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오어 얼라이브. 이제는 현상금 수배서에서 많이 보던 문구가 많이 떠오르지만 한때는 대전 격투 게이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던 시리즈의 이름이다. 보통 격투 게임은 주먹이 불타오른다는 비유가 적절하지만, 이 게임은 그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이런 말이 더 어울렸다. 그 옛날부터 3D 미형 캐릭터를 갈고 닦기 위해 부단히 고심해왔던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미'에 주목한 외전 시리즈, 'DOAX'가 본편보다 더 유명한 본말전도(?)가 일어났다. 심지어 DOAX에 나오던 캐릭터가 본편에 나오면서 호평을 받는 등 '미소녀' 게임으로서 정체성이 더더욱 강해지던 상황. 부분유료화라 아쉬웠던 외전 시리즈에서 다시금 '패키지 게임'으로 회귀한 신작은 그만큼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미소녀들의 역동적인 격투가 아니라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또다른 역동적인 무브먼트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번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하면서 계속 갈증을 느꼈다.

게임명: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 DOAX
장르명: 연애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5. 3. 27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코에이테크모
서비스: 코에이테크모
플랫폼: PC, PS
플레이: PS5


스크린샷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생생함
그저 보고 찍는 것만으로도 좋은 아름다움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사실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게임이다. 비너스 군도에서 여성 캐릭터들과 교류하고 교감하면서 연애하는 시뮬레이션. 물론 그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붙어야 하겠지만, 이 게임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들의 '미'에 대해서는 논할 도리가 없다.

물론 DOA 시리즈를 즐겼던 팬 입장에서는 다소 아쉽긴 하다. 시리즈의 근본 캐릭터인 카스미나 아야네 외에도, 외전작에서 각각 특색 있는 미를 극도로 살린 캐릭터들이 다채롭게 등장했는데 그걸 온전히 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처음 게임을 할 때는 엔진이 바뀌면서 살짝살짝 뉘앙스가 바뀐 듯한 묘한 이질감이 들기도 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수많은 2차 창작자들을 끌어당겼던 그 '미'의 위력은 여전했다. 전작부터 오너의 첫 전속 서포터이자 평범한 학생 감성에 가까운 미소녀 미사키, 순진무구하면서도 파워풀한 호노카, 짓궂은 어른의 성숙한 미를 보여줄 타마키, 쿨뷰티와 학생 같은 풋풋한 느낌이 혼재한 나나미, 오너를 사모하는 세상물정 어두운 귀공녀 스타일의 피오나, 철벽을 넘어 공략하는 즐거움을 주는 사무적인 미의 엘리제까지. 그 여섯이 보여주는 각각의 개성적인 '미'도 외형 못지 않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물론 미의 기준이나 미학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그간 일본의 게임계 및 문화 각계에서 다져왔던 유형을 3D 고퀄리티 그래픽으로 이만큼 녹여낸 사례는 얼마 없지 않을까 싶다.




▲ 챕터하다가 계속 촬영 버튼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엮었느냐가 게임에서 중요한 만큼,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그냥 아름다운 캐릭터를 모으고 관찰하는 정도라면 게임으로써는 성에 차지 않는다. 지금처럼 서브컬쳐 게임들이 범람하고 있는 시기에는 한 번 경외의 눈길을 준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기 십상이니 말이다.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이를 더 다각도로 관찰하면서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카드로 '촬영'을 선택했다. 그 맥락도 오너가 비너스 군도의 페스티벌을 홍보하기 위해 비너스들의 사진을 촬영, 제출하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맞췄다. 카메라 설정도 망원 렌즈, 표준 렌즈부터 필터링과 노출, 색상과 채도 보정까지 디테일하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설정하다가 놓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간이 촬영까지, 그 아름다움을 다각도로 담기 위한 기반이 잘 갖춰져 있었다.

▲ 망원, 표준 렌즈를 오가면서 다양한 구도에서 촬영은 물론

▲ 필터링과 노출, 색상 및 채도 보정에 프레임과 스티커 등으로 사진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

아마 미연시를 하던 사람이면, 그렇게 한눈을 팔다가 중요한 부분을 놓쳐서 루트를 잘못 타면 어떨까 두려움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부분에서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확실히 부담을 덜었다. 중간중간 '차트'를 통해 지나온 챕터의 분기점 장면을 확인할 수 있고, 해금되지 않은 분기점은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해줘서 다음 번에 자신이 원하는 루트로 갈 수 있게끔 유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회차 플레이를 위한 인계 시스템도 마련, 각 캐릭터별 진엔딩으로 가는 길을 더욱 쉽게 마련했다. 그러면서 다회차 시에는 조건에 더 잘 맞거나 혹은 원하는 순간을 더 쉽게 포착해서 찍을 수 있는 '시간 정지'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하는 등, 가지 못했던 길로 가보고자 하는 욕망을 불태우도록 유도했다.

