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트롤나인 김형섭 AD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오늘(19일) 코엑스에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픽셀 2024'를 개최했다. '픽셀 2024'는 슈퍼크리에이티브가 자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행사로, 게임 및 서브컬쳐, 2D 아트를 핵심 키워드로 슈퍼크리에이티브 외에도 '컨트롤나인', '스튜디오비사이드', '버니바이트'의 핵심 개발자들이 참여,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컨트롤나인'에서는 '혈라'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김형섭 AD를 비롯해 주요 개발진이 참가했다. 김형섭 AD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특유의 디테일한 표현력과 육감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주목받았으며, 시프트업에서 '데스티니 차일드'의 아티스트로 참가한 후 '승리의 여신: 니케' 개발 초기 아트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이후 2023년 11월부터 컨트롤나인에 합류, 신작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김형섭 AD는 특유의 '육덕' 스타일을 서브컬쳐 스타일에 맞춰 구현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했던 내용을 공유했다.

강연에 앞서 김형섭 AD는 ‘육덕’이라는 단어부터 정의했다. '육덕'의 사전적인 의미는 '몸에 살이 많아 덕스러운 모양'으로, 최근 서브컬쳐에서는 '덕스럽다'는 부분이 다소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이 부분까지 고려해서 김형섭 AD는 '몸매에 볼륨감이 크고 살집이 적당히 있어 매력이 있는 몸'을 육덕이라고 지칭했다.

이러한 '육덕'은 유서 깊은 미의 한 갈래이지만, 날씬한 체형에 비해 다소 호불호가 갈린다. 서툴게 다루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날씬한 체형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만큼, 이를 잘 살리면 유니크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 '육덕'은 분명 매력적인 요소지만, 호불호가 있어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김형섭 AD는 육덕을 잘 표현하기 위한 방법에 앞서 주의할 사항과 제한 사항들을 먼저 소개했다. 일단 '육덕'을 표현할 때는 옷태가 다소 한정되는 제약들이 있다. 육덕은 단순히 빵빵하기만 한 게 아니라 들어간 부분까지 표현해줘야 하는 만큼, 그 태를 제대로 잡아주지 않으면 실제 체형보다 더 커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스티나 프리한 스타일의 옷은 입히기 어렵고, 몸매가 부각되는 옷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디자인이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육덕은 강렬한 에로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반대로 날씬한 체형이 보여줄 수 있는 청순하고 귀엽고 우아한 느낌을 전달하기 비교적 어렵다. 아울러 신체 발달과 나이를 연관짓는 인식이 있는 만큼, 육덕진 체형은 성인이 아닌 나이대를 표현하기 힘들다. 아울러 살집 그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는 만큼, 날씬한 체형에 비해 보편적으로 어필하기 어렵다. 다만 이 부분은 살집이 있는 부위와 정도에 따라 거부감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지는 만큼, 더 디테일하게 접근해서 완화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육덕'의 이러한 난제를 공유한 김형섭 AD는 이를 어떻게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내용을 풀어갔다. 우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정하고, 서브컬쳐 게임의 아트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그려나가자는 것이었다.

▲ 흔히 연상하는 '서브컬쳐'는 귀여움의 이미지가 더 강해서 '육덕'을 떠올리기 어렵다

김형섭 AD는 서브컬쳐 게임 아트의 특성부터 차근차근 분석해나갔다. 통상 서브컬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0대 청소년이 주류이며, 그런 만큼 귀엽거나 풋풋한, 혹은 라이트한 그런 인상이 메인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육덕'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렇지만 이 또한 콘텐츠 성격에 맞춰 다르게 표현하면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 김형섭 AD가 발견한 포인트였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얼굴 표현을 흔히 말하는 서브컬쳐 미소녀 계열의 특징적인 조형을 잘 살릴 것을 강조했다. 사람의 인상은 보통 얼굴이 크게 좌우하는 만큼, 이 부분에서 그 문법을 잘 지키면 기본적으로 서브컬쳐 아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는 채색법이 언급됐다. 리얼한 채색법이 아닌, 서브컬쳐 유저들이 선호하는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축으로 해서 깔끔한 명암과 색처리, 2D다운 선이 명확한 아트를 핵심으로 짚었다.

