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때, 기가 막힌 소재를 찾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5 LoL 올스타에 다양한 이벤트 매치가 기획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기사를 작성하던 중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Tandem 모드 체험기!
Tandem 모드는 라이엇 게임즈에서 준비한 색다른 이벤트 전으로, 하나의 챔피언을 두 명이 조종하는 경기 방식이다. 말 그대로 한 명은 마우스만, 한 명은 키보드만 조작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실제로 Tandem 모드를 일반인 두 명이 플레이하면 어떤 사달이 벌어질 것인가? 궁금하지 않나?
★ Tandem 모드를 즐기려면?
- 평소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한 명 섭외한다.
(LoL을 할 줄 알고, 나보다 싸움을 잘 못할 것 같은 친구여야 한다.)
- 어깨를 맞대고 앉아 LoL에 접속한다.
- 파이팅! 을 외친다.
- 평소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한 명 섭외한다.
(LoL을 할 줄 알고, 나보다 싸움을 잘 못할 것 같은 친구여야 한다.)
- 어깨를 맞대고 앉아 LoL에 접속한다.
- 파이팅! 을 외친다.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실전만이 남았을 뿐! 기왕 체험기를 작성하기로 했으니 재미있는 장면이 자주 나와야 하지 않겠나. 동료 기자와 고심한 끝에 미드 라인에 가기로 했다. 챔피언도 스킬에 '논타게팅'이 많고 스킬 콤보가 중요한 빅토르를 선택하기로 했다.
원하는 라인과 챔피언을 차지하기 위해 '편리한 팀 구성' 모드로 들어가 팀원들이 모이길 기다렸다.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합을 맞추는 사이, 우리와 고통(?)을 함께할 동지가 모두 모였다. 이 자리를 빌려 경기 내내 마음고생 했을 네 명의 팀원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드디어 챔피언들이 우물에 소환됐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차분히 아이템을 구매했다. 급한 마음에 마우스를 잡은 상태로 키보드에 P 버튼(상점)을 누르려 하자, 동료 기자가 가로막았다. 키보드는 자신의 몫이라나.
빅토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죽음의 광선'이다. 일명 레이저, 혹은 지이이잉. 뭐가 됐건 이걸 잘 맞춰야 빅토르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동료 기자와 눈이 마주쳤고, 묘한 미소가 오고 갔다. 서로의 합을 확인해 볼 겸, 허공에 '죽음의 광선'을 작렬했다. 그 결과, 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레이저가 발동됐다!
하지만 기껏해야 허공에 레이저 한 번 쏴봤을 뿐이다. 다른 개인 업무들도 있기에 연습 한 번 해보지 않고 곧장 실전에 나선 상황. 아직 라인전이나 한타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 모를 여성 성우분이 미니언 생성이 시작됐다고 알려줬다. 야속한 사람.
라인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생각보다 라인전에서 딜교환이 잘됐다! 마치 혼자 플레이한 것만 같은 유기적인 움직임이 이어졌다. CS도 잘 챙겼고, 딜교환도 계속 좋았다. 상대 카서스 유저에게 "사실 우리는 둘이서 조종하는 중"이라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다른 동료 기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어느샌가 기쁨과 환희에 가득한 감탄사를 내지르며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경기가 술술 풀렸다. 위기에 처한 아군 정글러를 빠른 합류로 살려내는 등 다른 팀원과의 호흡도 좋았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우물로 귀환하는 정글러 덕분에 살짝 무안하긴 했지만, 우리 역시 쿨하게 웃어넘겼다. 도움을 받은 람머스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미드 라인에 나타나 상대 카서스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전할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다시 라인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원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조금씩 딜교환에서 우위를 점했던 우리는 상대 카서스를 아무런 도움 없이 쓰러뜨렸다! 솔로킬. 감격의 순간이었다. 빅토르와 카서스의 라인전 상성 같은 건 잠시 잊자. 두 명이서 하나의 챔피언을 조종하기 때문에 생각한 타이밍과 원하는 장소에 스킬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도무지 두 명이 함께 조종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스킬 활용과 적중률, 상대 주력 스킬을 피하는 '점멸' 활용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둘은 어느새 하이파이브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2015 LoL 올스타전에서 Tandem 모드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훗. 보고 있나, 페이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그들의 팀워크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쁨의 탄성을 내지를 때마다 등 뒤에 꽂혔던 동료 기자들의 눈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이것이 우리의 본래 실력이었던 걸까. 조금이라도 다급한 상황이 오면 우리는 우왕좌왕 헤매기만 했다.
