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때 일본에 휴먼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발사가 있었다. 스다 고이치, 코노 히후미 등 독특한 스타일의 개발자들이 몸 담았고 파이어 프로레슬링 등 컬트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이곳은 1995년 공포 게임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클락 타워'를 출시하면서 호러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팬들이 소위 시네마틱 라이브 시리즈라 부른 작품 세 개 중 하나인 '클락 타워'는 공포 영화의 감성을 게임으로 담아내는 것에 주력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쏘고 피하고 점프하면서 역동적으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더 액티브하게 담고자 3D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던 시기임에도 주인공의 행동을 더더욱 제약하는 시대역행적인 방식을 선보였다. 여기에 얼핏 보면 하찮아 보이지만 커다란 가위로 언제든 목숨을 싹둑할 수 있는 살인마 '시저맨'의 기괴한 디자인까지 더해지면서 타 게임과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 게임이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시리즈화까지 되고,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다른 기종으로 출시를 거듭해왔다.


아마 이런 미사여구를 듣게 되면 자연히 무언가 거대한 게임, 혹은 그 당시 기준으로 정말 압도적인 비주얼이나 처음부터 눈길을 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임을 기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클락 타워: 리와인드'는 그렇지 않다. 16비트 시절, 그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 그리고 그런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해상도 비율에 맞지 않은 양옆에는 여백을 채울 여러 특전 이미지들이 자리잡고 있고, 중앙에 비율에 맞춰서 그때 그 시절 그래픽으로 구현한 게임 화면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아마 여러 차례 현세대 기종에 나온 옛 게임을 한 유저들이라면 짐작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편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이야기의 무대는 노르웨이의 어느 한 저택이다. 주인공은 그 인근 그리니트 고아원에 있던 제니퍼라는 소녀로, 1995년 9월 14일 보육원 교사인 메어리 버로우즈의 인솔 하에 친구들과 함께 그들을 양육하겠다고 밝힌 누군가의 저택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저택에 도착한 뒤, 버로우즈 선생이 주인 가족들을 만나러 간지 한참이 지나도 어떤 연락도 없는 상황. 걱정이 된 제니퍼는 선생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응접실의 친구들마저 사라진 것을 알게 되고,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수수께끼가 가득한 저택을 탐사한다는 것이 '클락 타워'의 전체적인 이야기다.

▲ 척 봐도 흉흉해보여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모든 호러 작품이 그렇듯 가야만 스토리가 전개가 되는 법

▲ 레트로 느낌이 가득한 그래픽, 구성, 대사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 갑자기 모두가 사라진 응접실, 레트로 그래픽으로도 충실하게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성에는 '시저맨'이라는 살인마가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제니퍼로 이리저리 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에 기괴한 가위를 들고 집요하게 쫓아오는 시저맨을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그 옛날 고전 클릭 앤 포인트 어드벤처 게임처럼 맵 곳곳에 있는 오브젝트를 클릭해보면서 단서를 찾고 아이템을 찾으면서 다음 이야기를 파악하는 정석적인 진행 방식이 이어지지만,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기 어려운 살인마가 쫓아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이리저리 화면을 뜯어보면서 차근차근 단서를 찾는 식으로 했다가는 어느 사이에 다가온 살인마에게 목이 싹둑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그 위험으로 도망치는 과정은 고전 게임답게 굉장히 불편하다. 그나마 패미콤에 대응해서 나왔으니 콘솔 패드로도 좌우로 움직이기는 쉽지만, 현대 콘솔 게임의 키에 익숙해진 유저라면 처음부터 헤매기 일쑤다. 돌이켜보면 PS의 키 기능도 OX가 한 차례 바뀌었을 때 초반에 좀 애먹었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보다 더 기묘한 조작법을 들고 온 '클락 타워: 리와인드'는 좀 더 적응하기 힘들다. 방향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L1 R1으로 움직이는 방식, 그리고 스타트 버튼이 안 먹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당혹감은 결정적인 순간에 더더욱 공포스러운 경험을 자아낸다.

▲ 일단 도망쳐야겠는데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일 때의 이 당혹감이란

그런 서프라이즈만이 '클락 타워: 리와인드'가 보여주는 공포가 아니었다. 사실 '클락 타워'라는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았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봤다면 아마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가위를 든 살인마를 피해서 저택을 탈출해라, 이 간단한 내용이 게임의 전부니 말이다. 물론 그 안에 여러 단서들과 루트들이 있고, 이를 어떻게 플레이하느냐 그리고 그때그때 어떤 것들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엔딩이 갈리기는 한다. 그렇지만 코어 경험은 너무도 잘 알려진 상황에서, 그만한 공포를 지금 이 세대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 해답은 직접 플레이해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불편한 조작감은 처음에는 생경했고, 그 옛날 그대로의 그래픽까지 더해지니 조금 김이 샜다. 최근에 리마스터, 리메이크에 무언가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게 트렌드다 보니까 아무래도 '리와인드'라는 말에도 무언가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느낌이라고 할까.

