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르에서 엄청나게 뛰어난 게임을 양손으로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이 만든 게임사의 그 장르 신작. 그 신작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전작들입니다. 저번에 나온 그것보다 낫느냐, 못하냐,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느냐. 신작이 출시하자마자 엄격한 산파가 정교한 줄자로 재단을 시작합니다.

그런 깐깐함이 예정된 신작 게임은 보통 두 가지의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 편인데요. 첫 번째는 전작과 아예 다른 길을 가는 종류입니다. 의도적으로 비슷한 것을 모두 제거하는 경우죠. 전작에 사용했던 마법 체계의 이름을 바꾼다거나, 중세 유럽풍에서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사용한다거나, 그런 극단적 변화를 시도합니다. 그래픽 질감이나, 캐릭터 화풍같은 사소한 것들이 비슷할 순 있지만, 바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바꾸는 걸로 새로운 기준의 평가를 받길 원합니다.

두 번째는 비슷한 길을 가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예 전에 났던 발자국에 발을 맞춰 가는 게임도 있고요, 몇 발자국 비슷하게 걷다 다른 샛길로 빠지는 것도 있고, 처음엔 비슷한 게 없다가, 나중에 전에 맡았던 향을 내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하는 게임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아틀러스의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후자에 속하는 게임입니다. 유명한 넘버링 시리즈를 하나도 아닌 두 개나 보유하고 있는 게임 개발사의 신작입니다. 게임 이름 앞에 '진·여신전생'이나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붙지 않았지만, 페르소나 시리즈의 성공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신설한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게임이라, '페르소나'나 '진·여신전생'의 색깔로 칠해진 안경을 쓰고 첫인상을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그 안경을 벗으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가 준비한 것들 네 마음대로 보라고 말합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금방 진·여신전생에서 좋았던 것, 페르소나에서 훌륭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메타포가 보여주고 싶은 것도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 스토리, 게임 볼륨과 관련된 가벼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명: 메타포: 리판타지오
장르명: RPG
출시일: 2024. 10. 11.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아틀러스 스튜디오 제로
서비스: 아틀러스
플랫폼: PC, PlayStation 4, 5, XBOX X|S
플레이: PC


세련된 터치, 먹어본 맛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맛과 향기

메타포의 게임 진행은 아틀러스 RPG, 특히 페르소나 시리즈가 베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한이 있는 메인 퀘스트를 따라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 기한 내에서 자유롭게 서브 퀘스트를 하거나, 주인공의 능력치를 올리거나, 동료들, 친구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기한 내에 메인 퀘스트의 세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퀘스트를 받자 마자 깨버리고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할지, 마감일 근처에 할지, 고민을 계속하게 만드는 유형입니다.

대부분의 메인 퀘스트는 특정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됩니다. 필드처럼 보이는 곳을 탐험하고 전투하는 부분도 있긴 하나 메인은 아닙니다. 던전 탐험은 아틀러스 뿐만이 아니라 많은 JRPG가 사용하고 있는 MP 관리형 시스템입니다. 전투, 전투 중 회복, 전투 후 재정비에 모두 필요한 MP를 얼마나 아끼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냐에 따라 모험의 범위나 던전 공략에 필요한 일 수가 정해집니다. 짜내고 짜내서 한 번의 입장으로 던전을 공략할 경우에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더 보장됩니다. 페르소나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 게임의 노하우를 바로 적용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진행이 '페르소나'라면, 전투는 '진·여신전생'입니다. 메타포는 진·여신전생의 '프레스 턴'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적의 약점이나 공격에 치명타가 발생 할 경우 1턴이 아니라 0.5턴을 사용하게 되게 되고, 공격이 빗나가거나 무효 될 경우에는 2턴 소비, 반사되거나 흡수될 경우에 즉시 상대방의 턴으로 넘어가는 상성 기반의 전투 시스템입니다. 내 약점은 최대한 가리고, 상대방의 약점은 빠르게 알아차려야 하는 전투 기조가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메타포는 이 프레스 턴 시스템에서 몇 가지를 추가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전열과 후열로 나눠지는 '대열' 시스템이 있습니다. 같은 아틀러스 게임인 '세계수의 미궁'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전열에선 공격력이 강해지고, 방어력이 떨어지며, 후열에선 반대로 방어력이 강해지고 공격력이 약해지죠. 특정 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나, 같은 열에서만 효과를 내는 스킬도 존재합니다. 메타포는 전투가 굉장히 많은 게임이라 전투 시스템에 빠르게 질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양념 역할을 하는 것들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메타포만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많은 부분에서 찾을 수 있지만,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의 이야기입니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이야기는 학교, 학원물이고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나 사건에 상상력이 첨가된 형태에, 활동 범위도 학교, 기숙사, 팰리스나 타르타로스같은 던전 등이 좁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요. 메타포는 상상력을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거기에 개연성, 현실성이 따라가는 느낌입니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훨씬 더 큼지막하고, 흥미롭습니다. 배경이 판타지풍의 RPG이기 떄문에, 현대적, 현실적, 학원물적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있지 않아, 게임적, 만화적 상상력을 무제한으로 느낄 수 있죠.


메타포의 이야기는 '왕도'입니다. 주인공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에 붙이는 '왕도적인'이라는 표현이 아니고, 진짜 주인공이 왕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왕이 암살당해 위기가 닥친 왕국에 역사상 전례 없는 '선거 마법'이 발동하게 됩니다. 이 '선거 마법'은 나라에서 가장 국민에 지지를 받는 사람이 '왕'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왕에게는 왕자가 있었는데, 왕자 역시 암살자에 의해 저주를 받아 의식 불명인 상태입니다. 주인공과 요정 '갈리카'는 왕자에게 풀린 저주를 풀기 위해 여행하다, 선거에 입후보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전 세계를 모험하며 어려운 도전들을 물리치고, 왕이 되기 위한 자질을 키우고, 다양한 종족들의 동료들과 유대를 쌓아갑니다.

