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3년만에 찾아온 그 마을, '사일런트 힐2'
김규만 기자 (Frann@inven.co.kr)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코나미의 서바이벌 호러 프랜차이즈, '사일런트 힐'이 마침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것도, 역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시리즈인 2편의 리메이크로.
솔직히, 처음에는 도박수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리메이크는 양날의 검이다. 어지간한 성공으로는 원작의 후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만일 실패했을 경우 돌아올 결과는 더 처참하다. 더욱이 '사일런트 힐' 프랜차이즈의 부활 발표는 코나미가 게이머들의 원한을 가득 산 이후에나 이뤄졌으니, 이 리메이크마저 실패할 경우 뒤이어 계획된 리메이크의 향방 또한 불분명해질 것이 뻔했다.
이런 여러 이유들은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 작품이 출시하기 직전까지도 게이머들이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글로벌 시연 행사에서 개발진은 이번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과감히 드러냈다. 결국 출시일은 찾아왔고, 23년 만에 '사일런트 힐2'가 다시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명: 사일런트 힐2 (2024)
장르명: 액션, 서바이벌 호러
출시일: 2024. 10. 8.
리뷰판: 리뷰 빌드개발사: 블루버 팀
서비스: 코나미
플랫폼: PC, PlayStation 5
플레이: PS5
변한 것, 그리고 변함 없는 것
23년 후, '현대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사일런트 힐'
'사일런트 힐2'의 리메이크 버전에 주어진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23년 전 게임의 모습을 보다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작이 가진 스토리텔링과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것. 정식 출시 전 진행된 시연기를 통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 작품은 두 개의 과제 모두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완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 시작과 함께 보여주는 설정 옵션은 대체로운 접근성 메뉴를 지원하고, 전투 난이도와 퍼즐 난이도를 분리해 설정할 수 있을 만큼의 이용자 편의성도 제공한다. 그래픽, 비주얼뿐 아니라 전반적인 이용자 경험까지도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다.
고정된 카메라 구도였던 전작과 비교하면 주인공의 어깨 너머 시점으로 진행되는 숄더뷰로의 변화가 가장 큰 변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향상된 그래픽이 추가되면서, 지난 20여년 간 상상만 해 오던 방식으로 '사일런트 힐'의 거리 곳곳을 탐험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원작에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일부 추가된 숨겨진 공간은 23년 전 게임을 접한 이들마저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탐험에 임하게 한다.
전반적인 경험 측면에서 접한 또 하나의 변화는 '3D 음향'이 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로, 이미 충분했던 전작의 공포감을 한층 배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헤드폰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리고 스피커로 플레이할 때 모두 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디테일하지는 않아도 일부 옵션을 설정해 가며 자신만의 음향 경험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현 세대 콘솔 기기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PS5 기준 어댑티브 트리거나 진동, 컨트롤러에 내장된 스피커를 활용한 경험 전달 또한 23년 전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다. 처음 게임 내에서 주변 적의 존재를 알려주는 라디오 소리가 컨트롤러에서 들려올 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 마저 들었다. 중후반부로 가니 너무 시끄러워서 옵션을 찾아 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던 것만 빼면, 나름 여러 시도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시점의 변화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만큼, 전투 시스템 또한 현대적인 변화의 바람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현대적인' 것 조차 이미 많은 게이머에게는 닳고 닳은 방식이었다는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 숄더 뷰 시점을 채용하고, 전투에 액션성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한 것. 그 유행은 2005년 작 '바이오하자드4'가 그 해 최다 GOTY를 수상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일런트 힐의 라이벌(로 자주 불리던) 바이오하자드가 고정 카메라에서 숄더 뷰로, 공포보다 액션에 비중을 더 두기 시작한 그 날 이후, 지금껏 수 많은 '서바이벌 호러'를 표방한 게임들이 지금까지도 이와 유사한 카메라, 전투 메커니즘을 차용하고 있다.
