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를 웃게 하거나, 미소 짓게 만드는 게임은 많이 있습니다. 탁월하고 재치있는 유머 코드가 나랑 잘 맞거나, 게임에서 주는 만족감이 마음에 들 경우에 그렇게 되죠. 최근에 저는 데드락에서 킬을 쓸어담을 때나, 전략적 팀 전투에서 1등을 할 때, 엘든링 DLC에서 최종 보스를 힘겹게 잡을 때 그랬습니다. 험난한 과정이 뇌에서 씻겨나가며 씨익 웃게 되는 그런 경험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몇 별종들은, 게임의 일정 부분이나 특정 경험뿐만이 아니라, 게임을 켜는 순간부터 게임을 끄기 직전까지 즐거운 게임이 있습니다. 분명히 게임을 끄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재미의 잔존물이 남아서 입꼬리를 쉽게 내려가게 하지 않는 부류입니다. 9월 6일에 출시한 소니의 '아스트로봇'은 최근 몇 년간 했던 게임 중에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게임의 즐거움을 선물한 게임입니다. 스무 시간가량의 밀도 있는 게임 플레이에서 단 1초도 늘어지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저 재밌고, 즐겁고, 놀라운,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놀이동산' 같은 게임입니다.


게임명: 아스트로봇
장르명: 3인칭 액션 플랫포머
출시일: 2024. 9. 6.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팀 아소비
서비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layStation 5
플레이: PS5


플레이스테이션의 아스트로 시리즈
풀프라이스 게임으로 돌아오다!

아스트로 시리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콘솔이나 VR, 컨트롤러 같은 주변기기의 사용법을 간단한 게임으로 알려주는 튜토리얼 게임으로 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아스트로 시리즈의 최신작인 '아스트로봇'은 완전한 풀프라이스 게임으로 발매했습니다. '아스트로봇'의 장르는 3D 액션 플랫포머입니다. 플랫포머는 공중에 떠다니는 '플랫폼'을 밟고 진행하는 장르를 말하는데요, 이 장르에서 스탠다드 포지션이자, 끝판 왕인 '슈퍼마리오'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같은 장르의 게임들이 그 존재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기 멋쩍은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스트로봇은 억지로 자신감을 낼 필요가 없는 게임입니다. 플랫포머 게임으로써 완성도도 아주 훌륭할 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30년 역사를 재치있고 사랑스럽게 녹여낸 세계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해 세이브 데이터를 선택할 때 보여지는 카드는, 플레이스테이션1 메모리 카드인 SCPH-1020입니다. 이걸 보자마자, 이 게임이 준비한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예상되면서, 동시에 큰 기대가 되더라고요. 아스트로봇은 이런 플레이스테이션과 나, 플레이스테이션과 여러분의 추억을 계속 자극하는 것들을 잔뜩 넣은 게임입니다.


아스트로봇은 기본적으로 3D 액션 플랫포머 장르에 충실합니다. 깔끔한 그래픽으로 표현한 화사한 세계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는 기본부터 재밌습니다. 달리기, 점프, 호버링, 근접 공격과 가젯 사용 등 주인공이 할 수 있는 행동에 어색함이 전혀 없으며, 속도감도 적당합니다. 아스트로봇은 6가지 갤럭시, 50가지 이상의 주 행성과 미니게임 스타일의 소행성들이 존재하며, 모든 행성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내음 가득한 숲, 밤의 도시, 보석이 가득한 해적들의 소굴, 공사장, 눈과 얼음이 가득한 설원, 우주 등 준비된 무대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게임 중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가젯을 활용해 준비된 장애물을 넘어설 때 굉장히 즐겁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과거 게임에 등장했던 유명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갤럭시마다 그 캐릭터 중에서도 의미 있는 캐릭터로 변해 플레이할 수 있는 스테이지는 아스트로봇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가 될 수도, 언차티드의 '네이선 드레이크'가 될 수도 있죠. 2024년 9월에 출시한 최신 게임을 함과 동시에 그 게임을 플레이했던 추억도 떠오르게 되는, 소니만 할 수 있는 고급진 '추억 팔이'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아스트로봇의 놀라움
햅틱, 레벨 디자인, 사운드트랙... 그냥 다 좋다

