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LoL 챔피언스(이하 롤챔스) 스프링 플레이오프가 4월 24일,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졌다. 플레이오프의 대진은 CJ 엔투스와 SKT T1. 이 대진은 그야말로 팬들이 그리던 꿈의 대진이었다. 2012년을 주름잡으며 기적을 써내려 간 CJ 엔투스. 2013년을 지배한 '최강'의 상징, SKT T1. 부진을 딛고 나란히 부활한 양 팀의 대결은, 대진이 확정된 순간부터 팬들을 흥분시켰다.
많은 스포츠에서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경기가 의외로 싱겁게 끝나는버리는 일은 드물진 않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양 팀은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엄청난 경기를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역대급 경기. 플레이오프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최고의 명장면을 되짚어보자.
■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치열하게 싸우는 양 팀
팬들의 엄청난 관심 속에서 시작된 1세트. 먼저 포문을 연 것 SKT T1이었다. SKT T1은 초반부터 맵을 폭넓게 활용하며 시야를 장악, 로밍온 '매드라이프' 홍민기를 잡아내며 선취점을 따낸다.
하지만 CJ 엔투스의 반격은 매서웠다. SKT T1이 좋았던 것은 딱 선취점을 따냈을 때 까지. CJ 엔투스가 매서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샤이' 박상면이 있었다. 샤이는 한타가 펼쳐 질때마다 좋은 타이밍에 합류하여 CJ 엔투스를 승리로 이끈다. 샤이의 활약은 CJ 엔투스의 플레이에 활기를 부여했고, CJ 엔투스가 경기 주도권을 쥐고 나갈 수 있게 했다.
샤이의 멋진 플레이 속에 경기는 CJ 엔투스가 리드해 나간다. 톱니바퀴가 맞아 돌아가듯 정교한 플레이를 펼치는 CJ 엔투스와는 달리, SKT T1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교전에서 크게 패하진 않았지만,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주요 포탑을 하나씩 내주었다.
SKT T1에게 불리했던 경기. 그러나 SKT T1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경기 시간 26분, 샤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 '마린' 장경환의 헤카림이 벼락같은 이니시에이팅을 연다. 수적 열세의 CJ 엔투스였기에, 자칫 승기를 내어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CJ 엔투스의 대처가 빛났다. 좋은 포지션을 잡고 있던 헤카림에게 우르곳의 궁극기를 적중시켜 위치를 바꾸고, 침착하게 카이팅하며 샤이가 올 시간을 번다. 그리고 '주인공 타이밍'에 합류한 샤이가 쿼드라 킬을 따낸다.
이렇게 1세트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마린이 반격하며 더블 킬을 달성한다.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SKT T1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벌어진 격차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고, 1세트는 CJ 엔투스의 승리로 끝났다. CJ 엔투스와 SKT T1이 펼친 격렬했던 싸움.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플레이오프가 어떻게 흐를지를 암시하는 한타였다.
■ 관록을 보여주다. 앰비션과 벵기, 두 영웅의 귀환!
1세트 승리로 탄력이 붙은 CJ 엔투스. 하지만 언제나 기세라는 것은 불안 요소다. 기세가 올랐을 때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패배하게 된다면 올랐던 기세만큼 거꾸로 떨어지게 된다. 기세를 컨트롤 하는 것, 다전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 기세를 컨트롤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은 실력이 좋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 세트가 아니라 경기 전체를 읽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관록이다. 그리고 CJ 엔투스에는 그 중심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앰비션' 강찬용이 있었다.
2세트, SKT T1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자신들의 에이스, '페이커' 이상혁을 투입한다. 최고의 미드라이너의 투입. 분위기 반전을 위해 SKT T1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다.
CJ 엔투스로서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페이커는 분명 위협적인 선수다. 하지만 SKT T1이 낸 이 회심의 카드를 제압해낸다면, 결승 진출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2세트는 더욱 중요했고, 이 사실은 백전노장인 앰비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앰비션은 SKT T1의 정글러 '톰' 임재현을 압도했다. 사실 톰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정글러다. 풀리그 경기 중 톰이 출전한 경기는 모두 SKT T1이 승리했다. SKT T1이 보여주었던 리그 후반기 뒷심은 톰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만큼은 아니었다. 큰 무대에 강한 앰비션은, 그 관록의 힘을 게임에서 증명해냈다.
앰비션의 활약을 바탕으로 2세트마저 따낸 CJ 엔투스. 이미 게임의 기세는 CJ 엔투스로 넘어왔다. 세트 스코어 2:0. CJ 엔투스가 SKT T1을 궁지로 몰아붙였다.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인 페이커도 통하지 않았다. SKT T1의 입장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이젠 기적을 꿈꿔야 하는 SKT T1. 분명 쉽지 않아 보였다. CJ 엔투스의 기를 꺾기 위해선, 선수들의 '각성'정도론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SKT T1에겐 히든 카드가 남아있었다. 바로 2013 LoL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한, SKT T1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벵기' 배성웅이 말이다.
