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나조이에 입장하는 관람객들

차이나조이는 집중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업계에서 '세계 3대 게임쇼'를 꼽으면 과거엔 미국 E3, 독일 게임스컴, 일본 도쿄게임쇼(TGS)였다. 중국 차이나조이는 분명 앞의 세 게임쇼와 비교해 규모에선 뒤지지 않지만, 비교적 로컬(지역적)이란 이미지가 한계로 평가됐다. 차이나조이는 세계적인 행사라기보단 그들만의 축제로 보였다. 중국이라는 압도적인 크기의 시장이 배경에 없었다면, 평가는 더 박했을 것이다. 이후 E3가 폐지되며 한 자리가 비어서야, 세계 3대 게임쇼는 차이나조이를 포함하는 것으로 재정립됐다.

범위를 아시아로 좁혀봐도 차이나조이는 '최대'의 게임쇼일 수는 있어도, '최고'의 자리는 도쿄게임쇼로 마음이 기운다. 일단, 기자 입장에서 차이나조이는 다른 게임쇼와 비교했을 때 취재 요청 메일부터 차이를 느낀다. 게임사들이 행사에 작품을 출품하니 보러 오라는 메일들이다. 이번 차이나조이 출장을 준비하면서 게임사로부터 안내받은 일은 매우 적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해외 게임사들도 조용했다. 반면, 게임스컴을 준비하는 기자들은 차이나조이와 달리 국내외 게임사로부터 받은 안내 메일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지난해 게임스컴과 이번 차이나조이를 비교하면, 게임스컴은 세계로 발산하는 게임쇼, 차이나조이는 제 나라인 중국 내수시장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기대작들의 첫 공개 장소, 첫 시연 장소로는 게임스컴의 인기가 더 많다.


그런데 중국에서 차이나조이를 지켜보면, 자국의 시장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일종의 여유다. 중국은 게이머 인구수 6억 명 이상의 시장이다. 지스타가 열리는 벡스코 관의 10배 규모를 내수 시장만으로 돌릴 수 있다. 해외(중국 외) 게임사가 차이나조이에 참여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는 셈이다.

지난 25일 중국음악영상디지털출판협회(CADPA)는 올해 상반기 중국 게임산업 규모가 1,472억 위안(약 28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8%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유저 규모는 6.7억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0.88% 증가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내수 시장은 3.32% 감소했으나, 해외 시장 매출이 4.24% 증가했다. 숫자를 보면 중국 내 성장은 이미 충분한 상태고, 해외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가 있다. 소니는 중국에 8년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본 소재의 글로벌 플랫폼사가 중국 게임 개발팀을 전적으로 지원한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 선정작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중국의 문화를 고품질로 담아내는 것이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의 주체는 소니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당국 차원에서 '차이나 히어로' 게임 개발을 적극 권장해 세계에 알리고 있다. 지금 당장 '차이나 히어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서양권에서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 닌자 문화에 호감을 갖는 사람이 상당한 거처럼, 중국의 문화에 호감을 갖게되는 현상이 커질 수 있다.

종종 차이나조이는 로컬 행사에 불과하단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중국으로선 굳이 해외 게임사의 참여가 간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6.7억 명의 유저를 만나고 싶은 해외 게임사가 중국에 맞춰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중국 당국으로선 자신들의 문화가 담긴 게임이 해외에 퍼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는 아오란 CADPA 수석부회장이 지난 25일 "게임은 단지 오락이 아니라, 문화의 전파자다. 게임을 통해 우리는 전 세계에 더 좋은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며 "게임을 사랑하는 글로벌 게이머들에게 중국의 문화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에서 중국 당국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중국 시장, 일단 사로잡아야


예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 차이나조이는 한국 게임 출품이 눈에 띄었다. 대표적으로 펄어비스 '검은사막',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IP,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2'가 중국 유저의 마음을 잡으려 차이나조이에 갔다. 넥슨은 최근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중국 출시로 기분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판호를 받고서 테스트에 돌입한 '검은사막'과 '블소2'는 정식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게임산업을 얘기하면 판호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중국 진출에 판호가 장벽으로 있지만, 중국 게임사는 우리나라 진출에 제한이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중국은 압도적인 시장 규모 때문에 우리 게임사로부터 항상 관심을 받는다. 넥슨이 과거, 크래프톤이 현재 매년 1조 원의 현금을 중국 시장에서 창출하는 게 대표적인 선례다. 불공정에 불만을 가질 순 있어도, 중국으로 진출을 포기할 순 없다.

이번 차이나조이에서 본 펄어비스는 중국 유저에게 '검은사막'을 소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모습이었다. 중국에선 여전한 코스튬 플레이로 지나가는 유저들의 관심을 끌고, 현장에선 유저들이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도록 기기를 마련했다. 부스 크기로만 보면 다른 곳에 비해 작을 순 있어도 콘텐츠의 밀집도는 알찼다.




