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의 직업으로 살아간다. 보통 각기 필요한 재능과 노력이 다른 이유도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다. 오늘 만나 본 사람은 하나의 직업이 아닌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영역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경우다. 그것도 법과 작가라는 섞이기 힘든 형태로 말이다.

시작은 이랬다. 추석 귀경길에 즐길 만 할 게임을 찾아달라는 피노 기자의 요청에, 테일즈 샵의 비주얼 노벨 게임 포춘 하모니를 추천했다. 추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모바일 팀 E모 기자(31, 남)가 늦은 저녁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이 게임을 하다가 눈물을 쏟았다며 읍소했다.'라는 메신저의 내용이 그대로 기사에 실렸다. 이 내용은 그대로 트위터로 퍼졌고, 포춘하모니를 담당한 작가, 로비스트의 귀에도 들어갔다.

솔직하게, 포춘하모니라는 게임을 재미있게 즐겼기에 작가가 누군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변호사라는 직을 가지고 있음에도 작가로 활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어떻게 두 가지의 직종 모두를 함께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동했다. 변호사와 작가,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개의 영역에서 어떻게 그는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직접 서초로 찾아가 포춘하모니 서재현 작가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E모 기자가 바로 접니다.


▲ 포춘하모니의 시나리오 및 기획에 참여한 서재현 작가


변호사이면서, 작가 , 서로 다른 영역에 발을 둔 이유는?



Q. 만나서 반갑다. 인벤 유저들에게 소개 부탁한다.

- 변호사이면서 작가인 서재현이라고 한다. 필명은 로비스트(LAWBEAST)를 사용하고 있다. 두 가지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 특이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부터 덕심을 잊지 못했고, 덕분에 지금 작가까지 하게되었다. 변호사, 작가 두 직업을 함께 하다 보니 주위에서 특이하다고 놀린다.


Q. 변호사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으면서 작가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가 궁금하다.

- 어렸을 때 친한 친구 세 명이서 공책에 소설을 돌려서 쓴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음... 한 명이 내용을 쓰면 다음 사람이 내용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그 때부터 였던 것 같다. 글 쓰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 시간이 흐르면서 잠시 잊었는데, 서브컬쳐를 접하면서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만화를 보면서, '내가 하면 좀 더 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기 어린 생각이지만, 이상하게 진짜 머릿속에 누군가가 찌른 것처럼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그래서 쓴 게, 공모전에서 수상한 '미스 포춘'이었다.

아무래도 변호사라고 하면, 법정에서 변호하는 업무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업무 말고도 연구나 자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아 송무에 관한 일이 아닌, 달리 법 지식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물론, 두 개의 직업을 다 잘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능력도, 변호사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고 싶다.


유저들에게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로 이름을 알린, 포춘하모니.






Q. 포춘하모니라는 작품의 시나리오 라이터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포춘하모니는 '불행소녀는 지지 않아!'라는 라이트 노벨 작품의 스핀오프 격 게임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배경이 불행소녀 이야기 2년 뒤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비쥬얼 노벨로 만들 예정이 없었다. 담당하는 편집장이 게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의견만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현재의 비쥬얼 노벨 방식이 아니라 캐릭터 어플리케이션을 생각했다. 스토리 라인도 처음에는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썼다. 음 쉽게 말하자면, 대화를 하면서 체험이 조금 동반되는 '러브플러스' 같은 형태를 지향했었다. 만드는 동안, 예산과 분량이 엄청 늘었다. 개발 기간도 1년 이상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획도 많이 바뀌었다. 아! 깜박했는데, 포춘하모니의 경우에는 '기획'에도 참여했다. 기획에 시나리오 다양한 방면에서 참여하다 보니 포춘하모니는 나에게 굉장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되었다.


Q. 포춘하모니에서 '행운'이라는 소재가 나온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발견했나?

공부하다가 나왔다. 정말이다. 회사법 파트에서 주주와 회사의 관게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가, 주주의 의무, 주식 배당, 주주총회 등의 개념을 보던 중 갑자기 소재가 확 떠올랐다. 여기서 공부하던 개념을 '행운'으로 옮겼더니 꽤 그럴싸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물론 소재는 이렇게 얻었지만, 정말 많이 수정을 거쳤다. 보통 소재를 찾기위해서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써본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골라 다듬어본다. 지나가면서 느낀 것을 또 기록하고, 적고. 반복이다.


Q. 포춘하모니는 마니아층에서 호평을 받았다. 혹시 후속작 계획이 있나?

당연히 준비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기획서를 드렸다. 이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수많은 비쥬얼 노벨 작품들이 있다. 그래서,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이야기보다, 새로운 느낌을 살리고 싶어 머리를 짜내고 있는 중이다.


▲ 공식 카페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포춘하모니
출처 : Tales# 공식카페


▲ 물론 트위터에서도 수많은 패러디가 나올정도로 인기다.



