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사이버펑크한 디자인에 올드스쿨의 엇박, '에테리아: 리스타트'
윤서호 기자 (Ruudi@inven.co.kr)
게이머들에게 있어 사이버펑크라는 단어처럼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킬 단어도 드물 것이다. 레트로가 되어버린 8~90년대의 감성을 자극하기는 말이기도 하고, 시니컬한 디스토피아를 즐기며 감상에 빠졌던 일도 생각나니 말이다. 디자인적으로는 어두운 골목과 네온 사인, 인간과 기계의 대비가 묘한 밸런스라는 타 장르에서 보기 힘든 특유의 감성이 있다.
이러한 감성 때문인지, 지난 2022년 '에테리아: 리스타트'가 처음 탭탭 게임 발표회를 통해서 발표됐을 때 턴제 RPG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출시 여부도 미정이었지만, 사이버펑크풍 세계관을 돌아다니며 해킹하거나 혹은 적과 화려하게 전투를 펼친다는 그 청사진은 국적에 상관 없이 게이머면 혹할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2년도 더 지난 1월 9일, CBT로 찾아온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유저들을 찾아왔다. 미래적인 디자인과는 다른, 2020년대 이전에 친숙했던 양상으로 말이다.
게임명: 에테리아: 리스타트
장르명: 턴제 RPG
CBT 개시일: 2025. 1. 9.
플레이 버전: CBT 빌드개발사: X.D
서비스: X.D
플랫폼: PC, 모바일
플레이: PC
턴제+ARPG식 필드로 노린 시너지
흔한 내러티브를 역동적으로 끌어올리고자 한 시도
2020년 '원신'의 출시 이후, 서브컬쳐 유저들이 고퀄리티 3D 모델링을 내세운 모바일 수집형 RPG에 기대하는 척도가 달라졌다. 그렇게 빚어낸 캐릭터를 자유롭게 훑어보며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오픈월드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세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기 템포대로 퀘스트를 수행하고 파밍하면서 나아가는 JRPG식 구성을 기대하게 됐다.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튜토리얼 구간은 이런 구성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성별을 고른 뒤, 다소 제한적이지만 맵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숨겨진 보상을 얻고 적과 인카운터식으로 전투를 펼쳤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러 장치를 이용해서 일반적으로 가기 어려운 곳까지 뚫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과연 실제 필드는 어떨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튜토리얼이 지난 뒤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메인 스테이지를 차근차근 풀어가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만 기존의 웨이브를 클리어하는 방식이 아닌, 스테이지를 ARPG처럼 특정 구간을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잡몹은 은신한 뒤 기습해서 별도 전투 없이 처치하거나, 잠입해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등 유연함과 숨겨진 기믹을 풀고 추가 보상을 찾는 오픈월드 RPG식 구성을 일부 도입했다. 자연히 스테이지 길이도 통상 웨이브식과는 달리 길 수밖에 없는 방식이지만,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이를 오히려 내러티브를 몰입감 있게 풀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아예 한 챕터당 하나의 스테이지로 구성해서 그 챕터의 이야기를 완결성 있게 풀어간 것이다.
통상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나갔다 다음 스테이지로 들어갈 때, 이야기나 게임플레이의 맥이 잠깐씩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간 모바일 수집형 RPG가 짧게짧게 플레이를 이어가는 유형이 다수였던 만큼, 이런 부분이 오히려 쉼표처럼 작용했었다. 그러나 오픈월드 RPG가 히트를 치면서 모바일 기반 크로스플랫폼 게임에서는 좀 더 긴 템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도 유저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나쁘지 않은 시도를 보여줬다. 스테이지 중간중간의 쉼표 구간도 '섹션'으로 나누는 등 보완책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대화 장면도 단순히 등장인물끼리 서로 마주보는 구도뿐만 아니라, 곳곳에 마련된 배경의 장치들도 조명하고 인게임 컷신도 적극 활용하면서 '에테리아'라는 세계 속에서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정해진 포맷 안에서 최대한 다각도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익숙한 루틴과 제어 장치
편의성과 효율이 좋아지면 브레이크도 자주 걸린다
스테이지 방식을 채택한 수집형 RPG라고 한 만큼,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그에 맞는 루틴이 이미 정해진 상태다. 스테이지를 쭉 밀다가 막히면 행동력을 소모해서 여러 던전을 돌면서 일일퀘를 돌고, 캐릭터를 육성해서 돌파하는 익숙한 루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오픈월드 방식을 채택한 게 아닌 만큼, 캐릭터 수가 상당히 많고 그 캐릭터 모두 최고 등급까지 별을 승급해서 키워나가는 또다른 고전 방식을 채택한 것도 눈에 띈다.
