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부터 라디오헤드, 메탈리카를 시작해 장윤정의 어머나까지 수많은 곡들이 머리 속을 맴돌지만 역시나 결론은 하나. 젤다의 전설 주제가다. 기자에게 "빰빠 빠라라라밤"으로 시작하는 특유의 BGM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활기찬 기운이 샘솟게 하는 활력제다. 가끔씩 멍해질 때 콧노래로 가장 많이 흥얼거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비단, 기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자신의 좋아하는 게임 OST 하나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게임에는 별 관심이 없던 동생이 TV를 누워서 보며 스타크래프트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게임 사운드는 분명 게임 내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때로는 게임을 벗어나 게임 자체와는 별개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고를 목표로 2003년에 설립되어, 오직 게임 사운드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가 있다. 이름하여 게임앤사운드(Game & Sound). 불모지나 다름 없는 이 곳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펼쳐가고 있는 게임앤사운드 김은일 대표를 만나보았다.
"5년 전쯤에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 효과음을 담당했었습니다. 음악제작 뿐 아니라 음악 시스템 기획까지 맡았었죠. 리니지2는 각 오브젝트마다 효과음을 별도로 제작했고, 빈도수, 거리값 등을 계산해서 작업할 만큼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한 퀄리티의 사운드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리니지2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다른 게임회사에도 이런 부분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게임사운드는 음악 실력은 물론, 실제 게임제작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게임 사운드 외주사업을 하면 경쟁력도 있고 충분히 그만큼의 효과도 있겠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회사설립을 하게 된 겁니다."
게임앤사운드가 2003년에 설립되던 시절. 국내는 게임 사운드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게임회사들도 단지 게임사운드만을 위해서 외주를 주는 형태가 거의 없었다고. 회사 설립 후 제대로 운영될까라는 걱정도 많았지만, 김은일대표는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단 친분 덕분에 상당히 활기찬 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게임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게임계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꽤 많은 편이였어요. 그래서 회사설립 초기인데도 일거리에 대한 부담 없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마땅한 게임사운드 회사가 없던 것도 시기가 굉장히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다양한 게임계 친목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망생이 대부분이라 어떤 것을 받는 경우보다는 주는 경우가 많지만, 같은 업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사람냄새도 나고요. 저번 주말에는 저희 회사에서 동호회 분들과 위닝일레븐 대회도 열었습니다. 제가 1등 했지만요. (웃음)"
아무리 친분이 많은 김은일 대표라고 해도 일이 항상 잘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넥슨의 제라, 한빛의 그라나도에스파다, 웹젠의 SUN까지 일명 빅3가 흥행에 참패한 2006년에는 게임업계 전체가 불황에 빠져 게임앤사운드도 힘든 시절을 겪어야 했다. 고정적인 수익이 아닌, 게임개발이 마무리 되어야 실제 입금이 되는 계약 형태인데, 개발이 한없이 늦어지거나 해당 프로젝트가 아예 무산되어 입금을 해주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생계 자체가 위협받은 시기였다.
그래서, 현재 게임앤사운드는 BGM 건 당으로 계약하는 것이 아닌 연간 계약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실제 게임개발이 일정보다 늦어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간 계약이 개발사와 게임앤사운드, 상호 간에 더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클로즈베타에서 오픈베타까지 게임사운드 제작에 3000 만원 미만, 좀 더 소규모 게임들은 1000~2000 만원을 받고, 대규모 MMORPG는 곡 수도 많고 효과음 분량도 많아 7000~800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히자만, 초반부터 억 단위 계약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최근 게임사운드 쪽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뤄, 특히 환경 쪽 효과음들이 매우 풍부해 졌어요. 프리스타일 풋볼의 경우에는 실제 길거리에서 축구 하는 사람들의 음원을 포함시키기도 했고, 슬러거에서는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야구장을 직접 찾아 관중석에서 나는 소리들을 녹음하기도 했었습니다. 음원 리소스를 만드는 작업부터 작곡, 믹싱, 효과음, BG작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죠. 최근 MMORPG 경향인 오케스트라 음악 작업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다행이 올해 작업한 결과물들은 거의 다 게임 내에 적용되어 이미 선보였거나 선보여질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도 김은일 대표를 힘들 게 하는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게임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김은일 대표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세운 전략은 말 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적으로 미리 꼼꼼하게 프리젠테이션을 제작해서 왜 게임사운드가 필요하고, 어떻게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눈으로 보여주는 방법이다.
"각 회사, 각 팀 마다 다 성향이 다른 것 같아요. 어떤 팀은 사운드에 굉장히 민감해서, 저희 쪽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반면, 어떤 팀은 완전 정반대이기도 하죠. 사실 계약 관계 상에서 저희가 을의 입장이다 보니 일정 이상의 어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서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런 사운드가 나온다며,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안을 많이 해요. 예전에는 인식이 거의 없어 다소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게임사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라 거의 80~90% 정도는 저희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주시곤 해요. 인정해주는 분위기죠."