모두에게 검증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을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전투 측면에 한해서는 이 게임이 가진 특색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짚고 싶었다. 원작과 같은 종류의 무기, 원작과 같은 종류의 적에 눈에 띄는 변경점은 회피 버튼이 생겼다는 정도. 이후 언급할, 매끄럽지 않은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겹치면서, 결과적으로 사일런트 힐2의 전투는 '있는 데 의의를 두는'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전투 메커니즘을 시도하기에는 원작의 경험이 훼손되고, 원작 그대로의 경험을 재현할 경우 현대적이기 어렵다. 원작의 느낌을 보존하는 것과 현대적인 재해석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일부 크리처에게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애니메이션을 추가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꾀했다고는 하지만, 후반부로 이어지는 게임플레이에서 전투가 점점 지루해지는 것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느낌이다.
쇠사슬, 피 묻은 헝겊, 불안, 스타킹(?)
발전한 그래픽, 컷신으로 완성된 '이면 세계'의 디테일
전투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반복되는 패턴에 지루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일런트 힐'은 사실 전투로 그 명성을 쌓아올린 프랜차이즈가 아니기도 하다. 원작 특유의 불안함, 그로테스크, 심리적 공포를 유발하는 분위기 등은 이번 작품에서도 건재하다. 무척 훌륭해진 비주얼과 함께.
이번 '사일런트 힐2'는 게임 시작 부분, 공중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는 주인공 제임스의 컷신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원작과 (거의)유사한 카메라 각도와 연출을 유지하면서, 전반적인 그래픽은 현대적으로 변모했다. 이제 막 손을 씻어 물기가 감도는 제임스의 떨리는 왼손, 거울을 응시하는 짓는 뭔지 모를 표정. 이후로도 게임이 보여주는 컷신들은 향상된 비주얼로 전반적인 몰입감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안개가 자욱한 '사일런트 힐'의 디테일한 풍경도 백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거리에서 지도 한 장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나아가는 초반부의 분위기도 좋지만, 이후 좁은 공간이 계속되는 구간에서도 주변 사물의 디테일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비록 상호작용이 가능한 물체는 한정적이지만, 내가 '사일런트 힐'에 있다는 현장감을 높이는 비주얼 연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현장감은 게임의 중후반부, 일명 '이면 세계'에 대한 연출이 많아지면서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검붉게 녹슨 건물, 뭔지 모를 액체로 축축하게 젖은 천막, 쇠사슬, 고문 도구, 철조망, 피, 벌레, 그을음. 이면 세계는 '사일런트 힐'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프랜차이즈의 아이덴티티로 거듭났으며, 이번 작품에서는 플레이어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줄 정도로 정교하게 재탄생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불안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서서히 중첩시키는 디자인이야말로 여타 호러 게임과 다른 '사일런트 힐'의 장기라고 할 수 있으며, 리메이크 작에서도 이 장기는 전혀 퇴색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발전한 비주얼과 입체 음향은 현장감을 더욱 살리고 있으며, 심리적인 부담을 가중하는 효과를 보인다.
(마네킹 크리처를 제외하고)점프 스케어가 거의 없는 게임플레이 디자인으로, 이번 '사일런트 힐2' 또한 깜짝 놀라는 공포보다는 플레이어를 계속 불안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발산한다. 스토리텔링과 함께, 원작을 존중하는 방식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
인생은 퍼즐 해결의 연속
게임이 단순했던 시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레벨 구성
전체적인 스테이지 구성을 '퍼즐'을 중심으로 풀어낸 부분은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사일런트 힐2'의 스테이지 구성은 지역 하나에 거대한 '퍼즐'을 놓고, 이 퍼즐을 풀기 위해 필요한 단서들을 스테이지 곳곳을 탐험하며 모으는 식으로 되어 있다. 주로 이 거대한 퍼즐은 처음에 먼지 쌓인 덮개 아래 숨겨져 있으며, 주인공 제임스가 덮개를 걷어내는 연출로 등장하고는 한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는 이 거대한 퍼즐을 풀지 못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없다. 초반 플레이엔 어디에 어떤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 어느 한 구간도 스킵할 수 없는 형태다. 반면, 게임을 한 번이라도 플레이하고 나면, 필요한 단서만 딱딱 챙겨 바로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것도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넓은 맵에서 퍼즐에 필요한 단서를 임의의 순서로 구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이종의 자유도를 제공하는 기믹으로 활용된다. 거대한 퍼즐을 풀기 전에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없지만, 어떤 순서로 단서를 얻을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손에 맡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구조 또한 선형적으로 구성된 레벨 디자인에 마치 여러 선택지가 있어 보이도록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꽤나 인상적인 접근법이었다.
