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

중국이 e스포츠 국제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 정부는 사실상 손 놓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유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4일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에서 "중국의 '국제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가 ISO(국제표준화기구)에 채택되는 과정을 우리 정부가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며 정부의 직무유기를 강하게 질타했다.

중국은 올해 1월, ISO 기술위원회(TC83)에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했다. TC83은 e스포츠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은 위원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지난 5월, 35개 회원국의 투표를 거쳐 중국의 제안서가 채택되었고, 동시에 표준안 작성을 위한 실무그룹(WG12)이 신설되었다.

이후 중국은 WG12의 의장 자리까지 확보하며 표준안 작성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중국이 국제 e스포츠 대회의 규칙, 운영 방식, 경기장 설계, 선수 관리 등 e스포츠 산업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강유정 의원은 우리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했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중국 굴지의 e스포츠 기업 자회사의 한국지사장 A씨는 국가기술표준원에 전문가로 등록하여 활동하며 중국 표준화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 A씨는 '2024 상하이 국제 e스포츠 표준화 포럼'에서 중국 표준화 관련 발제를 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ISO 표준화 과정에서 전문가는 표준안 초안 작성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A씨의 이러한 행보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게임 및 e스포츠 산업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 의원은 문체부의 과실을 네가지로 나눠 조목조목 질타했다. △중국의 표준화 시도 사전 인지 실패: 중국은 2021년에도 e스포츠 표준화를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이러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응 연구 용역 거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서 별도의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연구 용역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문체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전문가 추가 등록 외면: 표준화 과정에 참여할 전문가 등록을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요청했음에도 문체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책임 회피: 문체부는 "표준화는 국가기술표준원 소관"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국정감사에서 이미 e스포츠 국제 표준 정립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강 의원은 "표준화는 e스포츠 경기 규칙, 대회 운영, 경기장 설계, 선수 관리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기준"이라며 "국제 대회에서 중국 기준이 적용될 경우 한국 e스포츠는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문체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 최종 통과된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제안서가 채택된 이상, 최종 통과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e스포츠 표준을 주도하게 된다면 아시안게임이나 EWC 같은 국제 대회에서 중국의 룰이 기준이 될 것"이라며 "이는 한국 e스포츠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문체부는 '남탓, 거짓말, 방관'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