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게임과 e스포츠 진흥 조례안을 만든 김동욱 의원
"일회성 이벤트로 게임이 이용되기보다, 장기적 관점의 인프라가 구축되길"
결국 정치권에서 '이대남'으로 인식되는 게임
"게이머들이 게임산업을 친구처럼 여기길, 결국 중요한 것은 관심"

김동욱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게임을 하는 젊은 정치인이다. 1991년생인 그는 지난 2022년 서울시에 그동안 없었던 게임, e스포츠 진흥을 위한 조례안을 만들었다. 그해 말 통과된 조례안은 다음 해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서울시 유치에 큰 도움이 됐다.

▲ 서울시의회 김동욱 의원(국민의힘)

인터뷰 첫 질문으로 김동욱 의원에게 어떤 게임을 해봤냐고 물었다. 그의 게임 경험은 평범한 90년대생과 다르지 않았다. 어렸을 적 '바람의나라' 공략집에 붙어있는 10시간 쿠폰을 챙겨 게임을 즐겼고, 무료 플레이 구간이었던 20레벨까지 새로운 캐릭터를 반복해 만들어가며 키웠다. 이후 '크레이지 아케이드', '포트리스'를 플레이하다 '겟엠프드'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에 빠졌다.

지금, 정치인 김동욱 이전에 게이머 김동욱은 '리그 오브 레전드' 다이아몬드 티어의 상위 4% 플레이어다. 현직 서울시의원인 그는 자신의 '롤' 티어를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롤'에 빠져들면서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UC Berkeley 정치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부 정치학 석사를 지냈고,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공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일부 학부모가 걱정하는 '게임에 빠진 청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냥 게임은 취미생활이었던 거 같다. 물론, 부모님이 종종 '그 시간에 공부나 더 하지'라는 말씀은 하셨지만, 크게 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날 공부 할당량만 채우면 나머지 시간에는 게임을 하며 알아서 시간을 보내도 됐다. 비교적 자유롭게 게임을 즐긴 경험이 현재 의정활동에 반영된 거 같다"

국가적으로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의 중요성은 커졌지만, 2022년까지도 서울시에 진흥을 위한 조례가 없었다. 당시 김동욱 의원이 마련한 조례안에 김현기 서울시의장은 "법과 제도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 입법의 속도가 시민의 경험과 인식의 변화를 곧장 좇아갈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한참 뒤처져서는 안 된다"며 "갈수록 높아지는 게임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의 인프라를 점검하여 새로운 로드맵을 구상하고, 혁신에 가까운 투자를 통해 더 거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되길 바란다"라고 기대했다.

조례안이 마련된 뒤에 서울시는 2023년 게임과 e스포츠 산업 육성을 위한 예산을 확대했다. 실제로 계획 22억 8,600만 원에서 33억 8,600만 원으로 48% 증액됐다.

▲ 2022년 서울시의회 조례안 관련 토론회

아울러 '롤드컵' 결승전이 서울시에서 개최될 수 있었던 데에도 김동욱 의원 공이 컸다. 당시 롤드컵 결승전 개최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지역은 부산이었다. 서울시가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부산시는 결승전 유치를 위한 TF를 구성, 주최사인 라이엇게임즈와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상황을 알아챈 김동욱 의원은 서울시에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결승전 고척돔 유치에 성공했다.

2023 롤드컵은 프로게임단 T1의 LPL 도장 깨기로 마무리됐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네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서울시 입장에선 최고의 시나리오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럼에도, 김동욱 의원은 지난 롤드컵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콘텐츠를 서울시에 유치했음에도 경제효과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서다. 그는 "인천공항과 고척돔을 잇는 수송 방안을 마련하거나, 곧바로 부산으로 갈 수 있는 특별 기차를 마련해달라고 건의는 했었지만, 행정적인 어려움으로 이뤄지지 못했었다"며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우리가 더 노력했다면 수천억 원의 경제효과를 더 취할 수 있었을 텐데 미진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동욱 의원은 지난해 롤드컵을 보면서 국내 e스포츠 산업의 인프라를 되돌아봤다. 결론적으로 평가하면, 국내 e스포츠 산업은 페이커 선수를 인질로 삼는 듯한 구조다. 인프라 구축보다는 한 명의 슈퍼스타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과거 스타크래프트도 임요환이라는 슈퍼스타가 있고 홍진호라는 대항마가 있으면서 이야기가 써져 갔다. 이후 박정석, 최연성, 강민, 박성준 등이 나오면서 e스포츠 산업이 커져갔다. 산업이 커지면서 임요환이라는 한 명의 선수로 병역법이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나타나 승부조작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런 판들이 다 깨져버렸다"

