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견문록②] 중국 e스포츠, 법은 바로 섰는가? - L.ACE 라이언 인터뷰
김병호 기자 (Haao@inven.co.kr)
지난 스프링 시즌, 중국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리그(LPL)는 포스트 시즌 4강전 몰수패라는 사상 최악의 사태를 겪었다. 프로게임단 QG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4강전, EDG와의 대결에서 미드 라이너의 부재를 이유로 몰수패를 당했다. QG는 'Mortred' 후앙지쿤의 부상으로 '다데' 배어진의 출전을 요청했으나 EDG는 '선수는 로스터에 등록 후 2주 후에 출전할 수 있다'는 LPL 규정의 의거하여 공식 항의했고 QG의 몰수패가 선언됐다.
이 사건을 보는 많은 사람이 프로게임단 내의 선수 간 불화에 주목했지만, 또 하나 눈여겨 봐야 할 점이 있었다. 바로 포스트 시즌 4강전이라는 큰 경기에서 몰수패가 선언될 만큼 중국 리그의 규정이 잘 지켜진 것이다. 경기가 규정대로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간 LPL 리그가 규정대로 이행하지 않은 일은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LPL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플레이오프 진행방식을 갑자기 바꾼 일도 있었고, 교체 선수가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기가 30분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 리그가 그동안 보여준 행적을 봤을 때, QG는 규정이 있다 해도 '다데' 배어진의 출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을 듯싶다. 그러나 QG는 몰수패를 당했다. 분명 최악의 사건이었지만, 중국 e스포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매우 긍정적인 일이기도 했다. 리그의 흥행보다 스포츠로서 공정한 규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국 리그가 그만큼 제도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뜻이었을까?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중요 요소인 '삼권 분립'이 잘 지켜지는 나라는 아니다. 중국은 공산당의 지도로, 행정부가 사실상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나라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는 국민의 생활과 의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중국의 인민들은 법보다 당을 무서워하고, 규칙을 지키면서 사는 것보다 현실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스포츠는 공정해야 하므로 규칙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e스포츠의 경우, '놀이'라는 인식을 지우고 정식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위해 다른 스포츠와 비교하더라도 꽤 엄격한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채팅과 관련된 규정을 보더라도 그렇다. 법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국이라 하더라도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정이 잘 지켜져야 한다.
중국 e스포츠의 제도와 규정이 궁금했다. 그래서 한국e스포츠협회(KeSPA)처럼 중국에도 이러한 단체가 있는지, 있다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단체는 LoL Association of China E-sports (이하 L.ACE), 중국 LoL e스포츠 연맹이었다. 이 단체는 2015년 5월, KeSPA와 함께 한-중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의 양국의 선수 보호와 리그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EDG 아론 코치와의 인터뷰를 치른 다음 날 오후, 예정된 인터뷰를 하기 위해 L.ACE의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로 향했다. 입구에는 L.ACE 주석(총책임자)인 라이언(Lyon)이 마중 나와 있었다. 30살이 조금 넘었을까? 한 연맹의 책임자치고는 굉장히 젊은 편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매체와의 인터뷰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사무실 입구, 정체 모를 트로피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사무실은 어두웠다. 복층이었고, 매우 넓었지만 잘 정돈된 회사 느낌은 아니었다. 사무실 내무 전경을 찍어도 되겠냐는 말에 라이언은 곤란해 했다. 총 몇 명이 근무하냐고 물으니 6명이 근무하고 있고, 지금은 자신과 또 다른 직원 두 명만 사무실에 있다고 했다. 그는 평소 업무가 사무실에서 하는 일보다 외부에서 하는 일이 더 많아 내부가 그리 정돈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뷰 장소인 회의실로 들어갔다. 흡연이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답게 테이블에는 재떨이가 있었다. 한쪽 벽면에 있는 화이트보드, 그 안에는 LPL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인터뷰에 돌입했다.
Q. 이 글을 읽는 독자를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L.ACE의 주석, 라이언이다. L.ACE는 라이엇과 텐센트가 대회 및 게임단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주로 선수와 관련된 규정과 생활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 1부 리그인 LPL과 2부 리그인 LSPL을 직접 관리하고, MSI와 월드 챔피언십에는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다.
Q. L.ACE라는 단체가 결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단체가 결성된 지는 벌써 3년이 넘었고, 햇수로는 4년 째다. 중국 e스포츠가 흥행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에는 KeSPA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중국에서는 e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관계자가 개인의 목적을 위해 일할 뿐, e스포츠 전체적인 입장을 관리해주거나 라이엇과 게임단 간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조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L.ACE는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Q. L.ACE라는 단체는 어떤 일을 하는가?