물론 그 방식 그대로가 아니라 '에테리아: 리스타트' 나름의 개선은 있었다. 장비를 파밍하고 육성하기 쉽게 재화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루틴을 압축했다. 통상 수집형 RPG가 장비를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던전을 돌아야 하는 일이 많지만,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코인만 소모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부담이 적었다. 또 소탕 기능은 없지만, 연속 전투를 걸어둔 뒤 창을 최소화해서 다른 스테이지를 공략하거나 혹은 PVP인 아레나를 하는 등 동시에 병렬적으로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PVP 전투 콘텐츠가 아직 완벽히 구현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 예고된 상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콘텐츠가 멈추는 시점이 빠르게 찾아왔다. 육성이 빨라진 만큼 그에 맞게 콘텐츠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레벨이나 메인 스테이지 제약이 걸려서 정체되는 시점이 빠르게 발생했다. 조금 연식이 있는 수집형 RPG나 혹은 이런 유형을 채택한 RPG를 했던 유저라면 아마 이런 경험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중간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구간이 있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구간 동안 숙제한 뒤, PVP덱을 연구하면서 이리저리 덱을 짜맞추고 성능캐에 대한 갈망을 끌어올리던 예전 수집형 RPG의 기본 문법이 떠오르는 구성이다.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경우는 그 옛날 방식처럼 투자를 유도하기보다는, 콘텐츠 소모를 늦추기 위한 브레이크의 느낌이 더 강했다. 계정 레벨에 따라 칼 같이 콘텐츠가 제한되고, 그 제한된 콘텐츠를 조금씩 돌면서 차근차근 나아가게끔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최대한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돌기 위한 방법도 친숙하다. 리세마라를 통해 키카드를 빠르게 뽑고, 이를 뒷받침할 각 속성별 저등급 유틸 캐릭터를 최소한으로 갖춘 원맨 캐리덱으로 기반을 갖추는 익숙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턴제, PVP 비중이 높다는 것에서 아마 짐작했겠지만,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속성 구조와 뽑기 확률은 그런 유형의 게임과 상당히 비슷하다. 빛, 암 속성의 SSR 캐릭터가 통상 뽑기에서 등장 확률이 낮고, 해당 속성 캐릭터만 등장하는 픽업을 뽑기 위해서는 별도의 재화가 필요한 '극상' 애니머스, 소위 월광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BM이 완벽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그런 시스템이 갖고 올 수 있는 우려는 인지한 듯했다. 80회 반천장 대신 100회 천장에, 돌파 효율은 스탯을 조금 올려주는 정도로 최소화하고 아티팩트 격인 사비오는 파밍으로만 얻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완화했기 때문이다. 업적 보상도 세분화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차례 뽑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 브레이크가 자주 걸려서 중간 단계 반복 파밍에 소요되는 시간이 좀 길었던 건 아쉬웠다.
자신만의 매력이 좀 더 필요한 '에테리아'
임팩트 있는 소재를 뒷받침할 캐릭터가 급선무
최근 서브컬쳐 게임 시장이 레드 오션을 넘어 블러드 오션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의 최소치도 높아졌다. 예전에는 일러스트와 다소 달라도 이해했지만, 이젠 일러스트보다 더 뛰어난 모델링을 보여줘야 유저들이 바라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혹은 다른 게임에 없는 그 게임만의 독특한 매력 요소를 캐릭터에서부터 보여줘야만 비로소 눈에 띈다.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최초 공개 당시부터 그런 자질이 눈에 띄었던 게임이었고, CBT에서도 그 부분을 일부 증명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내세운 수집형 RPG는 있지만 그 느낌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가 곳곳에 보였고, 모델링 및 연출도 준수했다.
