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개인적으로 그냥 최고의 게임을 뽑으라면 여러가지 고민이 있겠지만, '최고의 공포 게임' 을 뽑으라고 하면 거리낌없이 내세울 수 있는 게임이 하나 있다. 바로 '암네시아'로 유명한 프릭셔널 게임즈가 만든 'SOMA'가 그것이다.

사실, SOMA를 그저 평범한 공포게임으로 치부하는 것은 여러모로 이 게임에게 손해일 것이다. SOMA는 지난해 출시된 스토리 중심의 게임 중에서 최고급의 내러티브를 보여주었고, 동시에 굉장히 진중하며 우리에게 밀접한 주제를 게임에서만 가능한 서사를 통해 던져놓았다. 그렇게 SOMA는 굉장히 영리하고, 날카로운 공포게임이 되었다.

그런 프릭셔널 게임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터. GDC 2016에 마련된 그들의 강연장은 북적이는 인파로 가득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토록 현실적인 공포를 만들어 내는 법' 이었다. 심리의 기저를 자극하는 공포에서는 이제 베테랑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강연자 토마스 그립(Thomas Grip)




먼저 암네시아를 만들던 때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당시 게임을 만들면서 여러가지 사회적 실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를테면 사람을 강제적으로 발전시키고, 진화시키려고 했던 여러가지 비과학적이고 폭력에 가까운 실험들 말이다. MK 울트라 같은 것이라 할까. 그런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샤이닝'에서 멀쩡하던 잭 니콜슨이 미쳐가듯, 그런 광기의 과정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암네시아'를 발매하고나서 이러한 내러티브에 대한 반응을 기대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저들의 반응은 공포감에 몰려있었고 이러한 스토리 내러티브를 우리가 만족할 만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더 시네마틱하고, 전달력 좋은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그때 공동 창립자 중 한명이 제안한 것이 있었다. 바로 깊은 바닷속, 딥워터에서의 호러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당시 생각하던 소재는 바로 병 속의 뇌, 인간의 자아 같은 것이었는데, 이 두가지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바로 SOMA의 기본 소재가 잡혔다.


몇가지 기본 컨셉을 잡았는데, 플레이 반복 요소가 없을 것, 복잡한 플레이 메카닉을 배제할 것이었다. 그리고 공포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호러 요소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어찌됐던, SOMA의 기본 컨셉이 너무나 좋았기에 디테일하게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디테일을 파고 들어갈 수록 조금씩 이상해져갔다. 전반적으로 그냥 물 속의 '암네시아'가 되어 갔달까? 그래서 조금 일찍 몇가지 조사를 하며 모델을 수정해 나갔다. 그래서 여기서 많은 도움이 된 것이 '더 차이니즈 룸'과 '헤비레인' 같은 게임들이었다. 이를 통해 현재 SOMA의 컨셉트를 잡았다.


그 다음 고려한 것은 바로 현실감이었다. SOMA의 주제, 내러티브 상 유저가 현실감(Presence)을 느끼고 실제로 게임 안의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게 중요했다. 특히, 게임의 주제 상 세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몸' 안에 유저가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했다.

이런 현실감을 위해 몇가지 규칙을 정했다. 1. 연속적인 입력, 2. 현실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동작의 과정, 3.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메카닉, 4. 최소한의 제약, 5. 재현할 수 있는 동작. 이런 것들은 전반적으로 게이머가 게임 속에서 현실감을 느끼기 위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규칙을 정하고 나니 숨겨진 장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들을 결정하고 필터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퍼즐에서의 고민도 있었다. 처음에 많은 퍼즐을 투입했었는데, 플레이 테스트에서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퍼즐임을 바로 인식하고, 풀도록 동기부여를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래서 좀 뜯어고쳤다. 이른 바 4레이어 접근법이라는 것을 응용했다.


게임의 한 부분에서, 게이머는 장소의 동력원을 복구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퍼즐은 내러티브가 시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이머들은 로봇과 대화를 하고 싶어하게 되고, 그 때문에 전원을 복구시키는 퍼즐을 풀게 된다. 단순히 퍼즐을 던져놓는게 아닌, 내러티브적인 이유를 통해 제시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요소가 이렇게 내러티브와 연결되어 있다. 유저의 선택, 각종 다이얼로그 시스템 등 전반적으로 내러티브와 소재의 전달을 위해 신경을 쓴 부분이 많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며 또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개발 기간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SOMA를 만들고 이것으로 첫번째 테스트를 진행하기 까지 2년 반이 걸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2번째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수정할 것이 많았고, 이런 것을 반영하는 것만으로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테스트와 QA과정은 개발의 가장 막바지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개발 기간이 너무 길어진다면, 게임을 만들어나가면서 생기는 팀간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은 늘어나고, 개발자들의 확신은 줄어든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교훈 세가지는 이렇다. 먼저 1.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긴 기간동안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게임 개발의 과정에는 중간중간 조사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미리 조율할 것이 많다.

다음으로 2. 만약 당장 게임의 비전이 확실하지 않다면, 게임을 개발하는 팀 구성원 모두가 이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하고 심적인 대비를 하도록 해라. 보다 구체적으로 개발 과정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3. 가능한만큼 빨리 게임 내 각 요소들을 플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라. 플레이를 하면서 직접 피드백을 주고 받아야 개발의 속도가 빨라지고 큰 진전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