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반PC 고개 들까?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게임' 시나리오
강승진 기자 (Looa@inven.co.kr)
트럼프가 돌아왔습니다. 전 세계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이 확정됐습니다. 2025년 1월 20일부터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며, 4년 간의 임기를 시작합니다.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 우-러 전쟁과 중동 분쟁을 일컫는 ‘두 개의 전쟁’ 양상에 미국 우선주의로의 변화가 가져올 각종 무역 제재와 강달러, 기업 친화적 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이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그간 보여준 행적에 비추어 비디오 게임 시장의 변화도 예견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선거 시작 전부터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문화에 반대 입장을 내놓은 과거 트럼프의 발언이 재소환되기도 했습니다. 보호무역주의가 게임 가격의 인상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죠. 그동안 업계에 촉진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과 다양성 정책이 약화될 것이라는 추측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들어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비디오 게임 시장에 정말 큰 파급력을 발휘하게 될까요? 가능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폭력을 멈춰라, 그건 게임도 마찬가지
1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검열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미화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여기에는 이제 흔한 섬뜩하고 끔찍한 비디오 게임도 포함된다.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이 폭력을 찬양하는 문화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중단하거나 실질적으로 줄여야 한다.”
트럼프의 이 같은 성명은 지난달 15일 게시된 소셜 영상을 통해 다수 리포스트되고 천만 회 이상 재생되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흔한 딥페이크 가짜 뉴스는 아닙니다. 실제 트럼프의 입을 통해 나왔고, 이는 트럼프가 비디오 게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증명할 때 쓰이는 문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트럼프는 위의 발언처럼 게임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게임에 미치는 영향을 더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등급 제도’의 마련 역시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사실 폭력성 우려는 비디오 게임에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비디오 게임만큼이나 영화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주장했죠. 보통 게임의 해악을 주장할 때 영화는 보는 콘텐츠, 게임은 직접 체험하는 콘텐츠라며 영화와 분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트럼프는 영화까지도 싸잡아 그 위험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과도하게 성적인 요소가 없다면 살인이 나오는 콘텐츠를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게 문제라고도 이야기했고요. 게임을 넘어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문화 콘텐츠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낸 셈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영화나 드라마가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면 게임이 이들 콘텐츠와 유사하다는 점을 통해 부정적인 시선을 깨는 시도가 가능합니다. 트럼프의 주장이라면 영화까지도 검열이 필요하니 직접 체험하는 폭력적인 게임이야 말할 것도 없죠.
이러한 규제책이 비디오 게임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법이 된다면 이는 곧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통 부문에서는 특정 등급 분류를 받은 게임의 판매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죠. 게임 내부적으로는 표현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더 엄격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높은 등급을 받을 경우 더 엄격한 판매 기준이 생기니 개발사 입장에서는 게임의 표현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규제가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폭력성 완화를 이끌 수는 있지만, 이는 곧 다양한 게임 제작에 대한 축소와 창의성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정당성 의심받는 빅테크의 DEI 축소, 트럼프로 속도낼까
2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의 쇠퇴
2014년부터 이어진 게이머게이트는 대안 우파를 비롯한 우익 세력의 확장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이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한 우월주의를 지적하고, 업계에 문화적 다양성과 여성주의 등을 확산시킨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2020년대 미니애폴리스 경찰관에 의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이어지는 ‘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은 서구 시장에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의미하는 DEI 확장을 이끌었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비백인과 여성을 소외된 위치에서 벗어나 더 나은 처우를 제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우후죽순 늘어났죠. 특히 빅테크를 중심으로 이러한 투자와 지원 강화 프로그램을 알리고 재정적 투자 역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큰 투자에 대한 약속과 달리 DEI에 대한 투자는 일찌감치 줄어들었습니다. 구글, 메타, MS 등 투자 약속이 컸던 빅테크들은 실적 약화에 따른 회사 인력 감소 시 DEI 관련 직원을 먼저 감축 대상에 올려놓았다는 내부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MS도 DEI 팀 일부 폐쇄 당시 DEI가 BLM 운동이 한창이던 2020년만큼 민감한 비즈니스 이슈가 아니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고당했던 DEI 관련 팀 리더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빅테크 중심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즈는 미국의 주요 기업 60곳이 임원 보너스의 성과 측정 목록에서 DEI 목표를 삭제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게 트럼프의 피격 직후인 7월. 즉, 트럼프 대통령의 피격이 호재로 작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를 벌린 후 나왔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DEI 정책의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죠.