여기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컨트롤러인 듀얼센스의 모든 기능을 활용해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만듭니다. 아주 작은 진동, 트리거들의 저항감, 컨트롤러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이 게임에 아주 쉽게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비 오는 장면에서 손바닥에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더라고요. 게다가 게임의 사운드트랙은 스테이지마다 탁월하다 느껴질 정도라, 몇 스테이지에서는 음악부터 감상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스트로봇의 레벨 디자인도 놀랍습니다. 스테이지 자체는 선형적이고, 길이도 길지 않지만, 구성이 밀도 있고, 반응성이 높습니다. 스테이지마다 구조가 필요한 '봇'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기도 하고, 퍼즐 조각이나 다양한 수집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맵에 대충 뿌려져 있는게 아니라, 그 요소를 획득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자그마한 장치나 트릭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찾아 다니기 위해 움직일 때 주위에 보이는 사물이나 동물같은 것들이 모두 재미있는 반응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는 것도 즐거움의 한 부분입니다. 수북히 쌓여있는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다 반응하고, 지나가는 작은 공도 다 촉감이 다르며, 반응이 다릅니다.


모든 봇들이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적들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갤럭시마다 보스가 존재하는데, 이 보스전은 준비된 가젯을 활용해야 하는 기믹이나 미니 게임들이 존재해 격파하는 재미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주인공이 장착할 수 있는 가젯을 얘기한 김에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플랫포머 게임을 통틀어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게임의 분량을 고려하면, 많은 수의 가젯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어떤 가젯으로 플레이 할 수 있을까 같은 기대감을 주기엔 충분할 정도입니다.

게임의 메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 약 15시간 정도로 엔딩에 도달할 수 있지만, 아스트로봇에서는 숨겨진 콘텐츠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맵에 숨겨진 수집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숨겨진 워프 포인트를 발견해 숨겨진 행성을 탐험할 수도 있고요, 갤럭시마다 미니게임을 가진 소행성들도 다채로워서 밑바닥까지 핥아 먹는다면 30시간 이상도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아스트로봇의 난이도를 얘기해보자면, 처음에는 좀 쉽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몇 미니 게임이나 행성들은 꽤 도전적인 난이도를 가졌습니다. 플랫포머를 꽤 해보기도 했고, 시작 후 몇 시간 동안 막힌 적이 없어서 자신감이 붙은 저에게 겸손해지라는 교훈을 주는 스테이지도 종종 있었고요.


플레이스테이션의 사랑스러운 역사
순수한 즐거움을 선물하는 게임

아스트로봇이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것은 아주 명료합니다. 게임의 순수한 즐거움과, 플레이스테이션 30년의 역사를 사랑스럽게 포장한 선물입니다. 아스트로봇을 플랫포머 게임으로 소비해도 좋지만, 플레이스테이션과 그 게임에 대한 추억을 약간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아스트로봇으로 기념하고자 하는 역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보스전부터 엔딩 크레딧까지는 감정적인 부분을 자극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캐릭터들이나, PS1, PS2, PSP 등 과거 기기들까지 보여주며, 끝까지 게임을 한 나에게 감사하며, 배웅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메세지를 세련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치 게임 전체가 그들이 직접 쓰고, 제본까지 해서 나에게 선물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스트로봇은 2024년 출시한 독립적인 게임 중 가장 훌륭합니다. 그저 플랫포머로써 재밌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추억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좋은 사운드 트랙, 탁월한 햅틱, 다양한 상호작용, 깔끔한 카메라, 사랑스러운 캐릭터, 그래픽과 최적화, 디테일 등 게임에 들어있는 모든 요소가 가르키고 있는 방향이 '게임의 순수한 재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