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몸과 생각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외로움, 슬픔, 불안, 좌절의 차가운 감정들은 마음도 얼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 본 가장 추웠던 기억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저는 영하 20도쯤의 새벽에 경계 근무를 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눈을 쉽게 뜰 수도 없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따끔거리더라고요. 그런 제 인생 최악의 추위였던 영하 20도는 이 게임에서는 가장 따뜻한 시간입니다. 영하 40도, 50도가 평균 기온에, 영하 80도까지 떨어지는 '화이트 아웃'이 모든 것을 얼리는 세상입니다.

프로스트 펑크가 돌아왔습니다. 11비트 스튜디오가 2018년 발매한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스트 펑크의 후속작인 프로스트 펑크2가 9월 21일 출시 예정입니다. 11비트 스튜디오는 프로스트 펑크뿐만이 아니라, 2014년에 '디스 워 오브 마인'으로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개발사입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방식이 탁월하고요, 양 극단에 있는 선택지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무심하게 툭 던지는 인간의 감정과 양심에 대한 질문이 훌륭했습니다.


게임명: 프로스트펑크2
장르명: 도시 건설 생존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4. 9. 20.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11 비트 스튜디오
서비스: 11 비트 스튜디오
플랫폼: PC, PlayStation 5, Xbox Series X|S
플레이: PC


프로스트 펑크2는 전작과 많이 다릅니다. 가장 큰 변화는 게임의 시점입니다. 1인칭 게임과 3인칭 게임에서 말하는 시점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도시를 내려다보는 각도가 다릅니다. 1편의 플레이어는 백 명 단위의 도시를 관리했습니다. 작은 도시에서 화로나 보급소, 광산, 온실, 주택 등을 어디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높을까를 고민했습니다. 플레이어는 도시의 관리자이지만, 주민과 시점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눈높이거나, 아주 약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죠.

프로스트 펑크2의 도시는 천 명 단위가 기본에, 게임의 후반에는 3만 명, 5만 명이 넘어가는 거대한 도시를 관리해야 합니다. 도시 안은 물론, 도시 밖의 자원들, 때로는 아주 멀리 있는 자원들도 관리해야 합니다. 도시에는 많은 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익을 원합니다. 도시 밖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오길 원하는 사람들, 도시 안의 자원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훨씬 더 많아진 고려 요소는, 플레이어의 권한 행사에 모든 게 달려 있습니다. 그만큼 책임 역시 뒤따르긴 하지만 말이죠.


이런 시점 스케일의 변화는 게임 플레이에도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도시 안에 작은 건물들을 지으며 생존해가는 전작과는 아예 다른 게임이라고 봐야 할 정도의 변화입니다. 도시는 '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식량 자원이 있는 곳에는 식량 구역을 지어야 하고, 석탄이나 나무 같은 곳이 있는 지역에는 채굴 구역을 건설해야 합니다.

무작정 그 자원이 있다고 구역을 지정해서는 안 됩니다. 채굴 구역 근처에 거주지 구역을 건설한다면, 거주지 구역에 질병 수치가 오르는 등 고려 사항이 발생하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게임의 변화는 도시를 관리하던 전작과 장르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마치, 시티즈 스카이라인이나 문명, 트로피코 같은 게임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프로스트 펑크2의 두 가지 레이어
자원과 도시, 공동체와 정치

프로스트 펑크2는 두 가지 '레이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레이어는 자원과 도시입니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려면 도시는 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열기'입니다. 그리고 이 열기는 석탄, 석유, 증기라는 에너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자원은 석탄인데, 석탄만 가지고는 도시 안의 사람들은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언정, 도시 밖에 있는 공장이나 식량 구역, 채굴 구역의 에너지를 모두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은 주거지, 식량, 자재, 물자입니다. 주거지가 모자라면 사람들은 동사하고, 식량이 모자라면 아사합니다. 자재는 모든 채굴, 식량, 산업, 물류 구역에서 필요합니다. 자재가 없으면 공장이 즉시 멈추죠. 물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원입니다. 물자가 모자라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물자를 뺏고, 범죄율과 사망률이 동시에 오릅니다. 이 모든 자원이 도시를 경영하는데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됩니다.


두 번째 레이어는 공동체와 정치입니다. 몇백 명 수준의 도시가 아니라, 수만 명의 군상이 모인 곳에는 자연스럽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공동체가 등장합니다. 기술적 진보가 생존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기계공, 적응하는 것이 생존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채집꾼, 이익과 이성을 중시하는 상업가 등의 공동체들이 저마다의 파벌을 만듭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 공동체들 사이에서 도시가 나아가는데 꼭 필요한 법령들과 아이디어들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위원회'와 '아이디어 트리'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steward)라고 불리는 플레이어는 내 마음대로 도시의 방향을 정할 수 없습니다. 법령은 모두 투표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투표인단은 공동체의 구성원 비율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시의 기계공의 비율이 높으면, 그 기계공의 성향에 맞는 법령들이 통과될 확률이 높습니다.