▲ 처음엔 몰랐지만, 일일이 다시 뒤져보지 않고 리와인드로 복기할 수 있게 한 건 가뭄의 단비 같은 기능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고전 명작이 아직까지도 회자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풀어쓰자면 살인마를 피해 이리저리 이동하고 단서를 찾으면서 이전에 못갔던 구간을 개척하거나 엔딩 조건을 해금한다는 것이 전부긴 하다. 거기에 불편한 조작감까지 더해지니, 이런 말만 조합해보면 현대적인 게임 평가 기준으로 절대 좋게 평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을 하기 싫지만, '클락 타워: 리와인드'는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살인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저 답답하기만 했던 조작감이, 살인마가 등장하면서 왜 그렇게 디자인했나 바로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잡힐 듯 말 듯 절묘하게 거리가 유지되고,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고 싶어 조급해지면 금세 스태미나가 바닥이 난다. 그런다고 뛰는 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지만, 넘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니 자칫하면 살인마에게 잡혀버린다.

▲ 공포 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인데 막상 이 상황에 직접 놓이니까 허우적대기 일쑤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도주극에 불편한 조작감이 겹치는 순간, 공포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당혹스러워하면서 실수를 하는 그 심정이 바로 체감이 된다. 그간 제 3자 효과로 주인공의 실수를 비판했던 유저들도,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열리지도 않는 문앞에서 문고리를 틀어쥐고 당황하거나, 막다른 길로 자기도 모르게 가서는 살인마의 가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흘러간다. 당혹스러운 나머지 스타트 버튼을 막 눌러대지만 애석하게도 스타트 버튼은 먹히지 않고, 그러는 사이에도 잔혹한 살인마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사운드를 통해서 서서히 전해지고 있다. 소리가 커질 무렵이면 이미 살인마가 눈앞에 있고, 어느새 가위가 목을 베어버릴 것이라는 그 상상이 머릿속에서 먼저 떠오르게 된다.

단순히 그런 구조만 반복된다면 '클락 타워'에 대해서 더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불편한 조작감에 어떻게든 적응하더라도, 맵도 없고 왔던 길을 체크하기도 힘든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다 보면 결국 살인마의 가위를 한 번은 어떻게든 정면에서 막아야만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이것까지 고려해서 클락 타워에서는 제니퍼가 살인마를 어쩌다 한 번씩은 떨쳐내고 도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주인공이 살인마보다 더 키가 컸기에 가위질하기 전에 어찌저지 실랑이를 해서 밀어낸다는 설정이 이야기상으로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것이 매번 통하는 것이 아니라 스태미나가 충분한 상태에, 직전에 동일한 방법으로 살인마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을 때에만 가능했다. 한 번 탈출한 뒤에 다시 시도하면 아예 원거리에서 먼저 가위질로 견제해서 자빠뜨린 뒤, 그대로 반격할 새도 없이 숨통을 끊으려 달려들기 때문이다.

▲ 아잇 이때 더 확실하게 처리했어야 하는데 싶지만, 제 3자 효과라는 말이 게임을 하다 보면 자꾸 떠오른다

▲ 이후에도 막다른 골목에서 종종 이렇게 대항할 수 있긴 하지만

▲ 그걸 연달아서 쓰려고 하면 살인마도 눈치를 채고 맞대응을 한다

그렇다고 쳐도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도 같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와리가리를 하면서 돌파를 해보거나, 혹은 이전의 상황을 한 번 훑어볼 수 있는 리와인드 기능을 활용해 다른 활로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 '클락 타워: 리와인드'의 묘한 재미였다. 물론 이미 30년 가까이 된 게임이니, 엔딩 조건이나 공략은 오래 전부터 쭉 전승이 된 상태고, 그 공략을 보면 얼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클락 타워: 리와인드'는 그 시절 그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움직이는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스태미나 회복 속도도 예전에 여러 차례 이식됐던 버전과 달리 상당히 느린 편이다. 여기에 키나 커서 반응은 그래도 나름 빠르지만, 동작 자체가 느리게 전환되다 보니 그때 느꼈던 불편함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공포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포에 얼어붙어서 몸이 안 따라주는 것 같은 느낌을 컨트롤러로 느낄 수 있게끔 한다고 할까.

물론 그로부터 시일이 꽤나 지난 만큼, 이런 요소는 '클락 타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여느 창작물이든 명작이 탄생하면 그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 뒤따라오지 않던가. 특히 '클락 타워' 특유의 적에게 대응할 수단이 없이 탈출에 필요한 단서를 찾아가는 방식은 기술적으로 구현 난이도가 높지 않다. 그렇지만 단순하다는 것과 쉽다는 것은 동일한 뜻이 아니다. 단순한 만큼, 절묘한 공포를 담기가 어렵다. 단순한 조작 방식에 저항할 수 없는 적을 마주하는 공포를 담기 위해 조율한 미묘한 불편함, 그리고 매번 똑같은 엔딩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무작위성까지. 클락 타워는 그 당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공포'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너무 오래도록 울궈먹은 시리즈에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보여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공포'라는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고찰하고자 한다면 '클락 타워: 리와인드'를 훑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공포 게임의 한 스타일의 '원류'를 훑어보는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