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난 왜 조용필 20집을 다이슨 헤드폰으로 들었을까
백승철 기자 (Bector@inven.co.kr)
다른 하드웨어에 비해 유독 음향기기에 자신이 없는 편이다. 관심이 전혀 없는 분야는 아니지만 주관적으로 평가할 요소들이 너무 많다 보니 뭔가 열심히 피력해도 "응 나한텐 그래도 돼!"의 느낌이라 그런 건지.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요리들이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한들, 고수가 올라간 고급 음식은 쳐다도 보기 힘든 것과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음향기기 또한 그냥 내 주관에 따라 들리는 설렘에 따라 평가하는 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뿐더러 공식 정보에서의 수치로 표현되는 것과 내게 들리는 것이 너무나도 다르다.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들렸다를 풀어서 얘기하는 편이 일반적으로도 정보를 전달하기 수월하더라.
영국의 글로벌 가전 기업, '다이슨(Dyson)'의 최근 행보가 참 재밌다고 느꼈다. 보통 다이슨 하면 무선 청소기를 필두로 헤어드라이기, 공기 청정기 등의 대표 제품들을 떠올리겠지만 내게는 코로나 엔데믹 무렵에 흐름 좋게 선보인 공기청정기 겸 헤드셋이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있다. 콘셉트 자체가 도시의 오페라 그 자체였던 것 같다.
"WHO에서 제시한, 현대 도시에서의 대기 오염 및 소음 수치가 개인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안 좋아지고 있어 다이슨에서 해답을 내놓았다"라며 공개한 '다이슨 존(Dyson Zone)'.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제아무리 헤드폰의 착용감이 좋지 않더라도, 음질이 좋지 않더라도, 심지어 공기 청정 효과가 미비하더라도 다이슨처럼 해당 분야를 꽉 쥐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당사 최초의 웨어러블 기기를 내놓으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항상 소망하는 일이기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니까.
다이슨 존을 기획하며 될까 싶었던 것일까, 혹은 자사 애플리케이션 '마이다이슨(MyDyson)'의 확장을 고려한 시도였을까. 다이슨에서 출시하면서도 판도라의 상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이슨은 최근 '다이슨 온트랙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Dyson OnTrac™)'이라는, 음향기기로써의 정통성 하나로 해당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일이 있어 여의도 IFC몰의 다이슨 매장에서 해당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다이슨 온트랙 뮤직 라이브러리' 공간을 제공해서 한번 가봤다.
오랜만에 둘러본 다이슨 매장은 과거에 한 번 방문해 봤을 때 느꼈던 예전 그대로 깔끔해서 좋았다. 다이슨 온트랙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도 마찬가지. 해당 제품 디자인에 대해 반응이 좋지 않은 편이나, 실물로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각각 파트별로 헤드폰 본체, 이어쿠션 그리고 캡까지 다양한 색상을 지원하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괜찮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것 말고는 개인적으로 피사체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편이며 장점을 최대한 보기 위해 노력하지만 찾기가 좀 힘들었다. 집에 두면 예쁠 것 같긴 한데 제품을 들고 청음하는 순간부터 헤드폰을 내려놓을 때까지 아쉬운 부분 투성이여서 금방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일단 굉장히 무겁다. 일반적으로 "어 좀 무겁네" 하는 헤드폰의 기준은 300g~350g 사이로 그보다 100g 더 나가는 450g이다. 잣대를 들이밀어 미안하지만, 가격보다 무게가 더 부담스럽다고 호불호가 갈리는 이 영역 깡패(?) 에어팟 맥스의 무게가 참고로 384g이다.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워서 잠을 좀 설쳐 그런진 모르겠는데 몇 곡 듣지도 않았는데 어깨, 그러니까 승모근이 묵직해지더라.
그러고 보니 헤드폰을 사용하고 승모근에 자극이 오는 건 또 처음인 것 같다. 다이슨에서는 제 나름대로 무거운 헤드폰의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담하기 위해 혹할만한 장치 하나를 해두었다. 배터리가 헤드밴드 양옆으로 탑재되어 있지만 원체 무게가 있어서 그런지 목에 오는 부담이 적은 대신 상체 전체에 부담이 오는 편이었다. 서서 청음하는 입장에선 어깨가 잔뜩 올라가있는 내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더라.