트럼프는 첫 대통령 임기 시절인 2020년, 다양성 교육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 특히 백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트럼프 본인 지지자들, 이른바 ‘불만 가진 백인’들의 목소리를 끌어내 반(反)PC, 나아가 반미(美)로 확성하고 있는 것이죠. 당시 행정명령은 임기 말기에 가까워 이루어져 곧바로 이어진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연방 판사에 의해 막혔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이러한 반 DEI 움직임이 이어진다면 임기 내내 그 스탠스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미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며 의회 권력까지 쥔 만큼 트럼프식 정책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고요.
여기에 트럼프와의 밀접한 관계를 의심받는 이들이 프로젝트 2025라는 정부 개편 계획을 작성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반 DEI 움직임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 단체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해 제작한 해당 계획안은 보수적인 정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DEI 프로그램 중단과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 보호 폐지 등의 내용도 담겨 있죠. 트럼프는 프로젝트 2025 발안자들과의 관계성을 일축했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여러 보도를 통해 나오고 있어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계획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일찌감치 DEI 축소 움직임을 이어왔습니다. 다양성, PC 등의 논리가 큰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업계 분위기상 선택해야만 하는 비즈니스적 이슈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만큼, 트럼프 행정부를 통해 이런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당장은 게임 개발자 주도의 DEI, PC 움직임이 이어지겠지만, 교육 축소, 백인 중심주의, 이민자 및 비백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면 결국엔 게임 안에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DEI를 지지한 이들에게는 눈치를 본 행동이라며 비판받을 겁니다. 과도한 DEI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에게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게이머들에게 DEI를 강요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요. 어쨌든 프로젝트 2025, 혹은 트럼프가 이전 1기 행정부 시절 보여준 성향이 강조된다면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의 쇠퇴의 가속화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노조, 노동자의 권리는 기업 성장에서 나온다
3 더뎌지는 게임 업계 노조 활성화
레이븐 소프트웨어, 베데스다, 액티비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등 근 수년 간 많은 게임사가 잇달아 노조를 설립하고 노동권 강화를 위해 단체 움직임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이든 행정부 친노조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임기 초기부터 노동자 권리와 노조에 대한 지지를 숨기지 않았던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 강화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소득 양극화가 악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경제 성장의 해결책으로 노조를 통한 일자리 안정을 그렸죠.
이러한 일자리 안정은 소득 하위층의 중산층 복원을 달성하는 키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질 높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소외 계층이 트럼프 지지자들로 돌아선 만큼, 노조를 통해 이들의 소득 향상과 안정을 도모한다는 계획이죠.
트럼프 역시 첫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부터 노동자들의 편에 서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전략은 친기업 전략으로 이루어지는 양적 성장을 통한 지원이었습니다. 기업에 규제를 완화해 세금을 낮추고, 부담을 줄여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전략이죠.