문제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특정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데, 공동체의 의견과 맞지 않을 경우에 발생합니다. 플레이어는 이런 문제 앞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안건을 통과시켜 주면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고요, 때로는 관리자의 권한을 활용해서 투표를 유도하거나, 주저하는 공동체를 회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 법령이 통과된다고 해도 마냥 행복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기계공에게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법령을 다른 공동체가 싫어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요? 법령에 불만을 품은 극단적인 기계공들이 다른 세력을 만들어 폭력 시위를 벌인다면요? 여러분은 이런 상황을 게임 시작부터 게임을 끄기 전까지 가까이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핵심은 '균형'이다
얼음판을 양손에 들고 있는 형국

자원과 도시, 공동체와 정치에서 공통으로 중요하고, 결국엔, 프로스트 펑크2 플레이의 핵심은 '균형'입니다. 석탄과 열기라는 두 자원만 있으면 그 균형 잡기가 시소와 같은 모양이 되어서 단순하고 균형을 잡기 쉽겠죠.

하지만 이 게임은 왼손에는 '자원과 도시'라는 불규칙적인 모양의 얼음판을 들고 있어야 하고, 오른손에는 '공동체와 정치'라는 얼음판을 들고 있어야 합니다. 밖은 영하 80도고, 들고 있는 얼음판이 가끔 깨지기도 하는 상황에서요.


자원이 모두 풍족하고, 모든 공동체가 관리자와 도시에 만족하는 깨끗한 상태로 게임을 쭉 플레이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난이도로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게임은 굉장히 계량적인 느낌을 줍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환경에 몰린 인간들의 반응이 대게 예상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공동체가 싫어하지 않을 만한 연구나 법령을 제정하게 됩니다. 가끔 어느 한 쪽의 공동체가 좋아할 만한 법령을 제정했다면, 다음은 반대 공동체의 선호 법령, 그다음은 3세력, 다음은 4세력, 이렇게 지나치게 균형에 집착하게 됩니다.

프로스트 펑크2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게임입니다. 그리고 게이머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꾸준한 스트레스를 계속 가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는 '화이트 아웃'이라는 극한의 폭풍을 무사히 보냈을 때 많은 부분 해소되긴 합니다만, 따뜻해졌다고 즉시 시위하는 공동체를 보고 있자면, 경비대의 수를 늘려 계엄령을 통한 완전한 도시 장악에 대한 욕구를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결과물이 항상 따라오는 게임이니만큼, 가끔은 예측 불가능한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행운의 요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마치 다키스트 던전의 '영웅의 기상'처럼,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보여주는 숭고한 희생이나, 이익을 초월한 인류애 이벤트 같은 것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프로스트 펑크2의 사운드 트랙은 정말 대단합니다.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에 정말 어울리는 애절한 사운드가 게임 내내 울려 퍼집니다. 스팀펑크 스타일의 아트 역시 훌륭합니다. 도시 전경부터 도시 안에 건설한 건물까지 감상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식 모딩 툴인 '프로스트 키트'가 지원되는데요, 전작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다회차 플레이에 확실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단점을 말해보자면, 게임을 오래 켜놓거나 도시가 커지면 게임이 둔해지는 문제가 가끔 발생하기도 했고요, 공동체들의 행동 양식이 가끔 논리적이지 않은 문제도 있었습니다. 수선가라는 공동체가 근무 시간을 기계가 결정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음에도, 그 법령이 제정되자 몇 주 후에 불만족스럽다고 폐지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이게 더 인간적인 부분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메인 시나리오가 단 하나뿐이고, 길이도 다소 짧았습니다.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샌드박스 모드에도 '야망'이라는 메인 목표의 개수도 적었습니다. 게임의 난이도 역시 상당히 높습니다. 가장 쉬운 난이도인 '시민'도 이런 장르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아주 많이 헤매실 것으로 보이고, 가장 높은 난이도인 '대장'은 초반부터 살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스트레스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재미
도시는 절대 무너져선 안 된다

프로스트 펑크2는 다양한 도시 경영 게임과 비슷해 보이지만서도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그 특유의 먹먹함과 쓸쓸함, 처절하게 생존하는 감성은 전작에 이어 이번 작도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커진 스케일의 도시, 그 안에서 발생하는 공동체들간의 갈등, 그것을 조율하고 관리하기 위한 선택을 고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때로는 '화이트 아웃'이 식량 생산을 완전히 멈춰버려서, 하루에 몇백 명의 아사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폭파식 채굴 기계 때문에 도시에 질병이 창궐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몇 명이 법령 제정 시간에 반대 공동체를 습격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프로스트 펑크2는 이런 다양한 스트레스를 플레이어에 가하는 게임이지만, 이런 난관 앞에서 게임을 끄기보다 내가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이나, 투표에 붙여야 할 법령 같은 것들이 계속 머리속에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다 문득, 프로스트 펑크2가 주는 스트레스 속에 진득한 재미가 꽤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