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 2025 강단에 선 이세 코지(Koji Ise)는 지난 2018년에 아틀러스에 입사해 현재 리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 재직하고 있다. 이전까지 광고 업계에서 웹 디자인을 주로 담당했던 그에게 있어,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처음으로 게임의 UI를 디자인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페르소나' 시리즈와 차별화되면서, '메타포'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덤덤히 소개하며 UI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게임 UI 첫 도전, 그러나 너무 높았던 '페르소나'의 벽
앞서 언급했듯,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 오던 아틀러스에게 신선한 판타지 RPG다. 아틀러스 특유의 세련된 아트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와 함께 판타지 RPG라는, '메타포' 특유의 감성이 돋보여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었다.
이세 코지는 초기 개발 단계에서 UI팀이 세웠던 세 가지 목표를 소개했다. 먼저, 판타지 장르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만큼 새로운 아트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페르소나 시리즈처럼 UI가 게임 전체 경험을 주도하는 디자인도 목표로 했다. 마지막으로는 이 게임에서만 가능한, 다른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을 간직한 UI를 제작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그는 초기 단계에서 만들었던 다섯 가지 디자인 초안을 청중들에게 공유했다.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판타지 느낌을 최대한 살린 '양피지 풍' UI다. 플레이어가 여행하는 판타지 여정에 색채를 더하고자 양피지와 여행 아이템의 디테일에 신경썼다.

다음 디자인은 '레트로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다. 과거 패미컴 시절 RPG를 연상시키는, 단순한 흰색 테두리 타일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그는 이 초안을 두고 "RPG의 뿌리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고전적인 느낌을 담아봤다"고 밝혔다.

세 번째 디자인은 주인공이 가진 불안함을 강조했다. 메뉴 창 아래로 갈수록 주인공의 마음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이 테마가 주인공의 내면을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네 번째 디자인은 다소 음침한 3번 디자인과 반대되는, 밝고 세련된 느낌의 디자인이었다. 생각의 바다에서 주제별 요소를 추출하는 과정을 담아,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글자들이 특정 메뉴를 탐색할 때마다 단어로 맞춰지는 연출을 적용했다.

마지막으로 소대한 디자인은 화려한 잉크 색을 표현한 잉크 디자인이었다. 캐릭터의 특징과 감성을 담은 색상을 최대한 활용해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초안 중 어느 것 하나도 실제 게임에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첫 번째 디자인은 아틀러스 특유의 화려함을 전달하지 못해 폐기되었고, 두 번째 안은 아무래도 '메타포'만이 가진 독특함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세 번째 디자인은 너무 어두웠고, 네 번째 디자인은 어딘가 허세부리는 느낌, 게임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마지막 잉크 디자인은 게임의 톤과 너무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이세 코지는 "무엇보다, 이 모든 초안들의 문제는 게임을 이끌 '펀치'가 약했다"는 말을 전했다. "멋지긴 하지만 뭔가 빠진 느낌", "독창적이지 않아", "이런 어두운 UI를 가진 게임은 하고 싶지 않아" 같은 피드백을 들은 그의 첫 게임 UI 디자인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그를 괴롭혔던 것은 이미 완벽에 가깝게 정립된 '페르소나' 시리즈의 그림자였다. 이세 코지는 "네 번째 디자인을 하고 있던 무렵, 나는 '페르소나'와 비슷하게 팝적이고, 접근성 높은 디자인을 고민했다. 그 결과 잉크 디자인이 탄생했지만, 그조차 독창적이지도, 또 '페르소나'에 견줄 정도로 게임의 정체성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만든 디자인에선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고, 영감도 부족한 느낌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하이퍼 스타일리시'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

그렇게 이세 코지의 UI팀이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무렵, 디렉터가 전해준 조언은 그에게 구원이 되었다. "잠시 멈추고, 남들의 의견을 너무 많지 듣지 말아라. UI팀이 가장 먼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결정해 보기 바란다"는 말이었다.
이세 코지는 "모든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으려고 했더니, '페르소나 같아야 한다'든지, '더 팝적이어야 한다' 같은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디렉터의 조언은 나를 원래 목표로 돌아가게 했고, '메타포'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다시 빈 종이 앞에 않게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와 UI팀은 다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아트 방향의 핵심 콘셉트를 바로잡고 페르소나의 그림자를 떨쳐낼, 명확한 길잡이 별이 필요했다.판타지 RPG를 우리만의 시각으로 해석해, 그 누구도 눈을 뗄 수 없는 아트 스타일을 만들자. 그렇게 팀은 메타포만의 UI 디자인으로 '하이퍼 스타일리시'라는 방향을 설정했다.
이들이 목표로 한 '하이퍼 스타일리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기둥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첫 눈에 매력적인 '쿨(Cool)함',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매력을 가진 '몰입감(Immersive)', UI를 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움(Intriguing)', 그리고 게임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화제성(Buzzworthy)'이 그것이다.

이세 코지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도 네 가지로 설명했다. 먼저, '메타포'라는 타이틀의 얼굴이 될 만한, 강한 상징적 가치를 지닌 디자인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이어야만 했다.
메타포만이 가진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를 위해 다른 게임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은 과감히 배제했다. 게임의 세계관에 깊이 연결된 정체성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야 했다. 다행히 '메타포'는 항상 하늘에 떠 있는 왕의 얼굴이나, 판타지 세계의 선거와 같은 독특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전투 결과 창이다. '메타포'의 전투 결과 창은 전투에 참여했던 주인공 일행을 조감도 시점으로 보여준다. 이는 하늘에 떠 있는 왕의 얼굴이 항상 주인공 일행을 보고 있다는 세계관 상 설정과 일치하는 디자인 결정이었다.