검은사막은 2014년 출시 후 150여 개국에 서비스되고 있다. 사실상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이 가능한 거의 모든 국가에 출시를 완료했다. 남은 곳은 중국이다. 판호도 이미 받아두고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앞서 출시된 '검은사막 모바일' 사례를 분석해 '검은사막' 개선에 반영했다. 시장에서는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처럼 '검은사막'이 펄어비스의 캐시카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펄어비스는 중국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현지 퍼블리셔인 텐센트와 함께 순조롭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펄어비스 관계자는 "검은사막 모험가분들에게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경험을 드리는 것이 목표"라며 "퍼블리셔와 함께 중국 모험가들의 성장 속도와 서버 상황에 따라 최신 버전을 빠르게 서비스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넥슨은 집토끼인 '던전앤파이터' IP 팬 유지와 확장에 나섰다. '던전앤파이터',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처음으로 함께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다. 넥슨은 특유의 도트 그래픽을 구현한 DNF IP 부스존을 마련해 두 게임의 대표적인 '레이드', '지옥파티' 콘텐츠를 활용, 공통의 향수를 자극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선보였다.

▲ 엔씨소프트 '블레이드 & 소울2'

엔씨소프트는 현지 게이밍 기기 회사 레드매직을 통해 '블소2'를 선보였다. 현장에선 '블소2'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 플레이하는 유저들 여럿을 볼 수 있었다. 현장의 한 유저는 "기대했던 것보다 조작감이 훌륭했다"며 "더 많은 콘텐츠를 보고 싶었는데 초반 플레이만 해볼 수 있어서 아쉬웠다"는 감상을 전했다.

한한령 기간에는 '판호만 받으면'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판호가 풀린 뒤 한국 게임이 중국 진출을 재개했을 때,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성공을 예약해 둔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정도만이 눈에 띄는 성적을 거뒀다. 확실히 게임성은 좋으니 판호만 받으면 된다는 공식이 깨진 지는 오래다. 판호 장벽이 높았던 기간에 중국 유저의 눈높이는 달라졌다. 이제 한국 게임사가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가 필수적이다.

일부 게임사는 이제 판호 발급 노하우를 깨닫고 예상까지 한다. 중국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으나, 캐쉬카우 혹은 왕서방들을 잡아두면 우리 게임산업에 당연히 긍정적이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게임 개발 도전이 수월해진다. 이번 차이나조이가 우리 게임사의 중국 이해도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지스타

▲ '차이나조이 2024' 현장

지스타는 국내 최대 게임쇼다. 그러나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애매하다. 국내 집중적이라는 점, 그러면서도 세계화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차이나조이와 게임스컴 사이 어디쯤에 지스타의 정체성이 놓여 있다.

관람객 규모 면에서 지스타는 여느 세계적인 게임쇼에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지스타는 23만여 명이 찾았다. 전시장이 10배쯤은 큰 차이나조이 관람객이 지난해 33만여 명이다. 같은 기간 게임스컴은 32만여 명, 도쿄게임쇼는 24만여 명이 방문했다. 인구수, 전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지스타는 세계적인 게임쇼와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 않는다. 그만큼 게임에 열정적인 국내 유저들 덕이기도 하다.

게임쇼는 민간이 주도하는 행사다.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게임쇼는 성장한다. 주요 게임쇼 개최지인 독일, 중국, 일본 모두 게임산업을 국가의 중요한 콘텐츠산업으로 인식한다. 행사장 마련은 물론 다양한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게임쇼를 뒷받침한다.


일단 우리 정부는 게임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지스타를 세계 3대 게임쇼로 키우겠단 목표를 설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게임 외의 콘텐츠산업을 추가해 복합 행사로 만들겠단 계획엔 의문이 든다.

지스타가 물리적인 행사인 만큼 전시장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스컴, 차이나조이, 도쿄게임쇼 무대와 달리 지스타가 열리는 벡스코는 비교적 작다. 관을 확장하더라도 우리에겐 넓어지지만 여전히 다른 게임쇼에 비해선 작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에서 정부가 게임산업과 동떨어진 콘텐츠산업을 접목해 지스타를 키우겠다고 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이번 차이나조이를 보면서, 지스타가 꼭 '차이나조이처럼' 되어야 한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그 나라 게임산업에 적합한 형태의 게임쇼가 있다. 차이나조이나 게임스컴, 도쿄게임쇼는 각자의 색깔을 찾았고, 그에 맞게 매년 발전해 나가고 있다. 지스타도 차이나조이와 게임스컴 사이 그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 나아가길 바란다. 정부의 지원도 이러한 방향성으로 잡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