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게임사(史)를 정리할 때, 블리자드의 CCG '하스스톤'은 꽤 비중있게 다뤄질 만한 작품일 거다. CCG라는 장르는 하스스톤 이전에도 많았고, 훨씬 깊은 역사를 지닌 작품들이 즐비하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매니아층'에서만 향유되던 CCG라는 장르를 대중의 눈높이까지 끌어올렸다.

'워크래프트'라는 강력한 IP, 그리고 상당 부분 단순화된 게임 구조와 깔끔한 UI까지. 하스스톤은 출시와 동시에 기존 매니아층이 아닌, 대중들에게도 충분한 매력을 뽐내며 CCG라는 장르에 대한 장벽을 하나씩 허물었다. 하지만, 숙명적으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서비스 기간에 따른 부침이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하스스톤이라 해도 늘 처음의 모습만을 보여주진 못했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10년이다. 달마다, 일마다 수많은 게임이 출시되고 종료되는 상황에서 꾸준히 이어져 온 10년. 달리 말하면, 10년 간 하스스톤은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다는 뜻이며, 그많큼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0년 이상 서비스한 게임이 적은 건 아니지만, 그 수십, 수백배의 수에 달하는 게임들이 이 10년을 채우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 축하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다음 확장팩인 '극한의 극락'이 출시되었다. 지난 10년의 서비스, 그리고 앞으로 또 이어질 10년의 하스스톤. 게임 디렉터 '타일러 비엘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타일러 비엘만' 하스스톤 게임 디렉터



Q. 먼저, 축하한다. 자그마치 10년이다. 이 오랜 기간 동안 게이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하스스톤이 처음 출시된 2014년 당시, 디지털 CCG는 종이 카드 기반의 테이블탑 게임의 성과를 그대로 옮기기 위한 몇 개의 타이틀이 존재하던 때다. 당시 블리자드의 하스스톤 개발 지침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이중 큰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가능한 최고의 퀄리티', 그리고 '모바일 출시'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하스스톤 초기의 성공은 이 덕분이 아닌가 싶다. 당시 모바일 게임들의 전체적인 퀄리티는 지금에 비하면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고, 비주얼 면에서도 다소 아쉬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러한 초기 환경이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을 성공 궤도 위에 올려놓은 힘이었을 거다.

이후 10년 간, 하스스톤은 꽤 건강하고 활기차게 업데이트를 이어왔다. 우리는 핵심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카드를 만드는 법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10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투기장과 용병 시스템, 그리고 전장 등이다.

그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건 전장이지만, 이 모든 시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하스스톤은 아마 훨씬 빠른 속도로 쇠퇴했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한 실험과 시도가 이어진 것이 초기 성공 이후 하스스톤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동안 계속해서 이 기조를 이어갈 생각이다.


Q. 최근에 이르러 확장팩의 컨셉이 뭔가 특정한 키워드나 새로운 게임 메커닉을 기반으로 한 개별 테마, 서사로 구성되는 것 같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데, 확장팩 개발 과정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졌는가?

- 확장팩의 기획 과정을 짧게 말하면, 일단 구상된 여러 테마들을 두고 유저 테스트를 진행한다. 10종, 많게는 12종의 테마를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면서 반응을 살펴본다. 물론 이것이 최종 결정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어떤 테마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지는 충분히 참고할 수 있다.

가령, '극한의 극락'은 최초 '해적'이라는 테마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해적을 소재로 한 다양한 카드를 만들어 테스트해 보았지만, 곧 이 '해적'이라는 테마가 너무 협소한 테마라는 걸 깨달았다. 때문에, 이 '해적'의 바탕이 되는 바다와 해변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하스스톤에 맞춰 변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나온 결론이 '휴가'다. 하스스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휴가를 떠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면서 투어 가이드와 각종 음료 카드를 만들었고, 해가 내리쬐는 해변에서 즐기는 휴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앞서 얘기했지만, 하스스톤의 개발 과정에는 굉장히 많은 테스트가 함께한다. 각 테마의 유저 테스트도 상당히 오래 진행되었으며, 메커니즘 테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매주 목요일은 팀 전체가 참여하는 플레이 테스트이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피드백을 수집한다.