거대한 퍼즐을 풀어야 하는 특유의 구조를 차치하고서도, '사일런트힐 2'의 레벨 디자인은 잘잘못에서 살짝 벗어나, 어떤 '편안함'을 가지고 있다. 자칫 복잡해 보이는 건물 구조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직선 진행에 가까울 때도 있고, 또 층마다 세이브 포인트가 존재해 저장을 하지 않음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퍼즐이나 길찾기에 막혀 주먹을 쥐게 되거나, 어금니를 앙다무는 경험은 딱히 없었다.
연속적인 퍼즐 형태의 스테이지나, 차근차근 탐험하다 보면 어느새 열려 있는 숏컷들. 이런 '편안함'은 요 근래 점점 복잡해지는 게임 메커니즘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많이 생각할 필요 없는, 게임이 게임 같았던' 과거, 23년 전 '사일런트 힐2'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는 장치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 또한 호불호의 영역이 될 수 있으리라.
노력도 결과만큼 중요하지
불안한 기술력에도 흐뭇한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이유
과거 호평을 받았던 원작을, 현대적인 기술을 토대로 재해석한다는 '사일런트 힐2'의 도전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그간 게이머에게 좋은 인상을 심기 힘든 행보를 보였던 코나미로서는, 앞으로 예정된 리메이크 작품들에 대한 의심을 일정 부분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개발을 담당한 블루버 팀의 전작들과 비교해 봐도, 이번 '사일런트 힐2'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레이어즈 오브 피어', '블레어위치', '더 미디움' 등, 블루버 팀이 그간 여러 심리적 공포 게임을 만들어 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시스템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물론, 개중에 가장 낫다는 뜻이지, '사일런트 힐2'의 안정성이 훌륭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시연 당시에도 느껴졌던 '품질' 옵션에서의 프레임 드랍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고, 좁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카메라 튐 현상은 너무나 잦은 나머지 이쯤되면 게임 기믹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또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주인공 제임스를 비롯해 게임플레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크리처 포함)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시리즈 간판 스타인 '보블헤드 너스'의 경우 그 딱딱한 움직임이 시그니처라지만, 언제나 똑같은 패턴의 발자국 소리 (달리기 할 때 오른쪽 발자국 소리가 반박자 빠르게 들린다!)나, 단조로운 전투 애니메이션 등은 게임의 전반적인 품질에 의구심을 남기는 요소들이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사일런트 힐2'는 원작의 강점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낸, 매력적인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로 몇 차례나 만들어질 만큼 흥미로운 세계관을, 현 세대 콘솔의 비주얼 퀄리티로 만나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기도 하다.
원작을 존중하는 스토리텔링도 돋보이지만, 새롭게 세계관을 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요소도 있다. 원작에 없었던 2종의 엔딩을 추가해, 누구나 새롭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엔딩 조건이 모호한 것은 옛날 게임 특징이다. 2회차에서만 볼 수 있는 엔딩도 많고.