결과물이 실제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은일 대표의 설명이다. 게임계는 아직 좁기 때문에, 입소문을 타 홍보가 굉장히 효과적이라. 가끔씩 너무 고맙다며, 밥까지 사주겠다고 칭찬할 때에는 이 일에 대한 보람을 크게 느낀다고 말하는 김은일 대표.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며 한숨을 짓는다.
"저희 게임 사운드를 개발할 때 필요한 부분을 각 게임사에 어필하는데, 조금만 지원을 해주시면 반대의 경우와 정말 극과 극의 사운드 퀄리티가 나옵니다. 대부분 실제 계약서에 있는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요. 하지만, 아직도 옛날 마인드라고 해야 하나요,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아요. 몇 개월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사운드 작업을 했는데 지스타에 가서 직접 게임을 해보니 다 빠져있고 효과음 하나만 들어있더라고요. 또 실제 게임사운드 제작에 들어가게 되면 테스트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계정과 클라이언트, 그 외 작업 툴 등등 필요한 것들을 적어서 개발사에 요청하거든요. 그런데 시일은 다 되가는데 그런걸 지원해 주지 않는 곳도 많아요. 그럴 때는 정말 힘이 빠집니다."
평소에 여가생활로 콘솔게임을 즐겨 한다는 김은일 대표는 최근 플레이 한 게임 중에서 최고의 음악 연출로 기어즈오브워2를 꼽았다. 패키지로 판매되는 콘솔게임들의 사운드적 완성도가 뛰어나 배울 점이 많다는 설명이다. 김은일 대표는 콘솔게임을 워낙 좋아해 콘솔게임 사운드 의뢰가 들어오면 무료로 해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콘솔게임들의 음악적 완성도는 저도 인정하지만, 이상하게 일본을 비롯해서 외국 게임은 그 퀄리티에 상관없이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요. 기술적인 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아마추어적인 부분이 자주 보이는데, 무작정 외국게임은 높게 생각하고, 한국 게임과 한국 게임 사운드를 낮게 보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죠. 그래서,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양방언씨를 비롯해서 걸출한 스타가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사운드가 많은 발전을 이뤄왔지만 아직까지 불모지나 다름 없어요. 아직도 왜 필요한 지 게임사운드 회사가 직접 게임사에 설득을 해야 하는 환경입니다. 정반대로 되어 있죠."
김은일대표는 올해 초 자체 게임사운드 아카데미를 열려고 했다가 일단 보류한 상태다. 국내에 사운드 제작 회사가 몇 개 없다 보니, 단순히 취업을 원하거나 이 방면에 한번 도전해보고자 하는 수강생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직종과는 다르게 배울 곳도 마땅치 않고, 게다가 배워야 할 것도 많다고. 그리고 가장 문제는 지망생들의 마인드란다.
"개발사 혹은 게임사운드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실력과 경험을 쌓은 후에 인정받아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일단 게임을 많이 해보고 이 소리를 어떻게 구현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부터 실제 프로그램 업무까지 배울게 상당합니다. 그래야 게임 제작에 필요한 리소스를 제작할 수 있으니까요. 어택모션, 아이들모션 등 각 모션에 맞는 음악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지식도 필요합니다. 게임 관련 지식을 두루 갖춰야 하죠. 그런데, 대부분의 이력서를 보면 본인이 만든 음악이라며 주제 없는 음악파일 딸랑 하나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회사에서는 이런 음악을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죠. 최소한 MMORPG라면 오케스트라 음악을 포트폴리오해서 보낸다든지, 해당 개발사사의 게임 영상을 캡쳐해서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보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즉, 회사에서 필요한 것을 파악하는 자세가 우선이죠."
김은일 대표는 게임사운드 회사 대표임과 동시에 회사 동료로 구성된 위시리스트 밴드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 중에 여성 보컬리스트는 이번에 출시될 메이플스토리DS 주제가도 불렀다. 내년에는 틈틈이 곡 작업을 해서 새 싱글을 발표한 후에 홍대에서 공연까지 할 계획이라고. 한 회사의 대표이자, 음악인이자, 우리와 같은 평범한 게이머이기도 한 게임앤사운드 김은일 대표. 이것이 바로 김은일 대표를 열렬히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게임사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효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끄고 다른 유행가를 들으면서 게임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효과음은 끄지 않죠. 즉, 필수조건이죠. 하지만, 아티스트로 기억되기 위해서 음악에 대한 꿈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OST는 아직도 많은 유저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음악은 아티스트로써 욕심 낼 수 있는 프로젝트죠. 일단 게임이 잘 되야 하고, 그 다음 유저들에게 충분이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작곡가와 유저간의 어떤 연결고리가 생길 수 있죠. 어려가지 궁합이 잘 맞아야 하겠네요.
아무쪼록 2009년 새해에는 저희가 사운드를 제작한 게임이 대박나서 게임사운드 쪽으로도 더욱 인정받고, 개인적으로 저희 밴드 음악도 덩달아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노력해야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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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