대신 노조와의 갈등은 극심해졌습니다. 친기업 성향의 인물을 노동 위원회에 임명하는가 하면, 연방공무원 개혁 행정명령으로 공무원 노조의 움직임을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직장 내 교섭 행위를 반대하는 고용주를 처벌할 수 있는 PRO 법안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노동자 권리 향상 핵심은 보호무역 정책에 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대미 무역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무역 재협정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값싼 노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에 공장을 차린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거나 투자를 확대하겠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국 내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과 보호를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바이든 행정부에서 확대된 노조 결성은 반노조 성향을 분명하게 가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속도가 떨어질 겁니다. 이제야 겨우 결성을 시작한 미국 게임 노조 역시 더 확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 분명 기업 입장에서는 외부 상황에 일자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인건비 관리를 통한 리스크 대응 능력도 생기겠죠. 하지만 반대로 보호받지 못해 이루어지는 잦은 인사 변경이 높은 기술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게임 업계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관세 폭탄에서 시작된 손해는 게이머가
4 전반적인 소비자가격 상승
트럼프의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는 분명 자국 기업의 성장과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외 무역에서 미국이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것이죠. 트럼프가 예고한 대로 동맹국을 포함한 무차별 관세 발효가 대표적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관세 상승은 궁극적으로 상품 공급을 자국 중심으로 옮기는 데 있습니다. 게임으로 보면 콘솔이나 게임기의 액세서리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옮기고, 거기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내에서 납품하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다수 제조되는 콘솔 제작이 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적습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조사 자료를 통해 비디오 게임 콘솔의 미국 수입 중 중국이 90%에 이를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장 2025년 높은 관세가 적용된다고 해도 1년 만에 생산 시설을 미국에 완비할 기업은 없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 25%의 관세를 부과한 품목들의 수입이 물류 사업은 정상화된 팬데믹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트럼프는 중국에 관세 60% 부과를 예고한 만큼, 중국 내 수입 비중은 분명 낮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품목의 생산은 중국보다는 저렴한, 10~20%의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로 옮겨갈 것입니다. 그게 미국으로 직접 옮기는 것보다는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니까요.
그래도 높아진 관세만큼 기업들은 손해를 볼 것이고, 결국 그 부족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중국에 이은 세계 최대 규모급 게임 시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콘솔 게임 시장으로만 분류하면 전 세계 생산의 절반이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죠. 미국 수출에 따른 관세로 생긴 손해분을 미국 시장에만 전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미국은 물론 전 세계 플레이어가 그 손해를 나눠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트럼프를 모르겠어
5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다양한 변화가 예고되고, 여러 우려 역시 공존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게임 시장에서의 큰 변화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트럼프 행적을 살펴보면 우려만큼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우선 맨 처음 소개한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발언은 지난 2019년 8월 나왔습니다. 8월 3일과 4일, 텍사스 엘패소와 오하이오 데이턴에서는 연달아 수십 명이 사상한 총격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단순히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뿐만 아니라 온라인 증오 문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매우 높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희생자 가족이 참여한 기자회견이기도 했고요. 이게 5년이 지난 이번 선거 기간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재소환된 셈이었죠.
실제로 이후 트럼프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미국 대선 기간에 게임 전문 스트리머의 방송에 출연해 Z세대와의 친밀감을 높이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일단 당시 이미 게임과 영화에 등급 분류가 존재함에도 공개적으로 등급 분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걸 보면 철저한 조사보다는 공공의 적을 만들 필요로 게임과 영화를 비난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안 우파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트럼프지만, 보수냐 진보냐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준 것 역시 그의 여러 주장 실현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 어렵게 합니다.
실제로 당선 이후에는 DEI와 성소수자 보호 정책을 폐지한 트럼프는 과거 이들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최저 임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가 임기를 시작하고서는 인상 반대파를 노동장관에 앉히기도 했죠.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철저한 보수주의 노선을 따르면서도 전통적인 공화당과는 다른 진보 성향의 색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를 성공한 사업가이자 방송인으로서의 모습에서 드러나듯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인물로 꼽습니다.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바를 꺼내들어 적극적인 지지자를 만드는 데 탁월하지만, 그에 맞춰 쉽게 말을 바꾼다는 평가도 많고요.