CJ 엔투스가 승리한다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3세트에 긴급 투입된 벵기. 사실 팬들은 이러한 결정을 내린 SKT T1의 의도에 대해 의문을 표했던 것도 사실이다. 벵기는 분명 좋은 정글러지만, 시즌 막바지에 보여준 톰 정도는 아니었다. SKT T1이 궁지에 몰리자 궁여지책으로 벵기를 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SKT T1은 분명 벼랑 끝에 섰다. 하지만 벵기는 웃었다. 분명 위기였지만, 그는 이러한 위기를 몇 번이나 극복해왔다. 지금 자신과 SKT T1이 쳐한 이 상황도, 과거에 그가 넘어왔던 시련 중 하나일 뿐이었다.
3세트 시작 역시 CJ 엔투스가 좋았다. 한 번 오른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상승세의 중심인 앰비션은 카운터 정글링을 성공하고, 선취점을 따내는 갱킹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SKT T1엔 벵기가 있었다. 벵기는 날카로운 미드 갱킹을 성공시킨다. 페이커와 벵기, SKT T1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두 선수의 합작. 그들이 만들어낸 이 플레이는, 분명 1킬 이상의 값어치가 있었다. 이것은 SKT T1의 반격을 알리는 일격이었다.
벵기의 활약 속에 SKT T1의 플레이가 활기를 되찾는다. 페이커는 2세트의 부진을 털어내는 듯,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고, 마린 역시 과감한 플레이로 이득을 챙겨간다. 봇 듀오까지 각성한다. '울프' 이재완은 정확한 사형 선고를 선보인다. 그리고 '뱅' 배준식은 그동안 봉인해두었던 자신의 공격성을 개방한다. 특히, 뱅의 공격적 플레이가 살아난 것은, 이후 펼쳐진 게임에서도 크게 작용한다.
경기 시간 22분. 벵기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영리한 플레이를 펼친다. 다소 무리해 보이는 플레이로 CJ 엔투스의 챔피언들을 유인,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설계한다. 그리고 이 플레이는 3세트 승리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 듯, 다전제에서 기세를 컨트롤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하늘 높은 줄모르고 치솟았던 CJ 엔투스의 기세를 그대로 바닥을 치게 만든 SKT T1. SKT T1의 3세트의 승리는 플레이오프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벵기였다.
■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가 만드는 최고의 명승부!
경기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앞서나가고 있는 CJ 엔투스가 오히려 쫓기는 듯 했다. 그만큼 SKT T1이 3세트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대단했다.
4세트는 SKT T1의 리드 속에서 시작된다. 이번에도 그 중심엔 벵기가 있었다. 벵기는 연이어 갱킹을 성공하고, 이후 펼쳐진 교전에서 큰 이득을 올린다. 3세트에 이어 4세트에서도 기세를 타는 쪽은 SKT T1이었다.
이제 따라가는 쪽은 CJ 엔투스가 되었다. 기세를 내줬기에 움츠려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적극적인 플레이로 상황 반전을 꾀한다. 그리고 '코코' 신진영의 직스가 분위기 반전을 만들어낸다.
코코는 외로웠다. 벵기가 적극적으로 페이커를 지원했던 것에 비해, 엠비션은 맵을 폭넓게 활용하는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코는 그런 견제 속에서도 자신의 몫을 해낸다. 끝까지 미드 포탑을 내어주지 않고, 교전에도 적극적으로 합류한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CJ 엔투스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한 코코의 직스였다.
팽팽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4세트. 전체적인 챔피언 성장의 정도는 SKT T1이 좋았지만, CJ 엔투스 역시 코코의 직스를 중심으로 끈질기게 버티고, 집중력있는 한타를 펼쳤다. 승부의 무게추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코코의 수비는 견고했다. 견고한 수비 라인을 뚫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운영을 통해 허점을 파고드는 법. 일반적으로 수비력이 뛰어난 팀을 사용할 때 프로 팀이 펼치는 패턴이다. 두 번째는 수비력보다 더 강한 공격력으로 견고한 방패를 뚫어 내는 것이다. SKT T1이 선택한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이었다.
