절대로 게임을 하지 않을 거다. 너무 정보가 많고 복잡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RPG가 꼭 이렇게 정보를 많이 보여줘야 할까? 콘솔 RPG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위쳐3’의 경우 ‘와우’와 비교하면 횅할 정도다.


▲ 한눈에 봐도 차이는 명확하다

그렇다고 콘텐츠가 적은 것도 아니다. 제작이나 퀘스트 등 있을 건 다 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여기서 더 발전했다. 화면에 UI가 거의 없다. 이러한 콘솔 UI가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 박성준 PD는 “단순히 화면이 깔끔해졌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UI 표현이 줄어들었다는 건 학습요소가 줄어들었다는 거고 글이 아닌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게이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이 기저에 깔렸다고 설명했다. 바로, 인본주의에 대한 얘기였다.


⊙ 인본주의

어떻게 해야 게이머에게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갖고 게임을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한창일 때 누군가 인본주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게이머에게 초점을 맞춰서 게임을 만들자는 거였다. 처음에는 대부분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블레스 언리쉬드’를 하는 게이머들은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상상 속의 게이머를 대상으로만 게임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보자.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다 보면 현 콘텐츠로 3개월을 버텨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지곤 한다. 그러면 개발팀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가져온다. 보통 아이템 파밍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식이다. 개발자들이라면 빙긋 웃을만한, 정말 전형적이고 합리적인 기획이다. 3개월 동안 파밍이라는 목표가 바닥나지 않고 유저들은 여기에 목멜 테니 말이다.

▲ 전형적이고 합리적인 기획이지만... 정작 게이머의 시선은 전혀 고려돼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기획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있다. 고려조차 되지 못한 것, 바로 유저다. 유저가 과연 3개월간 매일 던전을 돌아야 하는 이런 기획을 좋아할까?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의 게이머는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쉬면서 자기 전에 한두 시간 게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게이머에게 1.7% 확률만 보고 매일 던전을 돌라고 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이처럼 앞선 기획은 개발공학적으로는 맞지만, 정작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를 배제한 만큼, 절대 정답일 순 없는 기획이다.

즉, 제대로 된 기획이라면 하루를 마감하면서 1~2시간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에게 어떤 경험, 즐거움을 줘야 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블레스’ 역시 게이머를 간과하고 만든 게임이었다. 클래식한 MMORPG를 추구하다 보니 화면에는 온갖 정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정보가 넘쳐나서 배우면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이는 인본주의적으로 볼 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기존의 MMORPG의 특징들을 빼는 것 역시 쉽지는 않다. 버프, 디버프창이 난잡하다고 해서 그걸 빼면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그리고 퀘스트가 너무 많아서 화면을 가린다고 하나씩만 받게 해야 할까? 결국, 정답은 없는 셈이다.

▲ '블레스 언리쉬드'는 기존의 MMORPG와는 다른 시선에서 접근하고 있다

끝으로 박성준 PD는 “우리의 도전이 정답이란 건 아니다. 하지만 유저의 시각에서 게임을 보고, 판단하기 위해 MMORPG의 모든 시스템을 기본부터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며, 진정 좋은 게임이란 유저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임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