세 번째로 이세 코지는 UI의 애니메이션이 플레이어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플레이어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을 파악하고, 주목을 끄는 UI를 배치해 감정을 극대화자는 결정이었다. 이에 대한 결과물은 액션 전투에서 커맨드 전투로 전환될 때 확인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UI요소 사이의 통일성을 확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를 위해 UI 팀은 게임 속 상황 별 UI의 모습을 출력해 회의실 벽면을 도배했고, 지나가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조화롭지 않은 부분이 발견되면 바로 수정했고, UI가 게임 전반적인 아트의 방향과 일치하는지도 꾸준히 확인했다.
"메타포: 리판타지오 UI가 가진 의미를 알려드립니다"
다음으로 이세 코지는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최종 UI 결과물을 공유하며, 각각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1. 메인 메뉴
가장 먼저, '메인 메뉴'는 타이틀의 간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첫 눈에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될 무언가이면서, 동시에 게임 전체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누워 있는 주인공을 둘러싼 텍스트 배치와 함께, 게임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회화 스타일로 주인공 캐릭터를 묘사했다.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일 필요도 있었다. 누군가 트레일러에서 UI를 보고, 친구에게 "야, 아틀러스 새 게임 봤냐? 그 메뉴 화면에 캐릭터 누워 있는 거"라고 말하게 된다면 그에게 성공이었다. 또, '다른 화면을 더 보고싶다', '직접 메뉴를 조작해보고 싶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독특한 구도와 스타일리시한 터치, 과감한 애니메이션을 메뉴 전반에 적용했다.
하지만, UI의 디자인에만 치중하면 '메타포'만의 독특함을 전달하지 못하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세 코지는 UI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UI가 게임 세계오 분리된 메타 요소가 아닌, 게임과 플레이어를 연결하는 요소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게임 시작부터 플레이어와 주인공이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작품이다. 그 말은 곧 플레이어가 자신을 투영할 상대가 게임 속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UI를 통해 주인공과 플레이어를 연결하고자 한 이유이며, 주인공의 감정을 플레이어가 UI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메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에는 이세 코지의 이러한 철학이 담겨있다. 페인트 효과는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 흐름을 표현했으며, 기하학적 형태의 선은 주인공의 사고 과정을, 그리고 타이포그래피는 주인공 머리에 떠오른 단어를 형상화한 콘셉트로 구현했다.

2. 전투 UI
"이 게임의 전투는 어렵습니다. 실수 단 한 번으로도 게임 오버가 될 수 있을 만큼 가혹하죠. 그래서 전투 UI의 테마도 '살의(Intent to Kill)'였습니다. 모든 전투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점을, 강렬하고도 역동적인 비주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세 코지의 말대로, 메타포에서 주인공은 적이 앞을 가로막으면 살의를 품고 돌진하는 듯한 연출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UI 또한 날카로운 그래픽 접근법을 가지며, 플레이어의 '피의 갈망'이 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전투 시점의 커멘드 패널은 튀는 페인트 묘사로 강렬한 감정을, 뾰족한 타이포그래피는 찌르는 듯한 살의를 반영했다.
전투 화면 상단에 배치된 왕의 얼굴은 하늘에 떠 있는 왕이 플레이어의 전투를 항상 지켜본다는 설정을 차용했다. 턴 사이의 프레스 아이콘과 전환 애니메이션은 전투 진행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결과 화면은 앞서 설명했듯 왕이 주인공 일행의 여정을 지켜본다는 세계관을 반영했다.
그 결과, 뉴욕 타임즈 지면에 실리게 된 '메타포'의 UI

이러한 이세 코지, 그리고 UI팀의 노력은 어떻게 됐을까. 많은 게이머들이 이미 알다시피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더 게임 어워드에서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그 중에는 '최고의 아트 디렉션' 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세 코지는 이 영광 속에, UI 팀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믿고 싶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세간의 평가는 그에게, 또 그의 팀에게 큰 자신감을 안겨줬지만, 그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일부 이용자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UI 디자인을 칭찬했으며, 또 일부는 UI을 보고 게임을 사야만 했다는 칭찬을 남기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여러 시도 끝에 완성한 UI 팀의 결과물은 뉴욕 타임즈 지면에 실리기도 했고, 아틀러스의 마케팅 담당자(또는 상품 사업부)는 '메타포'의 메인 메뉴 화면을 그대로 아틀러스 부스에서 나눠주는 굿즈 가방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UI 아트 디렉션이, 게임의 일부를 넘어 게임의 시각적 정체성으로 작용하는 사례로 남았다.
끝으로 이세 코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게임의 시작정 정체성을 만드는 요소를 세 가지로 압축해 소개했다. 바로 1) 다른 타이틀에서도 가능한 디자인이 아닌, 당신의 게임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담을 것. 2) 강렬하고 기억에 남는 상징을 통해 플레이어를 사로잡을 것. 3) 플레이어의 마음을 흔들 잊지 못하는 디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