그러나 이제 지켜야 할 세상과 애정캐릭터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그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플러스 알파가 필요해보였다. 네온 사인 가득한 가상 도시에서 벌어지는 스펙타클한 사건이라는 소재는 확실히 좋았고 이를 살리기 위한 인게임 연출과 스테이지 구도는 좋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나 세계관 자체는 중국발 아포칼립스의 공식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유명사 트랩이 다소 약해서 스토리를 술술 보고 넘어갈 수 있긴 하지만, 현 단계에서 번역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어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캐릭터성을 해치는 번역까지 일상다반사라 스토리를 읽는 게 오히려 몰입감을 해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일본어 더빙을 듣다가 스크립트와 더빙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여기에 메인스토리가 뚝뚝 끊겨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멈춰버리는 것도 불안한 요소였다. 최근 수집형 RPG는 캐릭터의 성능뿐만 아니라 배경 스토리나 유저와의 유대감까지도 중시하는데, 그 부분에서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부가적인 시스템이 없었다. 주인공과 함께 고난을 극복한다기보다는, 사무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라고 할까.
이야기 자체가 그런 식이니 이상하지는 않았다. 짧게 풀어쓰자면, 갑작스런 빙하기로 에테리아라는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삼게 된 인류가 그곳에 있는 애니머스와 함께 공존하면서 '소스 바이러스'라는 또다른 재난에 대응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전체로 보면 협회의 의뢰를 받아 사태를 해결하고, 그 소스 바이러스를 악용하는 뒷배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고, 또 주인공과 함께 하는 애니머스가 어떤 존재인지 하는 부분은 잘 부각되지 않았다. 그저 소스 바이러스가 위험하니까 그걸 처리하는데 협조한다는 인상이었다.
사이버펑크 느낌의 네온 사인 가득한 도시에 수상쩍은 연구소, 이를 뒤에서 움직이는 세력의 음모,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활약하는 주인공 등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소재는 확실히 매력적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 특유의 매력을 확실히 뒷받침할 요소들이 아쉬웠다. 그래픽은 물론 턴제 RPG로써 기본기도 충실하고 콘텐츠도 나름 다 갖췄지만, 상향평준화된 수집형 RPG 시장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는 '킥'이 필요하지 않던가. CBT의 피드백을 거쳐서 정식 출시 때는 그럴 소재를 좀 더 확실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러한 감성 때문인지, 지난 2022년 '에테리아: 리스타트'가 처음 탭탭 게임 발표회를 통해서 발표됐을 때 턴제 RPG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출시 여부도 미정이었지만, 사이버펑크풍 세계관을 돌아다니며 해킹하거나 혹은 적과 화려하게 전투를 펼친다는 그 청사진은 국적에 상관 없이 게이머면 혹할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2년도 더 지난 1월 9일, CBT로 찾아온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유저들을 찾아왔다. 미래적인 디자인과는 다른, 2020년대 이전에 친숙했던 양상으로 말이다.
게임명: 에테리아: 리스타트
장르명: 턴제 RPG
CBT 개시일: 2025. 1. 9.
플레이 버전: CBT 빌드개발사: X.D
서비스: X.D
플랫폼: PC, 모바일
플레이: PC
턴제+ARPG식 필드로 노린 시너지
흔한 내러티브를 역동적으로 끌어올리고자 한 시도
2020년 '원신'의 출시 이후, 서브컬쳐 유저들이 고퀄리티 3D 모델링을 내세운 모바일 수집형 RPG에 기대하는 척도가 달라졌다. 그렇게 빚어낸 캐릭터를 자유롭게 훑어보며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오픈월드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세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기 템포대로 퀘스트를 수행하고 파밍하면서 나아가는 JRPG식 구성을 기대하게 됐다.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튜토리얼 구간은 이런 구성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성별을 고른 뒤, 다소 제한적이지만 맵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숨겨진 보상을 얻고 적과 인카운터식으로 전투를 펼쳤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러 장치를 이용해서 일반적으로 가기 어려운 곳까지 뚫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과연 실제 필드는 어떨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튜토리얼이 지난 뒤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메인 스테이지를 차근차근 풀어가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만 기존의 웨이브를 클리어하는 방식이 아닌, 스테이지를 ARPG처럼 특정 구간을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잡몹은 은신한 뒤 기습해서 별도 전투 없이 처치하거나, 잠입해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등 유연함과 숨겨진 기믹을 풀고 추가 보상을 찾는 오픈월드 RPG식 구성을 일부 도입했다. 자연히 스테이지 길이도 통상 웨이브식과는 달리 길 수밖에 없는 방식이지만,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이를 오히려 내러티브를 몰입감 있게 풀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아예 한 챕터당 하나의 스테이지로 구성해서 그 챕터의 이야기를 완결성 있게 풀어간 것이다.
