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이라는 단어는 게이머들에게 이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잡았다. 일던, 파던, 인던 등 게임을 하다 보면 각종 줄임말까지 심심치 않게 듣고, RPG하다 보면 파밍하러 다니는 일종의 숙제 공간 같은 인상이 짙기도 하다. 물론 좀 더 근본적으로 지하 감옥, 미궁의 이미지를 살려서 무시무시한 괴물들이나 각종 함정들을 배치하기도 하지만, 어찌저찌 혼자 대처할 수단을 마련해주거나 아니면 PVP를 섞어서 다른 방식의 파밍을 유도하기도 해왔다.
특히 특정 구간 내에서 탈출구를 찾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생존 경쟁하는 '익스트랙션'이라는 룰을 더한 게임이 글로벌로 관심을 끌면서 '던전'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는 멀티플레이 게임들이 늘었다. 그러나 국내 인디 개발사, 그루비 모아이가 지난 6일 얼리액세스로 선보인 '던전 던'은 좀 달랐다.
게임명: 던전 던
장르명: 익스트랙션
출시일: 2024. 12. 6.
플레이 버전: 얼리액세스 빌드개발사: 그루비 모아이
서비스: 그루비 모아이
플랫폼: PC
플레이: PC
'진짜' 일반인이 느끼는 던전의 공포
스켈레톤, 미믹, 함정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던전을 탐험하러 가는 게임 중 '평범함'을 내건 게임은 사실 그렇게 드물지는 않다. '평범한 마법사, 도적, 용병이 파티를 짜서 하드코어하게 던전을 필사적으로 도는 게임'하면 이미 머리에 몇몇 작품이 떠오르곤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던전 던'은 그보다도 더 평범한 일반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마법사, 도적, 용병은 스킬도 있고 하다못해 잡몹 하나는 잡을 무기도 있지만, 여기의 '스캐빈저'는 말 그대로다. 썩은 사체를 먹어치우는 청소부 같은 동물들을 일컫는 그 단어처럼, '스캐빈저'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먹고 살기 급급해서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에 뛰어든 일반인이다. 그것도 칼 한 자루 없이, 최대한 보물을 많이 긁어오기 위해 횃불과 랜턴 그리고 몽둥이나 밧줄 정도 들고 가는 게 전부다.
왜 굳이 그렇게 가는지는 작중에 뚜렷하게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처음 프롤로그에서 대강 뉘앙스는 설명하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 급급한 나머지 결국 스캐빈저 길드에 들어가 기약 없는 탐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스캐빈저 길드에서 던전 탐사하는 일은 죽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조차 허용되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또 어딘가의 던전을 돌며 돈을 벌어야만 한다. 아니면 피 같은 돈을 지불해서 던전을 추가로 돌며 어디 있을 노획물을 찾아야 한다.
'죽음'이 없다는 말 때문에 긴장감이 다소 덜할지 모르겠다. 통상 평범한 일반인들이 던전을 탐사하는 게임은 '죽음'의 무게감을 강조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던전 던'은 조금 달랐다. '던전 던' 얼리액세스에는 '탐욕의 던전'과 '이교도 사원' 두 구역이 플레이 가능한데, 이미 다 탐사가 끝나서 폐허가 되어버린 던전임에도 위험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예 처음부터 위험한 게 가득했던 것보단 나으니 가볍게 들어가지만, 발을 들이민 순간부터 '던전'의 공포가 서서히 피부로 느껴진다. 뭔가 조악해보이는 던전 입구의 마법진에 피식 웃었지만, 그 뒤에 바로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는 어두컴컴한 던전은 쉽사리 발을 들이밀기 어렵게 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횃불이나 랜턴 불빛에 개도 못 잡을 것 같은 부실한 나무 몽둥이는 도통 의지가 되질 않았다.
