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사막이 구동되는 모습이 극히 제한된 일부에만 공개됐던 지난 지스타 이후 1년, 게임스컴에서 붉은사막의 일반 시연 버전이 최초로 공개됐다.

게임스컴 전시를 앞두고 있던 펄어비스가 그간 꼭꼭 숨겨두었던 보스 전투 영상들을 며칠에 걸쳐 하나씩 풀었기에, 어쩌면 영상만으로 붉은사막이 어떤 느낌의 게임이 될 것인지 벌써 감을 잡은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게임스컴 부스에서 직접 플레이해 본 붉은사막은 분명 기존의 오픈월드 액션 게임들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지녔고, 시연 빌드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된 전투 콘텐츠는 저마다 다른 색깔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격적인 시연에 앞서 약 10분 길이의 가이드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화면의 UI 구성과 가장 간단한 버튼 조작들, 그리고 시연에서 마주하게 될 네 종의 보스들을 공략할 때 필요한 작은 팁이 담긴 영상이었다. 처음부터 맨땅에 부딫히며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몇몇 참관객들은 영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영상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클리어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보스전도 보였기에 이땐 가이드 영상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새겨두려 노력했다.

영상 시청 이후 이동한 자리에는 듀얼센스 패드와 헤드셋이 마련되어 있었고, 기자들에게 제공된 시연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앞서 영상으로 공개된 네 개의 보스 전투를 순서 상관 없이 모두 선택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빌드였으며, 시연을 시작하면 보스 전투에 앞서 초반 스토리가 일부 포함된 일대다 전투 시퀀스가 먼저 진행됐다.


시연 빌드에 한국어 설정 옵션이 없었기에 정확한 스토리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플레이어는 용병단장인 주인공 '클리프'가 되어 시작부터 다수의 적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검은 곰 가죽을 뒤집어쓴 집단과의 전투에서 기본적인 공격, 방어, 회피, 특수 스킬 등 기본 조작법을 익히게 되는데, 이게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다.

사방에서 쉬지 않고 칼침이 쏟아지니 피하느라 정신이 없고, 공격을 일단 전부 막아보자고 생각하면 수적 열세에 밀려 스태미너 수치가 금방 바닥을 찍는다. 타이밍을 노려 뿌린 공격이 적중한다고 해도 무조건 경직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상황에 맞춰 1타 후에 구르거나 발차기와 강공을 섞어 적을 절벽에서 밀쳐버리는 등 다양한 조작을 활용해야만 했다. 일단 적과 충분히 거리를 벌려 등 뒤쪽을 비우고, 약 공격을 연타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적 무리를 일망타진할 수 있었던 여타 오픈월드 액션 게임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소울류 액션 게임에서 경험했던 것 같은 공방이랄까.

그래도 어찌저찌 검은 곰 가죽 집단을 상대하고 나니, 짧은 스토리 컷신 이후 미지의 공간으로 전이되어 보스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잡몹 전투가 이러면, 보스전에서는 또 어떤 시련이 닥쳐올 것인지 걱정이 앞섰던 순간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다양한 보스를 경험하려면 어떤 순서로 플레이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잠시, 일단 '하얀뿔' 보스를 나중으로 넘기기로 했다. 하얀뿔은 지난 19일에 가장 먼저 공개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기도 했고, 영상에서 보여준 내려치기 패턴이 너무 단조롭게 보였기에 구르기 평타만으로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엔 가이드 영상에서 등장한 순서대로 '사슴왕', '리드 데빌', 그리고 '여왕 돌멘게'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시연 버전에 등장한 각 보스는 저마다 고유한 공격 패턴과 공략 방법을 가지고 있다. 보스의 움직임을 천천히 살펴보며 패턴을 분석하고, 약점을 파악하며 자신만의 전략을 세워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붉은사막 전투의 매력이자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버튼 조합으로 기본적인 '공격, 회피, 방어' 이외에 다양한 액션이 가능하니, 버튼 조합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콤보를 활용하는 재미도 있다.