▲ 그럼에도 여러 아티스트들의 노력 끝에 서브컬쳐에 맞는 육덕이 점점 시장에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세부적으로 체형의 디자인을 잡을 때 고려할 점에 대해서도 소개됐다. 우선 체형의 두 가지 핵심으로는 골격, 프레임을 통해서 드러나는 실루엣과 체지방 및 근육으로 표현되는 체조직 두 가지를 꼽았다. 상체와 하체의 크기에 따라서 다양한 체형으로 나눈 가운데, '육덕'을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핵심이 되는 부위들이 잘 드러나거나 잘 들어가있어야 하는 만큼, 잘록한 허리와 큰 가슴, 엉덩이를 표현할 수 있는 체형이 육덕에 유리하다고 보았다.

체조직은 뼈, 근육, 체지방으로 구성된 가운데, 이미 실루엣에서 골격이 들어가있는 만큼 근육과 체지방의 효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체지방은 많아질수록 둥글둥글해지고, 근육은 크고 다부진 느낌을 주는데, 그 비중을 흔히 보통이라고 두는 정도에서 어느 정도 업다운한 정도가 선호도가 높은 체형이라고 소개했다.

▲ '육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골격, 실루엣에 대한 고찰과


▲ 체지방, 근육량의 비율 그리고 주요 부위 주변의 '디테일'도 신경써야 한다

김형섭 AD는 체지방과 근육 비중을 어느 정도 맞춘 뒤에는 구체적인 조형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단순히 가슴이나 엉덩이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겨드랑이에 접힌 살이나 근육의 발달된 정도 묘사 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받는 인상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부위가 아주 크지 않아도, 그 주변 디테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우선 육덕에서 가장 중요한 가슴 표현에 대한 팁으로 '위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리 굴곡을 가릴 정도로 커지면, 신체 실루엣을 볼 때 통짜처럼 보이기 때문에 늘씬하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잘록한 허리, 큰 가슴과 엉덩이가 최근의 '육덕'에서 중요한 포인트인 만큼, 허리 굴곡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엉덩이를 크게 보이면서 허리를 좀 더 슬림하게 보이는 팁으로는 허리 굴곡을 골반에 가깝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허리선은 신체의 전체적인 인상을 전달하는데, 그 굴곡이 골반 가까이에 있으면 골반부의 면적이 좁아지면서 좀 더 슬림하게, 그리고 그와 대비해 골반이 더 강조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김형섭 AD가 매번 듣는 질문인 "왜 발을 좁게 그리느냐"에 대한 답이 언급됐다. 그의 일러스트는 항상 허벅지가 굵고 탄탄한 반면, 발은 허벅지에 비해 굉장히 작은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형섭 AD는 "굵고 탄탄한 허벅지에 전체적으로 쭉 뻗어나가는 각선미, 두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고안한 스타일이다"라고 설명했다. 허벅지부터 각선미의 유선형의 리듬을 그려나가는데, 발이 넓어지면 마치 둔기처럼 둔탁한 느낌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발을 좁게 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허벅지의 윤곽에 따라 어느 정도 종아리를 키우지 않으면 너무 튀어보이기 때문에, 종아리의 볼륨감도 어느 정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발을 좁게 그린 그의 화풍에는 '육덕'을 위한 디테일이 숨어있었다.