"이후에 2011년 리그 오브 레전드가 국내에 정식으로 서비스됐고, 매드라이프 선수가 정점을 찍고 나서 페이커 선수가 등장했다. 현재 쵸비 선수에 이르기까지, 선수 중심으로 e스포츠 산업은 인기를 끌고 성장했다. 하지만 선수 외의 인프라는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 일각에선 페이커 선수가 중국으로 가버리면 LCK가 망해버릴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었으니까. 너무 인재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김동욱 의원의 의견은 페이커 선수가 잘하고 있을 때, e스포츠가 2차산업에서 3차산업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인프라 설계가 미비했단 지적이다. 이는 페이커 선수를 비롯해 e스포츠 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동안 응원만 하고 지원은 부족했던 정치권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이유는 여럿 있을 수 있다. 결국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가 게임 산업, e스포츠 산업에 비교적 부정적 인식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일회성 인기에 의존한 이벤트 마련일 수도 있다. 예로 지난해 서울에서 페이커 선수의 우승으로 e스포츠가 주목받으니, 남는 예산을 모아 관련 행사를 만드는 식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e스포츠 산업 발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게임이나 e스포츠 관련 담당 공무원들의 교체가 잦아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문제점도 있다.

시간이 흘러 게임을 즐겼던 세대가 정책결정권자가 되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다.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 문제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장관, 국회의원이 게임에 관심을 가져 지원할 생각을 가져도, 연속성에서 문제가 있다. 결국 90년대생 늘공이 정책을 주도할 수 있는 국장급이 되어야 게임과 e스포츠 산업 발전에 관한 프레임이 바뀐다는 것이다. 문제는 10년에서 20년 뒤 이야기라는 점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게이머들의 관심이 정치권에 전해지면 해결의 시간은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게이머들을 바라본 김동욱 의원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했다.

▲ 김동욱 의원이 게임 의정활동에 관한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결국에 정치권에 관심은 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국내 게임산업 규모가 한 해 20조 원이 넘었다는 게 자랑스레 알려지곤 한다. 하지만 게임산업의 표는 정치권에 '이대남'(20대 남성)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즉, 낮은 투표율의 세대의 목소리여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게임'하면, 그냥 20대 남성 표다. 그러니까, 정치권에서 봤을 때는 투표율이 낮으니까 굳이 도와줄 이유가 없는 거다"

게이머는 정치권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대남이란 말을 전할 때 김동욱 의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에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었지만, 개혁 추진의 원동력이 뒤따르지 못했다. 그는 상암 에스플렉스센터에 있는 선수 대기실 사례를 언급하며 "선수 스스로 이 일을 왜 할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며 "세계 최초, 서울에서 유일했던 e스포츠 센터를 지어놓고 1층에 매점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이 나아지기 위해 게이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김동욱 의원은 "게임산업 자체를 나의 친구라고 여겼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 "관심이 계속된다면 게임 인식 개선을 향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

"단순히 뭉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보다는, 그냥 이 게임산업 자체가 나의 친구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내 제일 친한 친구가 각종 장애물이 많대. 그래서 내가 하나씩 치워줘 봐야지처럼. 그냥 인식해 주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 어떤 게임 관련 이슈가 있을 때, 욕을 먹는 게 무관심보다 낫다"

"지금은 인식 개선이라는 큰 목표보다 더 관심을 주는 게 먼저인 거 같다. 그래야 어른들이 듣는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니, 계속된다면 게임 인식 개선을 향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관심을 주지 않으면 퍼지지 않는다. 그냥 우리 게이머들끼리 이야기하고, 불만만 가진 채 끝난다. 냉정하게 보면 사회에서 불만을 가진 사람밖에 안 된다"


김동욱 의원은 계속해 게임과 e스포츠 산업 발전을 위해 의정활동을 펼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조례안을 만들고도 느꼈던 것은 정치권 내에서 게임에 대한 벽과 외로움이었다. 그는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 게임과 e스포츠 정책을 추진하길 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게이머들의 이해와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