통상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나갔다 다음 스테이지로 들어갈 때, 이야기나 게임플레이의 맥이 잠깐씩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간 모바일 수집형 RPG가 짧게짧게 플레이를 이어가는 유형이 다수였던 만큼, 이런 부분이 오히려 쉼표처럼 작용했었다. 그러나 오픈월드 RPG가 히트를 치면서 모바일 기반 크로스플랫폼 게임에서는 좀 더 긴 템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도 유저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나쁘지 않은 시도를 보여줬다. 스테이지 중간중간의 쉼표 구간도 '섹션'으로 나누는 등 보완책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대화 장면도 단순히 등장인물끼리 서로 마주보는 구도뿐만 아니라, 곳곳에 마련된 배경의 장치들도 조명하고 인게임 컷신도 적극 활용하면서 '에테리아'라는 세계 속에서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정해진 포맷 안에서 최대한 다각도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익숙한 루틴과 제어 장치
편의성과 효율이 좋아지면 브레이크도 자주 걸린다
스테이지 방식을 채택한 수집형 RPG라고 한 만큼,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그에 맞는 루틴이 이미 정해진 상태다. 스테이지를 쭉 밀다가 막히면 행동력을 소모해서 여러 던전을 돌면서 일일퀘를 돌고, 캐릭터를 육성해서 돌파하는 익숙한 루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오픈월드 방식을 채택한 게 아닌 만큼, 캐릭터 수가 상당히 많고 그 캐릭터 모두 최고 등급까지 별을 승급해서 키워나가는 또다른 고전 방식을 채택한 것도 눈에 띈다.
물론 그 방식 그대로가 아니라 '에테리아: 리스타트' 나름의 개선은 있었다. 장비를 파밍하고 육성하기 쉽게 재화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루틴을 압축했다. 통상 수집형 RPG가 장비를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던전을 돌아야 하는 일이 많지만,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코인만 소모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부담이 적었다. 또 소탕 기능은 없지만, 연속 전투를 걸어둔 뒤 창을 최소화해서 다른 스테이지를 공략하거나 혹은 PVP인 아레나를 하는 등 동시에 병렬적으로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PVP 전투 콘텐츠가 아직 완벽히 구현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 예고된 상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콘텐츠가 멈추는 시점이 빠르게 찾아왔다. 육성이 빨라진 만큼 그에 맞게 콘텐츠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레벨이나 메인 스테이지 제약이 걸려서 정체되는 시점이 빠르게 발생했다. 조금 연식이 있는 수집형 RPG나 혹은 이런 유형을 채택한 RPG를 했던 유저라면 아마 이런 경험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중간 '통곡의 벽'이라고 하는 구간이 있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구간 동안 숙제한 뒤, PVP덱을 연구하면서 이리저리 덱을 짜맞추고 성능캐에 대한 갈망을 끌어올리던 예전 수집형 RPG의 기본 문법이 떠오르는 구성이다.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경우는 그 옛날 방식처럼 투자를 유도하기보다는, 콘텐츠 소모를 늦추기 위한 브레이크의 느낌이 더 강했다. 계정 레벨에 따라 칼 같이 콘텐츠가 제한되고, 그 제한된 콘텐츠를 조금씩 돌면서 차근차근 나아가게끔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최대한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돌기 위한 방법도 친숙하다. 리세마라를 통해 키카드를 빠르게 뽑고, 이를 뒷받침할 각 속성별 저등급 유틸 캐릭터를 최소한으로 갖춘 원맨 캐리덱으로 기반을 갖추는 익숙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턴제, PVP 비중이 높다는 것에서 아마 짐작했겠지만,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속성 구조와 뽑기 확률은 그런 유형의 게임과 상당히 비슷하다. 빛, 암 속성의 SSR 캐릭터가 통상 뽑기에서 등장 확률이 낮고, 해당 속성 캐릭터만 등장하는 픽업을 뽑기 위해서는 별도의 재화가 필요한 '극상' 애니머스, 소위 월광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BM이 완벽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그런 시스템이 갖고 올 수 있는 우려는 인지한 듯했다. 80회 반천장 대신 100회 천장에, 돌파 효율은 스탯을 조금 올려주는 정도로 최소화하고 아티팩트 격인 사비오는 파밍으로만 얻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완화했기 때문이다. 업적 보상도 세분화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차례 뽑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 브레이크가 자주 걸려서 중간 단계 반복 파밍에 소요되는 시간이 좀 길었던 건 아쉬웠다.