가장 먼저 도전했던 사슴왕은 전형적인 인간형 보스와의 전투 양상을 보여주었다. 회피와 방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큰 동작 뒤의 허점을 노리는, 아주 정석 같은 전투이기에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시연 빌드에선 처음부터 충분한 수의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기에, 몇 번 맞으며 패턴만 파악한다면 어떻게든 클리어까지 노려볼 수 있는 구조였다. 패턴을 파악했다고 무작정 붙으면 역으로 패리를 당하거나 내던져질 수 있으므로, 모션이 큰 동작을 보고 차근차근 뒤를 잡는 대처가 필요했다.


두 번쨰로 도전한 리드 데빌은 갈대 밭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인간형 보스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표창과 검기를 활용한 원거리 공격을 구사하므로 정말 성가시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한방한방의 대미지가 약한 편이기에 2페이즈의 '허수아비 파괴' 기믹만 숙지하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다. 몸집이 작은 인간형 타입의 적이기에 발차기 콤보를 활용하여 적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고, 폭발 화살이나 강공격 연계로 전투 지역의 기믹을 해제하는 등, 사슴왕과의 전투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공략 요소가 더해져 신선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여왕 돌멘게' 보스전은 전투라기보다 조작법 검증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해 보였다. 큰 바위를 이고 있는 게의 등에 올라 약점을 찌르는 것만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평화로운 보스전이지만, 마지막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다섯 가지의 이어지는 연속 조작을 실수 없이 입력했기 때문이다.

시연에 앞서 가이드 영상을 봤기에 순서가 어떻게 될지 대략 인지하고 있었으나, 영상으로 봤던 조작을 게임에서 직접 구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한 번에 성공시키면 문제가 없는 조작이지만, 조작 연계에 실패했다면 다시 기술 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항시 신중해야 한다. 실패해도 큰 패널티는 없으니 성공할 때까지 반복. 몇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도자기를 깨는데 성공했지만, 세 개의 보스를 클리어한 뒤 마지막에 '하얀뿔' 보스까지 쓰러트리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쉽지만 한 시간의 시연은 여기서 마무리됐다.


한 시간의 체험으로 붉은사막 시연 빌드의 모든 면면을 전부 맛보진 못했지만, 펄어비스가 게임스컴 빌드에서 강조한 '전투의 재미'만은 분명 각별하게 느껴졌다. 이번 시연에서는 한정된 공간에서 보스 전투만 연속으로 진행했으나, 붉은사막은 어디까지나 오픈월드 액션 장르의 게임이다. 이점을 함께 생각하면 각각의 보스 전투가 얼마나 정교하게 구성됐고, 상황에 따라 정말 다양한 즐길거리가 제공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검날 빛으로 상대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차단하거나 인간형 적에게 달려들어 레슬링 기술을 구사하는 등, 실제 시연에서 미처 사용해 보지 못한 액션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보스전에서 수동으로 락온 조작을 지원하지 않는 점, 퀵슬롯에 등록해 둔 회복약을 버튼 하나로 사용하는 대신 매번 인벤토리를 열고 지정해야 하는 점, 각 스킬의 버튼 조작이 너무 산만하게 흩어져있어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던 점 등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으나, 이런 것들로 앞서 느낀 '전투의 즐거움'이 퇴색되지는 않았다. 이런 점들이 보완되면 액션 게임이 익숙지 않은 이들도 조금 더 편하게 붉은사막의 액션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에 그친다.

붉은사막의 시연빌드를 플레이하고 느낀 소감은 전반적으로 만족에 가깝다. 이전까지 오픈월드 액션 장르의 게임을 즐기며 이만큼의 전투의 깊이를 느낀 적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액션 게임의 기초가 되는 전투에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재미를 주고 있는 만큼, 그 액션이 잘 녹아나 전체 게임 플레이에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앞으로 여기에 좋은 스토리까지 더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