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화우는 금일(31일), ‘게임법과 사회질서 -지나치게 묘사하면 위법인가요?-‘를 주제로 제5회 게임 대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담회는 최근 21만 명이 넘는 청구인이 제기한 게임검열 헌법소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대형로펌에서 게임법 이슈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첫 번째 장으로서 마련됐다.


법정등급분류와 사전검열이 필요할까?
콘텐츠는 자율과 사후검열로도 충분하다

▲ 화우 정호선 변호사

첫 번째 발표는 화우 정호선 변호사의 ‘게임물 법정등급분류는 꼭 필요한가?’를 주제로 시작됐다. 정호선 변호사는 게임물에만 유독 법정등급분류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음악과 만화도 사전심의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96년 전부 폐지됐으며, 이후 음악은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비법에서 정한 절차로 영등위가 사전등급분류를 하고 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97년 이래로 청유물 사후심의 방식으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웹툰의 경우는 더 자유롭다.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에 관련 조항이 없기에 웹툰자율규제위원회를 통해서 자율규제 방식으로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영화, 비디오의 경우 6차례가량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영등위에서 사전등급분류를 받는 식으로 바뀌었으며, OTT에 이르러선 제한상영가를 제외하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통해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정호선 변호사는 “자체등급분류가 법정등급분류의 틀 위에 얹혀 있는 형국인 만큼, 법정등급분류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면서, 이를 콘텐츠를 둘러싼 시대의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비단, 음악이나 영화, 만화만의 얘기가 아니다. 정호선 변호사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등급분류 연감에 따르면 현재 게임물 심의 업무의 거의 대부분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면서,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해서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도 충분히 청소년 보호가 가능할 뿐 아니라 사행성이나 각종 사회적 부작용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등급분류 이전에 한국에서 게임을 이용하기 위해선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할뿐더러 정해진 등급연령에 따라 본인인증을 거쳐야 한다. 정호선 변호사는 이에 대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청소년 보호 메커니즘이 이미 충분히 잘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자체등급분류사업자에 해당하는 애플이나 구글 등 앱마켓 사업자는 플랫폼을 청결하게 유지할 책무가 있을뿐더러 알아서 통제하고 있는 만큼, 사전검열 방식인 법정등급분류는 필수적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웹툰의 자율규제 방식처럼 맡겨두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정호선 변호사는 선정성, 폭력성과 관련해서 매체별로 기준이 다른 점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화와 게임 모두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고 해보자. 얼핏 비슷한 이용가로 등급분류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전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영화는 청소년 이용가로 분류되는데 게임은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호선 변호사는 영화인지 게임인지, 매체에 따라 등급분류가 달라지는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호선 변호사는 현재의 등급분류 제도는 목적에서 벗어난 검열의 발상에 가깝다고 역설했다. 본래 등급분류 제도의 목적은 정보 제공에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어떤 콘텐츠(게임)가 청소년이 이용해도 되는 게임인지 보호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게 원래 목적이었는데 현행 등급분류 제도에서는 그게 콘텐츠의 내용을 통제하는 목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성인용 게임을 들면서 “성인용 게임에도 수정 권고가 내려질 때가 있다”면서, “어차피 수정해도 성인용인데 수정하라는 건 등급분류가 목적이 아니라 검열이나 내용을 규제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자율규제가 능사인 건 아니다. 분명 법정등급분류 방식이 맞는 게임도 더러 있다. 물리적 장소를 기반으로 한 아케이드 게임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사전에 제출한 게임과 현장에서 이용하는 게임의 내용물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사전검열과 더불어 장소적 규제 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현재 거론되는 대부분의 문제, 걱정거리 등은 자율규제로도 충분하다는 게 정호선 변호사의 생각이다.

끝으로 정호선 변호사는 “게임물’등급’위원회가 게임물’관리’위원회로 기관명을 바꾼 지 벌써 11년이 지났는데 이는 등급에 대한 걸 시장에 맡기겠다는 거로 볼 수도 있다”면서, 다시 한번 법정등급분류와 사전검열은 꼭 필요치 않다고 말하며, 발표를 끝마쳤다.


왜 게임만 ‘건전’해야 하나?
모호한 건전의 기준,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한림국제대학교 정정원 교수

이어서 한림국제대학교 정정원 교수가 ‘사회질서와 건전한 게임문화’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정정원 교수는 영화, 음악,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 가운데 유독 게임만 ‘건전’해야 한다는 점에 의문을 표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보면 유독 건전이라는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국민의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하는 걸 목적으로 했다는 것부터 게임산업의 ‘건전’한 발전,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법에서의 건전이 의미하는 건 뭘까. 게임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임물의 건전성에 대해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정원 교수는 이 부분도 여러모로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지적한 건 게임물이 공공적이어야 하느냐는 부분이었다. 공공재가 아닌 기업의 상품인데 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윤리성도 마찬가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다른 문화산업과의 차별 역시 문제다.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에 따르면 게임은 음악 등과 마찬가지로 문화산업에 속한다. 즉,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에 게임 역시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게임은 게임법이라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건전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정정원 교수는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제12조를 보면 정부는 문화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문화상품의 유통활성화 및 유통정보화 촉진에 노력하라고만 하지 어디에도 건전이라는 표현이 없다. 거래 질서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거래 질서를 구축하라는 게 끝이다”라면서, 똑같은 문화산업임에도 유독 게임만 건전이라는 모호한 문구를 넣었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문화산업과는 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 역시 문제다. 일반적으로 문화산업에 대한 제반 규범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창조성과 자율성 등을 강조하는 걸 골자로 하고 있는데 게임산업에 대해서만은 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정정원 교수는 “건전한 게임문화가 규범적 표현이 되어 행정기관(게임위)에서도 그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해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행정적 불이익을 주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건전의 정의가 모호하기에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 점이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정정원 교수는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법에서 말하는 건전에 대해 명확히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면서, “그래야 최소한 뭐가 됐든 법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어떤 기준으로 시행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다. 지금까지는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이제는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