자신만의 매력이 좀 더 필요한 '에테리아'
임팩트 있는 소재를 뒷받침할 캐릭터가 급선무
최근 서브컬쳐 게임 시장이 레드 오션을 넘어 블러드 오션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의 최소치도 높아졌다. 예전에는 일러스트와 다소 달라도 이해했지만, 이젠 일러스트보다 더 뛰어난 모델링을 보여줘야 유저들이 바라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혹은 다른 게임에 없는 그 게임만의 독특한 매력 요소를 캐릭터에서부터 보여줘야만 비로소 눈에 띈다.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최초 공개 당시부터 그런 자질이 눈에 띄었던 게임이었고, CBT에서도 그 부분을 일부 증명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내세운 수집형 RPG는 있지만 그 느낌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가 곳곳에 보였고, 모델링 및 연출도 준수했다.
그러나 이제 지켜야 할 세상과 애정캐릭터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그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플러스 알파가 필요해보였다. 네온 사인 가득한 가상 도시에서 벌어지는 스펙타클한 사건이라는 소재는 확실히 좋았고 이를 살리기 위한 인게임 연출과 스테이지 구도는 좋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나 세계관 자체는 중국발 아포칼립스의 공식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유명사 트랩이 다소 약해서 스토리를 술술 보고 넘어갈 수 있긴 하지만, 현 단계에서 번역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어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캐릭터성을 해치는 번역까지 일상다반사라 스토리를 읽는 게 오히려 몰입감을 해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일본어 더빙을 듣다가 스크립트와 더빙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여기에 메인스토리가 뚝뚝 끊겨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멈춰버리는 것도 불안한 요소였다. 최근 수집형 RPG는 캐릭터의 성능뿐만 아니라 배경 스토리나 유저와의 유대감까지도 중시하는데, 그 부분에서 '에테리아: 리스타트'는 부가적인 시스템이 없었다. 주인공과 함께 고난을 극복한다기보다는, 사무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라고 할까.
이야기 자체가 그런 식이니 이상하지는 않았다. 짧게 풀어쓰자면, 갑작스런 빙하기로 에테리아라는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삼게 된 인류가 그곳에 있는 애니머스와 함께 공존하면서 '소스 바이러스'라는 또다른 재난에 대응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전체로 보면 협회의 의뢰를 받아 사태를 해결하고, 그 소스 바이러스를 악용하는 뒷배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고, 또 주인공과 함께 하는 애니머스가 어떤 존재인지 하는 부분은 잘 부각되지 않았다. 그저 소스 바이러스가 위험하니까 그걸 처리하는데 협조한다는 인상이었다.
사이버펑크 느낌의 네온 사인 가득한 도시에 수상쩍은 연구소, 이를 뒤에서 움직이는 세력의 음모,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활약하는 주인공 등 '에테리아: 리스타트'의 소재는 확실히 매력적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 특유의 매력을 확실히 뒷받침할 요소들이 아쉬웠다. 그래픽은 물론 턴제 RPG로써 기본기도 충실하고 콘텐츠도 나름 다 갖췄지만, 상향평준화된 수집형 RPG 시장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는 '킥'이 필요하지 않던가. CBT의 피드백을 거쳐서 정식 출시 때는 그럴 소재를 좀 더 확실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