▲ 어헝 두 번째 챕터부터 분기점이 있었을 줄이야

▲ 각 분기점에서 해금되지 않은 부분은 조건을 명확하게 표시해뒀다

▲ 때론 각잡고 찍은 것보다 잠깐 간이 촬영을 한 게 점수가 잘 나오는데

▲ 1회 클리어 후 시간 정지 기능으로 원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그거만 하기를 바란 건 아닌데
더 꽁냥거리지 못하고 사진만 남기는 아쉬움


이렇게만 놓고 보면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3D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나무랄 것이 없어 보인다. 캐릭터의 미는 물론이고, 각 캐릭터별 속성도 나름 잘 갖춘 데다가 원하는 캐릭터와의 연결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유도했기 때문이다. 비너스 군도의 오너로 비너스 오브 비너스를 뽑고, 연애까지 골인하는 그 과정에서 소위 '밀당' 상황도 많아서 하다 보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일도 잦다.

그 아슬아슬한 맛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부터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구조적인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리즈의 강점인 고퀄리티의 3D 모델링이 너무 한정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게 아쉽다. 원래 이 외전 시리즈는 '비치발리볼'부터 시작됐던 걸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오너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선택지 외에는 사진을 찍는 게 전부인데, 그 액션은 굉장히 수동적이다.


▲ 물장난도 치는 등 소소하게 즐기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 어쨌거나 제출해야 할 과제가 있다 보니

▲ 그거 채우려고 결정적인 씬에 카메라 위주로 신경을 쓰게 된다

심지어 막 찍는 게 아니고, 미리 주어진 '조건'이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마저도 줄어든다. 처음에는 그 조건이 베스트샷을 찍기 위한 지침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전개에 대한 예고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만, 점점 원하는 엔딩으로 가기 위한 기계적인 행동처럼 변모한다. 그러다 보니 그 조건에 맞는 한 순간을 포착해서 찍는 행동에만 치우쳐져서 그 캐릭터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일어났다. 마치 최근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기에만 몰입하다 보니 정작 그 순간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이전작들과 방향성이 점차 달라졌으니 1:1로 비교하긴 어렵다. 또 사진을 그렇게 찍어대는 것도 어찌 보면 그런 감상을 남기며 콘텐츠를 소모하는 방법이기도 하니, 마냥 비판할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몰입감이 낮다고 우려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이 캐릭터와 교감을 쌓아갈 수 있는 콘텐츠나 빌드업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3D라는 그래픽적인 측면만 빼고 보면 고전적인 2D 연애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상호작용 요소는 거의 없이 캐릭터의 대사를 보고 들으면서, 그 상황에 맞게 선택지를 고르는 게 전부다. 중간중간 트레이닝이나 복근운동, 단체줄넘기, 물장난 등의 미니게임이 있긴 하지만 거의 의례처럼 한 번씩 하고 넘어가는 정도에 그친다.

▲ 몸이 반사적으로 사진을 찍게 만들기는 하는데 각 캐릭터마다 딱 한 번만 나올 줄이야

물론 그러면서 옷이 젖고 안이 비치는 등 눈길이 가는 장면들이 연출되긴 하지만, 그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는 임팩트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전작처럼 원할 때 그렇게 같이 계속 꽁냥거리면서 노는 구도가 계속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결국 진정한 비너스로 누군가 한 명을 선택해야 하고 그 루트가 끝이 나는 이 구도에서 그 순간순간은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걸 잘 꾸며놓고 예쁜 캐릭터로 구미가 당기게 하지만, 소위 현자타임이 오고 나서는 그 허탈함을 다시 채울 무언가를 주지 않는다고 할까.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연애 시뮬레이션의 기본인 '연애'의 상황이 이 게임에서는 상당히 희석되어있기 때문이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면, 초반에는 캐릭터 여섯 명을 다 모으는 것에 힘쓰는 나머지 꽁냥거릴 틈이 거의 없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사진을 찍으며 환기를 시키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한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거나 할 방법은 딱히 없어서 그저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다 모이고 나서부터 이야기가 급전개가 되는데, 그때 가서 갑자기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압박이 갑자기 들기 시작한다.