결국 여러 우려들은 정말 우려로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내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반대로 그가 추진하고자 하는, 내건 공약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비디오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4년은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아니면 예견한 일들이 모두 사실이 된 4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 우-러 전쟁과 중동 분쟁을 일컫는 ‘두 개의 전쟁’ 양상에 미국 우선주의로의 변화가 가져올 각종 무역 제재와 강달러, 기업 친화적 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이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그간 보여준 행적에 비추어 비디오 게임 시장의 변화도 예견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선거 시작 전부터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문화에 반대 입장을 내놓은 과거 트럼프의 발언이 재소환되기도 했습니다. 보호무역주의가 게임 가격의 인상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죠. 그동안 업계에 촉진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과 다양성 정책이 약화될 것이라는 추측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들어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비디오 게임 시장에 정말 큰 파급력을 발휘하게 될까요? 가능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폭력을 멈춰라, 그건 게임도 마찬가지
1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검열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미화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여기에는 이제 흔한 섬뜩하고 끔찍한 비디오 게임도 포함된다.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이 폭력을 찬양하는 문화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중단하거나 실질적으로 줄여야 한다.”
트럼프의 이 같은 성명은 지난달 15일 게시된 소셜 영상을 통해 다수 리포스트되고 천만 회 이상 재생되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흔한 딥페이크 가짜 뉴스는 아닙니다. 실제 트럼프의 입을 통해 나왔고, 이는 트럼프가 비디오 게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증명할 때 쓰이는 문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트럼프는 위의 발언처럼 게임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게임에 미치는 영향을 더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등급 제도’의 마련 역시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사실 폭력성 우려는 비디오 게임에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비디오 게임만큼이나 영화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주장했죠. 보통 게임의 해악을 주장할 때 영화는 보는 콘텐츠, 게임은 직접 체험하는 콘텐츠라며 영화와 분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트럼프는 영화까지도 싸잡아 그 위험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과도하게 성적인 요소가 없다면 살인이 나오는 콘텐츠를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게 문제라고도 이야기했고요. 게임을 넘어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문화 콘텐츠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낸 셈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영화나 드라마가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면 게임이 이들 콘텐츠와 유사하다는 점을 통해 부정적인 시선을 깨는 시도가 가능합니다. 트럼프의 주장이라면 영화까지도 검열이 필요하니 직접 체험하는 폭력적인 게임이야 말할 것도 없죠.
이러한 규제책이 비디오 게임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법이 된다면 이는 곧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통 부문에서는 특정 등급 분류를 받은 게임의 판매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죠. 게임 내부적으로는 표현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더 엄격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높은 등급을 받을 경우 더 엄격한 판매 기준이 생기니 개발사 입장에서는 게임의 표현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규제가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폭력성 완화를 이끌 수는 있지만, 이는 곧 다양한 게임 제작에 대한 축소와 창의성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정당성 의심받는 빅테크의 DEI 축소, 트럼프로 속도낼까
2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의 쇠퇴
2014년부터 이어진 게이머게이트는 대안 우파를 비롯한 우익 세력의 확장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이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한 우월주의를 지적하고, 업계에 문화적 다양성과 여성주의 등을 확산시킨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2020년대 미니애폴리스 경찰관에 의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이어지는 ‘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은 서구 시장에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의미하는 DEI 확장을 이끌었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을 비롯한 비백인과 여성을 소외된 위치에서 벗어나 더 나은 처우를 제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우후죽순 늘어났죠. 특히 빅테크를 중심으로 이러한 투자와 지원 강화 프로그램을 알리고 재정적 투자 역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큰 투자에 대한 약속과 달리 DEI에 대한 투자는 일찌감치 줄어들었습니다. 구글, 메타, MS 등 투자 약속이 컸던 빅테크들은 실적 약화에 따른 회사 인력 감소 시 DEI 관련 직원을 먼저 감축 대상에 올려놓았다는 내부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MS도 DEI 팀 일부 폐쇄 당시 DEI가 BLM 운동이 한창이던 2020년만큼 민감한 비즈니스 이슈가 아니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고당했던 DEI 관련 팀 리더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빅테크 중심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즈는 미국의 주요 기업 60곳이 임원 보너스의 성과 측정 목록에서 DEI 목표를 삭제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게 트럼프의 피격 직후인 7월. 즉, 트럼프 대통령의 피격이 호재로 작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를 벌린 후 나왔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DEI 정책의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죠.