심리적 공포 게임은 모두를 위한 장르는 아니다. 그러나, 해당 장르를 선호하는 게이머에게는 분명 후회 없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도박수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리메이크는 양날의 검이다. 어지간한 성공으로는 원작의 후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만일 실패했을 경우 돌아올 결과는 더 처참하다. 더욱이 '사일런트 힐' 프랜차이즈의 부활 발표는 코나미가 게이머들의 원한을 가득 산 이후에나 이뤄졌으니, 이 리메이크마저 실패할 경우 뒤이어 계획된 리메이크의 향방 또한 불분명해질 것이 뻔했다.
이런 여러 이유들은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 작품이 출시하기 직전까지도 게이머들이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글로벌 시연 행사에서 개발진은 이번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과감히 드러냈다. 결국 출시일은 찾아왔고, 23년 만에 '사일런트 힐2'가 다시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명: 사일런트 힐2 (2024)
장르명: 액션, 서바이벌 호러
출시일: 2024. 10. 8.
리뷰판: 리뷰 빌드개발사: 블루버 팀
서비스: 코나미
플랫폼: PC, PlayStation 5
플레이: PS5
변한 것, 그리고 변함 없는 것
23년 후, '현대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사일런트 힐'
'사일런트 힐2'의 리메이크 버전에 주어진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23년 전 게임의 모습을 보다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작이 가진 스토리텔링과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것. 정식 출시 전 진행된 시연기를 통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번 작품은 두 개의 과제 모두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완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 시작과 함께 보여주는 설정 옵션은 대체로운 접근성 메뉴를 지원하고, 전투 난이도와 퍼즐 난이도를 분리해 설정할 수 있을 만큼의 이용자 편의성도 제공한다. 그래픽, 비주얼뿐 아니라 전반적인 이용자 경험까지도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다.
고정된 카메라 구도였던 전작과 비교하면 주인공의 어깨 너머 시점으로 진행되는 숄더뷰로의 변화가 가장 큰 변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향상된 그래픽이 추가되면서, 지난 20여년 간 상상만 해 오던 방식으로 '사일런트 힐'의 거리 곳곳을 탐험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원작에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일부 추가된 숨겨진 공간은 23년 전 게임을 접한 이들마저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탐험에 임하게 한다.
전반적인 경험 측면에서 접한 또 하나의 변화는 '3D 음향'이 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로, 이미 충분했던 전작의 공포감을 한층 배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헤드폰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리고 스피커로 플레이할 때 모두 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디테일하지는 않아도 일부 옵션을 설정해 가며 자신만의 음향 경험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현 세대 콘솔 기기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PS5 기준 어댑티브 트리거나 진동, 컨트롤러에 내장된 스피커를 활용한 경험 전달 또한 23년 전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다. 처음 게임 내에서 주변 적의 존재를 알려주는 라디오 소리가 컨트롤러에서 들려올 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 마저 들었다. 중후반부로 가니 너무 시끄러워서 옵션을 찾아 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던 것만 빼면, 나름 여러 시도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시점의 변화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만큼, 전투 시스템 또한 현대적인 변화의 바람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현대적인' 것 조차 이미 많은 게이머에게는 닳고 닳은 방식이었다는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 숄더 뷰 시점을 채용하고, 전투에 액션성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한 것. 그 유행은 2005년 작 '바이오하자드4'가 그 해 최다 GOTY를 수상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일런트 힐의 라이벌(로 자주 불리던) 바이오하자드가 고정 카메라에서 숄더 뷰로, 공포보다 액션에 비중을 더 두기 시작한 그 날 이후, 지금껏 수 많은 '서바이벌 호러'를 표방한 게임들이 지금까지도 이와 유사한 카메라, 전투 메커니즘을 차용하고 있다.
