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유럽, 보헤미아 왕국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킹덤 컴 딜리버런스'는 출시 초기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며 전 세계에 워호스 스튜디오라는 체코 개발사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판타지 요소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각박하리만큼 사실적인 중세 묘사는 해당 시대상에 관심 있던 두터운 팬층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죠.

킥스타터로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자금난에 허덕였던 워호스 스튜디오는, 600만 장 누적 판매라는 의미 있는 전작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년 2월 출시를 목표로 하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2'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원작의 흥행 이후 체코 정부 또한 워호스 스튜디오의 다음 도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웃 나라 폴란드에 '위쳐'가 있다면, 체코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게임 산업에 큰 족적을 남기고자 합니다. 그 예시로, 2편의 주무대가 되는 도시 '쿠트나 호라'는, 지방 정부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게임 속에 구현될 예정이죠.

얼마 전, 워호스 스튜디오와 퍼블리셔인 플레이온의 초청을 통해 체코에서 개최된 미디어 시연회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본 '킹덤 컴 딜리버런스2 (KCD2)'에선, 전작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몰라보게 좋아진 비주얼과 깊이 있는 게임성에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 게임 시연은 쿠트나 호라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진행됐습니다

쿠트나 호라에서 진행된 시연은 총 2부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1부에서는 게임 초반부를 진행하며 시스템을 익힐 수 있는 일종의 튜토리얼 구간에 대한 시연 기회가 제공되었으며, 2부에서는 게임 중반부, KCD2의 주무대가 되는 도시 '쿠트나 호라'와 사이드 퀘스트를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게임의 초반부는 플레이어가 전작의 내용을 복기하는 한 편, 게임의 시스템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진행됐습니다. 해당 파트는 본격적인 오픈월드 활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구성되어 있었으며, 게임이 시키는 대로 진행하면 될 수 있도록 직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적의 공세에 둘러싸인 성을 방어하는 위치에 놓인 병사의 시선에서 플레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상호작용 버튼이나 간단한 전투 입력키를 배울 수 있으며, 본 작품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석궁을 쏴볼 수 있는 기회도 같이 제공하죠. 여러 모로 전작보다 개선된 게임성을 빠르게 보여주는 구간으로 삽입해 두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공성전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곧이어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며, 전작의 주인공인 헨리와 그가 모시는 귀족, 한스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컷신에서도 느껴지는 비주얼 측면의 변화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주인공 헨리는 스칼리츠라는 마을 대장장이의 아들로, 쿠만인의 습격으로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인 검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진짜 아버지(?)와 얽힌 서사시가 이어지며, 2편은 1편 이야기의 직후를 다루는 만큼 전작의 이야기가 꽤나 중요하게 작용하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장난기 가득한 귀족 한스와 헨리 일행은 가신들과 함께 주군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전혀 위험할 일 없어 보이는 임무에, 한스는 그저 빨리 편지를 건네주고, 여관에 들러 여자들이나 만나러 갈 생각 뿐이었죠.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호숫가 옆에 야영지를 차리고, 한가롭게 목욕을 하던 헨리와 한스 일행은 강도의 습격을 받아 와해되고, 그 과정에서 임무의 중요한 부분을(사실, 전부를) 차지하던 편지를 잃어버립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은 한스와 헨리 둘 뿐, 그들은 숲 속에 은거하던 약초꾼의 도움으로 기력을 되찾고, 좌초된 임무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 석궁, 화포 등 새로운 무기가 추가됩니다

이 짤막한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KCD2의 인상적인 부분은 그래픽 측면에서 전작과 비교해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작품도 크라이 엔진을 이용해 개발중인데, 컷신은 물론 실제 게임플레이 과정에서 보는 주변 풍경은 대단히 인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전작보다 풍부해진 컷신과 캐릭터의 표정 연출, 애니메이션도 퀄리티가 크게 향상했습니다. 덕분에 상황상황에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었을 뿐더러,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대해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었죠.

개발진에 따르면 전작과 비교해 KCD2 개발에 참여한 개발진의 수는 두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무기 애니메이션을 특정 아티스트 혼자 도맡았던 전작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무기 종류별로 다른 애니메이션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전투의 몰입감 또한 상당히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서 가까운 연금술 시퀀스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가적인 요소긴 하지만, 사실적인 중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도 하죠. 이번 시연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장장이 기술 또한 연금술에 필적하는 디테일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러 개선 사항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따로 있습니다. 최적화 문제죠. 전작을 돌이켜 보면 불안정한 프레임, 무수히 발생하는 버그 등 게임의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번 시연에서는 크게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프레임의 경우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1인칭 시점이 강제되는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 전작보다 확연히 안정적인 프레임은 1인칭 시점의 불편함을 해소해 줍니다

게임을 좀 더 진행한 캐릭터를 불러와, 게임의 주무대가 되는 쿠트나 호라(Kuttenberg)의 생활상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쿠트나 호라는 체코 프라하 인근에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로, 거대한 은광이 존재해 중세 당시 은화 유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부의 원천이던 도시인 만큼,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생활상은 다른 마을과 달랐다는 것이 개발진의 설명입니다.

워호스 스튜디오는 역사 속 쿠트나 호라의 모습을 게임 속에 옮겨놓기 위해 굉장한 공을 들였다고 전했습니다. 현지 답사는 물론, 쿠트나 호라 시 정부와 협업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합니다.