올해는 페가수스의 해(하스스톤 정규력)이기에 보다 밝고 즐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올해가 끝날 즈음엔 보다 어두운 장소와 심각한 주제, 워크래프트 세계와 더 연결된 소재들을 다룰 예정이다. 아마 올 해는 하스스톤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Q. 짧게 말해준다 했는데 상당히 길었다.

- 어... 그러니까 짧게 말하면 '사용자 테스트'다. 나머진 긴 대답이다.(웃음)


Q. 다시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이번 확장팩 '극한의 극락'은 굉장히 즐거운 휴가 풍의 확장팩이다. 사운드와 배경 제작에도 힘을 썼을 것 같은데, 이 과정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 꼭 이번 확장팩이 아니더라도 하스스톤은 모든 전설 카드가 등장할 때의 음성과 시각 효과, 사운드 이펙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모든 전설이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말이다. 이번 확장팩의 해변, 휴가 테마는 게임 내 이벤트와 로딩 등에도 반영될 것이다.


Q. 확장팩이 아닌 '하스스톤' 자체에 대해 말해 보자면, 지난 10년 간 많은 수평적 업데이트가 이뤄지면서 많은 카드가 추가되었고, 그만큼 플레이 다양성도 늘었다. 동시에 게임이 매우 복잡해진 것 또한 사실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아마 한동안 게임을 놓았던 복귀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새로운 키워드와 카드를 추가해왔다. 당연히 자리를 비웠던 플레이어들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작년에, 우리는 이 간극을 어려운 플레이어들을 위한 '캐치업 팩'을 만들었다. 플레이어의 보유 카드를 기반으로 부족한 카드를 보충해주는 보너스 카드를 제공하는 팩이다. 또한, 진입 장벽을 줄이기 위한 '로너 덱'도 만들었다. 이 '로너 덱'은 게임에 복귀하면 주어지는 덱으로, 최고의 덱은 아니지만 게임에 충분히 적응할 기간 동안 활용할 수 있는 덱이다.

또한, 이번 확장팩에서 새로 시도한 방법도 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대표적인데, 개발 과정에서 여러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테스트를 진행해 이들이 활용한 카드들로 하나의 덱을 구성했다. 확장팩에서 새로운 직업 덱을 선택하면, 카드 중에 이들의 이름이 적힌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통해 게임을 접하고 있었거나, 좋아하는 특정 크리에이터가 있는 게이머들이 보다 쉽게 게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수단이다. '전장'과 같은 콘텐츠는 복잡한 사전 설계가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하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이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게이머들, 혹은 옛 게이머들이 하스스톤으로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하스스톤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덱을 구성할 필요가 없다. 하스스톤의 밸런스는 꽤 잘 맞춰져 있으며,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플레이 스타일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Q. 매번 확장팩을 출시할 때마다 이전보다 더 강하거나 매력적인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카드의 파워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 가장 많이 참고하는 건 역시 데이터다. 하스스톤의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덱은 보통 일정한 형태의 '아키타입'을 따르기 마련인데, 이 아키타입들의 승률이나 코스트 사용률 등의 통계를 보면서 어떤 비율로 카드들이 사용되는지를 살펴보고, 주시하면서 조정한다. 때로는, 특정 카드 사용률이 너무 높아질 경우 금지하기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너무 심해질 경우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새 확장팩을 출시할 때마다 우리는 이 '아키타입'에 대한 변화를 고민한다. 물론, 예상치 못한 변화가 따라올 때도 많지만 말이다. 모든 확장팩과 미니 세트가 우리 생각만큼의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어떤 경우엔 새로운 카드가 힘을 쓰지 못하고 기존 메타가 유지되는 경우들도 있다.

'극한의 극락'같은 경우, 관광객 카드를 중심으로 이전에 없던 아키타입이 만들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메타를 확실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를 완전히 예상하진 못하지만, 상당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이 '관광객 카드'가 어떤 덱을 구상한다 해도 충분한 활용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기존 메타를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때문에, '파워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딱히 공감하지는 않는다. 다만, 매 확장팩마다 기존 메타에 대응할 수 있는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하는 형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Q. 한국에서는 '투기장'이 정규 시즌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투기장 모드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는가?