모두에게 검증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을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전투 측면에 한해서는 이 게임이 가진 특색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짚고 싶었다. 원작과 같은 종류의 무기, 원작과 같은 종류의 적에 눈에 띄는 변경점은 회피 버튼이 생겼다는 정도. 이후 언급할, 매끄럽지 않은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겹치면서, 결과적으로 사일런트 힐2의 전투는 '있는 데 의의를 두는'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전투 메커니즘을 시도하기에는 원작의 경험이 훼손되고, 원작 그대로의 경험을 재현할 경우 현대적이기 어렵다. 원작의 느낌을 보존하는 것과 현대적인 재해석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일부 크리처에게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애니메이션을 추가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꾀했다고는 하지만, 후반부로 이어지는 게임플레이에서 전투가 점점 지루해지는 것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느낌이다.
쇠사슬, 피 묻은 헝겊, 불안, 스타킹(?)
발전한 그래픽, 컷신으로 완성된 '이면 세계'의 디테일
전투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반복되는 패턴에 지루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일런트 힐'은 사실 전투로 그 명성을 쌓아올린 프랜차이즈가 아니기도 하다. 원작 특유의 불안함, 그로테스크, 심리적 공포를 유발하는 분위기 등은 이번 작품에서도 건재하다. 무척 훌륭해진 비주얼과 함께.
이번 '사일런트 힐2'는 게임 시작 부분, 공중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는 주인공 제임스의 컷신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원작과 (거의)유사한 카메라 각도와 연출을 유지하면서, 전반적인 그래픽은 현대적으로 변모했다. 이제 막 손을 씻어 물기가 감도는 제임스의 떨리는 왼손, 거울을 응시하는 짓는 뭔지 모를 표정. 이후로도 게임이 보여주는 컷신들은 향상된 비주얼로 전반적인 몰입감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안개가 자욱한 '사일런트 힐'의 디테일한 풍경도 백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거리에서 지도 한 장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나아가는 초반부의 분위기도 좋지만, 이후 좁은 공간이 계속되는 구간에서도 주변 사물의 디테일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비록 상호작용이 가능한 물체는 한정적이지만, 내가 '사일런트 힐'에 있다는 현장감을 높이는 비주얼 연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현장감은 게임의 중후반부, 일명 '이면 세계'에 대한 연출이 많아지면서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검붉게 녹슨 건물, 뭔지 모를 액체로 축축하게 젖은 천막, 쇠사슬, 고문 도구, 철조망, 피, 벌레, 그을음. 이면 세계는 '사일런트 힐'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프랜차이즈의 아이덴티티로 거듭났으며, 이번 작품에서는 플레이어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줄 정도로 정교하게 재탄생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불안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서서히 중첩시키는 디자인이야말로 여타 호러 게임과 다른 '사일런트 힐'의 장기라고 할 수 있으며, 리메이크 작에서도 이 장기는 전혀 퇴색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발전한 비주얼과 입체 음향은 현장감을 더욱 살리고 있으며, 심리적인 부담을 가중하는 효과를 보인다.
(마네킹 크리처를 제외하고)점프 스케어가 거의 없는 게임플레이 디자인으로, 이번 '사일런트 힐2' 또한 깜짝 놀라는 공포보다는 플레이어를 계속 불안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발산한다. 스토리텔링과 함께, 원작을 존중하는 방식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
인생은 퍼즐 해결의 연속
게임이 단순했던 시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레벨 구성
전체적인 스테이지 구성을 '퍼즐'을 중심으로 풀어낸 부분은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사일런트 힐2'의 스테이지 구성은 지역 하나에 거대한 '퍼즐'을 놓고, 이 퍼즐을 풀기 위해 필요한 단서들을 스테이지 곳곳을 탐험하며 모으는 식으로 되어 있다. 주로 이 거대한 퍼즐은 처음에 먼지 쌓인 덮개 아래 숨겨져 있으며, 주인공 제임스가 덮개를 걷어내는 연출로 등장하고는 한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는 이 거대한 퍼즐을 풀지 못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없다. 초반 플레이엔 어디에 어떤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 어느 한 구간도 스킵할 수 없는 형태다. 반면, 게임을 한 번이라도 플레이하고 나면, 필요한 단서만 딱딱 챙겨 바로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것도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넓은 맵에서 퍼즐에 필요한 단서를 임의의 순서로 구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이종의 자유도를 제공하는 기믹으로 활용된다. 거대한 퍼즐을 풀기 전에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없지만, 어떤 순서로 단서를 얻을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손에 맡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구조 또한 선형적으로 구성된 레벨 디자인에 마치 여러 선택지가 있어 보이도록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꽤나 인상적인 접근법이었다.
