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VR/AR엑스포] 김동철 심리케어센터 원장이 말하는 VR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
윤서호 기자 (Ruudi@inven.co.kr)
VR은 단어의 뜻 그대로, 가상의 것을 마치 실제로 체험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VR은 단순히 HMD를 통한 시각적인 자극 외에도 다른 디바이스를 통해 촉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에 자극을 준다.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우리의 뇌와 심리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 수 있을까?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게 자극이 주어지는 이러한 과정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김동철 심리케어 센터의 김동철 대표원장은 2018 서울 VR/AR 엑스포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관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뇌신경학적으로 VR을 관찰해보면, VR은 감각과 인지라는 면에서 신경계 운영과 관련이 있다. 외부 자극을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고, 인지하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VR의 콘텐츠를 마치 실제로 있던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VR은 다방면에서 연구가 되고 있다. 고소공포증이나 공황장애, PTSD에 대한 기초 단계의 심리치료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한 심리 안정 교육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 학습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용도로도 관심을 끌고 있으며, 대형 병원에서는 VR을 활용한 정신건강관리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VR 콘텐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겪게 될 심리,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임상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VR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개인 차가 있다. 이는 생체적인 영역 외에도, 심리 및 정신적인 분야도 포함이 된다. 이 분야에 대해서 현재의 VR 콘텐츠 제작자들은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김동철 원장은 우려했다. 임상적으로 좀 더 연구가 있어야 비로소 VR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언급하는 콘텐츠 부족 문제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면서 해결이 될 수 있다. 혹은 기술이 발전하고, 관심이 생기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 사용되는 기술에 대한 임상 실험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연구와 관심을 통해서만 기반이 쌓인다. 특히나 VR은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관이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나이와 성별 증상 별로 임상 연구가 정리가 되어 있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콘텐츠의 질적 향상 및 VR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첨언했다.
인간이 VR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 대해서 김동철 원장은 90 대 10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환경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10퍼센트는 버려지고, 90퍼센트는 현재 상황을 믿는다. 개인차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이런 식으로 환경을 받아들인다.
만일 VR로 직접 뇌에 자극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기술이 복합적으로 뇌에 자극을 전달하는 VR의 경우, 자극이 상당한 편이다. 그렇게 강한 자극은 뇌에 강력한 에너지로 자리잡는다. 여기에 시각적인 것 외에 다른 감각에도 자극이 주어지면, 더욱 더 기억에 오래도록 남게 된다.
VR은 꿈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가수면 상태일 때 꿈이나, 혹은 자극이 약한 꿈은 쉽게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강렬한 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때로는 트라우마나 공포심으로까지 남는 경우도 있다. VR 또한, 강한 자극이 주어지면 오래도록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로 강하게 남을 수 있다. 인간은 자극을 궁극적으로 버려지는 것과 남는 것,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행복에 관한 것을 인간은 쉽게 잊어버린다. 반면 공포나 불행한 감정, 부정적인 기억은 오래도록 기억한다. 심리학이나 신경과학에서는 그 이유를 인간의 진화와 연결해서 설명한다. 인간은 어려움을 겪고, 이를 헤쳐나가면서 진화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트라우마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의미가 있는 VR 콘텐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VR은 대체로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 혹은 일시적인 흥미를 위한 것이다. 즉 기억에 오래 남거나, 의미를 부여하기에 무언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을 VR 콘텐츠화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행복하고 즐거운, 혹은 짜릿한 느낌을 주는 것에 치중해있는 VR 콘텐츠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동철 원장은 현재 VR 업계의 또 다른 한계 중 하나를 공간의 문제라고 언급한다. VR의 경우 대다수가 통제된 환경, 통제된 공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VR 방이나 VR 테마파크, 혹은 가정용 VR의 경우는 주변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제작된다. 그렇게 구조화된 VR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과 본격적인 의미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통제된 환경을 가정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환경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
지금의 VR 콘텐츠의 경우는 통제된 환경에서 어떤 자극을 주거나, 행복함을 주는 쪽에 치중해있다. 자연히 주변이나 현실과 단절되는 경험을 겪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차가 있지만, 공포, 우울증, 심리적 불안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아울러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런 부분을 덜어줄 수 있는 콘텐츠도 필요하다.