그나마 휘두르는 액션이라도 있고, 달리기는 나름 빠른 편이라 어중간한 몹은 소위 '와리가리컨'으로 대처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 걸 막으려고 했는지, 복도나 방이 굉장히 좁은 구간도 많았다. 게다가 바닥도 함정이 아니더라도 울퉁불퉁한 구간도 많아서 이동할 때 살짝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있는데, 평범하게 갈 때는 번거로운 정도였다가 몬스터가 갑자기 등장해서 당황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발목을 잡는 듯한 공포를 더했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스켈레톤, 미믹 같이 흔한 존재들이라 처음 겪기 전에는 당황하지 않을 것 같지만, 던전이 원체 어둡고 시체도 많아서 그 사이에 숨어있다 기습하는 스켈레톤의 공격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미믹도 상자가 거의 다 열리고 뭐가 나올 거 같은 타이밍에 탁, 입을 벌리고 공격하는 등 점프스케어를 위한 타이밍의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예상하면서도 한 끝이 안 맞아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에게 익숙해졌을 무렵, 탈출로를 찾아서 좀 더 들어가다 보면 던전 던의 마스코트(?)격인 사람 얼굴의 거미 몬스터에 누더기 골렘 저리가라 할 정도로 흉측한 괴물까지 끔찍한 형체들이 달려드는 일도 잦아진다.
그것보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건 '도플갱어'였다. 누가 헐레벌떡 뛰어오길래 몬스터가 오는 건가? 싶어 봤더니 파티원이었다. 그런데 그 파티원이 갑자기 뒤를 도는 순간 뒤통수를 횃불로 두들겨 팼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익숙한 혹은 온갖 흉측한 몬스터만 생각하다가 파티원의 도플갱어가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몹보다 달리기도 빨라서 떨쳐내기도 쉽지 않고 집요해서 다른 의미로 공포스러웠다.
어느 정도 탐험을 해서 점프스케어에 내성이 생기면 침착하게 벗어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 각종 함정들이 문제였다. 가시밭길이나 파이크를 단 바리케이드 같은 눈에 보이는 함정 외에도 올무나 푹 꺼지는 바닥, 갑자기 튀어나오는 화염방사 함정까지 도사린 던전은 조금만 잘못해도 금방 끔살당하기 십상이었다. 심지어 혼자서는 올무 같은 함정에 걸려도 어떻게 빠져나올 방법이 없으니 근처에 몬스터가 없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미션을 완수했으니 리워드를 받아야지?
협동하고 빼돌려서 성장하고 꾸미기까지
여기까지만 보면 '던전 던'은 호러 게임으로서는 괜찮지만, 여타 익스트랙션 게임처럼 가볍게 즐기기엔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게임처럼 보인다. 이를 고려해서인지, '던전 던'은 앞서 말한 것처럼 죽음의 페널티를 줄였다. 처음에 죽어도 다른 팀원이 살아있으면 소생시켜주거나 아니면 무료 부활을 써서 바로 부활할 수 있다. 무료 부활 시간이 너무 길어져도 골드를 지불하면 스캐빈저의 마법사들이 어서 일하라고 바로 부활을 시켜준다.
물론 그렇게 부활을 쉽게 해준 이유는, '던전 던'의 플레이어들이 각종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어서 보완해준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익숙하지 않은 파티는 얼마 안 가서 다들 개복치처럼 화면 위에 둥실 떠서 어느새 다들 로비로 떠나버리곤 하니 말이다.