처음 시작부터 페스티벌 참가자를 많이 모집하고, 그 중에서 최고 비너스를 뽑아야 한다는 단서가 나오긴 하지만, 작중 인물의 대사를 제외하면 페스티벌이라는 요소를 느끼게 할 만한 장치가 거의 없어서 실감되지 않는다. 아울러 각 캐릭터별 루트도 후반에 가서야 조금씩 달라지고, 그 전에는 차이가 크게 없다 보니 빌드업을 쌓고 있다는 느낌도 크지 않다. 나중에 가서야 아 이런 게 있었구나, 하고 차트를 되짚어보면서 루트 계산을 착착 하기 쉽게는 해뒀지만, 그 순간순간에 완전 몰입할 만한 상황을 뚜렷히 제시하지는 못했다.

▲ 이런 건 대부분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한 내용들만 나와있어서 나중에는 그저 선택지만 고르게 된다

어드벤처식으로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을 마련해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면 무언가 키 카드라도 제시하면서 템포에 변화라도 줄 텐데, 그마저도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엔 없었다. 어느 캐릭터를 만나러 선택하는 상황 자체도 극히 제한적이고, 그 시간마저도 딱딱 정해져 있어서 단조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로딩도 길어서 피어오르던 연애세포가 조금은 주춤해질 때도 많았다.

이를 환기시키기 위해 중간중간 문자를 주고 받는 장면도 넣었지만, 그게 꽤나 잦고 또 내가 직접 공략하고 싶은 상대와 상관 없이 쭉 오기 때문에 조금 심하게 말하면 업무 카톡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물론 그게 오너의 업무이긴 하지만, 게임을 하는 나 자신은 어쨌거나 이 게임의 제목처럼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휴가를 즐기는 느낌보다는 공략, 업무, 이런 식으로 느껴지게끔 콘텐츠를 배치한 점에서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은 좀 핀트가 엇나간 느낌이 들었다. 앞서 말한 '차트' 시스템까지 더해지면 이 느낌은 더욱 커진다. 원래는 루트 공략 상황을 더욱 쉽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지만, 이리저리 치이기도 하고 또 상황을 아예 끌고 나갈 방법조차 없으니 지금 상황에서 제일 하기 쉬운 선택지를 자꾸 고르게 된다고 할까.

▲ 매번 이동할 때마다 로딩도 길고, 문자 기능은 어찌 보면 현실적(?)이라 숨이 막히기도...여기서도 일하는 느낌


더 보고는 싶은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
이걸론 부족하다, 더 갖고 와 아니 다 갖고 와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의 이론은 사실 나무랄 것은 없었다. 잘 갖춰진 3D 캐릭터 모델링과 디자인에, 그들의 아름다움을 더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촬영에 힘을 실어서 한층 더 시너지를 내고자 했다. 여기에 6명으로 캐릭터 라인업을 한정하고 차트나 여러 기능을 통해서 원하는 캐릭터와의 루트로 쉽게 이어질 수 있게끔 유도해 연애 시뮬레이션이 친숙하지 않은 유저도 즐길 수 있게끔 했다.

그렇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처음에는 '촬영'에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캐릭터와의 그 순간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촬영 기능은 프레임이나 여러 효과까지 깊게 들어가면 커서창이 뜻대로 안 움직이는 등 UI 편의성도 좋지 않아서 몰입감을 해쳤다.

여기에 연애보다는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오너'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정해진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캐릭터의 매력을 볼 수 있는 순간도 극히 한정적이었다. 가면 갈수록 캐릭터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잘 파악해서 답을 고르는 쫄깃함이 있긴 한데, 그렇게 연애가 깊어지는 순간이 꽤 후반에, 그것도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조금 낯설다.

그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비너스 베케이션 프리즘'의 캐릭터들은 계속 잔상처럼 남아있다. 청소년 이용불가라지만 그 정도까지의 파격이 없다는 건 뻔히 알면서도, 아직 가지 못한 루트를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 만큼 그 캐릭터들의 디자인은 확실하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그 순간을 미처 즐기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만큼 그 순간순간의 씬은 아름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까 차트를 현실에 타협하는 도구로 변질됐다고 얘기는 하지만, 다음 번에 원하는 캐릭터 루트로 갈 수 있는 나침반이라 재도전의 의사가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러다가도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면 그 캐릭터를 보러 가볼 의향은 있다고 할까. 그 마지막 걸림돌이 팬을 확보할 때마다 해금되는 의상을 미리 볼 수 없다는 점인데, 이 부분이라도 좀 개선되면 더 열의가 불타오를 것 같다.

▲ 필요한 만큼은 보여줬다가 아니라 좀만 더 어떻게 안 되겠니 DLC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