경기 시간 33분, 페이커가 잘릴 위기에 처한다. 페이커가 CJ 엔투스의 진형에 너무 깊숙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CJ 엔투스는 페이커를 끊어내기 위해 움직인다. 그렇게 한타는 펼쳐지고, 양 팀 모두 집중력있게 한타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이 한타를 종결한 것은 뱅이었다. 뱅은 한타 도중 CJ 엔투스의 백 포지션을 차지했고, CJ 엔투스의 챔피언을 쓸어 담는다. 뱅의 과감한 공격성이 잘 나타난 플레이었고, SKT T1에게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게 만드는 플레이기도 했다.
이대로 경기는 SKT T1이 굳힐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CJ 엔투스의 방패는 아직 뚫리지 않았다. 코코는 직스의 정수를 보여주며 CJ 엔투스에게 경기를 지속할 힘을 보여준다. 경기 시간 44분, CJ 엔투스는 역전을 위해 과감한 바론 사냥을 시도한다. SKT T1 역시 이 상황을 보고 있었고, 그렇게 한타가 펼쳐진다.
양 팀 간의 성장 차이는 분명했다. 특히 뱅의 엄청나게 빠른 성장은 CJ 엔투스 입장에서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코코가 환상적인 스킬 활용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 포킹의 정확도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빛났던 것은 직스의 E 스킬을 활용한 진로 차단. 이 플레이는 SKT T1 진영의 붕괴를 만들어냈고, 불리했던 한타를 역전하게 만든다.
한타는 CJ 엔투스의 승리. CJ 엔투스는 바론까지 획득한다. 하지만 SKT T1도 물러서지 않았다. 잔여 챔피언들이 드래곤을 차지하며 드래곤 5스택을 달성한 것이다. 승리의 보증 수표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5스택을 달성한 SKT T1. 한타 패배의 영향은 그리 커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드래곤 5스택의 압도적인 힘도, 코코를 중심으로 결성된 CJ 엔투스의 단단함을 뚫지 못한다. CJ 엔투스는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위험한 타이밍을 넘긴 후, 오히려 한타에서 SKT T1을 압도한다. 글로벌 골드 격차는 여전히 컸지만, CJ 엔투스의 선전으로 인해 이제 경기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경기는 코코라는 최강의 방패를 보유한 CJ 엔투스와, 뱅이라는 최강의 창을 보유한 SKT T1의 대결 구도로 좁혀진다. 어느 한쪽이 무너져야 경기가 끝난다.
더 강한 것은 뱅의 창 끝이었다. 뱅은 살얼음 판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듯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AD 캐리임에도 팀의 최전방에서 상대 진형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승부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한타에서, 그는 과감하게 앞으로 파고든다. 뱅의 날카로운 창 끝에 CJ 엔투스의 방패는 버틸 수 없었고, 이 치열했던 경기의 승자는 SKT T1이 된다.
■ 마무리는 페이커가! 숨막혔던 경기의 승자는 SKT T1
최고의 승부를 펼쳤던 양 팀. 경기는 블라인드 매치로 펼쳐지는 5세트까지 이어졌다.
4세트에서 모든 힘을 쏟았던 탓일까? 5세트는 일방적이었다. SKT T1이 강했다. 벵기의 갱킹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뱅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벵기와 벵의 활약 속에, 경기는 빠르게 SKT T1쪽으로 기울었다.
사실상 승부는 결정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내느냐 정도였다.
벵기와 뱅의 재발견은 결승을 준비하는 SKT T1에게 분명 큰 수확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바로 페이커의 활약이 그것이다. 페이커는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못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벵기와 뱅이 엄청난 모습을 보여 주었다곤 하나 SKT T1의 에이스는 페이커다. 결승전까지 이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페이커의 활약으로 경기를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5세트 경기에서 페이커가 선택한 챔피언은 르블랑. 르블랑은 페이커에게 있어 분신과 같은 챔피언이다. 페이커는 아직 롤챔스에서 르블랑으로 패한 기록이 없다. 분명 승리할 확률이 높은 카드지만, 패했을 경우 페이커가 입는 대미지도 클 것이 분명했다. 가장 믿었던 카드가 무너지는 격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페이커의 르블랑은 차원이 달랐다. 플레이오프에선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르블랑 만큼은 아니었다. 환상적인 플레이는 여전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게임을 지배했다. 경기 막바지엔 쿼드라 킬까지 달성한다. 그렇게 경기는 페이커의 대활약속에 마무리된다. SKT T1이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이다.
경기는 끝났다. 시합인 이상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다. SKT T1은 승리했고, CJ 엔투스가 패했다. 하지만 이 경기는 결과 한 마디로 정리 할 수 있는 그런 경기가 아니었다. 양 팀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내었고, 그것은 롤챔스의 역사를 장식할 최고의 명승부가 되었다.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양 팀에게, LoL과 롤챔스를 사랑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큰 박수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결승전에서도 플레이오프 못지 않은 최고의 명승부가 다시 한 번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