LoL은 1:1 라인전만 이어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상대 정글러의 날카로운 갱킹이 조금씩 이어지면서, 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마우스를 잡은 자는 도망가려 하고, 키보드는 잡은 자는 스킬을 난사하려 했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물은 처참했다. 다음은 저질렀던 실수 중 가장 시력 감퇴가 덜할 것 같은 장면이다.
뭐... 두 명이 하나의 챔피언을 조종하는데 이 정도 실수는 당연하지 않겠나. 빠르게 잊기로 했다. 하지만 상대 리 신 정글이 모든 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경기는 점점 상대 팀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의 어깨는 '패배'라는 두 글자가 가진 무거운 중압감에 아래 쪽으로 쳐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상대 리 신이 봇 라인 갱킹으로 우리 팀 봇 듀오를 박살냈다. 빠르게 화면을 넘겨 보니 상대 리 신의 체력이 바닥이었다. 우리는 두 눈을 마주쳤고, 뜻이 통했다.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을 재빨리 움직여 봇 라인으로 향했다. 과감한 봇 라인 로밍! 제대로 성공했다. 하하하. 물론, 타이밍이 조금 늦긴 했지만...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카서스는 계속 성장했고, 상대 리 신과 미스 포춘은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해졌다. 안그래도 둘의 호흡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경기까지 불리해지자, 우리의 멘탈을 빠르게 상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참담해서 기사에 첨부하기도 힘든 장면들을 다수 연출했다. 어느덧 어깨에 올려진 동료 기자의 손은 내 뒷목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아니, 이게 내 탓인가!
흔히 LoL은 멘탈 게임이라고 한다. 혼자서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둘이서 하니 정말 뼈저리게 실감났다. 우리 둘의 팀워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중력장'은 계속 아무 상관 없는 지역에 깔렸고, '죽음의 광선'은 맨땅에 궤적을 남겼다.
조금씩 말이 없어지기 시작할 때 쯤, 대형 사고가 터졌다. 미드 라인으로 복귀하던 중에 상대 리 신의 '음파'가 정확히 빅토르의 몸에 꽂혔다. 우리가 홀로 남았음을 인지한 리 신은 곧장 날아왔다. 당황한 우리는 LoL 역사상 오래도록 남을 법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우왕좌왕. 움찔움찔. 이제 머릿속에는 분노가 아닌, 허탈감만 남았다. 허허허. 둘의 입에서 해탈한 듯한 너털웃음이 튀어나왔다.
고의 트롤이나 이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동료 기자와의 호흡에 문제가 있었을 뿐. 네 명의 팀원들은 우리가 뭐라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대기실에서 나가 버렸다. 분노보다 무서운 것이 침묵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동료 기자가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말해준다고 해놓고 몇 번이나 그냥 눌렀다. 그럼 뭐... 마우스만 잡고 있는 상황에서 더 뭘 해줘야 한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Tandem 모드의 규칙에 따라 한 경기를 마친 소감은, 이건 정말 제대로 된 '우정 파괴' 모드라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분명 '꿀잼'이겠지만, 정작 플레이하는 선수들은 엄청난 트롤을 선보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나? 경기 도중에 서로의 멱살을 부여잡는 선수들이 나올지도.
desk@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