- 우리 또한 모든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투기장 콘텐츠를 좋아하며, 투기장에 꾸준한 변화를 주고 있다. 투기장에서는, 확장팩 출시 전에 먼저 극한의 극락을 플레이할 수 있으며, 관련 세트도 선보인다. 투기장은 확장팩의 정식 출시 이전, 미리 확장팩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한, 현 시점에서 발표할 수는 없지만 투기장과 관련된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투기장 모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며, 더 깊게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Q. 하스스톤의 경우 기존의 CCG들에 비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무작위적 요소가 작용한다. 이는 하스스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승패가 실력보다 운에 의해 갈린다는 느낌도 주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내가 우리 팀의 신입 디자이너들에게 매우 긴 시간 설명하는 것이 바로 기술과 무작위성 간의 관계다. 요지는 이렇다. 기술(실력)과 무작위 요소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무작위적 돌발 사태를 대비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중요한 건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다.

용어를 살짝 바꾸자면, 무작위성보다는 '불확실성'이 더 적당할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불확실성이 더해진 게임은 오히려 게이머의 실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이다. 불확실성은 어느 한 플레이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이를 감수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곧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은 예측 불가능해야 하지만, 결코 동전 던지기로 승부가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최고의 플레이어가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주어야 하며, 이 두 개념은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목표 또한 이 조화가 유지되도록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이다.


Q.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위시한 덱 빌딩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많아지면서, 기존의 CCG의 인기가 줄어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게임들이다. 이 모든 게임들의 핵심 아이디어, 즉 뿌리는 CCG에서 파생된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테이블 위에서 플레이하던 TCG의 자식과도 같은 게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년 전, 우리는 전장을 기획하면서 오토 배틀러 장르의 특징을 도입했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플레이어 반응 또한 무척 좋아 아직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내가 팀에 합류하기 이전엔 덱 구성 솔로잉 콘텐츠인 '용병단'이 추가되었다. 비록 기대했던 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했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하스스톤엔 우리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장르적 장치들을 도입해갈 예정이다. CCG라는 뿌리에서 뻗어나온 다양한 장르들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충분한 영감을 얻는다면 하스스톤에도 지속적인 실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Q. 하스스톤 팀 합류 이전, 매직 더 게더링의 개발을 포함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카드 게임 장르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면 말해줄 수 있는가?

- 내 커리어에 대해 말하면 아마 매직 더 개더링에서 시작해야 하긴 할 거다. 당시 '미로딘'이나 '라브니카' 같은 세트들을 만들었던 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테마와 메커니즘 모두 플레이어의 판타지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카드의 테마와 게임 메커닉이 플레이어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면서, 게이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만드는 순간. 나는 이런 걸 '아하 모먼트(Aha Moment)'라고 하는데, 마치 머리 위에서 전구가 켜지는 것 처럼 게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비유를 해 보면,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들은 플레이어에게 '인상깊은 순간'을 개발하지만, CCG 개발자들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인상깊은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 내가 디자이너들에게 당부하는 것 또한 이런 형태의 '플레이 과정에서의 감정적 경험'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전장' 콘텐츠가 이런 감정적 전달을 매우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전장 시스템을 공개한 블리즈컨 당시 게이머들의 반응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Q. 하스스톤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 내가 팀에 합류한 건 다른 이들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 팀에는 처음부터 하스스톤을 개발해온 사람, 20년 간 블리자드에서 일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워크래프트의 30주년, WOW의 20주년, 하스스톤의 10년, 전장의 5년까지, 이와 같은 중요한 순간들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들과 같은 기간을 겪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렇기에,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10주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게 다가온다. 하스스톤 개발팀은 매우 특별한 팀이며, 플레이어들을 대하는 방식과 개발 문화 또한 나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용기를 가지고, 플레이어들에게 집중하고, 새로운 것들을 실험하며 '아하 모먼트'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한국 내 하스스톤 커뮤니티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먼저, 감사합니다.(한국어로) 이 발음이 맞나?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우리는 항상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으며, 모든 커뮤니티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들에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해 주시는 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러분의 말을 경청하겠다고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