KeSPA는 e스포츠와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를 하지만 L.ACE의 경우는 LoL 종목의 선수와 경기만을 관리한다. 피파온라인과 관련된 업무는 F.ACE, 도타와 관련된 업무는 D.ACE가 관리하는 식으로 단체가 전부 나누어져 있다.
Q. 지난 3월, 중국 게임 업체가 e스포츠 연맹을 창립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L.ACE는 이 단체를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직접 연락을 하고 있는가?
들어본 적 없다.
Q. L.ACE안에 총 몇개의 팀이 속해 있는가?
총 28개 팀이 속했다. LPL과 LSPL에 참가하는 모든 팀을 관리하고 있다.
Q. 대학 리그나 여성리그 같은 아마추어 리그 관리는 누가 하고 있는가?
대학리그나 여성부 리그는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 대학생 리그는 텐센트가 직접 주관 및 운영을 하고 있다. 여성부 리그는 정식 리그는 아니다. 중국에서도 많은 한국 여성 LoL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부 팀은 프로게임단이 아니여서 직접 관리하지 못한다. 우리는 KeSPA와 같이 정부 인가 기관이 아니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게임 퍼블리셔인 텐센트가 리그 관리의 역할을 맡겼고 덕분에 선수 관리와 관련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Q. L.ACE가 활동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는 곳은 어디인가?
게임 퍼블리셔인 텐센트다.
Q. 승부조작과 관련된 이슈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다.
우리도 한국과 같이 승부조작과 관련된 이슈를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열심히 관리하고 있고 조사도 하고 있지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처리하기도 힘든 일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이런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게임단의 경우, 선수에게 주는 연봉이 이미 굉장히 많고 상금도 많아서 승부조작에 참가할 이유가 크지 않다.
Q. 중국에도 e스포츠와 관련된 배팅 사이트가 있는지 궁금한데?
중국 내에서는 배팅 사이트 운영이 불법이라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를 경유해서 들어오는 배팅 사이트는 존재하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Q. EDG의 아론 코치는 중국에서 프로게임단 창설이 지나치게 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프로게임단을 창설하는 것은 두 가지 결정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LoL 전체의 분위기와 현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요소는 텐센트와 라이엇의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 아론 코치의 의견은 이해한다. 프로게임단을 지나치게 쉽게 만들면 경쟁도 심해질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모든 팀의 매니저들이 함께 회의를 통해 상의하고 결정한다.
Q. L.ACE는 중국 정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 정부와는 아무 관련이 없기에 KeSPA가 하는 일을 우리가 하지 못하기도 한다.
L.ACE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의 e스포츠 단체는 아직 발전 단계에 있고, 꽤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통합된 협회나 연맹은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있다 하더라도 L.ACE, D.ACE, F.ACE 등 각 단체를 모두 아우르는 영향력을 가지진 못했다.
각 종목별 단체는 대회 선수관리와 운영에 대해 제한적인 권리만을 양도받았다. 아론 코치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듯 L.ACE는 선수들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고, 선수들의 이적과 로스터 등록 등의 업무에 관여했다. 아마추어 리그 관리는 게임사를 통해 이루어졌고 L.ACE는 정부와 아무런 연관이 없이 게임 퍼블리셔인 텐센트와 프로게임단의 필요(특히 선수 이적에 관련된 업무) 때문에 창설된 단체였다.
무엇보다 직접 L.ACE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보니 과연, 이런 환경 속에서 L.ACE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리그가 시작되는 기간이었음에도 사무실은 한가했고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e스포츠 리그의 단체가 이러하니 다른 e스포츠 종목의 연맹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게 느껴졌다.
L.ACE와 인터뷰를 마치고 중국 e스포츠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L.ACE의 제한된 역할에 대하여 아쉬움을 토로하자, 그는 창설된 지 15년이 넘고 e스포츠와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KeSPA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QG의 몰수패를 선언한 것도 L.ACE가 아니었다. 대회 주관인 라이엇과 텐센트가 함께 내린 결론이라고 전했다.
라이언과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시사했고 몇 가지는 매우 예민한 문제였다. 무엇보다 L.ACE라는 단체의 존재는 자연스레 KeSPA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뒤로한 채, 다음 일정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짧은 일정 속에서 만나야 될 사람이 많았다.
다음화 예고 : [중국견문록③] - 중국으로 향한 두 명의 스타 PD - 원석중, 위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