매번 어처구니 없이 죽다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서로 협동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던전 던'의 플레이 양상은 다소 달라진다. 어둡고 비슷비슷해서 잘 파악이 안 되는 던전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분필로 마킹하거나, 번갈아 어그로를 끌어서 몹을 함정으로 유도하는 등 '던전 던'은 점프스케어 일변도에서 벗어나 협동 탐사 게임의 모습을 점점 보여주고 있었다. 여럿이 같이 들어야 하는 뚜껑이나 기믹을 풀고, 더 많은 전리품을 얻어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스캐빈저 길드가 있다고 얘기한 것처럼, 플레이어가 먹은 전리품을 온전히 플레이어가 다 갖고 가는 구조는 아니다. 그 보물을 갖고 길드에 가면 정산을 해주고, 그 정산 받은 돈으로 다시 장비나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다음 탐험에 대비하는 식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고생을 하고도 푼돈을 받는 느낌이라 다소 허망할 수도 있지만, '던전 던'에 속옷칸을 만든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전리품 중 값이 나가는 것은 몰래 속옷 안쪽에 숨겨서 밀반출, 전당포에 웃돈 받고 팔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돈이 조금씩 모이고, 아이템을 적극 구매하면서부터 '던전 던'의 플레이는 조금씩 다채로워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기를 들고 적을 다 때려잡는 그런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눈을 피해 지나가기 위해 필요한 투명 물약이나 아군의 체력을 회복하는 지팡이, 낙사를 방지하는 지팡이 등 생존과 협력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횃불과 랜턴만 들고서는 도무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위험한 구간을 한 번씩은 트라이할 수 있게끔 유도한 셈이다.
그런 트라이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스캐빈저 랭크를 올릴 수 있는 퀘스트가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스캐빈저의 랭크가 올라가도 역시나 누구를 쉽게 때려잡진 못하지만, 이동 속도나 스태미나, 가방 용량이 확장되면서 훨씬 더 편하게 던전을 탐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던전 던'을 처음 했을 때 가방 용량이 굉장히 작았던 걸 떠올리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보물고블린이라도 잡아서 득템을 할까 싶었지만, 좀처럼 보기는 어려웠다.
특유의 분위기 살린 '던전 던'
접근성 향상 등 피드백 다듬어가는 게 관건
소위 '던전'이 들어가는 탈출 게임은 이미 그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있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던전 던'은 얼리액세스 단계에서도 자신만의 분위기를 어필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온갖 부당한 조건을 안고 던전을 탐사한다는 처절함이, 백 마디 말이 아닌 한 번의 게임플레이로 온전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던전 던'은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우선 아무 설명도 없이 시작하다 보니, 게임에 진입해서 몽둥이 들고 잡몹에게 달려들었다 뻗어버리는 비자발적 트롤이 좀 있었다. 앞서 몬스터가 강한 것을 얘기했지만, 한 방에 대처할 시간도 없이 플레이어를 죽여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걸 보고도 와리가리컨으로 잡겠다고 달려들다 황천길에 따라가는 케이스도 있었다. 또 초반에 아이템을 많이 소지할 수 없어서 노획물을 들고 탈출하는 재미는 비교적 덜한 편이었다. 아울러 아직은 얼리액세스 단계라 그런지 맵은 랜덤하게 바뀌지만 기믹 자체가 많지 않아서 사람에 따라 단조롭게 느껴질 우려도 있었다.
또한 보상에 비해서 성장이나 의상에 드는 비용이 큰 것도 좀 걸렸다. 데모 때에 비해서 많이 줄였고 랜턴과 횃불은 무료라서 드는 비용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숙달되서 던전을 휙휙 돌 때까지 꽤나 시간을 많이 들여야만 모을 수 있는 비용인 만큼 조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종종 맵 경계에서 갇히는 일도 있어서 런하듯이 플레이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물론 그렇게 런하듯이 플레이하지 못하도록 여러 함정들을 깔아둔 경우가 많지만, 의도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과 그저 못하게 된 것은 느낌이 다르지 않나.
그런 문제점들이 있긴 하지만 '던전 던'은 공포를 협동으로 극복해나가면서 탈출하는 원초적인 재미를 살린 작품임은 확실하다. 여기에 데모 때 몬스터에게 거의 대처가 안 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많자 던전에서 랜덤하게 쇠지렛대, 검, 스태프도 획득할 수 있도록 패치하는 등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얼리액세스 단계라 아직 불안정하지만, 피드백을 거쳐서 더욱 다양한 공포와 미지가 도사리고 있는 던전을 탐사하는 재미를 깊이 있게 전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