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IT 노동조합이 각자 회사를 상대로 공동요구안을 제시했다. 2018년 네이버 노조를 시작으로 민주노총 산하 IT 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처음이다. IT 위원회 구성원 1만 8천여 명, 게임노조 구성원 5천여 명 규모의 공동요구다. IT 위원회 소속 게임노조는 넥슨, 스마일게이트, 엔씨소프트, 넷마블, 웹젠, NHN, 카카오게임즈, 엑스엘게임즈 등이 있다.

▲ 민주노총 오세윤 IT 위원장

오세윤 IT위원장(네이버 지회장)은 "업계가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고용 불안, 공정한 평가 등에 개별 업계 차원이 아니라 산업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마련되었으며, 궁극적으로 IT/게임 산업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및 산업 내 건강한 노동 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12일 밝혔다.

오 위원장은 "IT 위원회 소속 지회들이 그동안 개별 기업과 교섭을 통해 노동 조건을 개선해 왔으나, 산업 전반에서 노동자들이 존중받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개별 교섭을 넘어 산업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공동요구안 제시는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건강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공동요구안 마련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오로지 사람의 노동으로 돌아가는 업계에서 사람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오고, 그래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서비스와 게임도 만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공동요구안 주요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치위원회 설치, 인사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평가 기준 공개, 경영상 이유에 따른 전환 배치 절차 개선, 분사·인수·합병(M&A) 등 기업 변동 시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절차 개선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치위원회 설치 조항을 제시한 배경으로 오 위원장은 "업계 내 경쟁으로 인한 업무 압박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상 괴롭힘 발생 시 조사 판단 주체가 모두 사용자이고, 사용자의 주관성, 괴롭힘에 대한 인식, 해결 의지, 괴롭힘 당사자와의 관계 등이 조사와 판단에 개입할 여지가 있어 괴롭힘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직장 내 괴롭힘 조치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해 인재 중심의 산업으로 체계적이고 섬세한 인적 관리를 강화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인사 평가 기준 공개 조항은 업계의 화두인 '공정한 보상'과 연결된다. 오 위원장은 "평가를 통해 보상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공정한 보상’을 위해서는 인사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환 배치, 기업 변동 시 절차 개선 조항에 대해 오세윤 위원장은 “회사 내 프로젝트 개편에 따른 전환 배치가 수시로 발생한다. 또한 코로나 이후 업계의 정체기가 찾아오며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기업 변동을 활용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고용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이 안정된 토대 위에서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것이고, 그래야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이에 대한 절차를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을 소프트웨어 업계에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 입장도 명확히 했다. 그는 "노동 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IT/게임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소진시키는 단기적 접근에 불과하다. 이는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나아가 업계 전반의 인적 토대를 취약화하여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한다. 노동자를 갈아 넣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가 더 몰입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 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라”고 밝혔다.

IT 위원회는 2025년 각 회사의 임단협 교섭에서 공동요구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교섭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오 위원장은 "우선 교섭에서 공동요구안이 회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것임을 설명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만약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화섬식품노조 IT 위원회가 산별 노조로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연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