사실적인 도시의 모습 만큼이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워호스 스튜디오에 따르면 쿠트나 호라에 존재하는 NPC들은 모두 각자 정해진 일과가 있으며, 시간에 따라 주어진 일과를 수행하러 다닌다고 하죠. 모든 오픈 월드 게임 개발자들이 으레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는 절차 또한 필요했습니다.

▲ 보헤미아 왕국 최고의 부자 도시 중 하나였던, 쿠트나 호라의 모습

▲ 현실 속 도시의 모습은, 풍경기 기사에서 확인해 보세요!

시연은 특정 사이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쿠트나 호라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웃 나라 독일(당시 이름은 다르겠지만) 출신의 검술가가, 쿠트나 호라에서 검술 길드를 차리고 싶어 하는 퀘스트였죠. 당연히 기존 검술 길드는 이를 반대하고, 주인공은 그를 도울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해당 사이드 퀘스트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에 따라 결과에 아주 미묘한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전개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과정의 디테일이 달라진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독일 검술 사범과 처음 마주했을 때, 기존 검술 길드원가 말다툼을 펼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인공이 개입해 독일 검술 사범을 보호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호하는 데 성공할 경우 독일 검술 사범은 쿠트나 호라 시내의 여관에서 묶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는 도시에서 퇴출당하고, 퀘스트를 이어하기 위해서는 도시 밖에서 그를 찾아나서야 하죠.

▲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이 추가된 전투도 만족스러웠고

▲ 프레임 때문인가? 원작보다 더욱 경쾌한 느낌입니다

이처럼 선택에 따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 개발진이 자랑하는 KCD2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개의 변화는 하나의 퀘스트조차도 여러 갈래의 결과를 맞이하도록 설계됐습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식으로 목표물에 접근했는지,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들켰는지, 들키지 않았는지에 따라 전개가 모두 달라지는 식이죠.

시연에서 보여준 사이드 퀘스트의 전개 또한 꽤나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검술 길드에서 장식용 검을 훔치는 미션에서, 지나가는 NPC에게 이를 들켜도 퀘스트 완료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훔치는 것을 들키지 않았던 사람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임의 모든 퀘스트의 깊이를 이정도로 설정했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천문학적인 개발 시간이 추가로 필요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기억에 남는 일부 퀘스트는 존재할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 선택지마다 굉장히 세부적인 결과를 보여준다는데, 사실 기대 반 걱정 반(?)

여기까지가 이번 체험 기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킹덤 컴 딜리버런스2'의 변화와 주요 특징입니다. 수십 시간을 플레이해야 하는 오픈 월드 특성 상, 단시간 체험으로는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워호스 스튜디오가 이번 작품에 어느 정도 깊이를 구축할 예정인지는 각종 스테이터스를 통해 얼추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체험이 시작되기 전, 워호스 스튜디오 관계자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 시리즈가 중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뮬레이션' 장르는 절대 아니라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깊이 있는 몰입감이 위해 다양한 요소를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죠.

시연 버전에서도 개발진이 이야기한 몰입 요소의 일부가 드러났습니다. 주인공 헨리가 갑옷을 입는 부분부터 말입니다. 다른 여러 게임들처럼 인벤토리에서 갑옷을 클릭해 입으면 될 것 같겠지만, 나름의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면, 투구를 쓰기 전에는 무조건 헝겊으로 된 보호 장구를 먼저 써야 하거든요.

▲ 세분화된 스테이터스는 벌써부터 게임의 깊이에 기대를 갖게 합니다

주인공을 구성하는 여러 수치들 또한 대단히 세부적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자신의 여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미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솔져(Soldier)는 전투에 특화된 스타일이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 회유하는 스타일인 조언가(adviser) 스타일도 있습니다. 물론, 어둠을 틈타 암약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스카우트(Scout)를 선택할 수도 있고요.

대화에 조차 여러 가지 특징이 있고, 상대방의 성격에 따라 각종 수치가 다르게 활용됩니다. 화법에 영향을 주는 수치만 해도 speech, charisma, dread, might 등으로 나뉠 정도니, 얼핏 보면 너무 복잡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그뿐만 아니라,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또한 많이 활용하는 활동에 따라 스킬 능력치가 증가하는 시스템을 갖출 예정입니다. 연금술, 승마, 개 조련, 생존, 도둑질, 음주, 지식 등등... 물론 무기별로 스킬도 다 다릅니다. 맨손 격투, 한손검, 양손검, 폴암 등등 각종 무기의 능력을 올리거나, 스승을 만나 새로운 콤보 기술을 배울 수도 있고요. 벌써부터 플레이타임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 시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또한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고정된 1인칭 시점, 냉병기를 활용한 전투,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리얼리즘 같은 허들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전작을 하지 않았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후속작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작과 비교하면 편의성이 많이 좋아졌지만, 조금 더 좋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을법한 요소도 더러 보였습니다. 길 찾는 것 조차 큰 고난이었던 1편과 비교하면 이번 작품은 특정 버튼을 눌러 퀘스트에 필요한 NPC를 자동으로 따라갈 수 있는, 경의로운 수준의 편의성(?)을 보여주는데, 그와 별개로 지도의 아이콘은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네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킹덤 컴 딜리버런스2'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원작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보다 사실적인 중세를 체험하고자 하는 게이머라면, 아마도 충분히 오랜 시간을 이 게임에 쏟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25년 2원 출시를 기약한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더욱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리얼한 중세 라이프를 원하는 게이머에게, 아마도 KCD2는 놀라운 충격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