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해머 IP 게임이 대부분 나쁘다는 건 옛말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워해머 토탈워, 버민타이드와 다크타이드, 로그 트레이더, 카오스게이트, 메카니쿠스 등 괜찮은 게임들이 많이 출시했습니다. 워해머 판타지와 워해머 40,000를 가리지 않고 말이죠. 물론, 모든 워해머 게임이 좋아졌다는 건 아닙니다. 워프포지나 던오브워3, 에이지 오브 지그마 같은 별로인 게임도 있었습니다.

00년대나 10년대까지만 해도, 워해머 IP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스페이스 마린이 뭔데", "카오스, 엘다가 뭔데"하던 때와 지금은 좀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워해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꾸준히 게임을 했던 게이머라면 알기 싫어도 그들의 세계가 눈에 들어오고 들리는 게 있습니다. 이제 워해머 IP는 완전히 친숙하진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IP로 자리 잡은 모양새입니다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 2는 렐릭 엔터테인먼트가 2011년에 발매한 TPS 게임인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의 후속작입니다. 이번 작품도 같은 장르와 같은 방식의 게임입니다. 주인공도 1편에서 활약한 디메트리안 타이투스로 동일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액션 위주의 TPS는 주류 장르입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우리가 조금 더 워해머 IP에 익숙해졌다는 것이고, 이번 작품이 전작보다 훨씬 더 나아졌다는 것입니다.


게임명: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2
장르명: 3인칭 슈팅 액션
출시일: 2024. 9. 9.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세이버 인터랙티브
서비스: 포커스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 PlayStation 5, Xbox Series X|S
플레이: PC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몰려오는 적
그리고 스페이스 마린

워해머 40,000: 스페이스 마린 2는 전작을 제작한 렐릭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세이버 인터랙티브가 제작했습니다. 세이버 인터랙티브의 대표작으로는 월드워Z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게임은 아닙니다만, 압도적인 좀비의 물량을 쏘고 터트리는 재미는 확실한 게임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의 주적은 타이라니드와 젠취를 섬기는 카오스 마린, 사우전드 선입니다. 타이라니드는 벌레와 파충류가 섞인 모양새의 외계 종족으로, 스타크래프트의 '저그'나, 스타쉽트루퍼스의 '아라크니드'를 연상하면 되겠습니다. 사우전드 선은 카오스 신 중 하나인 '젠취'를 섬기는 타락한 스페이스 마린으로, 기만과 사이킥 능력에 강점이 있는 팩션입니다.

작품 초반에는 주로 타이라니드와 맞서게 되는데, 이 타이라니드는 기본적으로 '하이브 마인드'라는 군체 의식에 의지대로 엄청난 물량전을 보여줍니다. 빠르고, 위협적이며,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려오는 타이라니드에 그 어떤 인간이라도 패닉에 빠지게 될 것 같지만, 우리는 스페이스 마린이죠.


스페이스 마린은 19가지의 개조 수술을 받은 강화 인간입니다. 여기에 주인공인 타이투스는 게임 초반 루비콘 수술을 추가로 받아, 2세대 스페이스 마린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스 스페이스 마린입니다. 이들은 무거운 파워 아머를 입었음에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엄청난 반동을 지닌 볼터를 한 손으로 사용합니다. 인류제국의 보통 사람의 군대라고 할 수 있는 아스트라 밀리타룸은 이런 스페이스 마린을 '죽음의 천사'라고 경외를 담아 부르는데요, 정말 이 말대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액션을 게임에서 직접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크게 원거리 무기와 근거리 무기로 나뉩니다. 원거리 무기부터 보자면, 볼터, 플라즈마, 멜타, 스나이퍼 라이플로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고, 여기에 여러 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합니다. 볼터로 예를 들면, 피스톨과 라이플, 여기에 유효 사거리, 점사 기능, 스코프나 유탄발사기 등 액서서리의 여부, 탄창 용량 등에 따라서 무기군 자체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헤비' 병과가 아니라면 미션에서 주워서 사용해야하는 특수한 원거리 무기도 존재합니다.

스페이스 마린2는 다른 TPS처럼 슈팅으로만 게임을 풀어나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원거리 무기보다 근거리 무기를 주로 사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근거리 액션이 원거리 액션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근접 무기는 체인 소드, 컴뱃 나이프, 파워 피스트, 파워 소드, 썬더 해머가 존재하고, 무기마다 특징과 조작법도 다릅니다.

근접 전투는 이 게임의 백미입니다. 이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처형'으로 인해 얻은 전투 유지력으로 몰아치는 적 웨이브를 막아내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무기로 적에게 대미지를 많이 입히면 적의 몸이 붉어지며 '처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스페이스 마린이 처형 할 경우 처형 시간 동안 무적 상태와 더불어 아머가 차오르게 됩니다. 이런 전투 흐름에 다양성을 더해주는 것은 '파란색 표시'로 튕겨낼 수 있는 공격과, 무조건 피해야 하는 '붉은색 표시' 공격입니다. 계속 몰려드는 적을 쓰러뜨리고, 처형하면서, 이런 표시들이 나올 때마다 피하거나 튕겨내는 액션을 반복하다 보면, 전투의 만족감이 가슴 깊숙한 곳부터 피어오르게 됩니다.



스페이스 마린2의 세계
팬이라면 감동, 아니라면...