거대한 퍼즐을 풀어야 하는 특유의 구조를 차치하고서도, '사일런트힐 2'의 레벨 디자인은 잘잘못에서 살짝 벗어나, 어떤 '편안함'을 가지고 있다. 자칫 복잡해 보이는 건물 구조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직선 진행에 가까울 때도 있고, 또 층마다 세이브 포인트가 존재해 저장을 하지 않음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퍼즐이나 길찾기에 막혀 주먹을 쥐게 되거나, 어금니를 앙다무는 경험은 딱히 없었다.
연속적인 퍼즐 형태의 스테이지나, 차근차근 탐험하다 보면 어느새 열려 있는 숏컷들. 이런 '편안함'은 요 근래 점점 복잡해지는 게임 메커니즘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많이 생각할 필요 없는, 게임이 게임 같았던' 과거, 23년 전 '사일런트 힐2'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는 장치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 또한 호불호의 영역이 될 수 있으리라.
노력도 결과만큼 중요하지
불안한 기술력에도 흐뭇한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이유
과거 호평을 받았던 원작을, 현대적인 기술을 토대로 재해석한다는 '사일런트 힐2'의 도전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그간 게이머에게 좋은 인상을 심기 힘든 행보를 보였던 코나미로서는, 앞으로 예정된 리메이크 작품들에 대한 의심을 일정 부분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개발을 담당한 블루버 팀의 전작들과 비교해 봐도, 이번 '사일런트 힐2'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레이어즈 오브 피어', '블레어위치', '더 미디움' 등, 블루버 팀이 그간 여러 심리적 공포 게임을 만들어 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시스템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물론, 개중에 가장 낫다는 뜻이지, '사일런트 힐2'의 안정성이 훌륭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시연 당시에도 느껴졌던 '품질' 옵션에서의 프레임 드랍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고, 좁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카메라 튐 현상은 너무나 잦은 나머지 이쯤되면 게임 기믹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또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주인공 제임스를 비롯해 게임플레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크리처 포함)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시리즈 간판 스타인 '보블헤드 너스'의 경우 그 딱딱한 움직임이 시그니처라지만, 언제나 똑같은 패턴의 발자국 소리 (달리기 할 때 오른쪽 발자국 소리가 반박자 빠르게 들린다!)나, 단조로운 전투 애니메이션 등은 게임의 전반적인 품질에 의구심을 남기는 요소들이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사일런트 힐2'는 원작의 강점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낸, 매력적인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로 몇 차례나 만들어질 만큼 흥미로운 세계관을, 현 세대 콘솔의 비주얼 퀄리티로 만나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기도 하다.
원작을 존중하는 스토리텔링도 돋보이지만, 새롭게 세계관을 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요소도 있다. 원작에 없었던 2종의 엔딩을 추가해, 누구나 새롭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엔딩 조건이 모호한 것은 옛날 게임 특징이다. 2회차에서만 볼 수 있는 엔딩도 많고.
심리적 공포 게임은 모두를 위한 장르는 아니다. 그러나, 해당 장르를 선호하는 게이머에게는 분명 후회 없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 깜놀 없이, 분위기로 압도하는 심리적 공포
- (거의)원작 그대로 재현한 게임플레이
- 편의성 높은 레벨 디자인
- 단조로운 애니메이션, 시스템 불안정성
-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해지는 전투 메커니즘
- 호불호 나뉠 퍼즐식 구성
리뷰 플랫폼: PS5 (리뷰 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