트럼프는 첫 대통령 임기 시절인 2020년, 다양성 교육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 특히 백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트럼프 본인 지지자들, 이른바 ‘불만 가진 백인’들의 목소리를 끌어내 반(反)PC, 나아가 반미(美)로 확성하고 있는 것이죠. 당시 행정명령은 임기 말기에 가까워 이루어져 곧바로 이어진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연방 판사에 의해 막혔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이러한 반 DEI 움직임이 이어진다면 임기 내내 그 스탠스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미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며 의회 권력까지 쥔 만큼 트럼프식 정책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고요.
여기에 트럼프와의 밀접한 관계를 의심받는 이들이 프로젝트 2025라는 정부 개편 계획을 작성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반 DEI 움직임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 단체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해 제작한 해당 계획안은 보수적인 정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DEI 프로그램 중단과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 보호 폐지 등의 내용도 담겨 있죠. 트럼프는 프로젝트 2025 발안자들과의 관계성을 일축했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여러 보도를 통해 나오고 있어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계획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일찌감치 DEI 축소 움직임을 이어왔습니다. 다양성, PC 등의 논리가 큰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업계 분위기상 선택해야만 하는 비즈니스적 이슈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만큼, 트럼프 행정부를 통해 이런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당장은 게임 개발자 주도의 DEI, PC 움직임이 이어지겠지만, 교육 축소, 백인 중심주의, 이민자 및 비백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면 결국엔 게임 안에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DEI를 지지한 이들에게는 눈치를 본 행동이라며 비판받을 겁니다. 과도한 DEI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에게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게이머들에게 DEI를 강요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요. 어쨌든 프로젝트 2025, 혹은 트럼프가 이전 1기 행정부 시절 보여준 성향이 강조된다면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의 쇠퇴의 가속화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노조, 노동자의 권리는 기업 성장에서 나온다
3 더뎌지는 게임 업계 노조 활성화
레이븐 소프트웨어, 베데스다, 액티비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등 근 수년 간 많은 게임사가 잇달아 노조를 설립하고 노동권 강화를 위해 단체 움직임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이든 행정부 친노조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임기 초기부터 노동자 권리와 노조에 대한 지지를 숨기지 않았던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 강화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소득 양극화가 악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경제 성장의 해결책으로 노조를 통한 일자리 안정을 그렸죠.
이러한 일자리 안정은 소득 하위층의 중산층 복원을 달성하는 키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질 높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소외 계층이 트럼프 지지자들로 돌아선 만큼, 노조를 통해 이들의 소득 향상과 안정을 도모한다는 계획이죠.
트럼프 역시 첫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부터 노동자들의 편에 서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전략은 친기업 전략으로 이루어지는 양적 성장을 통한 지원이었습니다. 기업에 규제를 완화해 세금을 낮추고, 부담을 줄여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전략이죠.