인간이 받아들이는 학습 정보는 80에서 90퍼센트 정도가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 전달이 된다. 이 중 특히 시각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시각적 자극은 뇌과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VR의 경우는 시각에 상당한 자극을 주고, 개인차가 있지만 큰 혼란을 주기도 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12세에서 13세 이하의 청소년에게는 VR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기도 한다. 청소년기에는 아직 감각 기관이 완전히 성장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성인에 비해서 심한 자극에 의해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극에 민감한 경향이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시각 외에도 다른 부분에서도 VR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3D 멀미라고 흔히 말하는 문제도 그 사례 중 하나다. 손과 눈의 협응 능력이 평상시와 달라지고, 움직임과 시야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균형 감각도 어긋날 수 있다. 그에 따라 메스꺼움을 느낄 수 있다. 일부에서는 간질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VR을 오래 사용할 경우, 대부분 HMD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헤드폰을 오래 썼을 때 생길 수 있는 청력 손상 문제나, HMD의 무게로 인한 척추와 목 근육 장애 등이 그 예다.
VR이 유발할 수 있는 또 다른 부작용은 사이버 증후군이다. 이미 사이버 증후군은 다른 기기를 통해서도 유발이 되고 있다고 김동철 원장은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사이버 세계를 접하고자 하는 경향이 더 크다. 친구를 만날 때도 대화를 이어가기보다는 서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집에 가서도 가족과 대화하기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다. VR의 경우는 앞서 말했듯 현실의 환경과 단절이 되고, 그 현실을 다른 것이 대체하는 형태다. 더욱 더 사이버 증후군이 심하게 나타나기 좋은 여건을 갖춘 것이다.
이런 사이버 증후군의 문제는 부정적 세뇌 가능성과도 연결이 된다. 사람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주변이나 자신의 경험과 대차대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VR은 현실과 단절이 된 상태에, 가상의 세계가 마치 현실에 구현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파간다가 진행된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자신의 경험과 대차대조를 통해서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서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위험이 더 커지는 것이다.
현실과의 단절 및 사이버 증후군의 문제는 인간미 상실이라는 부작용도 있다. 앞서 말했듯, 더 이상 현실의 사람을 대면하는 것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되고, 교류를 피하게 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VR을 사용하면서 필히 일어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런 위험성은 항상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청소년층의 경우,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이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주의를 요한다.
앞서 언급한 부작용이나 위험은, VR을 과도하게 사용했을 때나 혹은 일부 불안정한 개인에게 있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아울러 임상적으로 연구가 부족한 현 상황이 지속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VR을 활용해서 정신건강의 증진을 꾀하는 프로젝트도 존재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VR을 통해서 심리극을 활용하거나, 혹은 자연경치를 보여주면서 심신의 안정을 유도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하나의 포맷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디자이너와 환자, 심리학자, 컴퓨터 과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개인 차를 분석하고, 이를 반영해서 맞춤형으로 설계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단계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된 후에 영국 정부는 국민보건서비스(NHS)와 연계된 대형 센터에서 임상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다음 단계가 국민보건서비스 전체로 치료법을 확대하는 로드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어느 한 프로그램을 임상을 거치지 않고 뚝딱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임상을 거쳐 차츰차츰 샘플을 만들고, 그 샘플을 토대로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가 2016년 기어 VR을 활용해 공포증을 경감하는 '두려움을 없애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강남 세브란스 병원은 지난 12월 28일 인공지능 전문기업인 셀바스 AI, VR 전문기업 에프앤아이와 기술개발 연구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 과정 역시도 모든 사람에게 공동으로 적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 번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임상을 통해서 사례를 연구하고 차츰차츰 공통분모를 모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VR 산업에 관련된 사람들이 이전에 많이 놓쳤던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VR이라는 기술을 접했을 때, 혹은 이를 활용한 콘텐츠를 접했을 때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임상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하는 데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김동철 원장은 이런 점이 앞으로 VR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임상적인 연구나 접근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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