메타포만의 특징 중 두 번째로 꼽을 만 한 것은 '아키타이프'입니다. 메타포의 세계에서는 마법을 쓸 때 '마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아키타이프는 마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마법이나 인간을 초월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진·여신전생의 동료 악마나 페르소나에서의 페르소나와 큰 결에선 비슷하지만, 더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동료들은 초기 아키타이프가 존재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스킬도 간편하게 커스텀 할 수 있습니다. 동료 악마라기 보다는 다른 RPG의 직업 시스템에 더 가깝습니다.


메타포의 장단점
대부분 좋지만...

메타포의 첫인상은 매우 놀랍습니다. 뛰어난 2D 일러스트와 아틀러스 게임 특유의 독보적인 UI 디자인은 메타포에서도 여전합니다. 전투 메뉴 구성 뿐만이 아니라, 시스템 UI와 메뉴마다 바뀌는 일러스트는 굉장히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다양한 종족을 표현한 일러스트와 3D 인물 묘사도 좋은 편입니다. 다만, 우리는 게임을 하는 내내 UI만 보는 게 아니죠. 디자인의 독특함과 세련됨은 게임 중반으로 넘어갈 때쯤 익숙한 것이 됩니다.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로 보는 화면은 3D로 표현된 캐릭터와 배경인데, 배경의 묘사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나무, 철문, 돌벽, 상자, 바닥 등 이런 환경 오브젝트 텍스쳐의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 비교적 훨씬 더 자세하고 공들여 표현된 인물과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메타포는 전 세계를 모험하는 게임이고, 그 지역별로 다양한 특징이 존재하는데, 그 세계를 표현하는 것 자체도 조금 부족합니다. 환경 그래픽의 문제가 아닌, 아예 보여주는 장면이 적습니다. 유크로니아 왕국엔 광활한 대지, 황량한 사막, 신비한 동굴 등 아름다운 장소가 많은 것 같은데, 그림 몇 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게임 플레이는 아주 단단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메인 퀘스트의 긴장감도 좋고, 서브 퀘스트와 후원자들의 이야기도 괜찮은 수준입니다. 자칫 약점 찾기 원툴이 될 수도 있는 프레스 턴 전투 시스템을 대열 시스템과 일종의 합체기인 '진테제' 시스템으로 다양성을 준 것이나, 마법과 도구의 적절한 사용처, 아키타이프별로 확실한 특징을 준 것도 게임 플레이의 단단함에 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틀러스라면 기대 할 만한 음악도 훌륭합니다. 독보적으로 앞서간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판타지풍 게임에 알맞은 좋은 품질의 음악이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메타포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게임의 볼륨입니다. 1회차 노말 난이도 기준, 모든 후원자의 최고 랭크 달성, 요리 콘텐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브 퀘스트도 챙기면서 진행한 결과, 엔딩까지 약 5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꼼꼼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지만, 수집 요소, 투기장 콘텐츠 등 놓친 부분이 많았습니다. 만약, 더 높은 난이도로 1회차만에 모든 업적을 따려고 하신다면 6~70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이 예상됩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반드시 챙겨야 하는 '후원자 랭크'와 '왕의 자질'이 복잡하지 않다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까다로운 조건을 가졌거나, 특정 시기까지 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이벤트도 없고, 랭크를 하나 올리기 위해, 후원자를 의미없이 여러 번 만나야 하는 부분도 없었습니다. 게임의 난이도 설정도 좋습니다. 초중반까지는 조금 쉽게 느껴지다가, 후반부로 가면 갈 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난이도 곡선을 가졌습니다. 전투 시스템이 지루해질 때쯤, 매운맛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는데요. 몇 번이나 파티 구성이나 아키타이프 세팅을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특히, 초중반에 MP 회복 아이템을 많이 썼다면 피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게임의 단점을 좀 말해보자면, 메타포의 '아키타이프'가 '동료 악마'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동료들의 아키타이프도 마음대로 변경이 가능하고, 스킬 세팅도 자유롭게 해줄 수 있고, 하위 아키타이프에서 상위 아키타이프로, 마치 전직같은 시스템이 나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벨벳 룸이나 사교의 관에 몇 시간씩 처박혀서 최강의 악마를 만드는 그런 재미는 느낄 수 없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이 아닌데도, 넓은 던전에서 간헐적으로 프레임이 떨어지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정 스킬들이나 역동적인 상황에서 캐릭터의 모션이 어색하고, 딱딱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게임 중 빠르게 이동하는 대시가 있는데, 대시를 할 때 화면 표현이 좀 과하다는 느낌이나, 대사 폰트가 좀 작다는 느낌도 있었고요.


재미있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본 기분
48화 분량 정도의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마치 재미있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을 전해주는 게임입니다. 24화 정도가 아니고, 48화 정도 되는 분량을 최대한 지루한 부분 없이 보여주려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진·여신전생과 페르소나를 잘 섞은 시스템에, 세계수의 미궁 몇 방울 첨가, 그리고 메타포: 리판타지오가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잘 들을 수 있었고요. 아틀러스 게임의 팬은 물론이고, 아틀러스 게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이 아틀러스 RPG의 미래를 보여준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혁신적이거나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은 없습니다. 다만, 1992년에 슈퍼 패미컴으로 진·여신전생이라는 게임을 선보인 순간부터, 2024년인 지금까지, 그들이 수없이 했던 회의와 토론의 결과, 성공과 실패의 과거가 압축되어 고스란히 들어있는 역사 책 같은 게임이고, 그 책을 읽는 즐거움이 만족스럽다는 것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