스페이스 마린2는 워해머 40,000의 세계를 아주 잘 구현했습니다. 스페이스 마린의 다양한 장비들부터 시작해서, 아스트라 밀리타룸의 기갑부대와 함께 싸우거나, 타이라니드와 루브릭 마린이 싸우는 걸 지켜볼 수도 있는 등 워해머 팬을 만족시켜줄 만한 '뽕'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캐릭터를 다양한 도색과 문양으로 직접 편집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파란 스페이스 마린, 빨간 스페이스 마린이 아니라, 워해머 40,000에서는 색깔과 문양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만큼, 워해머 40,000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라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평소에 워해머 IP에 관심이 없는데, 괜찮은 액션 게임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딱 준비된 액션 수준만큼의 재미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마린2는 무려 13년이 지나버린 전작의 스토리와 이어지고, 전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전작은 안 해봤지만, 워해머 40k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주인공인 타이투스가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인식하는데 꽤 많은 눈치가 필요합니다.

워해머 40,000를 아예 모른다면, 게임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초반에 주인공인 타이투스는 카니팩스와 싸우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루비콘 시술을 통해 치료하게 되는데요, "와, 타이투스가 프라이머리스가 됐네"라고 감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스피드웨건 같은 NPC가 존재해서 "루비콘 시술은 어쩌고 저쩌고 이런 건데, 견뎌내다니 대단하다"라고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질구레한 설명이나 배경 지식 주입은 스페이스 마린 답지 않아서 흐름대로 진행하는 게 좋긴 했습니다만, 용어 사전이나 도감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이스 마린2의 그래픽은 준수합니다. 배경과 오브젝트의 디테일도 좋고, 텍스쳐의 퀄리티도 높은 편입니다. 사소한 엑스트라라도 인물의 묘사 수준이 높습니다. 여기에 무기를 사용할 때 튀는 불꽃이나, 적을 찢어버릴 때 뿜어져 나오는 피, 그게 온몸을 적시는 느낌도 잘 살렸습니다. 다만, 이런 좋은 묘사 수준을 가진 오브젝트가 수십, 때로는 백 개가 넘을 때 프레임이 다소 흔들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임의 모드는 3가지, 캠페인, 작전, PVP인 영원한 전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캠페인은 10시간 정도의 분량을 가졌습니다. 난이도는 총 네 가지인데 가장 어려운 난이도는 캠페인 시작부터 Co-op모드로 조합이나 역할을 맞춰서 하지 않으면 깨기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두 번째로 어려운 베테랑 난이도도 상당히 매운맛을 자랑합니다. 캠페인을 다 마치거나, 캠페인 진행 중간에도 '작전'이라는 PvE 모드를 할 수 있습니다.

'작전'은 캠페인과 아예 다른 미션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투스 분대가 아닌 다른 분대 시점으로 동시간대의 다른 장소, 다른 임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작전에서는 각기 다른 병과를 선택해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적을 스캔으로 드러내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 '택티컬', 점프팩으로 빠른 기동성과 근접 공격에 능한 '어설트', 갈고리를 발사해 다이브킥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뱅가드', 챕터 깃발을 세워 주위 분대원에게 아머를 제공하는 '불워크', 은폐 능력이 있고 스나이퍼 라이플을 사용하는 '스나이퍼', 원거리 피해를 막아내는 방벽과 화력 지원이 장점인 '헤비'까지 총 여섯 가지 병과가 존재하고, 병과 레벨을 올리면서 그 병과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주 다채롭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후반 반복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동기는 부여해줍니다. 단, 아직 여섯 개의 작전밖에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볼륨은 작다고 느꼈습니다.

몇 가지 마감새가 나쁜 부분도 언급하자면, Co-op 모드로 캠페인을 진행하는게 아닐 경우, AI가 분대원 두 자리를 담당하는데, 이 인공지능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가끔은 버그가 발생해 이상한 곳에 떨어지기도 하고, 멀뚱히 서있기도 합니다. 또한, 게임의 번역은 좋은 편인데, 자막 폰트가 조금 흐릿한 느낌이 있습니다.



내가 스페이스 마린이 된다고!
용기와 명예

최근 발매하는 Co-op PvE 중심의 게임 중에는 출시 당시부터 앞으로 어떤 것들이 추가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공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출시 당시부터 이런 콘텐츠들이 포함되었으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스페이스 마린2 역시 2024년 10월부터 2025년까지 라이브 서비스 계획이 있습니다. 새로운 작전, 무기, 적이 시즌별로 추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요. 외계인과 반역자들을 신나게 죽인 뒤에, 잠시 쉬었다가 새 컨텐츠가 추가될 때 돌아오는 좋은 연어 게임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스페이스 마린2가 이 장르를 완전히 압도하는, 모든 게임을 대체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게임은 다른 게임이 주지 못하는 확실한 매력이 있습니다. 워해머라는 확장성이 높고 인기있는 IP 중에서도 스페이스 마린이라는 가장 맛있는 부분을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존재하는 게임 중에 이만큼 '스페이스 마린'스러운 게임은 없습니다. 육중한 전투, 짜릿한 손맛, 밀려 들어오는 적들을 인류에 대한 헌신과 전우애, 황제에 대한 충성으로 이겨내는 죽음의 천사가 되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습니다. 여기가 원조집이고, 맛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