대신 노조와의 갈등은 극심해졌습니다. 친기업 성향의 인물을 노동 위원회에 임명하는가 하면, 연방공무원 개혁 행정명령으로 공무원 노조의 움직임을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직장 내 교섭 행위를 반대하는 고용주를 처벌할 수 있는 PRO 법안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노동자 권리 향상 핵심은 보호무역 정책에 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대미 무역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무역 재협정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값싼 노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에 공장을 차린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거나 투자를 확대하겠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국 내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과 보호를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바이든 행정부에서 확대된 노조 결성은 반노조 성향을 분명하게 가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속도가 떨어질 겁니다. 이제야 겨우 결성을 시작한 미국 게임 노조 역시 더 확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 분명 기업 입장에서는 외부 상황에 일자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인건비 관리를 통한 리스크 대응 능력도 생기겠죠. 하지만 반대로 보호받지 못해 이루어지는 잦은 인사 변경이 높은 기술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게임 업계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관세 폭탄에서 시작된 손해는 게이머가
4 전반적인 소비자가격 상승
트럼프의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는 분명 자국 기업의 성장과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외 무역에서 미국이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것이죠. 트럼프가 예고한 대로 동맹국을 포함한 무차별 관세 발효가 대표적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관세 상승은 궁극적으로 상품 공급을 자국 중심으로 옮기는 데 있습니다. 게임으로 보면 콘솔이나 게임기의 액세서리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옮기고, 거기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내에서 납품하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다수 제조되는 콘솔 제작이 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적습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조사 자료를 통해 비디오 게임 콘솔의 미국 수입 중 중국이 90%에 이를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장 2025년 높은 관세가 적용된다고 해도 1년 만에 생산 시설을 미국에 완비할 기업은 없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 25%의 관세를 부과한 품목들의 수입이 물류 사업은 정상화된 팬데믹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트럼프는 중국에 관세 60% 부과를 예고한 만큼, 중국 내 수입 비중은 분명 낮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품목의 생산은 중국보다는 저렴한, 10~20%의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로 옮겨갈 것입니다. 그게 미국으로 직접 옮기는 것보다는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니까요.
그래도 높아진 관세만큼 기업들은 손해를 볼 것이고, 결국 그 부족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중국에 이은 세계 최대 규모급 게임 시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콘솔 게임 시장으로만 분류하면 전 세계 생산의 절반이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죠. 미국 수출에 따른 관세로 생긴 손해분을 미국 시장에만 전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미국은 물론 전 세계 플레이어가 그 손해를 나눠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트럼프를 모르겠어
5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다양한 변화가 예고되고, 여러 우려 역시 공존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게임 시장에서의 큰 변화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트럼프 행적을 살펴보면 우려만큼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우선 맨 처음 소개한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발언은 지난 2019년 8월 나왔습니다. 8월 3일과 4일, 텍사스 엘패소와 오하이오 데이턴에서는 연달아 수십 명이 사상한 총격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단순히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뿐만 아니라 온라인 증오 문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매우 높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희생자 가족이 참여한 기자회견이기도 했고요. 이게 5년이 지난 이번 선거 기간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재소환된 셈이었죠.
실제로 이후 트럼프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미국 대선 기간에 게임 전문 스트리머의 방송에 출연해 Z세대와의 친밀감을 높이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일단 당시 이미 게임과 영화에 등급 분류가 존재함에도 공개적으로 등급 분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걸 보면 철저한 조사보다는 공공의 적을 만들 필요로 게임과 영화를 비난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안 우파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트럼프지만, 보수냐 진보냐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준 것 역시 그의 여러 주장 실현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 어렵게 합니다.
실제로 당선 이후에는 DEI와 성소수자 보호 정책을 폐지한 트럼프는 과거 이들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최저 임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가 임기를 시작하고서는 인상 반대파를 노동장관에 앉히기도 했죠.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철저한 보수주의 노선을 따르면서도 전통적인 공화당과는 다른 진보 성향의 색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를 성공한 사업가이자 방송인으로서의 모습에서 드러나듯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인물로 꼽습니다.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바를 꺼내들어 적극적인 지지자를 만드는 데 탁월하지만, 그에 맞춰 쉽게 말을 바꾼다는 평가도 많고요.
결국 여러 우려들은 정말 우려로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내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반대로 그가 추진하고자 하는, 내건 공약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비디오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4년은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아니면 예견한 일들이 모두 사실이 된 4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