알파벳 Q를 연상케하는 하우징과 이어쿠션의 경우, 장단점이 명확하다. 어필 가능한 부분부터 얘기하자면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한다. 조금 더 과감하게 표현하면 너무 빡세다. 호불호의 영역일 수 있어 비난하기 어렵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다만 노이즈 캔슬링에 대해 연구하고 물리적인 설계를 통해 다이슨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근데 이게 또 단점이다. 내가 땀이 굉장히 많은 편은 아니지만 3곡 정도 들었을 뿐인데 노이즈 캔슬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인지 이어패드 닿는 부분에 땀이 굉장히 많이 났다. 외형을 보고 "김종국 헤드폰이 인기 많은 것처럼, 운동 좋아하는 김동현 같은 사람이 끼면 잘 팔리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패드 부분에서 땀이 계속 머물러있어 누구에게 특화된 제품이길래 이렇게 비쌀까,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만 이어패드가 닿는 부분만 땀이 찰뿐, 극세사 이어쿠션 소재를 채택하여 귀가 덥거나 눌리지는 않는다. 공식 페이지의 제품 모델들을 보며 조심스레 추측하건데, 타인의 시선도 중요한 성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타깃인가 하다가도 화장품이 다 묻을 것 같다는 생각에 또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시 세척이 가능한 소재일지도?
새로 체험해 보는 음향기기는 최신 음악으로 듣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주 발매된 조용필 20집도 안 듣고 있었는데, 기대가 커서 상처가 깊다. 가격이라도 좀 저렴한 편이면 모를까, 지금 헤드폰 분야에서 잘나가는 3대장과 비교했을 때 가격부터 벌써 두 번째로 비싸다.
내가 어렸을 적엔 비싼 가격이 곧 헤드폰 성능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가벼운 것도, 디자인도, 특정 기기와의 탁월한 호환성도 전부 성능이라 불리는 시대다. 비교 대상이 너무 유명한 제품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다이슨 온트랙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에서는 비교군 대비 앞세울만한 장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표현하는 소리에 대해서도 할 말이 좀 있다. 일반적으로 저음을 베이스로 한 하우스 장르의 음반에서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음역대가 중구난방인 일렉트로니카 장르에서 표현되는 날카로운 고음에 좀 실망을 했다. 고음을 잘 내주는 헤드폰의 경우, 날카롭게 치고 들어와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분무기처럼 흩어지는 느낌을 주던데 해당 제품에서는 그냥 고음 깨지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인 마이다이슨을 사용해서 설정을 해볼 걸 그랬나? 싶다가도 1개 장르의 노래만 듣는 것도 아니고 듣는 노래의 장르가 바뀔 때마다 설정을 바꾸는 걸 생각할 바엔 그냥 어플을 안 쓸 것 같다. 그렇게 다이슨 매장에서 기대했던 헤드폰과 이별의 뒤안길을 밟았다.
쭉 써 내려가니 너무 비난만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기대를 너무 크게 했던 극성팬의 자존심 문제 정도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서론에도 언급했지만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은 소비자 입장에서 너무 반갑다. 다만 경쟁 제품 대비 장점이 없는데 가격까지 높으면 "브랜드 비용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다.
혹은 내 선곡이 잘못된 걸까. 우리네 아버지 때부터 레전드 가수였던 조용필 노래로 청음한 내 잘못일까. 나 역시 바운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용필이형 노래를 자주 듣게 된 새파란 피라미지만, 그래도 옛날부터 일편단심 민들레야, 못찾겠다 꾀꼬리,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같은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로 존경을 표한 작품들 전부 형의 노래인 건 알고 있긴 했다. 그냥 평소처럼 힙합이나 들으며 저음 처리가 잘 되는 것 같다고만 느꼈으면 이렇게 길게 안 썼을 텐데.
이번 신제품과는 기대와는 다른, 뜻밖의 이별을 했지만 다음 제품 혹은 후속 처리를 통해서라도 다이슨이 헤드폰 분야에서도 성공하는 기업으로 대박나기를 바란다. 지금 제품의 가격 책정에 불만이 많을 뿐, 잘 다듬어지고 준비되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 많은 제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참, 조용필 20집은 차 오디오로 그냥 들어도 좋더라. 물론 내 귀로는 한오백년도 멀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