Q. 게임 기획은 완전 다른 분야인데 어렵진 않았는지?

정말, 진짜! 어려웠다. 글만 쓰던 사람이 기획이라는 두 글자를 들어본 적이나 있었겠나. 하나도 공부가 안된 상태였고, 여러 방면으로 자문을 많이 구했다. 처음인 만큼 기획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긴 시간동안 수없이 엎었다. 포춘하모니가 테일즈 샵 홈페이지에 등록되는 데 반 년, 또 만드는 데 반 년? 그정도 시간이 소모됐다. 개발이 반 년이 지나니까 홈페이지에 있더라도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더라(웃음). 그 시간 동안 라이트 노벨은 쓰지도 못하고... 머릿 속에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없는 것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 쌓는 것. 막연하고 답답했다. 기획이라는 게 진짜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내가 이런 게임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Q. 혹시 게임을 좋아하나?

좋아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임을 고르라면, 악튜러스를 꼽는다. 고전 게임인데, 할 때마다 스토리 텔링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판타지와 현대, 두 개를 섞는 게 굉장히 어렵지 않나. 더욱이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바뀌는 에피소드 표현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은 예전에는 던전앤파이터, 지금은 클로저스를 즐기고 있다. 사실 클로저스는 동인지를 써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지금도 즐기는 게임이 되었다. 최근에는 일이 많아서 접속을 많이 못 하고 있다.


Q.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와 작가, 두 영역에서 경험하면서 느낀 다른 점이 궁금하다.

일단 게임을 활용하면,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설명 부분을 화면의 전환이나, 캐릭터의 움직임으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동감도 살아난다. 설명하는 부분에 시각적인 부분을 투자해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고. 즉 이야기를 표현하는 부분을, 작가와 연출 담당자 두 명이서 나누어 분담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최고의 게임이라고 꼽은 악튜러스.
패키지 시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한 명작 게임이었다.



Q. 혹시 존경하는 작가나 시나리오 라이터가 있나?

고전 소설의 에드가 엘런 포우를 제일 좋아한다. 포우가 쓴 글은 다 좋아하지만,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어셔가의 몰락'를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또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정말 좋아한다.


Q. 작가인 만큼,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변호사라는 직업을 경험하면서,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봤다. 그래서 그런지, 콘텐츠 자체의 분위기가 어둡더라도 결국 인간은 착하다는 내용의 글을 계속해서 쓰고 싶다. 복수극이든, 혹은 암울한 분위기의 내용이더라도 결국 그 안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담긴 글을 말이다. 인간은 아직 사랑할 부분이 많다는 것. 이런 내용을 글로써 풀어내고 싶다.

변호사라는 직함보다 작가라는 타이틀로 불리고 싶다. 최근 편집장이 군더더기 없이 글을 쓰지만,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쉽게 말하자면, '개성'이 없다는 말이다. 주문받은 대로는 잘 쓰지만, 이외에는 한계가 있다고 최근 느끼고 있다. 거칠더라도 정제되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지는 작가. 그런 색을 띠는 작가가 되어, 대중에게 인정받고 싶다.


트위터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느낀 서브컬쳐 문화



Q. 라이트 노벨 작가에, 트위터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등, 서브컬쳐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서브컬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섣불리 말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내 생각만 정리해서 말하자면, 일본의 서브컬쳐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서브컬쳐의 문화 역사는 짧다. 짧은데 성장은 빨랐다. 보통 문화가 발생해서 정착하려면 대중을 설득하고 녹이는 과정이 필요한 데, 그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대중적인 문화 즉 메이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나?

솔직하게, 서브컬쳐가 흐르는 전체적인 구조는 나도 잘 모른다. 일개 창작자로서 활동한 부분을 덧대어 말하자면, 서브컬쳐의 중심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 매체가 존재하고, 조금은 취향을 타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대중에게 편안하게 인식되기 위한 요소는 분명히 있다. 바로 '서사'다. 캐릭터나 배경 등 사람들이 취향타는 요소를 뺀 '서사'를 보면 일반적으로 먹힐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에'한 요소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마니아들은 마니아들이 주가 되는 시장을 만들고 키운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적응하고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시장은 매우 한정적이다. 좀 더 큰 문화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받아 들일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고, 개척해야 한다. 특정 유저층을 바라본 캐릭터만으로 시장의 성과를 따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로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 최근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너의 이름은'는 일본에서 천만이 넘었다. 이러한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에는 분명, 극에 녹아낸 '서사', 즉 이야기가 수많은 소비자에게 공감을 샀기 때문일거다. 지금의 시장에 새로운 시장을 발견해 더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더욱 나은 문화로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출처 : http://www.kiminona.com/index.html(너의 이름은 공식 홈페이지)



Q. 작가로서 준비하고 있는 예비 작가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작가로서, 제일 중요한 건 계속 쓰는 거다. 최근 들어 더 크게 느끼는 부분인데 그런 거 있지 않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진짜 승리자라고. 작가를 준비하고, 또 글을 쓰다 보면 실망을 하고 떠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계속 쓰면서 마지막까지 글을 쓴 사람들, 자신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독자들의 바람에 부응하는 작가가 될 수 있고, 업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포춘하모니를 내면서 깨달은 건, 개발하면서 보낸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더니 내 글을 좋아하는 팬의 마음에 큰 배신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강조하고 싶다. 공부를 좀 더 해서 최고의 역작을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걸 말이다.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계속 고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한 페이지에 매달려 있는 것보다는 일단 쓰면서 고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끝을 내봤으면 좋겠다. 아마 끝을 맺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