육덕 표현의 기본을 설명한 뒤, 그는 '육덕'과 가냘프고 여성적인 느낌을 동시에 내고자 고민했던 부분을 소개했다. 그 방법이란 흉곽을 작게 만드는 것으로, 사람들이 인체를 파악할 때 얼굴부터 시선이 내려가면서 전체적인 인상을 확인한 뒤 다시 얼굴로 돌아온다는 연구결과를 활용한 방법이었다. 이를 활용해서 디자인하면 가녀린 상체를 통해서 가늘고 여성스러운 인상이 먼저 전해지게 된다. 그러다 밑으로 시선을 내리게 되면 상대적으로 큰 하체가 보이면서 볼륨감이 느낀다는 것이 김형섭 AD의 설명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신장이 아주 크지 않아도 육덕진 캐릭터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통상 '육덕'은 크고 풍만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그보다는 '비율'과 '디테일'이 육덕을 표현할 때 중요한 포인트라고 재차 짚었다. 그 좋은 사례로는 '라이자의 아틀리에'의 주인공 '라이자'가 언급됐다. 라이자는 연령대도 어리고 신장도 그리 크지 않은 데다가 소위 '육덕체'라고 하는 캐릭터만큼 허벅지만 강조된 형태는 아니지만, 상체와 하체의 비율을 적절히 활용해 그 허벅지의 특징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형섭 AD는 상체를 줄이고, 하체를 강조하는 비법을 생각해보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겨드랑이 살 접힌 표현, 팔뚝 라인, 복부 묘사 등등 디테일을 강조한 김형섭 AD는 "육덕은 생각보다 스펙트럼이 넓다"며 그 고유의 매력을 살리면서, 다양한 캐릭터 디자인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이자 이 강연에서 '육덕'을 소개한 이유라고 밝혔다.


▲ 단순히 특정 부위를 크게 그리는 것만 능사가 아니고, 결국 '디테일'이 육덕을 완성하는 포인트다


■ Q&A

Q. 육덕에 빠진 계기가 궁금하다.

=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끌렸다. 그래서 정작 이 육덕이 내 그 취향이다라고 파악하기까지 좀 걸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Q. 육덕캐 중 최애캐가 있을까?

= 아직 없다.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내가 정말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캐릭터, 갈망하는 캐릭터를 아직 못 그렸고, 아직 안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캐릭터가 나온다면, 그게 육덕 최애캐이지 않을까.


Q. 강연 중 선호하는 케이스로 엘린, 라이자를 꼽았는데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나 프로젝트를 또 예로 들자면 어떤 게 있을까?

= 육덕을 마음에 들게 다룬 작품이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니케는 내가 그걸 하고 싶어서 디렉팅했던 파트가 있었다. 결국 나를 충족시킬 작품이 없으니까 내가 만든다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다.


Q. 평소 일러스트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디테일을 연구하는 요령이 따로 있나?

= 기본적으로 ‘애정’과 ‘집착’, 즉 더 잘 표현하고 싶은 것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우물을 파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보고 있는 레퍼런스에 어떤 정보가 있나 골수까지 빨아먹는 그런 자세가 디테일을 잡는 원동력인 것 같다.


Q. 육덕의 매력이 채색법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한데 , 캐주얼한 채색에서 이 육덕을 살릴 방법이 무엇일까?

= 어렵고도 굉장히 반가운 질문이다. 사실 나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한 부분이다. 그간 내 화풍에 거부감을 느끼셨던 분들이 대부분 리얼하면서도 또 리얼하지 않은 채색법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선과 면이 잘 보이는, 라이트한 방향으로 바뀌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만의 특유의 리얼한 조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핵심은 면을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계산해서 잡아낼까 하는 부분, 즉 양감 표현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빛이 들어올 때 닿는 부분과 그림자, 그리고 어떻게 피부의 질감을 잘 잡고 정확하게 담아내나 하는 부분들까지 다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외에도 하나 더 꼽자면, 채색 외에도 '드로잉'에서 정확한 양감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까. 색 자체가 라이트하고 단순하더라도, 드로잉만으로 양감이 느껴지고 조형이 느껴지면 충분히 생동감 있는 느낌이 살아난다고 보고 있다.


Q. 자신 외에 육덕을 잘 표현하는 작가 혹은 작품을 추천하자면?

= 생각보다 굉장히 많지만, 막상 이 자리에서 말하려니까 떠오르질 않는다(웃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Q. 자신이 디렉팅한 '육덕' 스타일을 원화가들이나 아티스트들이 잘 못 따라온다고 할 때, 어떻게 지시하고 있나?

= 애초에 팀을 구성할 때, 면접부터 노출도 있는 디자인이나 육덕에 거부감이 있나 확인한다. 거부감이 없는 사람을 뽑는 게 필수다. 왜냐하면 그 거부감이 단순히 취향 정도가 아니라, 생리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육덕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일을 맡기거나 하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